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하가 어때서 12회
오랜 기다림과 방황 끝에 나는 내일 서울을 뒤로하고 수원 저기 촌구석으로 유학을 떠날 것이다.
방학이 끝났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가야한다.
섧다.
다른 놈들은 고향 내려 갔다가 개강이라 서울로 올라 오는데, 나는 반대로 내려가야 하다니...
여기서 제가 누군지 궁금해 하시는 분이 있을 줄로 압니다.
박철수.
철수가 접니다.
작가를 사칭한 이모씨가 광고 클릭수가 50번도 넘지 않는다고 글 쓰는 걸
포기할까 생각 중이랍니다.
밥 벌어 먹기 위해 직장 구해야 되기 때문에 바쁘답니다.
쩝.
그래서 시점이 바뀌었습니다.
학교 가기가 예전 보다 조금 즐거운 것은 친한 누나들이 있기 때문일까?
방학동안 당구실력을 100으로 만든 뿌듯함 때문일까?
가을 하늘은 분위기가 있어 좋다.
가만 아직 팔월달이구나.
그럼 아침 하늘은 시원해서 좋다.
11시도 아침은 아침이지 암.
어제 밤 습기 찬 자취방에 들어 갔을 때는 기분이 울적했지만 오늘 아침 학생들이 많은 교정의 모습은 더없이 해맑다.
"나 잡아 봐라."
세상엔 참 제정신 못 갖고 사는 년, 아니 녀자들이 많다.
무슨 아침부터 교정에서 저 난리냐?
새내기인 듯한 소녀 둘이가 장난을 치며 어린 아이처럼 뛰어 간다.
농대 앞의 잔디 밭에는 아침부터 고무줄 놀이를 하는 여학생들이 보였다.
방학 때 더위를 너무 많이 먹었나?
자꾸 헛것이 보인다.
요즘은 대학생들도 고무줄 놀이를 하나?
학기 초는 휴강하는 수업이 많다.
강의실 보다는 저기 여학생들처럼 잔디밭에서 고무줄 놀이를 하거나, 교수들 차 세워 놓은 곳에서 족구를 차거나, 또는 공중 전화기 붙잡고 휴강됐다는 거 자랑하는 놈들이 대부분이다.
나도 마찬가지다.
배울 책도 없는 전공 과목이 수업을 할 리가 없다.
멀리 보이는 공대는 왠지 가기가 싫었다.
밥 할때까지 학생 회관 앞에 쪼그리고 앉았다.
내 주위로 몇사람 더 쪼그려 앉아 있다.
대부분 자취생일테지?
내가 아는 놈들은 하나도 지나가지 않았다.
눈에 익은 승용차 한 대가 내 앞에 섰다.
고개를 들어 보니 유리 창이 부드럽게 내려가고 있다.
"철수야? 너 거기서 뭐해?"
약간 거만한 듯한 예쁜 얼굴.
황금 빛 태양 빛을 받아 은빛 찬란한 외제 승용차.
연상만 아니었어도 내 아주 반가워 했을 여자다.
"누나 왔어요? 오랜만이네."
"응. 나 반갑지 않니? 반가운 사람 만났으면 일어 나야지?"
반가운 사람 만난 태도가 유리창만 내리고 고개만 내밀어 가소롭게 쳐다 보는 것인가.
그 승주라는 사람하고는 잘 되었는지 모르겠다.
은정이 누나의 얼굴 표정이 밝다.
"일어 나서 뭐 하게요?"
"밥 먹었니?"
"지금 기다리고 있잖아요."
"학생 식당 밥?"
"네."
"잘 먹고 수업 잘 받아라. 앞으로 나 보게되면 반가운 척 해라."
뭐야 저거, 겨우 그거 물어 보려고 내 앞에 차를 세웠단 말이야.
차 뒷 유리를 통하여 손을 흔드는 은정이 누나의 모습은 정말 얄밉다.
방학 동안 학생 식당이 많이 바뀌었다.
분명 네모난 돈까스였는데, 어느새 동그랗게 변했다.
그리고 값도 1200원에서 1500원으로 올랐다.
양식은 일주일에 한 번만 사먹어야 겠다.
