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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원이세상

담아온 글들

연하가......
2003.06.10 08:13

[이현철] 연하가 어때서(1,2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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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하가 어때서 1회

겨울이 추위에 떨고 있다.
길 거리의 추위는 사람들의 입김으로 하늘 속으로 마냥 퍼져 가고 있다.
공항의 아침은 제법 추웠다.
해외 여행의 붐은 아임 에프가 곧 올 거라는 걸 알기나 하는지 계속 되고 있었다.
공항에는 겨울 방학에 들어 간 학생들이 베낭을 짊어 지고 여행 출발 준비로 부산하다.
곳곳에 신혼여행을 떠나는 듯한 젊은 남녀들도 보인다.
김포 공항 국제 청사 안, 한쪽 구석에 베낭 여행을 떠나는 한 팀이 있었다.
여행을 떠나는 사람들은 아직 모르는 사이인 듯 통성명을 주고 받는다.
이제 갓 대학생이 된 20대 초반에서부터 30대까지의 연령층이다.
여행을 떠나는 그 팀 중의 세 여자가 다른 사람들과는 조금 떨어져 베낭을 옆에 두고 앉자 통성명을 하고 있다.
한 여자는 이제 돌을 앞 둔 듯한 아기를 안고 있고, 그 옆에 남자 하나가 서 있었다.
그 여자 주위에 두 여자가 아기를 보며 말을 주고 받는다.

"남편하고 아기를 두고 혼자 떠나는 거에요?"

세 여자 중 제일 나이가 들어 보이는 한 여자가 물었다.
아기를 안고 있는 여자는 미소를 지으며 답을한다.

"남편이 내가 요즘 힘들어 하는 것 같다고 여행이나 떠나 보라고 권유하더군요. 이왕 갈 거 멀리 가고 싶었어요. 우리는 맞벌이 부부라 둘이 같이 시간을 내기가 힘들어요. 아이를 오랜 시간 맡길 만한 곳도 없구요. 조금 불안하긴 한데, 남편이 자기가 다 알아서 할테니 혼자라도 맘 편하니 다녀 오라고 하는군요."

여인은 답을 하고서 곁에 말없이 서 있는 남편의 손을 잡았다.
보기 좋은 장면이었다.

"아기가 너무 귀엽다. 몇 개월 됐어요?"

가장 나이가 어려 보이고, 예쁘장한 아가씨가 물었다.

"10개월째 접어 들었어요."
"사내죠?"
"네."
"첫 아기에요?"
"네."
"그럼 신혼이시겠네요."

그 여자는 아기에게 관심을 많이 보이며 밝은 얼굴로 여인과 그의 남편을 쳐다보았다.

"계속 신혼일거에요. 우리 그이는 항상 신혼같이 살자고 하거든요."
"나도 이런 아이 하나 낳고 싶네요."
"호호. 귀엽죠? 애기 아빠를 많이 닮았어요."

여인은 자기의 남편을 한번 씩 쳐다 보고는 미소를 지었다.
남편은 낯선 여자 둘이가 쑥스러웠는지 머쩍은 웃음이다.

"그 쪽은 몇살이에요?"

가장 나이 들어 보이는 여자가 아기에게 관심을 보였던 여자에게 물었다.

"올 해 스물 일곱 됐어요."
"생각보다 나이가 많네요. 나는 스물 너댓 살 쯤으로 봤는데..."
"어머 저랑 동갑이네요. 반가워요. 전 김 남희라고 해요."

이야기를 듣던 아기 안은 여자가 반가움을 표시했다.

"저도 반가워요. 전 홍 은정이라고 합니다."
"내가 나이가 제일 많네요. 난 서른 하나인데. 아마 이 여행이 내 처녀 시절 마지막 여행이 될 것 같아요. 전 이 수연이라고 해요."

여자 셋은 서로 반갑게 악수를 하고 인사를 나누었다.

