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하가 어때서 15회
밤에 무서움을 참고 강냉이 두개를 서리해 왔다.
그런대로 맛있다.
밤에 배고플 때마다 서리해 먹어야 겠다.
은정이 누나가 가을을 타는 관계로 당분간 철수가 진행합니다.
시월도 마지막 밤을 향해서 빠르게 흘러 가고 있다.
밤에 당구장을 갔다가 어색하게 웃고 있는 승헌이를 만났다.
그 녀석이 지금 내 침대를 차지하고 잠에 빠져 있다.
그래서 오랜만에 방바닥을 쓸 고 닦았다.
나는 방 바닥에 이불을 깔고 커다란 인형을 베고 잠을 청하고 있다.
노랗고 귀여운 호랑이 인형이다.
그 사자머리가 승헌이에게 사 준 것이다.
승헌이가 내 베개를 가로 챘기 때문에 난 뭔가 베고 잘 물건을 찾아야 했었다.
나는 가급적 내 방에 친구를 재우지 않는다.
나는 어릴 때부터 혼자 자던 습성이 있어 누가 내 옆에 있으면 잠을 잘 이루지 못한다.
근데 이 녀석은 어쩔 수 없이 재워야 했다.
녀석이 입대 날짜가 정해졌다고 말했다.
한달 보름이 채 남지 않았다고 했다.
오늘 인형을 준 여자친구에게는 차마 그 말을 못하고 어색한 웃음을 안고 당구장으로 왔다고 했다.
녀석의 표정이 불쌍해서 술까지 사주고 내 방으로 데리고 왔다.
내년이면 내 많은 동기들이 군대를 갈 것이다.
신난다.
나?
나는 중간에 군대를 가지 않을 것이다.
대학원까지 졸업하고 병역 특례 업체에 취직할 것이다.
나 군대 못간다.
고무신 거꾸로 신을 여자친구도 만들지 못하고 군대 가기는 싫다.
그거 만들 때까지는 절대 못간다.
설사 헌병들이 날 잡 으러 와, 내 배에 총구를 들이 밀어도 못간다.
공대 보다 더 삭막한 군대를 여자 친구 하나 못 만들어 놓고 가버리는 것은 상상하기도 싫다.
졸라 눈 쌓인 전방 지역을 군발이들과 총 메고 거니는 것은 내 즐거운 상상과는 너무 상반되는 것이다.
난 마후라를 휘날리며 고운 눈 쌓이는 마로니에 공원을 내 여자친구와 팔짱 끼고 거닐어야 한다.
호랑이 배가 제법 푹씬하다.
내일 녀석을 정신없이 내 쫓고 이 걸 내 것으로 만들어야 겠다.
녀석은 진짜 호랑이를 놔 두고 내 방을 떠났다.
"철수야?"
내일 중대한 일이 있어 화요일인데도 불구하고 서울로 가기위해 교문을 나서는데 은정이 누나가 날 불렀다.
아마 동아리 방을 갔었나 보다.
누나는 동아리 선배 형과 같이 있었다.
나에게 밥을 잘 사주는 누나지만, 그녀 역시 동아리 선배 오빠들에게 밥을 잘 얻어 먹는다.
저 형은 동아리 방에 잘 있다가 누나에게 걸려 밥을 사주러 가는 모양이다. 누나가 밥 얻어 먹을 땐 학생 식당을 이용하지 않는다.
"어디 가는 거에요?"
"수원. 나 지금 저녁 먹으러 가."
"형이 누나 밥 사줄거죠?"
누나 옆에 서 있던 예비역 선배가 머리를 긁는다.
그리고 고개를 끄덕 거렸다.
"은정이가 밥 사달라고 해서..."
"형은 학생 식당에서도 가급적 분식으로 때우면서 저 여자 밥을 사 줘요? 뭐 먹을건데요?"
"응? 은정이가 초밥 잘 하는 일식점을 알고 있다 해서."
"그럼, 형 일주일 밥 값 다 날리겠네요. 쯔쯧."
선배 형은 약간 부끄러운 표정이다.
누나는 나를 보고 불만스럽다.
"너, 또 나보고 저 여자라는 말 했어?"
"그럼 누나가 여자지, 남자여?"
"넌 어디 가는데?"
"서울이요. 참, 누나 빨리 엿 사줘요. 나 내일 주행 시험 있단 말이에요."
"그래서 지금 서울 가는거야?"
"응."
누나가 고개를 옆으로 홱 돌렸다.