개강 첫 주는 개강 파티 한 번 한 것과 은정이 누나 한 번 본 것 말고는 당구장에서 살았던 것 같다.
개강을 했지만 정희 누나는 한 번도 보지 못했다.
금요일날 서울로 올라 갈까 망설였던 나는 당구 꼬임에 빠져 하룻 밤 더 자취방 신세를 지게 되었다.
당구를 끝내고 커피나 한 잔 얻어 먹을까 하여 정희 누나네 방을 찾았지만 그녀는 없었다.
엔터테이먼트라고는 컴퓨터 하나 밖에 없는 삭막한 내 방에서의 깊은 밤은 잠자는 것 말고는 할 것이 없다.
밖에는 여름의 끝을 알리는 비가 주섬주섬 내리기 시작했다.
이런 날 내 오피스텔을 가장한 자취방 앞 길은 귀신이 나올 것 같은 음산한 분위기를 마련해 준다.
이젠 내 키보다 더 큰 수수밭의 풍경은 언제 어디서 무엇이 나올 지 모르는 무서운 모습이다.
아직은 덥다.
그리고 비가 오니 습기가 차 잠이 잘 오지 않는다.
불을 꺼 놓은 밤, 시계 소리와 빗방울 소리가 또한 음산하다.
그리고 밖에서 들리는 또박 또박 발자국 소리.
그리고 내 방 근처서 멈추어 선 구두 발자국 소리.
겁난다.
집에 갈 걸.
"딩동!"
뭐야?
지금 시각 새벽 열두시 35분.
나를 찾아 올 사람은 아무도 없다.
"누구세요?"
밖에서는 대답이 없다.
문을 열기가 두렵다.
"딩동, 딩동, 딩동!"
"누구세요?"
또 대답이 없다.
마음을 가다듬고 문을 열어 보았다.
시크먼 물체가 문에 기대어 서 있다가 내 앞으로 푹 쓰러진다.
심장이 멎는 듯 했다.
내 품에는 지금 얼굴 없는 긴 머리, 입에서는 음냐, 음냐 소리까지 내는 검은 물체가 있다.
향기 좋은 냄새도 있지만 또한 고약한 소주 냄새도 있다.
나는 놀라 뒤로 물러 섰고 내게 기대었던 시크먼 물체는 바닥에 풀썩 쓰러졌다.
겁이 났다.
마음을 가다듬고 불을 켰다.
이 여자가 진짜.
참 이지적이고 멋있는 외모를 가졌던 저 여자의 지금 모습은 마냥 비웃어 주고 싶은 모습이다.
내 방바닥에 쓰러져 있던 검은 물체는 검은 자켓과 검은 바지를 입고 술에 취한 은정이 누나였다.
"누나 왜 그래요. 여기 왜 왔어요?"
엎드려 자고 있는 여자에게 내가 하는 말이 들릴 리 없다.
들었나 보다.
누나가 히죽 웃으며 방 바닥에 몸을 일으켜 앉았다.
그리고 핸드백을 뒤지더니 자동차 열쇠를 꺼낸다.
뭐 할려고 저러지?
"정희가 없어. 미안한데 넌 내 차에 가서 자. 음냐."
은정이 누나는 열쇠를 던져 주며 또 방바닥에 픽 쓰러졌다.
저게 날 믿는 행동일까?
아니면 무시하는 행동일까?
나도 남자기 때문에 확 덮쳐 버릴까 하는 생각도 했다.
앞으로 배 고플 때 저 여자만큼 밥을 자주 사 줄 여자는 없을 것 같다.
그래도 열쇠 건네 주며 날 자기차에 가서 자라는 말은 심히 기분 나쁘다.
자기 맘대로 찾아 와서 자기 맘대로 날 내 쫏는 행동은 참을 수 없다.
발로 엎드려 있는 은정이 누나의 허벅지를 툭툭 건드려 보았다.
반응을 살피기 위해서다.
왜 내 방을 찾아 온겨.
"박철수!"
"네?"
누나가 벌떡 일어나더니 주위를 두리번 거렸다.
그리고 다시 푹 쓰러진다.
한번 더 해 볼까?
툭,툭!
"박척수!"
"네?"
재밌네.
하지만 더런 땅바닥에 누워 자는 은정이 누나의 모습은 좀 가엾다.