"아직 결혼 안 하셨어요?"

은정이라고 하는 사람이 수연씨에게 물었다.

"아직 임자를 못 만났어요. 연애는 몇번 해 봤는데 남자들 다 속물인 것 같아요."

그 말에 아기를 안고 있던 여자가 시큰둥한 답을 한다.

"우리 남편은 아니에요."
"우리 팀에는 대부분 나이 어린 학생들이죠? 유럽 가면 우리 같이 다녀요."
"그거 좋죠."

아기를 안은 여자는 흔쾌히 답을 했으나 은정이라는 여자는 새큼한 미소를 짓더니 고개를 흔들었다.

"전 같이 다닐 사람이 있어요."
"누구 같이 온 사람이 있어요?"
"네."

그 답에 때를 맞춰 저기 이 팀의 다른 일행들 속에 있던 한 남자가 빠른 걸음으로 세 여자 쪽으로 왔다.

"누나, 베낭을 짐 칸에 맡긴다고 들고 오래."
"알았어. 이제 일어서야 겠어요."
"그래야 겠네요. 저 남자하고 같이 다닐거에요?"

다가왔던 남자를 보고 그렇게 묻는 남희라는 여인은 아기를 남편에게 맡기며 천천히 일어섰다.

"네."

은정이라는 여인의 눈망울이 사랑스럽다.
방금 말을 던지고 간 그 남자를 보는 시선의 눈망울이었다.

"친동생? 동생하고 같이 온거에요?"
"아니에요."

은정이라는 여인은 이번에도 고개를 흔들었다.
수연씨는 베낭을 짊어 지며 천천히 일어섰다.
남희씨도 베낭을 짊어 지려 했다.

"자기, 베낭도 내가 짊어 질까?"
"자기는 현철이나 잘 돌봐요. 베낭 정도는 내가 짊어 질 수 있어요."

은정이는 그 모습을 보고 미소를 지었다.
은정이가 들고 있는 베낭은 다른 이들에 비해 작았다.
두툼하기는 했지만 학생들이 등,하교시 메고 다니는 이스트 팩멜빵 가방이었다.

"베낭이 작네요."

수연씨가 자기가 들어야 할 베낭과 곁에 있는 남희씨의 베낭을 번갈아 보더니 은정씨에게 물었다.

"대부분 짐들이 아까 그 사람 베낭 속에 다 들었어요."
"누구에요? 짐을 맡길 정도면 꽤 가까운 사인가 보네요."
"학교 후배였었어요."
"과거형인데..."

수연씨는 계속 물었다.
남희씨는 베낭을 짊어 진 채 남편이 안고 있는 아기를 보며 곧 헤어질 것이라는 아쉬움을 달래 듯 사랑스런 말들을 주고 받는다.
수연씨와 은정씨는 그들과 조금 떨어져 걷고 있다.

"어린 애 취급하지 말래요."
"에? 은정씨도 나이가 아가씨로서 해외 여행 가는 건 마지막이겠다. 나처럼 노처녀가 되면 기회가 더 생길수도 있겠지만 은정씨는 남자들이 그 때까지 놔두지 않겠어. 호호."
"저 아가씨로 보이나요? 하긴. 저 결혼했어요."
"응? 결혼 했어요?"
"네."
"근데 남편이 배웅도 안 나와? 그리고 남편이 남자 후배랑 같이 가는 거 알고 있어요?"
"배웅이라... 흠, 아직 인식이 그렇군요."
"뭐가? 아무리 팀을 구성해 떠나는 팩키지 여행이라도 다른 남자랑 같이 가는걸 좋아 할 남편이 어디 있어요."
"그 인식 말구요."
"그럼 후배랑 남편이 잘 아는 사이에요?"
"흠, 너무 잘 아는 사이지요. 한 번 물어 봐야 겠네요."
"그렇군요. 근데 뭘 물어본다는 거에요?"
"아까 남희씨처럼 내가 힘들 때 혼자 여행간다면 보내 줄 수 있는지."
"아, 아까 남희씨 남편 분은 대단한 사람이야. 한 달 가까이 부인을 멀리 외국으로 떠날 보낼 생각을 했으니까. 갓난 아기까지 있으면서 말이에요.
참, 은정씨는 결혼한지 얼마나 됐어요? 완전 아가씨로 보이는데."
"저요? 저 지금 신혼 여행 가는거에요."
"네?"
"아까 그 후배란 남자하고 엊그제 결혼했어요. 아까 저 보고 누나라 불렀던 그 남자가 내 사랑하는 남편이에요. 저 먼저 가 볼게요. 나중에 봐요."