"현철이 오빠! 밥은 다음에 얻어 먹을게요."
고개를 푹 숙이는 선배를 보았다.
비참해 보였다.
그리고 누나는 나를 보고 빤히 웃더니 내 팔을 잡았다.
"같이 서울 가자."
누나와 함께 선배형에게 인사를 하며 난 씩 웃었다.
"형, 내가 형 돈 안쓰게 했으니까 다음에 나 보면 밥 한끼 사줘요."
그 형이 날아차기 하는 모습은 상당히 날카롭고 멋있어 보였다.
맞다, 저 형 특전사 출신이다.
전철비가 굳어 좋았지만 뭔가 뒤가 꺼림찍하다.
"너 주행에서만 두번 떨어 졌다고 했지?"
자기가 운전 하는 걸 과시하기라도 하는 듯한 표정으로 누나는 내게 질문을 던졌다.
"네. 처음엔 출발이 어색해서 떨어졌고, 두 번째는 트럭이 꼬물이라 시간내에 못 들어 왔지요."
"바보구나?"
누나는 자랑스럽게 경운기를 추월 하고선 웃는다.
"이 차는 오토잖아요. 이런 건 두 손 놓고도 운전하겠다."
"치, 두 손 놓으면 뭘로 운전하게?"
"발 하나가 남아 있지 않습니까?"
"너 면허증 받으면 도로 주행 시켜 줄테니까 어디 한 번 보자."
"차 긁으면 물어 줄 돈 없다니까."
"금방은 발 하나로도 몰 수 있겠다며?"
"말이 그렇다는 거지. 진짜 공대생도 아닌데 꼭 끝까지 설명하게 만드네."
내 이런 말에도 불구하고 자기는 지금 운전하고 있다는 자부심으로 생긋 웃고있다.
아무도 건너지 않는 국도 작은 길의 건널목 앞에 정차를 하고 선 또 자랑스럽게 웃는다.
"모범 운전자는 건널목 정지선을 넘어 가지 않는거야. 나처럼 말이지."
못 들은 척 해야 겠다.
도심으로 들어 섰을 때는 더했다.
뒤에서 경적을 울려 되던 말던 신호등 노란불이 켜지면 그대로 서 버렸다.
"노란 불이 켜졌을 때는 급히 지나기 보다는 정지하는거야."
교차로는 한 참 남았는데 일찍 깜박이를 켜 고선 또 가증스런 웃음을 지었다.
차라리 잠이나 자야겠다.
"갈 방향을 알리기 위해서 턴하기 150미터 전부터 시그널을 해 주어야 돼. 어머, 저기 저 사람 봐. 저 사람처럼 방향을 바꾸면서 깜박이를 켜는 저런 무식한 행동을 해선 안된다는 거지."
서울 청담동 쪽으로 들어 섰다.
건널목이 있는 교차로 앞에 차가 정차했다.
누나는 또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뭐라는 거야?
난 보조석 창 문으로 바로 옆에 정차한 차의 어떤 아가씨만 쳐다 보았다.
멋있다.
새로 나온 감청색 소나타 투 승용차의 스티어링을 여유롭게 잡고있는 긴머
리 연한 선글라스, 과하지 않은 화장 발, 예쁜 얼굴, 고급스런 옷차림의 아가
씨다.
옆에 앉은 얼빵하게 생긴 놈은 참 좋겠다.
둘이 연인 사인가 보다.
둘이서 재밌는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이다.
부럽다.
나처럼 일방적으로 잼없는 말들 듣지도 않고 말이다.
옆에 앉은 놈이 날 쳐다 보았다.
내가 씩 웃어주자, 그 놈도 날 보고 씩 웃었다.
저 놈도 아마 면허증이 없나 보다.
옆으로 고개를 돌려보았다.
누나는 아직도 중얼거리고 있었다.
"건널목 앞에서는 신호등을 주시하기 보단 건너는 보행자에 신경을 써야 하는거야."
니 혼자 다해라 씨.
잠시 전지적 작가 시점으로 이동을 해서 아까 철수가 쳐다 본 승용차 안의 대화를 들어 보겠다.
"차 긁으면 죽을 줄 알어? 니가 누나면 다냐? 이 차 뽑은 지 겨우 두 달 된 새
차인데 면허증 받은 지 겨우 이틀 된 사람 도로 주행이나 시켜 줘야 되고 진짜."
"조용히 안 해? 옆 차에서 누가 보잖아."