누나 앞에 가 앉았다.
"오해 하지 마세요."
"응."
그냥 저대로 둬 버릴까 하다가 구두와 자켓은 벗겨 주어야 겠다는 생각으로 누나 앞으로 갔다.
자켓 벗길 때는 가슴이 조금 떨렸다.
자켓을 곱게 옷걸이에 걸고 방바닥에 아직도 쓰러져 있는 저 간 큰 여자를 달랑 들었다.
무겁다.
솔직히 내가 힘이 없다는 것이 옳을 것이다.
그리고 침대에 던져 놓고 눈물을 머금고 밖으로 나갔다.
나, 참 착하고 말 잘듣는 학생 같다.
이 여자가 차를 세워놔도 하필이면 수수밭 옆에다 세워 놔 가지고...
누나가 차에서 자라고 한다고 나는 진짜로 차에서 잤다.
보조석에 누워 집 쫓겨난 설움을 맛보아야 했다.
차에서 자니까 해가 뜨자 마자 눈을 뜨게 되더라.
어깨가 쑤시고 허리가 아프다.
해 뜬 기념으로 과감하게 내 방으로 갔다.
내 방 문을 열면서 그렇게 가슴 조였던 적이 있을까.
흠, 누나는 아직 한 밤 중이었다.
침대 위에 엎드려 자는 모습이 사랑스럽다고 해야 되나, 귀엽다고 해야 되나.
손가락으로 허리를 한 번 찔러 봤다.
반응이 없다.
댁 부모님이 참 가엾수.
아주 오랜만에 내 방에서 밥을 지어 보았다.
찌개라야 즉석 찌개에다 계란 하나 푼 것이지만 해장하는데는 좋을 것이다.
누나는 밥을 다 지어 놓고 십 여분이 지나서야 부시시 일어 났다.
주위가 낯설었는지 은정이 누나는 눈을 비비며 고개를 두리번 거렸다.
내 베개는 좀 내려 놓지. 저거 때가 많이 탔는데 누나는 인형처럼 꼭 껴 안고 주위를 둘러 보았다.
나를 보자 흠칫 놀라기 보다는 피식 웃는다.
아직도 술이 덜 깼나.
나에게 뭐라 말을 던질 것 같다.
"누나 지금 제 정신이야? 원래 그런거야? 진짜 간 큰 여자네. 세상 말세다 말세."
누나는 할 말을 잊고 꾸중하는 나를 멍하게 쳐다 보고 있다.
"내가 어젯밤 여기로 왔었니?"
"응."
"그 참. 내가 왜 여기로 왔지?"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요."
"너 아무짓도 안했지?"
"했으면?"
"했으면 너랑 사귀는 거지 뭐."
"저 여자 말하는 것 좀 봐요."
"열쇠 줘."
"응?"
"다 기억하고 있으니까 차 열쇠 줘. 차에서 가 자랜다고 진짜 차에 가서 자니?"
"엥?"
뭔가 이상하다.
"숙녀를 침대에 던질 땐 좀 살살 던져라."
"지금 뭐야 이거?"
"후후, 웃겨 죽겠어. 어제 나 소주 딱 두 잔 마셨어. 정희가 없길래 집에 갈까
말까 하다가 네 생각이 나서 혹시나 여기 와 봤었거든. 네 목소리 들으니까 괜히 장난기가 발동하더라. 넌 진짜 연상엔 관심이 없나 보다. 누나가 다음에 참한 후배 하나 소개 시켜 줄게."
"어제 그럼?"
"말짱했었지. 철수야, 오해 하지 않을께. 쿠쿠."
무슨 저런 여자가 다 있냐. 발자국 소리가 또박 또박 들렸을 때 뭔가 짐작을 했어야 했는데...
"아침에 내가 찔렀을 땐?"
"기억에 없어. 그땐 내가 진짜 잠이 들어 있었지. 차에 가서 자랜다고 진짜 차에 가버리는 애한테 무슨 경계심이 들겠니? 푹 잤지."
"누나 지금 당장 나가."
쪽팔려 죽겠다 우쒸.
