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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원이세상

담아온 글들

연하가......
2003.06.10 08:41

[이현철] 연하가 어때서(6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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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수는 바로 집으로 가려다 당구장을 들렸다.
두 시간 정도 은정이 누나 곁에 있다가 왔는데도 당구장에서 친구인 동엽이를 볼 수 있었다.

"아직도 치고 있냐? 불쌍한 놈, 축제 기간 내내 당구장에서 살아라."
"오늘 얘랑 편 먹고 편게임 해서 게임비 안 물었어."

철수는 동엽이와 같이 있는 자기과 동기인 승헌이를 꼬아 보았다.
키도 크고 참 잘 생긴 놈 치고는 불쌍한 놈이다.

"축제 기간인데 당구치러 예까지 나왔냐?"
"오늘 집에 안들어 갈거다."
"왜? 그럼 너 어디서 잘건데?"
"동엽이 방에서 자고 갈거야."
"넌 축제 기간인데 만날 사람 없어? 생긴 걸 보면 여자 친구가 있을 법도 한데."
"없어. 너도 한 판 할래."
"불쌍한 놈. 집에 가 새끼야. 그리고 내일은 학교 나오지 마. 당구장 아저씨가 우리 과를 어떻게 생각하겠어? 저기 보니까 선배들도 잔뜩 있는데..."
"나도 축제 기간에는 집에 안 들어 갈 수도 있다는 것을 보여 주고 싶다. 오늘 집에 안 갈거다. 축제 기간인데 집에 있어 봐. 그러지 않아도 우리 누나들이 휴일에는 집에만 박혀 있는 나를 보고 혀를 차는데..."
"계속 당구 칠거냐?"
"응."

철수는 널대를 하나 들고 와 당구장내를 훑어 보았다.
당구 치는 사람들 모두가 공대 내에서 봤던 사람들 같다.

"너도 뭐 별수 없네. 쯧쯧!"

철수가 당구 큐대 잡는 모습을 보자 승헌이란 녀석이 혀를 찼다.

"나는 그래도 임마. 동아리 내에 아는 누나들 있어. 나는 최소한 내일 맛있는 거 얻어 먹는 약속도 잡아 논 사람이야."
"너, 나이 많은 여자들 하고 놀지 마라. 내가 누나들이 많아서 아는데, 빨리 늙어. 기를 빼앗기거든."
"기를 빼앗긴 놈이 하루 종일 당구 칠 체력은 있냐?"
"정신력으로 치는 거야. 나는 최소한 당구장에서는 서럽지 않거든. 내 또래에 200 치는 사람 봤냐?"
"나도 금방이야 새꺄. 공 좋게 함 놔나 봐. 동엽아 저기 셈 판, 다섯 개만 떼 주라."
"아직도 오십이냐? 너 이제 80 놔도 돼."
"그래. 80 놓고 치지 뭐."

철수는 당구를 쳤다.

''나쁜 놈들, 150, 200이나 되는 것들이 겨우 50 치는 놈 다마수를 올리게 해놓고 이겨? 담에 은정이 누나랑 편 먹고 함 이겨 줄테다. 이 녀석들은 여자라면 무조건 얕보는 경향이 있는 전 근대적 사고방식의 놈들이니까. 하하.''

철수는 당구에서는 무참히 패했지만 최소한 이 녀석들 보다는 자기 처지가 낫다는 생각을 했다.
축제 기간, 당구장 밖에는 갈 데가 없는 놈들.
철수의 머리 속에는 정희 누나가 떠 올려 졌고, 은정이 누나의 모습이 지나갔다.

''아, 내 나이가 두 살만 많았어도...''

철수는 깨끗이 세수를 한 다음 별 생각 없이 잠이 들었다.

다음 날 철수는 세면대로 갔다가 씩, 웃었다.

''진짜 없어졌네. 가만 근데 거울 속 댁은 누구쇼? 내 주위에는 이렇게 잘 생긴 사람이 없는데... 댁의 부모님은 참 좋겠수, 이렇게 잘난 아들을 두어서. 근데 다른 부모님들은 한 달 용돈을 주는데 왜 우리 부모님은 이렇게 잘난 아들에게 일주일 용돈을 주는거야. 그것도 쥐꼬리 만하게...''