"어휴, 도대체 무슨 배짱으로 도심으로 도로 주행으로 나가자고 했냐? 그렇게 여유로운 표정으로 앉아 있다고 완전 초짜가 베테랑 되냐? 제발 뒤에 초보 운전이라고 좀 붙여 놓자."
"야! 사람들이 날 어떻게 보겠어."
"옆 차에 앉은 놈은 좋겠다. 연인 사인가 보네? 비엠더블유 승용차에 누나보다 백배는 예쁜 아가씨가 운전도 해주고 말이야. 무슨 이야기를 주고 받을까? 여자가 운전을 잘 하나 봐. 그러니까 저 놈이 저렇게 웃으며 편히 앉아 있지."
"그럼 너도 빨리 웃어. 그리고 니가 친누나라서 잘 못느끼나 본데, 나 나가면
미인이란 소리 들어 이사람아."
"그런 소리 듣고 웃어야 돼?"
"그럼. 나도 빨리 저렇게 되야지. 그래서 옆 차의 풍경처럼 치완씨 태우고 다녀야지."
"너 내차 끌고 나가면 죽을 줄 알어."
"이게 어디 너 혼자만의 차니?"
다시 철수 시점으로 갑니다.
"초컬릿도 괜찮아."
"엿 사줘요."
"안 파는 걸 내가 어떻게 사주니?"
"내일 시험 떨어지면 누나 때문이라고 생각 하겠어."
"치, 누나가 내일 같이 가줄까?"
"누나 내일 수업은 어떡하구?"
"오전에는 좀 여유가 있는데..."
"그래요? 내일 몇 시에 학교 갈건데요?"
"한 시 정도?"
"그럼 시험 끝나고 누나에게 연락해 볼게요."
"같이 가서 응원해 줄까?"
"됐어요. 무슨 대단한 시험이라고 응원까지 나와요?"
"그럼 엿 사달라는 말은 뭐야?"
"태워줘서 고맙습니다."
"그래, 잘 들어가."
좀 시끄러웠지만 누나 때문에 서울 잘 왔다.
그리고 고급스런 초컬릿도 선물 받았다.
하나만 빼 먹고 발렌타인 데이 때까지 가지고 있다가 나도 초컬릿 받았다고 자랑해야지.
늦게까지 끼어 있는 안개 때문에 고전을 했지만 난 무사히 주행 시험을 마쳤다.
"얏호! 나 드디어 해 냈어."
"자기 축하 해."
나는 세번 만에 붙었지만 그래도 씩 웃고만 말았는데, 도대체 저 사람들은 뭐야?
쪽 팔리게 큰 함성을 지르고 응원 나온 마누라인지, 애인인지 모르는 여자와 서로 부등켜 안은 채 눈물까지 글썽인다.
면허증 나오는 수속까지 마쳤다.
이제 얼마 안 있어 내 이름 적힌 면허증이 나올 것이다.
신난다.
요즘들어 신나는 일이 많다.
"진짜 합격 했어?"
"네."
"한 세 네번 더 보게 될 줄 알았는데?"
"무슨 그런 악담을..."
"실제 운전은 틀리다 너?"
"다 아니까 오늘은 조용히 갑시다."
누나에게 초컬릿 받아 먹은 게 효과가 있었나?
누나 생일도 얼마 안 남았는데, 선물이나 하나 해야 겠다.
내 방에 싱싱한 강냉이가 한 이십개 있다.
어제 그제 새벽에 날 잡고 서리를 했다.
오늘부터는 자제를 할 것이다.
수수밭 주인이 오늘부터는 대비책을 세웠을 것 같다.
강냉이 두개를 가슴에 숨기고 정희네 누나 방을 찾았다.
일주일 누나곁에 붙어 다니고 난 뒤 또 한 동안 정희 누나를 보지 못했다.
밤 열한시를 넘었지만 누나는 요즘 공부하느라 분명 잠 들지 않았을 것이다.
배가 고플텐데 강냉이라도 하나 삶아 줄 요량으로 정희네 누나 방을 찾았다.
"어! 은정이 누나도 있었네요."
"그래, 너 전화기를 놓던지 삐삐를 사던지 좀 해. 연락할 길이 없잖아."
"오늘 자고 갈거에요?"
"응."
"추리닝 입고, 화장 지우고 나니까 누나도 별 수 없네요."
예전 당구장 갔을 때 본 모습이다.