## 이글은 이현철님의 '연하가 뭐 어때'라는 글을 퍼온 것입니다...##
오랜 기다림과 방황 끝에 나는 내일 서울을 뒤로하고 수원 저기 촌구석으로 유학을 떠날 것이다.
방학이 끝났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가야한다.
섧다.
다른 놈들은 고향 내려 갔다가 개강이라 서울로 올라 오는데, 나는 반대로 내려가야 하다니...
여기서 제가 누군지 궁금해 하시는 분이 있을 줄로 압니다.
박철수.
철수가 접니다.
작가를 사칭한 이모씨가 광고 클릭수가 50번도 넘지 않는다고 글 쓰는 걸
포기할까 생각 중이랍니다.
밥 벌어 먹기 위해 직장 구해야 되기 때문에 바쁘답니다.
쩝.
그래서 시점이 바뀌었습니다.
학교 가기가 예전 보다 조금 즐거운 것은 친한 누나들이 있기 때문일까?
방학동안 당구실력을 100으로 만든 뿌듯함 때문일까?
가을 하늘은 분위기가 있어 좋다.
가만 아직 팔월달이구나.
그럼 아침 하늘은 시원해서 좋다.
11시도 아침은 아침이지 암.
어제 밤 습기 찬 자취방에 들어 갔을 때는 기분이 울적했지만 오늘 아침 학생들이 많은 교정의 모습은 더없이 해맑다.
"나 잡아 봐라."
세상엔 참 제정신 못 갖고 사는 년, 아니 녀자들이 많다.
무슨 아침부터 교정에서 저 난리냐?
새내기인 듯한 소녀 둘이가 장난을 치며 어린 아이처럼 뛰어 간다.
농대 앞의 잔디 밭에는 아침부터 고무줄 놀이를 하는 여학생들이 보였다.
방학 때 더위를 너무 많이 먹었나?
자꾸 헛것이 보인다.
요즘은 대학생들도 고무줄 놀이를 하나?
학기 초는 휴강하는 수업이 많다.
강의실 보다는 저기 여학생들처럼 잔디밭에서 고무줄 놀이를 하거나, 교수들 차 세워 놓은 곳에서 족구를 차거나, 또는 공중 전화기 붙잡고 휴강됐다는 거 자랑하는 놈들이 대부분이다.
나도 마찬가지다.
배울 책도 없는 전공 과목이 수업을 할 리가 없다.
멀리 보이는 공대는 왠지 가기가 싫었다.
밥 할때까지 학생 회관 앞에 쪼그리고 앉았다.
내 주위로 몇사람 더 쪼그려 앉아 있다.
대부분 자취생일테지?
내가 아는 놈들은 하나도 지나가지 않았다.
눈에 익은 승용차 한 대가 내 앞에 섰다.
고개를 들어 보니 유리 창이 부드럽게 내려가고 있다.
"철수야? 너 거기서 뭐해?"
약간 거만한 듯한 예쁜 얼굴.
황금 빛 태양 빛을 받아 은빛 찬란한 외제 승용차.
연상만 아니었어도 내 아주 반가워 했을 여자다.
"누나 왔어요? 오랜만이네."
"응. 나 반갑지 않니? 반가운 사람 만났으면 일어 나야지?"
반가운 사람 만난 태도가 유리창만 내리고 고개만 내밀어 가소롭게 쳐다 보는 것인가.
그 승주라는 사람하고는 잘 되었는지 모르겠다.
은정이 누나의 얼굴 표정이 밝다.
"일어 나서 뭐 하게요?"
"밥 먹었니?"
"지금 기다리고 있잖아요."
"학생 식당 밥?"
"네."
"잘 먹고 수업 잘 받아라. 앞으로 나 보게되면 반가운 척 해라."
뭐야 저거, 겨우 그거 물어 보려고 내 앞에 차를 세웠단 말이야.
차 뒷 유리를 통하여 손을 흔드는 은정이 누나의 모습은 정말 얄밉다.
방학 동안 학생 식당이 많이 바뀌었다.
분명 네모난 돈까스였는데, 어느새 동그랗게 변했다.
그리고 값도 1200원에서 1500원으로 올랐다.
양식은 일주일에 한 번만 사먹어야 겠다.