철수는 어제 당구비로 남은 용돈을 날린 관계로 아침을 굶었다.
그래도 철수는 점심 이후는 배불리 먹을 것이라 기대를 했다.

"여보세요. 거기 핸드폰 맞아요?"
"네? 누구?"
"으이쒸 돈이 왜 이리 빨리 떨어지는 거야."
"철수니?"
"예, 우쒸."
"뭐야 너?"
"뚜뚜뚜..."
"여보세요?"
"왠일이니? 오랜만에 전화 하구선 우쒸,만 남발하더니."
"동전 바꾸러 갔다 왔어요."
"밖인가 보네?"
"예. 어? 또 떨어졌다 씨."
"어디야?"
"여기 약대 현관 앞 공중전화요."
"거기 내 차 보이니?"
"예."
"그럼 내 차 앞에서 기다리고 있어. 곧 나갈게."
"뚜뚜뚜..."

은정이가 자기 차 앞으로 왔을 때, 철수는 거기 없었다.
학생 회관 쪽에서 열심히 뛰어 오는 철수는 은정이를 보지 못하고 다시 약대 건물 현관 안으로 사라졌다.
은정이는 고개를 갸웃 거렸다.
그리고는 철수를 따라 현관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삐리리리."

은정이는 전화가 울리자 어이가 없는 웃음을 지었다.

"여보세요?"
"또 동전 바꾸러 갔다 왔었니?"
"네. 빨리 말해요. 차 보이는 데 뭐요?"
"아까 내 말 못들었어?"
"네."
"이 번엔 동전 많이 바꿔 왔니?"
"이 백원 밖에 없어요 빨리 말해요."
"잠시만."
"우쒸 또 떨어졌어."
"박철수!"
"목소리가 참 생생하게 들리네요."
"나 너 뒤에 있어. 넌 아직도 바보 같구나."

철수는 은정이의 말에 고개를 돌렸다.
은정이의 말에 별로 신경쓰지 않는 모습이다.

"야, 신기하다. 헨드폰 잠깐 줘 봐요."
"왜?"
"빨리 줘 봐요. 돈 떨어진다 말이에요."

은정이의 웃음은 약간 거만하게 바뀔 정도였다.
철수는 한심한 모습이지만 귀여워 보이긴 했다.
한손에는 공중전화 수화기를 잡고, 다른 한 손엔 헨드폰을 쥐고 번갈아 귀에 댔다 때었다 한다.

"여보세요? 어 들리네. 그러는 댁은 누구세요? 여기도 들리네. 나 박철수요. 나도 박철순데... 그참! 신기하네."
"동전 바꾸러 학생회관 까지 갔다 온거야?"
"예."
"그럼 거기서 전화하지."
"거긴 누나 차가 안 보이잖아요."
"너는 계속 바보 같겠다."

철수는 아쉬운 듯, 헨드폰을 은정이에게 넘겼다.
은정이는 철수를 데리고 어디 먼 곳으로 갈 모양이다.
바로 자기 차로 철수를 안내했다.

"너 계속 거기 앉을거니?"
"여기가 편하다 했잖아요. 근데 어디 멀리 갈거에요?"
"너, 오늘 서울 올라 갈 거 아니니?"
"맞아요."
"그럼 서울 가서 사줄게."
"나, 집에 갈 준비 안했는데."
"가다가 너네 자취방 들리지 뭐 그럼."
"내 자취방 알아요?"
"저번에 가 봤잖아."
"아, 맞다. 근데 좀 지저분할텐데."
"누가 니네 방 들어 간대니? 밖에서 기다릴테니 준비하고 나와."
"알았어요."
"저번에 보니까 별로 지저분 하지 않던데?"
"내 방이요?"
"응."
"내 방이야 깨끗한 편이지요. 근데 주위가 지저분해요."
"혼자 사니까 좋아?"
"자유로운 건 좋은데, 심심해요. 홍기사? 출발합시다."
"헛! 그래 알았어."
"나도 운전 면허증을 따야 할텐데."
"니가 운전 면허증 따면 내가 도로 주행 시켜 줄 수 있어."
"이 차로요."
"응."
"이런 비싼 차, 잘못해서 긁어 버리면 나 물어 줄 돈 없어요."
"흠."

