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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원이세상

담아온 글들

연하가......
2003.06.10 08:43

[이현철] 연하가 어때서(7회)

조회 수 624 추천 수 3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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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수는 은정이가 운전하는 바로 옆에 앉아 거울을 가지고 계속 자기 얼굴만 보고 있다.
철수는 맞은 곳이 약간 부었다.
아니 많이 부었다.
은정이는 철수를 보며 걱정스러운 표정이다.
철수는 더 걱정스러운 표정이었다.

"그렇게 잘 생겼던 얼굴이 이게 뭐야."
"푸 우 우!"
"그냥 참지 말고 웃어요. 우리 아버지한테 야단 맞겠네."
"너네 아버지 진짜 한의사니?"
"그걸 왜 자꾸 물어요?"
"너네 아버지가 한의사인데, 전에 넌 서명도 하고 서명하라고 떠들고 다녔잖아."
"말은 똑바로 하세요. 그게 제가 하고 싶어 한 것은 아니잖아요."
"그래도. 허, 참!"
"울 아버지가 그러시는데, 어짜피 그 법률에 관계된 인사들이 죄다 약대 출신이라 약사들에게 유리한 쪽으로 계속 갈거래요. 우리 아버지는 별로 신경을 안 써요."
"그래도 주장할 건 주장해야지."
"우리 아버지는 세상에 대해 관조적인 면이 많아요."
"그래도 너 서명한 것은 잘못한거야."
"시킨 녀자가 더 나쁘죠 그죠? 그나저나 큰일이네. 맞은 거 이거 표 안나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되죠?"
"몰라. 그냥 반창고나 하나 붙여. 그리고 너 녀자라고 하지 말고 여자라고 해. 꼭 년이라고 말하려다 바꾼 것 같잖아."
"이제 잘한다고 했잖아요. 예쁜 누나님. 근데 예쁜 누나님?"
"왜?"
"약대생 맞아요?"
"응. 학생증 보여줘?"
"나 이런 모습으로 들어가면 울 아버지께 야단 맞아요. 우리 아버지 세상에 대해서는 관조적이지만 가족 일에 대해서는 관조적이지 못해요."
"무슨 말이야?"
"보약까지 먹였더니 두들겨 맞고 들어와? 이러시며 야단 치실 거 분명하단 말이에요."
"넌 더 때렸다고 하면 되잖아."
"누나 바보구나. 내가 이제 성인인데 누굴 두들겨 패면 집에 연락이 가지 않았겠어요? 고등학생일 때도 파출소에서 집으로 연락이 바로 가던데."
"엉? 너 고등학생일 때 깡패였니?"

철수는 대답을 회피했다.
그냥 아주 상대방 기분을 더럽게 만드는 표정과 눈짓을 은정이에게 보여 주고 자기 걱정만 말했다.

"큰일이네. 우리 아버지는 맞고 들어 오는 걸 상당히 싫어 하시는데..."
"그럼 걸어가다 잘못해서 넘어 졌다고 말씀드려. 아니면 문 열다 찍혔다고 하던 지."
"아, 맞다. 그러면 되겠구나."
"넌 그냥 한 평생 바보로 살아라."
"자꾸 바보라고 그러지 마요. 나는 남자를 쉽게 생각하는 여자를 경멸해요."
"치, 경멸받기 싫어서 오늘은 너네 집 앞에까지 태워줄까?"
"됐어요. 저기 신호등 앞에서 내려 줘요. 누나는 조금만 더 가면 유턴하는 곳 있으니까 횡하니 집에 가세요. 사람 뜸한 밤에 아까 같은 일 당하면 곤혹스러울거 아녜요."
"꽤 위하는 척 한다 너?"
"나는 내게 잘하는 사람에게는 잘 한다고 말씀 드렸잖습니까. 맛 있는 것도 얻어 먹었는데."
"그래. 다음 주에 학교에서 보자."
"네, 조심해서 들어 가세요. 안녕."

은정이는 뛰어가는 철수를 바라 보고 있다.
그 모습이 귀여운 지 상큼한 미소가 맺혀있다.

시간이 흘렀다.
녹음이 짙어졌고, 철수의 자취방으로 가는 길에 심어진 강냉이의 키도 많이 자랐다.
햇살은 더 이상 따사롭지 못하다.
뜨겁다.
유월달이다.

"내가 촌에 있는 학교 다니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촌에 사는 것도 아닌데 등,하교 하면서 강냉이가 익어 가는 걸 보게 될 줄이야. 나중에 다 자라면 몇개 서리해야 겠다."