개강 첫 주는 개강 파티 한 번 한 것과 은정이 누나 한 번 본 것 말고는 당구장에서 살았던 것 같다.
개강을 했지만 정희 누나는 한 번도 보지 못했다.
금요일날 서울로 올라 갈까 망설였던 나는 당구 꼬임에 빠져 하룻 밤 더 자취방 신세를 지게 되었다.
당구를 끝내고 커피나 한 잔 얻어 먹을까 하여 정희 누나네 방을 찾았지만 그녀는 없었다.
엔터테이먼트라고는 컴퓨터 하나 밖에 없는 삭막한 내 방에서의 깊은 밤은 잠자는 것 말고는 할 것이 없다.
밖에는 여름의 끝을 알리는 비가 주섬주섬 내리기 시작했다.
이런 날 내 오피스텔을 가장한 자취방 앞 길은 귀신이 나올 것 같은 음산한 분위기를 마련해 준다.
이젠 내 키보다 더 큰 수수밭의 풍경은 언제 어디서 무엇이 나올 지 모르는 무서운 모습이다.
아직은 덥다.
그리고 비가 오니 습기가 차 잠이 잘 오지 않는다.
불을 꺼 놓은 밤, 시계 소리와 빗방울 소리가 또한 음산하다.
그리고 밖에서 들리는 또박 또박 발자국 소리.
그리고 내 방 근처서 멈추어 선 구두 발자국 소리.
겁난다.
집에 갈 걸.
"딩동!"
뭐야?
지금 시각 새벽 열두시 35분.
나를 찾아 올 사람은 아무도 없다.
"누구세요?"
밖에서는 대답이 없다.
문을 열기가 두렵다.
"딩동, 딩동, 딩동!"
"누구세요?"
또 대답이 없다.
마음을 가다듬고 문을 열어 보았다.
시크먼 물체가 문에 기대어 서 있다가 내 앞으로 푹 쓰러진다.
심장이 멎는 듯 했다.
내 품에는 지금 얼굴 없는 긴 머리, 입에서는 음냐, 음냐 소리까지 내는 검은 물체가 있다.
향기 좋은 냄새도 있지만 또한 고약한 소주 냄새도 있다.
나는 놀라 뒤로 물러 섰고 내게 기대었던 시크먼 물체는 바닥에 풀썩 쓰러졌다.
겁이 났다.
마음을 가다듬고 불을 켰다.
이 여자가 진짜.
참 이지적이고 멋있는 외모를 가졌던 저 여자의 지금 모습은 마냥 비웃어 주고 싶은 모습이다.
내 방바닥에 쓰러져 있던 검은 물체는 검은 자켓과 검은 바지를 입고 술에 취한 은정이 누나였다.
"누나 왜 그래요. 여기 왜 왔어요?"
엎드려 자고 있는 여자에게 내가 하는 말이 들릴 리 없다.
들었나 보다.
누나가 히죽 웃으며 방 바닥에 몸을 일으켜 앉았다.
그리고 핸드백을 뒤지더니 자동차 열쇠를 꺼낸다.
뭐 할려고 저러지?
"정희가 없어. 미안한데 넌 내 차에 가서 자. 음냐."
은정이 누나는 열쇠를 던져 주며 또 방바닥에 픽 쓰러졌다.
저게 날 믿는 행동일까?
아니면 무시하는 행동일까?
나도 남자기 때문에 확 덮쳐 버릴까 하는 생각도 했다.
앞으로 배 고플 때 저 여자만큼 밥을 자주 사 줄 여자는 없을 것 같다.
그래도 열쇠 건네 주며 날 자기차에 가서 자라는 말은 심히 기분 나쁘다.
자기 맘대로 찾아 와서 자기 맘대로 날 내 쫏는 행동은 참을 수 없다.
발로 엎드려 있는 은정이 누나의 허벅지를 툭툭 건드려 보았다.
반응을 살피기 위해서다.
왜 내 방을 찾아 온겨.
"박철수!"
"네?"
누나가 벌떡 일어나더니 주위를 두리번 거렸다.
그리고 다시 푹 쓰러진다.
한번 더 해 볼까?
툭,툭!
"박척수!"
"네?"
재밌네.
하지만 더런 땅바닥에 누워 자는 은정이 누나의 모습은 좀 가엾다.