방금 세수를 했는지 물기가 묻은 얼굴이 뽀얗게 보기 좋았지만 좋은 말 해 줄수 없다.
정희 누나는 잠옷으로 쓰기에 손색이 없는 추리닝이지만 은정이 누나의 그것은 새마을 운동 한 창 할 때의 복장 같다.
실컷 비웃어 줘야지.
"얘는 피부가 고와서 화장을 지워도 뽀얗게 예뻐 보이잖아."
"그건 누나들 생각이지."
"어떻게 왔어?"
"정희 누나 보러 왔지요. 누나는 있을 줄 몰랐는데?"
"널 보니까, 갑자기 니 방가서 자고 싶다."
"우쒸, 또 그런 장난 하면 진짜 같이 자 버릴거다."
정희 누나는 그 사건 전모를 이미 다 알고 있다는 듯 웃었다.
강냉이 두개를 꺼내었다.
"왠 옥수수?"
"정희 누나와 단 둘이 옥수수나 삶아 먹으려고 했는데... 은정이 누나도 먹을거죠?"
"응."
"나는 집에 가서 먹지 뭐."
밤 늦은 시간 누나 둘이와 강냉이를 먹으며 커피 한 잔 괜찮네요.
"너 내 생일 그냥 지나쳤다?"
"아, 정희 누나 생일이 시월달이었지 참. 미안해요."
"괜찮아. 나 그때 좋은 시간 보냈어."
정희 누나의 말에 은정이 누나가 약간 어색한 미소를 띄우고 나에게 설명을 해주었다.
"얘, 지 애인에게 장미 백송이랑 반지 선물 받았대."
"진짜요? 외롭다 할 때는 언제고?"
"지금은 좀 다른가 보지 뭐. 정희 쟤 표정에 웃음이 가득하지 않니?"
"그렇네요."
"철수 너, 작년 생일 때 정희에게 키스 해 주었다며?"
무슨 소리야 이거.
"그게 무슨. 그냥 살짝 입술 닿은 것 뿐인데..."
"정희는 당했다고 하던데?"
"좋아서 살핏하게 웃을 때는 언제고. 여자들은 믿을 동물이 못되는구만."
은정이 누나 저거, 질투하는 거 아냐?
은정이 누나에게도 함 해줄까?
그러고 보니 은정이 누나의 생일이 얼마 남지 않았구나.
정희 누나하고 틀려서 은정이 누나는 나 말고도 챙겨 줄 사람이 많다.
그리고 만날 사람 따로 있고.
그래도 선물 하난 해야 겠지?
쯔쯧, 입고 있는 옷차림 봐라.
집에서도 저렇게 입고 자는 거 아닐까?
"철수 이제 가야지?"
정희 누나의 저 냉정한 목소리. 음, 12시가 훨씬 넘었구나.
"네, 가야지요. 은정이 누나?"
"왜?"
"여자에게 잠옷 선물해도 오해 안 받죠?"
"그게 뭐라고 오해를 받니? 근데 무슨 오해?"
"뭐 그대를 사랑하오. 받는 사람이 이런 오해는 하지 않지요?"
"여자 친구가 없으니까 참 별 생각을 다 하는 구나."
"음. 누나는 무슨 색을 좋아해요?"
"나? 밝은 색. 가을 하늘색이 특히 좋아."
"정희 누나는요?"
"나는 핑크색."
"의외네요. 둘이 바꿔야 되는 거 아닌가? 핑크색은 보통 상공주들이 좋아하는 색인데... 분홍색도 아니고 말이야."
"나둬라. 정희가 요즘 지 애인이 잘해 준다고 공주가 되어 있으니까."
"음. 잘 자요. 나 갑니다."
푸른 색 여자 잠옷 하나를 샀다.
일주일 용돈, 밥 값 다 날아 갔다.
상당히 섹쉬한 걸로 살려다가 누나가 오해 할까봐 상당히 귀여운 걸로 바꿨다.
이 걸 건네 줘야 하는데, 꼭 찾을 때는 눈에 안 띈다고, 누나는 한 동안 내 시야에서 사라졌다.
어쩌다 봤을 때는 분위기가 많이 어두워 있었다.
누나의 생일이 있는 그 주에는 진짜 누나 보기가 힘들었다.
인기인이 맞나 보다.
하여간 생일이 내일로 다가 왔는데도 난 누나에게 잠 옷을 주지 못했다.