철수는 여전히 자취하는 것에 불만이 많다.
한 학기가 저물고 있다.
철수가 속한 동아리는 일 년에 두번 발행하는 회지를 만드느라 부산한 편이었다.
철수는 작년에는 수필, 꽁트, 시 부문에 걸쳐 제법 많은 양의 글을 올렸으나 올해는 꼴랑 시 한편만을 거의 십분 만에 작성하여 던
져 주었다.
당구 때문이었으리라.

"앗싸!. 백 고지가 멀지 않았다. 동엽아 잘 쳤다."
"한 게임 더 해."
"밥 먹어야 돼."
"이기고 가는 놈이 어딨냐?"
"그런 말 하지말고 자네 실력을 키워. 알았나?"
"80 주제에 말이 많다."
"요즘 당구장에서 승헌이를 보기 힘들다?"
"그 녀석 여자 친구 생겼잖아."
"정말?"
"부러워 하지마. 한 번 봤는데 머리 스타일도 벼락맞은 거 같구, 키도 짤막한 게 승헌이가 참 아깝다는 생각이 들더라."
"야, 남,녀 관계에 아까운 게 어딨냐? 근데 진짜 아니디?"
"응."
"불쌍한 놈. 나는 밥 먹으러 간다. 안녕."

철수는 밥을 먹고 나서 또 당구 생각이 나 당구장으로 달려 갔다.
동엽이는 보이지 않았다.
대신 저 구석에서 어떤 남,녀가 눈꼴 시려운 모습으로 당구를 아주 재미없게 치고 있었다.

"여기서는 공의 약간 오른 쪽을 맞추면 돼."
"이렇게?"
"응. 야, 잘한다."
'미친놈. 그게 잘하는 거냐? 큐대도 제대로 못잡는군. 진짜 머리 스타일 웃기네.'

철수는 자기와 당구 칠 사람이 보이지 않자 할 수 없이 그 남,녀에게로 다가 갔다.

"야, 송승헌."
"응? 어, 철수 왔구나."
"누구냐?"

철수는 곁눈질을 하며 물었다.

"내 여자 친구야. 이리 와. 소개 시켜 줄게."

철수는 무감각한 표정으로 승헌이 여자 친구에게 인사를 꾸벅 했다.
"같은 과 친구 박철수입니다."
"이 의정이에요."

철수는 한 동안 자리에 앉아 승헌이와 지 여자친구가 당구 치는 꼬락서니를 지켜 보았다.

"나는 안 끼워 줄거냐?"
"얘가 실력이 안되잖아."
"그럼 나는 예전에 실력이 되어서 너네들이랑 당구 쳤냐?"
"니 게임비 나가는 것은 괜찮지만 얘는 그게 아니거든."
"그럼 나는 뭐하냐?"
"구경 해. 정 게임을 하고 싶으면 1대2로 치던지."
"내가 너 여자친구랑 편 먹어라구?"
"미쳤냐? 너 혼자 하구 우리 둘이는 편 먹구."
"싸가지 물개 털 만큼도 없는 놈."

철수는 아주 못마땅하게 쳐다 보는 승헌이 여자친구의 눈빛을 받아야 했다.

'너네 둘이 떨어지기 싫다는 거야? 아니면 승헌이 욕해서 그런거야?'
"박 철수. 심심하냐?"
"응."
"그럼 집에가 새꺄."
'섧어라.'

철수에게 문득 떠 오르는 사람이 있었다.
이 섧음을 갚아 줄 수 있는 사람이었다.

"송 승헌."
"왜 자꾸 우리 승헌이에게 말을 시키고 그래요?"
'무서운 년.'
"왜? 말해 봐."
"편 게임 한 번 하자. 내 편을 데려 오겠다."
"그래. 근데 동엽이나 우리과 애들은 안된다."
"여자면 되냐?"
"그래. 그건 되지."
"게임비에다 커피도 한잔 내기."
"니가 여자와 편을 먹는다면 그렇게 하지."
"알았다. 잠시만 기다려라."

철수는 기쁜 표정으로 당구장 아저씨 앞으로 갔다.