철수는 자기 방에 들어 갔다가, 생각 보다 자기 방이 깨끗하고, 가져갈 물건이 없자 들어 갔던 그대로 다시 나왔다.
내가 철수를 너무 바보처럼 꾸미고 있다.

"어디 가는 거에요?"
"뭐 맛있는 거 사줄까?"
"사주는 사람 맘이지요."
"양식으로 할까? 한식으로 할까? 아니면 피자 같은 패스트푸드?"
"탕수육은 어떨까요? 우리 동네 가까운 곳에 큰 중국집이 있거든요. 울 아버지 따라가서 얻어 먹어 본 적이 있는데 맛있대요. 내가 요즘 약 먹기 때문에 돼지고기는 못 먹어요. 쇠고기 탕수육 사주세요."
"사주는 사람 맘이라면서 니 주장은 다 밝히네? 어디 말하는 거야? 만리장성?"
"아니요. 중국성이요."
"근데 무슨 약 먹어?"
"보약이요. 저 일 년에 사개월 정도 약을 달고 다녀요."

은정이는 제법 차분한 어투다.
걱정하는 투로 물었다.
은정이 표정이 잠시 어두워 졌다.
철수는 뒤에 앉았기 때문에 그걸 알리가 없다.

"너 몸이 약하니? 어디 안 좋은 데 있어?"
"제가 말입니다. 고 삼때 체력장에서 1000미터 오래 달리기 일등한 사람이에요. 삼일을 굶어 봐요. 내가 얼굴이 누렇게 뜨나."
"몸이 튼튼하다는 말이야?"
"네."
"근데 왜 약을 달고 다니는데?"
"그럴 일이 있어요. 저 약먹기 진짜 싫거든요. 제 자취방 냉장고에 먹지 않고 쌓아 둔 약봉지가 제법 있지요. 누나 피곤하면 말해요. 몇 개 줄테니까."
"그래. 그럼 중국성으로 간다?"
"어딘 줄 알아요?"
"너네 동네랑 우리 동네 별로 멀지 않아."

"맛있니?"
"그럼요."
"너 몸무게 얼마야?"
"그걸 왜 물어요? 나한테 관심 있어요?"
"키는 175쯤 되겠다?"
"176이에요. 어떻게 해서 키운 일센티인데 깎아 내리면 섭하죠."
"몸무게는?"
"65키로 정도 나가요. 왜요?"
"그럼 보통 체격인데, 그 많던 걸 어떻게 다 먹을 수 있니?"
"누나도 자취해봐요."

"예쁜 누나 잘 먹었습니다."
"그래."
"그럼 전 이만 집에 가 보겠습니다. 여기서 걸어가도 되니까 태워 줄 필요 없어요. 잘 가세요."
"어머 얘 좀 봐. 너 여자 친구 만나서도 이러니?"
"여자 친구가 없어서 이런지는 잘 모르겠는데요."
"어떻게 볼 일 끝났다고 그냥 가니?"
"그래서 인사하고 가잖아요."
"너 여자친구 사귀기 진짜 힘들겠다."
"누나가 그런 말 안해도 충분히 힘들어 하고 있어요."
"밥을 얻어 먹었으면 차 한잔 대접해야지."
"어제 당구비로 날려서 돈이 없는데요."
"우리 동네 가서 차 한잔 하고 가라."
"돈 없는데요."
"빌려줄게."
"좀 치사하네요."
"그럼 내가 사줄게."
"진짜에요? 근데 왜 하필은 누나 동네에요?"
"남자가 여자를 만났으면 집에 데려줘야지. 안그래?"
"누나 아무나 보고 그런 말 해요?"
"왜?"
"그런 말 하면 남자들이 착각해요."
"뭘?"
"저 년이 내게 맘이 있구나."
"너 또 년이라고 했어."
"아, 실수. 저 여자분이 나에게 마음이 있으시구나."
"칫! 그래서 너도 그렇게 생각하니?"
"나는 모든 여자들이 내게 맘이 있다고 생각을 하죠. 왜? 나는 잘났으니까. 그러나 버트. 난 연상에게는 관심이 없어요."
"이렇게 착각하고 사는 녀석한테 어떻게 정희가 좋은 점수를 주었을까?"
"아, 잠시 정정을 하겠습니다."
"뭘?"
"정희 누나는 내 연상이라도 좀 생각해 볼 마음이 있어요."
"치. 갈거야 말거야?"
"갑시다. 뭐 사준다는데."
"후후."
"왜 웃어요?"
"그냥."