## 이글은 이현철님의 '연하가 뭐 어때'라는 글을 퍼온 것입니다...##
밤에 무서움을 참고 강냉이 두개를 서리해 왔다.
그런대로 맛있다.
밤에 배고플 때마다 서리해 먹어야 겠다.
은정이 누나가 가을을 타는 관계로 당분간 철수가 진행합니다.
시월도 마지막 밤을 향해서 빠르게 흘러 가고 있다.
밤에 당구장을 갔다가 어색하게 웃고 있는 승헌이를 만났다.
그 녀석이 지금 내 침대를 차지하고 잠에 빠져 있다.
그래서 오랜만에 방바닥을 쓸 고 닦았다.
나는 방 바닥에 이불을 깔고 커다란 인형을 베고 잠을 청하고 있다.
노랗고 귀여운 호랑이 인형이다.
그 사자머리가 승헌이에게 사 준 것이다.
승헌이가 내 베개를 가로 챘기 때문에 난 뭔가 베고 잘 물건을 찾아야 했었다.
나는 가급적 내 방에 친구를 재우지 않는다.
나는 어릴 때부터 혼자 자던 습성이 있어 누가 내 옆에 있으면 잠을 잘 이루지 못한다.
근데 이 녀석은 어쩔 수 없이 재워야 했다.
녀석이 입대 날짜가 정해졌다고 말했다.
한달 보름이 채 남지 않았다고 했다.
오늘 인형을 준 여자친구에게는 차마 그 말을 못하고 어색한 웃음을 안고 당구장으로 왔다고 했다.
녀석의 표정이 불쌍해서 술까지 사주고 내 방으로 데리고 왔다.
내년이면 내 많은 동기들이 군대를 갈 것이다.
신난다.
나?
나는 중간에 군대를 가지 않을 것이다.
대학원까지 졸업하고 병역 특례 업체에 취직할 것이다.
나 군대 못간다.
고무신 거꾸로 신을 여자친구도 만들지 못하고 군대 가기는 싫다.
그거 만들 때까지는 절대 못간다.
설사 헌병들이 날 잡 으러 와, 내 배에 총구를 들이 밀어도 못간다.
공대 보다 더 삭막한 군대를 여자 친구 하나 못 만들어 놓고 가버리는 것은 상상하기도 싫다.
졸라 눈 쌓인 전방 지역을 군발이들과 총 메고 거니는 것은 내 즐거운 상상과는 너무 상반되는 것이다.
난 마후라를 휘날리며 고운 눈 쌓이는 마로니에 공원을 내 여자친구와 팔짱 끼고 거닐어야 한다.
호랑이 배가 제법 푹씬하다.
내일 녀석을 정신없이 내 쫓고 이 걸 내 것으로 만들어야 겠다.
녀석은 진짜 호랑이를 놔 두고 내 방을 떠났다.
"철수야?"
내일 중대한 일이 있어 화요일인데도 불구하고 서울로 가기위해 교문을 나서는데 은정이 누나가 날 불렀다.
아마 동아리 방을 갔었나 보다.
누나는 동아리 선배 형과 같이 있었다.
나에게 밥을 잘 사주는 누나지만, 그녀 역시 동아리 선배 오빠들에게 밥을 잘 얻어 먹는다.
저 형은 동아리 방에 잘 있다가 누나에게 걸려 밥을 사주러 가는 모양이다. 누나가 밥 얻어 먹을 땐 학생 식당을 이용하지 않는다.
"어디 가는 거에요?"
"수원. 나 지금 저녁 먹으러 가."
"형이 누나 밥 사줄거죠?"
누나 옆에 서 있던 예비역 선배가 머리를 긁는다.
그리고 고개를 끄덕 거렸다.
"은정이가 밥 사달라고 해서..."
"형은 학생 식당에서도 가급적 분식으로 때우면서 저 여자 밥을 사 줘요? 뭐 먹을건데요?"
"응? 은정이가 초밥 잘 하는 일식점을 알고 있다 해서."
"그럼, 형 일주일 밥 값 다 날리겠네요. 쯔쯧."
선배 형은 약간 부끄러운 표정이다.
누나는 나를 보고 불만스럽다.
"너, 또 나보고 저 여자라는 말 했어?"
"그럼 누나가 여자지, 남자여?"
"넌 어디 가는데?"
"서울이요. 참, 누나 빨리 엿 사줘요. 나 내일 주행 시험 있단 말이에요."
"그래서 지금 서울 가는거야?"
"응."
누나가 고개를 옆으로 홱 돌렸다.