답을 들은 수연이란 사람은 멍한 표정이었다.

"뭐야? 연하하고 결혼 한 거에요?"
"연하는 남편 하면 안되나요?"
"베낭 여행인데?"
"이것도 좋잖아요."

은정이라는 여자는 지금 행복이 넘치는 표정으로 자기의 남편이 있는 곳으로 뛰어 갔다.

"철수씨."
"낯간지러워요. 그냥 하던대로 해요."
"그럼 자기야?"
"언제 나한테 자기야, 한 적 있어? 아줌마 티 내지 마요."
"야아, 나 아직도 아가씨야."
"웃기고 있네. 여자는 식장에 들어서는 순간 아줌마야."
"뭐야? 야, 박철수."
"이제 제대로 나오네. 아니다, 어디 하늘같은 남편 이름을..."

팀의 일행 중 저 둘이가 부부라 생각하는 사람은 금방 사실을 알게 된 수연씨 말고는 아무도 없었다.


연하가 어때서 2회

94년의 학기가 시작되고 철수는 다시 자취 생활을 시작했다.
학기 초의 어수선한 틈을 타 통학을 해 보았지만 여간 힘이 드는 게 아니었다.

'야! 별이다. 오늘 밤에 집에 가게 되면 다시 인사하마.'

철수는 다시 별에게 인사하지 않았다.
다음 날 철수는 자취방에서 배를 긁으며 늦게까지 잠에서 깨지 않았다.

'하하, 올해부터 나에게도 후배가 생기는구나. 과에는 희망이 없을 터이고, 동아리에나 희망을 가져 봐야지. 동아리에 참한 여자 후배가 들어오면 학기 초의 정신 없는 틈을 타, 아주 잘 대해 주는거야. 밥도 사주고 말이지. 나도 여자 친구 한 번 만들어 봐야 겠다. 약대생도 괜찮고, 이과생도 괜찮고, 농대생도 괜찮다. 공대생만 아니면 된다.'

철수는 동아리 방에 갔다가 정희 누나를 만나 점심을 얻어 먹었다.

"우리 동아리는 아직 새내기가 들어 오지 않았나요?"
"아직 시원찮네. 그래도 몇 명 가입을 하겠지."
"참한 여학생 있으면 꼭 저에게 알려 주세요."
"왜? 꼬셔 보게."
"네."
"우리 과 후배 하나 소개 시켜 줄까?"
"인위적인 만남은 자신이 없어요. 자연스럽게 만나고 싶어요."
"쯔쯧, 미팅에서 얼마나 깨졌으면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을까. 나한테 하는 걸 보면 여자애들에게 인기가 있을만도 한데."
"그렇죠? 애들이 보는 눈이 없나 봐요. 나같은 킹카를 매번 나가리 시키는 걸 보면."
"나가리?"
"그 있잖아요. 학고팅 해서 선택받지 못하면 나가리 됐다고 그러잖아요."
"우리말 써라."
"하여튼, 이제 인위적으로 해서 만나는 만남 보다 같은 소속으로 자연스럽게 만나고 싶어요. 혹시 제가 없을 때 예쁜 새내기가 가입 의사를 밝히면 아주 잘해주세요."
"알았어. 아주 잘난 선배 오빠도 있다고 자랑해 줄게."
"기왕이면 박철수라고 밝혀 주세요."
"알았어. 참, 너 은정이 봤니?"
"은정이가 누군데요?"
"내가 전에 얘기 했던 내 친구 있잖아. 체인징 파트너."
"아, 그 누나요?"
"올해는 학교를 다닐거거든. 학교에 몇 번 왔었는데 못 봤구나. 보면 인사 해. 아주 예쁜 누나야."
"알았어요. 누나 보다 예쁜가요?"
"인정하기 싫지만 나보다 예뻐."
"그래요? 나는 이 세상에서 누나가 제일 미인인 줄 알았는데."
"아부 하지마."