"아저씨 전화 한통만 할게요."
"시외 전화는 안된다?"
"알았어요."
'핸드폰은 더 비싼디? 아저씨는 핸드폰을 모르는 구나.'
"여보세요?"
"누나에요?"
"철수니?"
"응."
"니가 비싼 헨드폰에다 전화를 다 하구..."
"누나 아직 서울 안 갔죠?"
"응. 나 정희네 방이야."
"에? 거기서 자고 갈거에요?"
"응."
"왜?"
"학회지에 오를 글들 내가 선별하잖아. 정희 도움도 좀 받구. 너도 놀러 올래?"
"누나 지금 당구 한게임 쳐요."
"지금? 나 조금 바쁜데."
"흑흑, 제가 지금 얼마나 설움을 받고 있는지 모르죠?"
"그건 또 왜?"
"내 친구가 여자친구를 데려와서 내게 엄청난 설움을 주고 있어요. 그래서 누나랑 편먹고 걔들 깨부수고 싶어요."
"후후, 나랑 편 먹으면 이길 수 있니?"
"그 새끼는 누나가 당구 고수인 걸 모르잖아요."
"이기면 뭐가 있는데?"
"게임비하고 커피 한잔."
"치, 그걸로 나 같은 비싼 몸을 부르진 못하지. 넌 내게 해 줄거 없어?"
"치사하다 진짜."
"알았어 알았어. 그때 그 당구장?"
"네. 지금 바로 와요."
"정희에게 미안한데."
"나중에 저도 도와줄게요."
"알았어. 곧 갈게."

철수는 의기양양하게 승헌이에게로 돌아 왔다.

"나중에 딴 말 하기 없기다."
"나혼자 해도 이겨."
"내가 좀 손해지만 같은 점수 놓고 치자. 그래야 뒷말 하지 않지."
"어쭈. 너 돈 많냐? 나 200중에서도 잘 치는 편이야."
"둘 다 서른 개 놓고 치자. 나도 이제 100정도 실력 된다."
"알았어."

철수는 의미있는 미소를 지었고, 승헌이는 자기 여자 친구를 불러 작전 구상 중이다.

"자기는 공만 맞추면 돼. 나머지는 내가 다 알아서 할게."
"그래."

철수는 기대를 했다.
은정이 누나가 아주 예쁜 모습으로 나타나 처음부터 기를 꺽어 줄 것으로... 그러나.

"아저씨 오랜만이에요."
"그래."
"누나 여기에요. 엉?"
"안녕 철수야."
"옷차림이 이게 뭐야?"
"이게 뭐 어때서?"
"추리닝에 슬리퍼? 누나 자취생 아니잖아."
"자고 갈 거라 옷 갈아 입었지."
"누나 집에서도 이렇게 자요?"
"아니야. 섹시한 잠옷 입고 잔다. 정희가 이것 밖에 없다잖아."

은정이의 모습은 세수를 한 탓으로 화장기도 없었고 옷차림도 남자 자취생같은 차림이었다.
그래도 당구장에 있던 많은 남자들은 은정이에게 눈길을 주고 있었다.

"승헌이 이리 와서 인사 해. 우리 동아리 친한 누나야."
"안녕하세요. 철수가 좋아하는 누나에요."
"네."

승헌이는 은정이를 쳐다 보더니 철수에게 귓속말을 했다.

'너, 내가 전에 말했지? 나이 많은 누나하고 친해지면 빨리 늙어 임마.'
'넌 사자머리하고 놀면 좋냐?'

은정이는 승헌이와 그의 여자친구의 경이로운 시선을 바라 보며 신들린 듯 당구를 쳤다.

"호호, 게임 끝났네요. 잘 쳤어요."
"당구비 내고 너 나한테 커피 사내야 돼."
"저 누나 얼마 치냐?"
"너랑 같애."
"그것 참 신기하다. 저 누나 200 더 되겠다. 나보다 당구 잘 치는 여자가 존재할 줄이야. 나 세상 헛살았나 봐."
"나 오늘은 커피 못 얻어 먹지만 꼭 사 줘야 돼. 자판기 커피 사 주면 죽을 줄 알어."
"철수야 가자."
"알았어요. 누나. 잘 쳤다 승헌아."

철수는 히히, 거리면서 은정이 옆을 걷고 있다.
밤 바람에 강냉이 코고는 소리가 정겨운 길이다.

"너 친구 참 잘 생겼다."
"나보다는 못하죠."
"호호, 그래. 어떻게 철수 보다 잘 생길수 있겠니. 근데 그런 말 다른 사람에게는 하지 마."
"누나 남자들하고 당구치러 많이 다녔죠?"
"제법 다녔지."
"거의 살았지 뭐."
"내 당구 실력은 우리 아빠 때문에 늘었어. 다른 오해가 없기를 바래."
"아빠하구요?"
"우리 아빠 당구 실력이 오백이야. 나이가 있으시니까 마땅히 같이 당구 칠 상대가 없으셔서 나를 가르치셨지. 우리 아빠 자식이라고는 나밖에 없잖아."
"아빠하고 참 친한가 보네요."
"그럼."
"글 선별 작업은 끝났어요?"
"아직 반도 못했어."

철수는 은정이를 따라 정희 누나네 방으로 갔다.
정희는 미소를 띠우며 철수를 맞아 주었다.