"현철이 오빠! 밥은 다음에 얻어 먹을게요."
고개를 푹 숙이는 선배를 보았다.
비참해 보였다.
그리고 누나는 나를 보고 빤히 웃더니 내 팔을 잡았다.
"같이 서울 가자."
누나와 함께 선배형에게 인사를 하며 난 씩 웃었다.
"형, 내가 형 돈 안쓰게 했으니까 다음에 나 보면 밥 한끼 사줘요."
그 형이 날아차기 하는 모습은 상당히 날카롭고 멋있어 보였다.
맞다, 저 형 특전사 출신이다.
전철비가 굳어 좋았지만 뭔가 뒤가 꺼림찍하다.
"너 주행에서만 두번 떨어 졌다고 했지?"
자기가 운전 하는 걸 과시하기라도 하는 듯한 표정으로 누나는 내게 질문을 던졌다.
"네. 처음엔 출발이 어색해서 떨어졌고, 두 번째는 트럭이 꼬물이라 시간내에 못 들어 왔지요."
"바보구나?"
누나는 자랑스럽게 경운기를 추월 하고선 웃는다.
"이 차는 오토잖아요. 이런 건 두 손 놓고도 운전하겠다."
"치, 두 손 놓으면 뭘로 운전하게?"
"발 하나가 남아 있지 않습니까?"
"너 면허증 받으면 도로 주행 시켜 줄테니까 어디 한 번 보자."
"차 긁으면 물어 줄 돈 없다니까."
"금방은 발 하나로도 몰 수 있겠다며?"
"말이 그렇다는 거지. 진짜 공대생도 아닌데 꼭 끝까지 설명하게 만드네."
내 이런 말에도 불구하고 자기는 지금 운전하고 있다는 자부심으로 생긋 웃고있다.
아무도 건너지 않는 국도 작은 길의 건널목 앞에 정차를 하고 선 또 자랑스럽게 웃는다.
"모범 운전자는 건널목 정지선을 넘어 가지 않는거야. 나처럼 말이지."
못 들은 척 해야 겠다.
도심으로 들어 섰을 때는 더했다.
뒤에서 경적을 울려 되던 말던 신호등 노란불이 켜지면 그대로 서 버렸다.
"노란 불이 켜졌을 때는 급히 지나기 보다는 정지하는거야."
교차로는 한 참 남았는데 일찍 깜박이를 켜 고선 또 가증스런 웃음을 지었다.
차라리 잠이나 자야겠다.
"갈 방향을 알리기 위해서 턴하기 150미터 전부터 시그널을 해 주어야 돼. 어머, 저기 저 사람 봐. 저 사람처럼 방향을 바꾸면서 깜박이를 켜는 저런 무식한 행동을 해선 안된다는 거지."
서울 청담동 쪽으로 들어 섰다.
건널목이 있는 교차로 앞에 차가 정차했다.
누나는 또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뭐라는 거야?
난 보조석 창 문으로 바로 옆에 정차한 차의 어떤 아가씨만 쳐다 보았다.
멋있다.
새로 나온 감청색 소나타 투 승용차의 스티어링을 여유롭게 잡고있는 긴머
리 연한 선글라스, 과하지 않은 화장 발, 예쁜 얼굴, 고급스런 옷차림의 아가
씨다.
옆에 앉은 얼빵하게 생긴 놈은 참 좋겠다.
둘이 연인 사인가 보다.
둘이서 재밌는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이다.
부럽다.
나처럼 일방적으로 잼없는 말들 듣지도 않고 말이다.
옆에 앉은 놈이 날 쳐다 보았다.
내가 씩 웃어주자, 그 놈도 날 보고 씩 웃었다.
저 놈도 아마 면허증이 없나 보다.
옆으로 고개를 돌려보았다.
누나는 아직도 중얼거리고 있었다.
"건널목 앞에서는 신호등을 주시하기 보단 건너는 보행자에 신경을 써야 하는거야."
니 혼자 다해라 씨.
잠시 전지적 작가 시점으로 이동을 해서 아까 철수가 쳐다 본 승용차 안의 대화를 들어 보겠다.
"차 긁으면 죽을 줄 알어? 니가 누나면 다냐? 이 차 뽑은 지 겨우 두 달 된 새
차인데 면허증 받은 지 겨우 이틀 된 사람 도로 주행이나 시켜 줘야 되고 진짜."
"조용히 안 해? 옆 차에서 누가 보잖아."