철수는 밥 사주기로 마음 먹는 첫날부터 밥을 얻어 먹었다.
그래서 계속 얻어 먹게 될 것이다.
철수는 개강하고 2주 정도 개강 파티다, 신입생 환영회다 바빴던 탓인지 정희 누나의 방을 찾아가지 못했다.
어수선한 분위기가 풀리고 본격적인 학업으로 돌입하는 삼월 중순이 되어서야 혼자 잠이 드는 자취방에 불만을 가졌다.

"우쒸, 심심하다."

혼자 앉아 레포트를 쓰다 철수는 벌떡 일어섰다.
그리고 연락도 하지 않고 정희 누나를 찾아 갔다.
걸어서 5분 정도면 갈 수 있는 거리라 굳이 연락을 취할 필요성을 못 느꼈다.
없으면 그냥 돌아 오면 된다.
정희 누나의 방이 있는 건물 앞에 좋은 차가 한 대 주차 되어 있었다.
철수에게는 조금 낯이 익은 차였다.
그렇지만 별 의식을 하지 않고 지나쳤다.

"누나야. 안에 있어요?"
"응, 철수 왔구나. 잠깐만."

방 문이 열리자 철수는 생각없이 자연스럽게 들어 섰다가 움찔 놀랐다.
낯선 여자가 있었기 때문이다.

"누구?"

철수는 낯선 여자에게 꾸벅 인사를 한 다음 정희 누나에게 시선을 주면서 말을 던졌다.

"들어 와서 인사 해. 전에 말했던 은정이 누나야."
"아,안녕 하세요."
"그래요. 누구니?"

은정이란 사람은 철수의 인사에 답을 한 다음 철수와 마찬가지로 정희에게 시선을 주고 물었다.

"우리 동아리 후배. 귀여운 구석이 많은 녀석이야. 안 그래도 소개 시켜 주려고 했어. 정보 공학과 93학번인데, 공대생 같지 않고 감성이 풍부한 애야. 글을 제법 잘 써. 작년에 우리 학회지에 글을 가장 많이 올렸던 녀석이야."
"오, 그래. 만나서 반가워요. 여기 과자 먹어요."
"네."

철수는 멀뚱 멀뚱 은정이란 사람을 쳐다 보았다.
정희 누나와 더 가까운 자리에 앉아 차려져 있던 과자를 하나씩 주워 먹으며 은정이 누나의 얼굴을 살폈다.
아주 예쁜 얼굴이 어디선가 본 듯한 모습이다.

"자주 보겠네요. 난 정희와 같은 약학과 91학번 홍은정이라고 해요. 반가워요."
"얘, 후밴데 말 놔라."
"나중에 친해지면 자연스럽게 낮아 지겠지 뭐."

철수는 은정이라는 누나의 말투가 차분하고 약간 차가운 느낌을 주는 것이 어디서 들어 본 듯하다.

"저기, 은정이 누나."
"어, 왜요?"
"혹시 저 한 번 만나지 않았어요?"
"그러고 보니까 낯이 익기도 하다."

정희 누나는 그 말을 듣고 웃었다.