철수는 또 은정이 차의 뒷자석에 앉았다.
은정이도 이젠 별 신경을 쓰지 않았다.
은정이가 철수를 데리고 간 곳은 고급 의류점이 즐비한 고급스런 분위기 뒷골목의 괜찮은 찻집이었다.
둘이의 모습이 제법 친해진 느낌이다.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었다.

"누나도 대해 보니까, 괜찮네요."
"그럼. 나 괜찮은 여자야."
"취소다. 괜찮은 여자면 겸손 할 줄 알아야지요."
"그럼 넌?"
"나야 뭐 겸손하면 오히려 더 욕 먹어요."
"큰일이다."
"나야 그렇게 말해도 다 농담처럼 들리니까 괜찮지만 누나는 그렇지 않기 때문에 겸손해야 된다 말이에요."
"오호, 니가 왠일로 바른 말을 다 하니?"
"누나 차 얼마짜리에요?"
"그건 왜?"
"누나 집 부자에요?"
"못사는 편은 아니야."
"학생이 그런 차 타고 다니면 나쁜 시선 많이 받을텐데."
"흠. 너도 내가 외제차 타고 다닌다고 날 나쁜 시선으로 봤니?"
"좋게 보지는 않았지요."
"나쁜 시선으로 봐도 어쩔 수 없어."
"등,하교 하기가 힘드니까 자가용 몰고 다니는 것은 이해가 되지만, 학생 신분에 맞는 차를 타고 다녀야지요."
"학생 신분에 맞는 차가 어떤 차종인데? 어짜피 돈 못 버는 학생인데 다 부모님 주머니에서 나온 돈으로 산 거 아냐?"
"대부분이 그렇지만."
"저 차는 외할아버지가 선물 한 차야. 하나 밖에 없는 자기 자식, 그 자식의 또 하나 밖에 없는 딸이 귀여워 선물 한 차가 저 차야."
"무슨 말이에요?"
"나도 재작년까진 전철 타고 다녔어. 우리 외할아버지 독일 계신다?"
"갑자기 외할아버지가 독일 계신다는 말은 왜 한거에요?"
"나 작년에 외할아버지하고 살았어."
"아, 독일 나가 있었던 거에요?"
"응. 그때 할아버지가 저 차를 선물해 주셨어. 우리 할아버지가 좀 잘 사시거든. 독일에는 저 정도 차 몰고 다니는 학생들 많아."
"그럼 독일에서 타던 차를 한국에 가져 온 거에요?"
"응."
"돈 많이 깨졌을텐데."
"그 돈을 보태도 여기 이 차 가격에 비하면 상당히 싸게 구입한 거야."
"그래도 그런 사정 아는 사람이 없잖아요."
"어짜피 나 모르는 사람들인데 그런 시선이 뭐 중요하니?"
"그래도 같은 학교 학생들인데?"
"상관없어."
"음, 정신 자세가 상당히 서구화 되셨네요."
"안 좋은 말이지?"
"그건 누나가 맘대로 받아 들이시구요. 어머님이 외동딸이세요?"
"응. 나도 외동딸이야."
"그래요?"
"네가 투덜거려도 내가 잘 받아 들이는 편이라고 생각하지 않니?"
"내가 뭘 투덜거렸다고 그래요. 이제 잘한다고 했잖아요. 예쁜 누나님."
"후후, 나는 나보다 네,다섯 살 정도 적은 동생하나 갖는게 꿈이었어. 그게 남자든, 여자든 상관 없이 말이야."
"음."
"뭘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거리니?"
"한마디로 내가 귀여워 보이니까 동생 삼고 싶어 잘해 줬다는 말 아닙니까? 별로 잘해 준 건 없지만."
"그래. 투덜 거리든 말든, 친한 동생하나 곁에 있으면 좋겠다. 일단 널 그 대상에 넣었으니까 내게 잘 해."
"잘하고 있잖아요. 근데 나는 누나 보다 두살 밖에는 적지 않은데?"
"하는 짓을 보면 네,다섯살이 뭐야? 여섯, 일곱살 어려 보여 임마."
"으응? 누나 별로 안 늙어 보여요. 아직 이십대로 보인다 말이에요. 너무 자책하지 마세요."
"그래, 말싸움으로 널 어떻게 이기겠니. 넌 참 편하게 한 세상 살겠다."
"잘났으니까 당연하죠."
"착각 속에서 살면 편하대."
"누나도 그럼 편하겠네요."