"어휴, 도대체 무슨 배짱으로 도심으로 도로 주행으로 나가자고 했냐? 그렇게 여유로운 표정으로 앉아 있다고 완전 초짜가 베테랑 되냐? 제발 뒤에 초보 운전이라고 좀 붙여 놓자."
"야! 사람들이 날 어떻게 보겠어."
"옆 차에 앉은 놈은 좋겠다. 연인 사인가 보네? 비엠더블유 승용차에 누나보다 백배는 예쁜 아가씨가 운전도 해주고 말이야. 무슨 이야기를 주고 받을까? 여자가 운전을 잘 하나 봐. 그러니까 저 놈이 저렇게 웃으며 편히 앉아 있지."
"그럼 너도 빨리 웃어. 그리고 니가 친누나라서 잘 못느끼나 본데, 나 나가면
미인이란 소리 들어 이사람아."
"그런 소리 듣고 웃어야 돼?"
"그럼. 나도 빨리 저렇게 되야지. 그래서 옆 차의 풍경처럼 치완씨 태우고 다녀야지."
"너 내차 끌고 나가면 죽을 줄 알어."
"이게 어디 너 혼자만의 차니?"
다시 철수 시점으로 갑니다.
"초컬릿도 괜찮아."
"엿 사줘요."
"안 파는 걸 내가 어떻게 사주니?"
"내일 시험 떨어지면 누나 때문이라고 생각 하겠어."
"치, 누나가 내일 같이 가줄까?"
"누나 내일 수업은 어떡하구?"
"오전에는 좀 여유가 있는데..."
"그래요? 내일 몇 시에 학교 갈건데요?"
"한 시 정도?"
"그럼 시험 끝나고 누나에게 연락해 볼게요."
"같이 가서 응원해 줄까?"
"됐어요. 무슨 대단한 시험이라고 응원까지 나와요?"
"그럼 엿 사달라는 말은 뭐야?"
"태워줘서 고맙습니다."
"그래, 잘 들어가."
좀 시끄러웠지만 누나 때문에 서울 잘 왔다.
그리고 고급스런 초컬릿도 선물 받았다.
하나만 빼 먹고 발렌타인 데이 때까지 가지고 있다가 나도 초컬릿 받았다고 자랑해야지.
늦게까지 끼어 있는 안개 때문에 고전을 했지만 난 무사히 주행 시험을 마쳤다.
"얏호! 나 드디어 해 냈어."
"자기 축하 해."
나는 세번 만에 붙었지만 그래도 씩 웃고만 말았는데, 도대체 저 사람들은 뭐야?
쪽 팔리게 큰 함성을 지르고 응원 나온 마누라인지, 애인인지 모르는 여자와 서로 부등켜 안은 채 눈물까지 글썽인다.
면허증 나오는 수속까지 마쳤다.
이제 얼마 안 있어 내 이름 적힌 면허증이 나올 것이다.
신난다.
요즘들어 신나는 일이 많다.
"진짜 합격 했어?"
"네."
"한 세 네번 더 보게 될 줄 알았는데?"
"무슨 그런 악담을..."
"실제 운전은 틀리다 너?"
"다 아니까 오늘은 조용히 갑시다."
누나에게 초컬릿 받아 먹은 게 효과가 있었나?
누나 생일도 얼마 안 남았는데, 선물이나 하나 해야 겠다.
내 방에 싱싱한 강냉이가 한 이십개 있다.
어제 그제 새벽에 날 잡고 서리를 했다.
오늘부터는 자제를 할 것이다.
수수밭 주인이 오늘부터는 대비책을 세웠을 것 같다.
강냉이 두개를 가슴에 숨기고 정희네 누나 방을 찾았다.
일주일 누나곁에 붙어 다니고 난 뒤 또 한 동안 정희 누나를 보지 못했다.
밤 열한시를 넘었지만 누나는 요즘 공부하느라 분명 잠 들지 않았을 것이다.
배가 고플텐데 강냉이라도 하나 삶아 줄 요량으로 정희네 누나 방을 찾았다.
"어! 은정이 누나도 있었네요."
"그래, 너 전화기를 놓던지 삐삐를 사던지 좀 해. 연락할 길이 없잖아."
"오늘 자고 갈거에요?"
"응."
"추리닝 입고, 화장 지우고 나니까 누나도 별 수 없네요."
예전 당구장 갔을 때 본 모습이다.