"둘이 어디서 만난 적 있니. 철수야 얘는 남자 얼굴 잘 기억 못해. 만났던 남자가 한 둘이어야지."
"내가 무슨? 남들이 그렇게 생각하는 거지. 후배는 이름이 어떻게 돼요?"
"저요? 전 박철수라고 하는데요."
"박철수. 음... 철수. 철수?"
"제 이름인데요. 왜요?"
"혹시 뒷 집에 쌈 잘하는 할머니가 살지 않아요?"
"어! 어떻게 알았어요?"

은정이 누나의 표정이 갑자기 차가운 모습으로 바뀌었다.

"얘,얘가 귀염성이 많은 애니?"

은정이는 정희에게 고개를 돌리더니 차분하지 않은 어투로 물었다.

"어? 바로 말이 낮아 졌네. 응, 선배들에게 잘 해. 왜?"
"근데 아무나 보고 이러니?"

은정이는 갑자기 알밤을 깠다.
그제서야 철수도 은정이 누나가 괜히 낯이 익은 것이 아니란 사실을 깨달았다.

"응? 그러고 보니까... 내 바지 망가뜨린 그 BMW 승용차의 주인공?"
"그래 내가 그 뇬이다. 너 진짜 조심해야 겠다. 내가 차에 적힌 그 말들을 보고 얼마나 어이가 없었는 줄 알아? 나는 여자에게 상스런 말이나 제스춰 보내는 남자를 아주 싫어 해. 특히나 어린 놈이 말이야."
"그때 전 옷을 다 버렸는데요. 그 누나 학교에서는 조심해서 차를 몰아야 하는 거 아닌가요. 괜히 잘 걷고 있는데 지나가던 차가 흙탕물을 튀기면 기분 좋겠어요? 그리고 잘못은 그쪽이 했는데 야단은 오히려 제가 들었잖아요. 동전으로 긁어 버리려다 그 정도 한거에요."
"뭐어? 정희야 너 얘하고 친하니?"
"응."
"얘 버릇 많이 없지?"
"약간 버릇 없어 보일 때도 있지만 생활하는 데 지장을 주지는 않겠던데. 선배들에게 인기 있는 녀석이야."

정희는 친구와 후배가 다투던 모습에 별 신경을 쓰지 않았다.
오히려 재밌게 감상한 모습이었다.
은정인 친구가 자기 편을 들어 주지 않자 철수에게 아니꼬운 눈짓을 하며 툭 쏘듯 말을 내 뱉었다.

"너 박철수라고 했지?"
"그런데요."
"너 빨리 나한테 사과 해."
"뭘요?"
"내 차에 썼던 그 말들에 대한 사과 말이야."
"나도 봤지만 그냥 웃어 넘길 만도 하더만. 왠지 그 철수가 이 철수인거 같더니."

정희는 은정이의 표정과는 대조적으로 얼굴에 웃음기 까지 띄기 시작했다.

"누나가 먼저 사과해요."
"싫어."
"그럼 나도 싫어요."

그렇게 해서 철수와 은정이는 서로 아는 사이가 됐다.
철수가 은정이 누나를 알게 된 그 주의 금요일 저녁이었다.
철수는 집에 갈 요량으로 천천히 전철역으로 걷고 있었다.
철수 옆으로 은색 베엠베, 영어로 비엠더블유 승용차 한대가 씽하니 지나쳤다.
학교에 한대 밖에 돌아다니지 않는 차였는 지라 철수는 금방 저게 은정이 누나의 차란 걸 알 수 있었다.
승용차가 지나치고 난 다음 그냥 뒷 유리창에 대고 손을 흔들어 주었다.
친하지는 않았지만 알게 된 기념으로 손을 흔들어 준 것이다.
잘 가던 그 승용차가 갑자기 섰다.
그리고 비상등이 깜박 거리기 시작했다.
철수는 같은 속도의 걸음걸이로 그 차가 있는 곳까지 걸어 갔다.
어짜피 가던 방향으로 걸어 간 것이었다.