창 밖 거리의 조명등이 수줍게 웃고 있다.
여운 미소를 머금고 둘이 참 잘 논다는 식의 일종의 비웃음 섞인 조명등도 보인다.

"우리집 하고 반대 방향이잖아요."
"우리 집에 가는거다."
"근데 왜 날 태웠어요?"
"여자를 만났다가 헤어 질 땐 집까지 배웅하는거야."
"전 지금 강제로 끌려 가는 듯한 인상을 받는데요. 집 가르쳐 주려고 이러는 거에요?"
"아니. 배웅 받으려고."
"진짜 삭막한 여자네."
"삭막해도 할 수 없어. 니가 옆자리만 앉았어도 내가 너네 동네까지 태워 주려고 했는데 넌 계속 뒤에 앉잖아? 우리 집 가까운 곳에 버스 정류장 있으니까 너 거기서 버스 타고 가."
"그렇게 살고 싶어요?"
"응."
"살긴 편하게 살아도 죽을 땐 편하지 못하겠네요."
"이건 나쁜 말이란 걸 바로 알겠다. 쏭알 쏭알..."

은정이는 갑자기 알아 듣지 못하는 외국말을 주절되기 시작했다.
아마 독일어인 거 같다.

"갑자기 못 알아 듣는 외국말을 하고 그래요."
"답을 못하겠지? 독일말로 네 욕한거다."
"그런다고 내가 답을 못할 줄 알아요?"
"해 봐."
"you too."

조금 차를 몰고 간 곳에는 괜찮은 빌라가 있었다.
지하 주차장 문이 열려 있었고, 수위도 쌈 잘하게 생겼다.

"저기가 내 사는 곳이야."
"집 자랑 하는거에요?"
"그렇다."
"내려 줘요. 집에 가게."
"내가 말을 그렇게 했다고 진짜 널 버스 태워 보낼 줄 알았니?"
"진짜 그럼 집 자랑 한거네."
"내려서 앞에 타."
"싫다고 그러면?"
"그럼 진짜 버스 타고 가야지."

철수는 소리는 나오지 않았지만 입을 야물거렸다.
철수는 은정이 누나 옆으로 가 앉았다.

"이제 됐나요?"
"응."
"그럼 출발합시다."
"이제 기사 소리는 안하네?"
"뒷 좌석에서는 그런 말 해도 되지만, 옆 좌석은 얻어 타는게 바로 표가 나잖아요."

철수가 자리를 바꿔 타고 차가 출발한 지 채 이,삼분 지나지도 않았을 때였다.
남청색 샤브 승용차 한대가 은정이 차의 앞을 가로 막았다.
철수가 본 은정이 누나의 표정은 가히 좋지 못했다.

"저 차가 왜 앞을 막는거에요?"
"우리 빌라 옆 동 총각이야."
"아, 예전에 말했던 누나에게 차였던 남자?"
"응."
"저 차가 좋은거에요? 이 차가 좋은거에요?"
"분위기 파악 좀 해라."
"저 차가 좋은건가 보다. 그럼 비켜 줄때까지 기다려요."
"야!"
"왜요?"
"이 차가 좋은거야."

승용차에서 제법 건장한 청년하나가 내렸다.
그리고 이 쪽으로 걸어 왔다.

"저 사람 표정 보니까 농담할 때가 아닌 거 같은데요."
"니가 먼저 했잖아."