방금 세수를 했는지 물기가 묻은 얼굴이 뽀얗게 보기 좋았지만 좋은 말 해 줄수 없다.
정희 누나는 잠옷으로 쓰기에 손색이 없는 추리닝이지만 은정이 누나의 그것은 새마을 운동 한 창 할 때의 복장 같다.
실컷 비웃어 줘야지.
"얘는 피부가 고와서 화장을 지워도 뽀얗게 예뻐 보이잖아."
"그건 누나들 생각이지."
"어떻게 왔어?"
"정희 누나 보러 왔지요. 누나는 있을 줄 몰랐는데?"
"널 보니까, 갑자기 니 방가서 자고 싶다."
"우쒸, 또 그런 장난 하면 진짜 같이 자 버릴거다."
정희 누나는 그 사건 전모를 이미 다 알고 있다는 듯 웃었다.
강냉이 두개를 꺼내었다.
"왠 옥수수?"
"정희 누나와 단 둘이 옥수수나 삶아 먹으려고 했는데... 은정이 누나도 먹을거죠?"
"응."
"나는 집에 가서 먹지 뭐."
밤 늦은 시간 누나 둘이와 강냉이를 먹으며 커피 한 잔 괜찮네요.
"너 내 생일 그냥 지나쳤다?"
"아, 정희 누나 생일이 시월달이었지 참. 미안해요."
"괜찮아. 나 그때 좋은 시간 보냈어."
정희 누나의 말에 은정이 누나가 약간 어색한 미소를 띄우고 나에게 설명을 해주었다.
"얘, 지 애인에게 장미 백송이랑 반지 선물 받았대."
"진짜요? 외롭다 할 때는 언제고?"
"지금은 좀 다른가 보지 뭐. 정희 쟤 표정에 웃음이 가득하지 않니?"
"그렇네요."
"철수 너, 작년 생일 때 정희에게 키스 해 주었다며?"
무슨 소리야 이거.
"그게 무슨. 그냥 살짝 입술 닿은 것 뿐인데..."
"정희는 당했다고 하던데?"
"좋아서 살핏하게 웃을 때는 언제고. 여자들은 믿을 동물이 못되는구만."
은정이 누나 저거, 질투하는 거 아냐?
은정이 누나에게도 함 해줄까?
그러고 보니 은정이 누나의 생일이 얼마 남지 않았구나.
정희 누나하고 틀려서 은정이 누나는 나 말고도 챙겨 줄 사람이 많다.
그리고 만날 사람 따로 있고.
그래도 선물 하난 해야 겠지?
쯔쯧, 입고 있는 옷차림 봐라.
집에서도 저렇게 입고 자는 거 아닐까?
"철수 이제 가야지?"
정희 누나의 저 냉정한 목소리. 음, 12시가 훨씬 넘었구나.
"네, 가야지요. 은정이 누나?"
"왜?"
"여자에게 잠옷 선물해도 오해 안 받죠?"
"그게 뭐라고 오해를 받니? 근데 무슨 오해?"
"뭐 그대를 사랑하오. 받는 사람이 이런 오해는 하지 않지요?"
"여자 친구가 없으니까 참 별 생각을 다 하는 구나."
"음. 누나는 무슨 색을 좋아해요?"
"나? 밝은 색. 가을 하늘색이 특히 좋아."
"정희 누나는요?"
"나는 핑크색."
"의외네요. 둘이 바꿔야 되는 거 아닌가? 핑크색은 보통 상공주들이 좋아하는 색인데... 분홍색도 아니고 말이야."
"나둬라. 정희가 요즘 지 애인이 잘해 준다고 공주가 되어 있으니까."
"음. 잘 자요. 나 갑니다."
푸른 색 여자 잠옷 하나를 샀다.
일주일 용돈, 밥 값 다 날아 갔다.
상당히 섹쉬한 걸로 살려다가 누나가 오해 할까봐 상당히 귀여운 걸로 바꿨다.
이 걸 건네 줘야 하는데, 꼭 찾을 때는 눈에 안 띈다고, 누나는 한 동안 내 시야에서 사라졌다.
어쩌다 봤을 때는 분위기가 많이 어두워 있었다.
누나의 생일이 있는 그 주에는 진짜 누나 보기가 힘들었다.
인기인이 맞나 보다.
하여간 생일이 내일로 다가 왔는데도 난 누나에게 잠 옷을 주지 못했다.
## 이글은 이현철님의 '연하가 뭐 어때'라는 글을 퍼온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