"얘?"

승용차 안에 있던 은정이가 창을 내리더니 철수를 불렀다.

"왜요?"
"집에 가는거야?"
"그런데요."
"어딘데?"

다소 쌀쌀한 어투다.

"알아서 뭐하게요?"
"강남이야 강북이야? 그것만 말해."
"강남인데요?"
"강남 어딘데?"
"신사동이요."
"신사동? 강남구 신사동? "
"아까 강남이라고 말했잖아요. 뭐 들었어요?"
"사과하면 태워줄게."
"차라리 전철 타고 갈래요."
"내 차 타고 가면 시간이 절반 가량 덜 걸릴텐데..."
"누나가 먼저 사과해요."
"나는 흙탕물이 튀겼는지 몰랐단 말이야."
"나도 내가 알게 될 사람이 탄 줄 몰랐어요."
"모르는 사람에게는 그런 제스춰를 보내도 되는거야?"
"몰랐다고 하면 피해를 끼쳐도 용서가 되는구나 그럼."
"타기 싫음 말어."

철수는 자가용 타고 가는 것이 훨씬 편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전철을 타고 가면 많은 인파와 씨름해야 되고, 두번이나 갈아 타야 했다.
그리고 역을 내려서도 상당한 거리를 걸어야 했다.
철수는 솔직히 은정이 누나의 차를 타고 가고 싶다.

"누나는 집이 어딘데요?"
"나는 청담동."
"성남쪽으로 해서 갈거에요?"
"그래."
"그럼 나 중간에서 내려야 되잖아요."
"신사동까지 태워 줄게."
"그럼 서로 사과한 걸로 할래요?"
"내가 손해지만 그럴까?"

철수는 손해라는 그 말에 보조석 문을 열지 않고 뒷좌석 문을 열었다.

"갑시다."

은정이는 철수의 행동에 기분이 좋지 못했다.
태워 주면 고맙다고 탈 것이지. 아주 빼는 행동도 불만이었는데, 옆 자리에 앉지 않고 뒷 좌석에 가 앉는 철수가 못마땅했다.
왜 태워 주려고 마음 먹었던 걸까,하는 후회도 있었다.

"니가 귀빈이니? 상석에 앉고 말이야. 빨리 자리 바꿔."

철수는 자연스럽게 운전석 바로 뒷자리로 옮겨 갔다.

"됐지요? 갑시다."
"너 같은 애가 어떻게 정희에게 후한 점수를 받았는지 모르겠다."
"나는 나에게 잘해 주는 사람에게는 잘 해요."

은정이는 운전하는 동안 계속 철수에게 시비를 걸었고, 철수는 맞받아 쳤다.

"너, 정희에게 얘기를 들었는데 미팅 나가서 매 번 깨졌다며? 나한테 하는 걸 보면 당연한 거 같아. 너 졸업할 때까지 여자친구 하나 없겠다. 안됐다. 나는 제법 잘나가는 편이거든."
"왜 갑자기 우리 뒷집의 쌈쟁이 할머니가 생각이 날까?"
"야, 중간에서 내리고 싶어?"
"속이 참 좁네요. 타라고 했으면 끝까지 책임을 져야지. 음악 좀 틀어 줄 수 없어요? 그 얼굴만 예쁘면 뭐하나, 마음이 고와야지. 그거 있으면 틀어 봐요."
"응?"

일단 철수가 이긴 상태로 철수는 집까지 오게 되었다.

"태워 줘서 잘 왔어요. 고맙습니다."
"너 두고 보겠어."
"제가 물건인가요? 어디다 두고 볼 수 있는게 아니지요. 그냥 보세요. 하여튼 조심해서 들어 가요."


## 이글은 이현철님의 '연하가 뭐 어때'라는 글을 퍼온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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