누나 앞에 가 앉았다.
"오해 하지 마세요."
"응."
그냥 저대로 둬 버릴까 하다가 구두와 자켓은 벗겨 주어야 겠다는 생각으로 누나 앞으로 갔다.
자켓 벗길 때는 가슴이 조금 떨렸다.
자켓을 곱게 옷걸이에 걸고 방바닥에 아직도 쓰러져 있는 저 간 큰 여자를 달랑 들었다.
무겁다.
솔직히 내가 힘이 없다는 것이 옳을 것이다.
그리고 침대에 던져 놓고 눈물을 머금고 밖으로 나갔다.
나, 참 착하고 말 잘듣는 학생 같다.
이 여자가 차를 세워놔도 하필이면 수수밭 옆에다 세워 놔 가지고...
누나가 차에서 자라고 한다고 나는 진짜로 차에서 잤다.
보조석에 누워 집 쫓겨난 설움을 맛보아야 했다.
차에서 자니까 해가 뜨자 마자 눈을 뜨게 되더라.
어깨가 쑤시고 허리가 아프다.
해 뜬 기념으로 과감하게 내 방으로 갔다.
내 방 문을 열면서 그렇게 가슴 조였던 적이 있을까.
흠, 누나는 아직 한 밤 중이었다.
침대 위에 엎드려 자는 모습이 사랑스럽다고 해야 되나, 귀엽다고 해야 되나.
손가락으로 허리를 한 번 찔러 봤다.
반응이 없다.
댁 부모님이 참 가엾수.
아주 오랜만에 내 방에서 밥을 지어 보았다.
찌개라야 즉석 찌개에다 계란 하나 푼 것이지만 해장하는데는 좋을 것이다.
누나는 밥을 다 지어 놓고 십 여분이 지나서야 부시시 일어 났다.
주위가 낯설었는지 은정이 누나는 눈을 비비며 고개를 두리번 거렸다.
내 베개는 좀 내려 놓지. 저거 때가 많이 탔는데 누나는 인형처럼 꼭 껴 안고 주위를 둘러 보았다.
나를 보자 흠칫 놀라기 보다는 피식 웃는다.
아직도 술이 덜 깼나.
나에게 뭐라 말을 던질 것 같다.
"누나 지금 제 정신이야? 원래 그런거야? 진짜 간 큰 여자네. 세상 말세다 말세."
누나는 할 말을 잊고 꾸중하는 나를 멍하게 쳐다 보고 있다.
"내가 어젯밤 여기로 왔었니?"
"응."
"그 참. 내가 왜 여기로 왔지?"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요."
"너 아무짓도 안했지?"
"했으면?"
"했으면 너랑 사귀는 거지 뭐."
"저 여자 말하는 것 좀 봐요."
"열쇠 줘."
"응?"
"다 기억하고 있으니까 차 열쇠 줘. 차에서 가 자랜다고 진짜 차에 가서 자니?"
"엥?"
뭔가 이상하다.
"숙녀를 침대에 던질 땐 좀 살살 던져라."
"지금 뭐야 이거?"
"후후, 웃겨 죽겠어. 어제 나 소주 딱 두 잔 마셨어. 정희가 없길래 집에 갈까
말까 하다가 네 생각이 나서 혹시나 여기 와 봤었거든. 네 목소리 들으니까 괜히 장난기가 발동하더라. 넌 진짜 연상엔 관심이 없나 보다. 누나가 다음에 참한 후배 하나 소개 시켜 줄게."
"어제 그럼?"
"말짱했었지. 철수야, 오해 하지 않을께. 쿠쿠."
무슨 저런 여자가 다 있냐. 발자국 소리가 또박 또박 들렸을 때 뭔가 짐작을 했어야 했는데...
"아침에 내가 찔렀을 땐?"
"기억에 없어. 그땐 내가 진짜 잠이 들어 있었지. 차에 가서 자랜다고 진짜 차에 가버리는 애한테 무슨 경계심이 들겠니? 푹 잤지."
"누나 지금 당장 나가."
쪽팔려 죽겠다 우쒸.
## 이글은 이현철님의 '연하가 뭐 어때'라는 글을 퍼온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