청년은 철수에게는 신경을 쓰지 않고 은정이가 앉은 쪽의 창문 유리를 두들겼다.

"뭐라 말 하잖아요. 문 열어 봐요."
"열지 마."
"멋있게 생겼는데 왜."
"느끼 해."
"생긴 건 멀쩡한 게 저 새끼도 불쌍한 놈이구나."

철수가 말한 불쌍한 새끼는 불쌍하지 않은 표정으로 은정이가 앉은 쪽 창문을 계속 두들겼다.

"넌 가만히 있어."
"안 그래도 가만히 있을 거에요."

은정이는 그 청년이 가지 않고 계속 창을 두들기자 할 수 없이 유리창을 내렸다.

"차 좀 비켜 주시겠어요?"
"계속 날 피하는 인상이네?"
"보고 싶지 않은 모습이니까요. 빨리 차나 치워주었음 좋겠네요."
"흠, 옆에는 누구야? 취미가 희한하네. 저런 어린 놈을 데리고 다니는 거 보면?"
''그럼 내가 좀 어려 보이긴 어려 보이지. 미소년이라고나 할까.''
"말 함부로 하지 마세요."
"저 번엔 군복 입은 놈하고 같이 있더니, 금방 다른 놈 꼬셨어?"
''군복? 저 번에 학교에서 본 놈은 군인 같진 않았는데. 그건 그렇고 쌩판 처음 보는 놈이 놈이라고 그러니까 기분 더럽다. 쉐이야.''
"그런 식으로 말하면 기분 좋나요?"
"내려서 얘기 좀 하자."
"싫은데요."
''싫대잖아 임마.''
"내가 너한테 뭘 잘못했냐? 딴 여자 따로 만난 것도 아니고 차인 이유는 알아야 할 것 아냐."
"우리가 뭐 사귀었어요? 댁이 딴 여자 만나던 말던 저하고 상관 없는 일이잖아요."
''잘한다. 홍은정. 그렇게 톡톡 쏘아 부치면 떨어지게 되어 있어. 진짜 차가워 보인다.''
"나는 사귄다고 생각 했었어. 잠깐만 내려 봐."

청년은 갑자기 실내로 손을 넣어 은정이의 팔을 잡았다.

"이거 놔요."
"아!"
''참 행동 빠르네. 한 팔을 잡히고서는 어떻게 저렇게 빨리 창을 올렸을까?''

청년의 팔이 창 유리문에 끼였다.
청년은 힘을 들여 팔을 빼고서는 험한 인상을 지었다.

"야! 이 년이 보자보자 하니까. 내려 씨."

청년은 차 앞바퀴를 걷어 차기 시작했다.
''임마 그래도 이차가 비싼 줄은 아는지 다른 곳은 걷어 차지 않네? 하는 짓을 보니까 별로 쌈도 못하겠군.''

철수가 갑자기 문을 열고 내리려 했다.

"너 왜 내리는 거니?"
"안 갈 것 같잖아요."
"그래서?"
"누나에게 년이라고 했잖아요."
"너도 자주 했잖아."
"나는 직접적으로 하진 않았어요."
"그냥 모른 척 있으면 갈 거야. 괜히 일 크게 만들지 말고 들어 와."
"왜요? 제가 저 사람에게 두들겨 맞기라도 할 것 같애요?"
"응."
"나 싸움 못하는 거 어떻게 알았어요?"

철수는 기어이 밖으로 나가 그 청년 앞에 섰다.

"아저씨, 그냥 가세요. 제가 잘 말씀 드릴게요."

은정이는 차에서 내리지 않았다.
운전석에 그대로 앉아 유심히 철수가 하는 모양만 지켜 볼 뿐이다.

"뭘 임마?"
"나도 미팅 나가 많이 나가리 되어 봐서 아저씨 심정은 충분히 이해가 가는데요. 이러면 더 초라해 질 뿐이에요."
"너 뭐야 임마."
"임마라고 그러면 안되지요."
"이 새끼가 놀려."
"놀린게 아니에요. 아저씨가 이러면 더 밉게만 보여 질거에요."
"날 가르치려 드는거야?"
"한 번 만났던 사람은 언젠가 한 번은 그리움이 되지요. 저도 가을 바람 불면 무수한 소녀가 떠 올라요 여자라고 그런 생각 안들겠어요?"