"당구는 이겼니?"
"당연하죠. 요즘 누나가 그리워요. 동아리 방도 자주 좀 나오고 해요."
"알았어. 은정이 너 자고 갈거면 집에 연락해 줘."
"맞다."

철수는 방에 늘려 있는 A4지랑 원고지를 뒤적 거려 보았다.
자기가 쓴 시가 적힌 B5 연습지 하나가 초라하게 보였다.

'또 한 소리 듣겠군.'
"아빠 난데."
"아버님한테 난데가 뭐야."

철수는 자기 아버지에게 깍듯한 존댓말이었기 때문에 한 말씀 하셨다.

"쉿. 아빠 오늘 나 집에 못 가겠어."
"..."
"여기 정희네 방이야. 아까 그 놈은 정희 동생 목소리야."
"..."
"왠만하면 가겠는데, 나도 아빠 보고 싶지."
"..."
"지금 가면 가로등도 없는 깜깜한 국도를 지나쳐야 되는데? 덤프 트럭이 얼마나 과속을 하는데. 총알 택시들도 있구 혹시 폭주족 만나게 될지도 몰라. 거기다가 나 지금 졸려서 졸음 운전 할것 같기도 해. 그래도 오라고 하면 갈게."
"..."
"알았어. 내일은 꼭 집에 갈게요. 엄마에게도 잘 주무시라고 말씀해 주세요. 네."

은정이가 전화를 끊자 철수와 정희는 멀뚱하게 그녀를 쳐다만 볼 뿐이다.

"갑자기 누나 부모님이 가엾단 생각이 들어요."

철수는 글을 읽다 연신 하품이었다.
오늘 당구장에서 보낸 시간이 장난이 아니었다.
철수는 피곤했다.

"저는 잠이 와서 더 이상 못있겠어요. 집에 가야 할 것 같아요."
"너, 도와 준다고 했잖아."
"지금 시간이 열한시를 넘었잖아요. 저 레포트도 써야 하는데..."

철수는 집으로 돌아 왔다.
그리고 당구를 오래 쳤던 탓에 지쳐 바로 침대에 쓰러져 잠이 들었다.

다음 날 철수는 동아리 방에 갔다가 바로 은정이 누나에게 잡혔다. 은정이의 얼굴이 새큼하다.

"밥 사주려구요?"
"아니. 이거 니가 직접 쓴 거니?"

은정이 손에는 연습지 하나가 들려 있었다.
철수가 십분만에 적어 낸 좀 성의 없는 시였다.
어쩐지 어제 저걸 보았을 때 한 소리 들을 것 같더니...
시가 서정주의 문둥이를 닮았다.

"맞는데요."
"진짜? 이거 학회지에 내지 말고 그냥 나 줘."
"에?"
"내 맘에 들었거든. 생각나는 사람이 있어서 그래. 나 주라."
"그거 그냥 생각없이 쓴 신데."
"그러니까 나 줘."
"뭐하게요."
"생각나는 사람이 있다고 했잖아."
"누구요?"
"넌 몰라도 돼."
"밥 사줄거에요?"
"사 줄게."
"그럼 가져요."

잠시 삼인칭 관찰자 시점으로 변신해 어제 정희의 방을 엿 보겠다. 시점 변화하는데 불만이 계신 분이 있을 수도 있겠지만 제 맘이요.

은정이와 정희는 회원들이 제출한 글들을 차근차근 읽고 있었다.

"철수도 글을 제출했네?"

은정이가 철수가 낸 글을 보았다.

"걔 글 참 잘 지어. 올해는 이상하게 시 한편 뿐이네."
"작년에는 더 많이 냈었니?"
"응."
"공대생인데?"
"겉모습과는 다르게 감수성이 많은 애야."

은정이는 철수가 적어 낸 시를 읽어 본다.
그리고 살핏한 미소를 머금었다.

"잘 썼니?"
"생각 외네. 훗!"
"그래 잘 쓴다고 했잖아."
"갑자기 누가 생각이 나."
"누구?"
"내가 좋아하는 사람."
"누구 승주씨?"
"응."
"저 번에 휴가 나왔을 때 봤다면서."
"변한게 없더라 그 사람."
"곧 제대 하겠다."
"응."
"철수가 쓴 시가 그 사람을 생각나게 했다는 거야?"
"그래."


어지러운 그리움 하나 먹고
노을따라 눈물하나 삼키고
어두운 밤하늘
나는 그믐 달 빛같은 날카로운 미소를 지었다.
멀어질 수 밖에 없는 운명이라면
생각은 나지 말아야 할텐데
노을은 매일 갈수 없는 저 산에 걸리고
달은 어지러운 밤 하늘에서 웃고 있다.


## 이글은 이현철님의 '연하가 뭐 어때'라는 글을 퍼온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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