철수의 말이 길어 지자 청년은 말문을 잊고 기분 나쁜 표정이 더 커져 갔다.
그래도 철수는 계속 말을 이었다.

"아저씨가 저 여자분을 봄이 오는 계절에 만났죠? 여자는 봄을 타거든요. 내년 봄이 되면 저 여자도 분명 아저씨가 한 번 쯤 그리움 되어 떠 오를거에요. 그때 좋게 말하세요."
"뭐야 임마?"

참다 못한 청년은 철수의 멱살을 잡았다.
분위기가 좋지 못하자 은정이가 차에 서 내렸다.
그리고 그 청년을 바로 꼬아 보며 말했다.

"놔주지 못해요? 한대라도 때리면 바로 신고할거에요."
"그래요. 표정이 신고 할 거 같지 않아요. 놔 줘요."
"넌 뭔데 아까부터 장난스런 말이야?"
"내딴에는 진지하게 해 준 말이에요."
"이 새끼가 진짜."
"인생은 아름다운 거에요. 어딘가 자기를 짝사랑하는 사람이 살고 있다 생각하면서 저 여자는 그리움으로 묻어 두세요."
"뭐야?"
청년의 한 주먹이 올라 오려 했다. 철수의 모습이 그것을 보고 갑자기 변했다.
"좋은 말 할때 놓는게 좋을거다. 오늘 병원에 실려 가기 싫으면."
"뭐어?"

청년의 손이 내려가자 철수는 다시 인상을 풀었다.
아직까지 멱살은 잡혀 있다.

"우리 아버지 변호사야 임마. 나 한대 때리면 그 즉시 넌 구치소 행이야. 우리 아버지 부장검사까지 지내시다 변호사로 전향하셨어. 너 정도 잡아 넣는거 문제 도 안돼."
"거짓말 하지 마 임마."
"거짓말인거 어떻게 알았어요?"
"퍽."

철수는 참다 못한 그 청년에게 얼굴을 한대 맞았다.
그 모습이 은정이에게는 아주 무서운 모양이었나 보다.

"아아아악!"

저기 지나 가던 사람도 쳐다 보고 100미터도 더 떨어진 곳의 은정이가 사는 빌라의 수위실 문도 열렸다.
사람들의 시선을 받자 방금 철수를 때린 청년은 자리를 비키기 시작했다.
자기 차로 돌아 가더니 금새 차를 출발 시켰다.
철수는 주저 앉아 얼굴을 부여잡고 있다.
은정이가 놀란 가슴을 부여 안고 주위의 시선들에게 어색한 미소를 보여 주고 쭈그러 앉아 있는 철수에게로 왔다.

"안 아프니?"
"맞았는데 안 아프겠어요?"
"그러게 왜 그랬어?"
"아깝다. 저 새끼 진짜 잡아 넣을 수 있었는데. 누나가 고함을 지르는 바람에 허사로 돌아 갔잖아요."
"너네 아빠 진짜 변호사시니? 한대 맞았으니까 잡아 넣을 수 있겠네 그럼?"
"거짓말이라고 했잖아요."
"뭘 믿고 그럼 그런 짓 한거야?"
"내가 쌈을 좀 잘해요. 두들겨 맞지 않을 자신이 있었으니까 그런 거지요."
"정말? 근데 왜 맞았어?"
"진짜 때릴 줄은 몰랐죠. 대충 보면 저 사람이 때릴 용기가 있는지 없는지 알 수 있어요. 못 때릴 줄 알았는데."
"그렇게 놀렸는데? 나 같아도 한대 쥐어 박았겠다."
"우리 아버지 얘기까지 했는데 날 때렸단 말이야? 제법 용기 있는 놈이에요."
"치, 너네 아버지 변호사 맞구나?"
"아니에요. 우리 아버지 한의사에요. 진짜 보약 먹기 싫다."
"엉?"


## 이글은 이현철님의 '연하가 워 어때'라는 글을 퍼온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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