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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원이세상

담아온 글들

연하가......
2005.12.13 07:43

[이현철] 연하가 어때서(32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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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 토요일 날 나는 계속 혼자였다.
아무나 만나고 싶었지만 만날 사람이 없었다.
만날 수 있는 사람이 없는 것이 아니라 내가 만나고 싶어 하는 사람이 없는 것이다.
정희 누나가 생각이 났지만 그녀는 임자가 있는 몸이다.
어디 외로운 사람이 없나?
내 친구들?
학교 가면 만날 그 새끼들 만나서 뭐 하겠나.
혼자 있으니까 좋다.
쓸쓸해서 좋다.
예전엔 혼자 있어도 그러려니 했는데...
날 이렇게 만든 은정이 누나야, 잘 살아라.

토요일날 하루 종일 집에만 있었다.
삐삐는 한 번도 울리지 않았다.
아버지가 귀가 하시고 잠시 거실에 나와 같이 앉아 있었다.
요즘들어 아버지는 동생이 학원 차를 타고 오게 하지 않으신다.
아버지가 직접 가서 데리고 온다.
곧 수능 시험이 있다.
그래 아버지, 공부 잘하는 딸 두셔서 좋겠수.
나는 장가갈 때 집한 채 사주는 걸로 끝내고, 이 건물을 포함 한약방은 동생이 한의대만 합격하면 바로 물려 주실 것 같다.

"여보세요? 철수 바꿔달라구?"
"누가 이 시간에 내게 전화를 한겨?"
"아, 알겠다. 너도 철수보다 나이가 많지?"
"제 전화면 그냥 주세요. 그 자꾸 나이 이야기 하지 말구요."
"잠깐 기둘려 봐. 너 임마 왜 나이 많은 여자들하고만 놀아?"
"저도 그러고 싶지 않아요."

은정이 누나는 아닌거 같다.



승주가 날 찾아 왔었어요.
학교까지 찾아 올 줄은 몰랐었는데...
그는 나를 난처하게 만들었지요.
사람들 많은 약대 앞 현관에서 승주 때문에 난 아주 난처했었습니다.
그런데 날 난처하게 만든 그가 싫기는커녕 오히려 좋아 보였습니다.
그에게 그런 면이 있었는지는 몰랐습니다.
그는 내가 장난삼아 말한 265송이의 꽃을 품고 내 앞에 나타났습니다.
많은 사람들 앞에서 무릎까지 꿇은 모습으로 그 꽃을 내게 주었지요.
받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는 어색한 것을 싫어 했어요.
좋아하는 마음만 있으면 그것으로 만족하던 사람이었지요.
그래서 자기가 보여 주지 못한 모습을 보이는 사람에겐 늘 한 발 물러서 주는 사람이었습니다.
승주는 남을 사랑하는 사람에게 자신이 비집고 들어가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면서 자기를 사랑하는 사람은 언제든 뺏길 수 있다고 생각하는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그런 그가 내게 다시 돌아 오려 합니다.
내가 누구를 마음에 품고 있는지, 내가 또 누군가를 사귀고 있는지 그런 것은 염두해 두지도 않은 모습으로 말입니다.
나를 다시 만나야만 한다는 각오를 단단히 하고 왔습니다.
정말 예전 승주의 모습이 아니었습니다.
작년 봄, 그가 휴가 나왔을 때 우리 빌라에 사는 청년과 마주했을 때가 생각나네요.

"당신 뭐야?"
"그냥 친굽니다."

승주는 나를 집에 데려다 주다 우리집 옆 동 청년을 만났지요.
내 손을 잡아 자기에게서 나를 뺏앗아 가는 그 청년에게 그가 대답한 답은 그냥 친구라는 말 뿐이었습니다.
자기에게 사랑한다고 고백한 사람에게 그 말은 비수 같았지요.
그 청년이 나와 대화를 나눌 수 있도록 몇 발짝 떨어져 주기까지 했었지요.
그리고 자기 때문에 흘린 눈물을 그 청년 때문에 흘린 것이라 오해를 하고선 힘없이 미
소 지으며 돌아 섰었지요.
그런 그가 용기를 내어 내게 다시 왔습니다.
남자는 첫사랑을 꿈 꾸고, 여자는 마지막 사랑을 꿈 꾼다고 합니다.
하지만 남자는 마지막 사랑을 간직하고 여자는 첫사랑을 못 잊는다고 합니다.
승주는 내 첫사랑입니다.
솔직히 그를 아직 잊지 못했습니다.
자리가 어색했던 탓도 있었지만 나는 그를 따라 가고 싶었습니다.
그냥 편히 승주를 따라 승주의 마음을 받아 드릴 수도 있었습니다.
그는 내가 먼저 마음을 고백했던 사람이니 그의 마음을 받아 들이는 것이 그렇게 어렵지만은 않았습니다.
자존심?
그런 것은 별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다시 예전으로 아니, 좀 더 발전된 관계로 돌아갈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내가 마음만 먹는다면 나를 찾아온 승주의 모습에서는 분명 그럴 것 같았습니다.
흠, 승주를 따라 나오다 자판기 뒤에 숨어 있던 철수를 보았습니다.
내 난처한 모습을 다 지켜 보았던 것 같았어요.
철수는 승주 보다는 소극적이지 않았지요.
옆 동 청년이 나타났을 때에도, 올 봄 내가 술취한 과동기에게 맞았을 때도 철수는 물러서는 느낌이 아니었습니다.
자판기 뒤에 숨어 있던 철수에게서 옛 승주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한 발짝 물러 나는 것도 모자라 숨어 있는 철수, 그런 철수가 내게 다시 다가 온 승주에게 쉽게 가지 못하게 할 것 같습니다.
아까 약대 앞에서 모습과는 다르게 승주는 단 둘이가 되자 어색해 했습니다.
침묵의 시간이 흘러 가고 승주는 계속 목적지 없는 곳으로 차를 몰았습니다.
승주가 준 꽃 다발을 안고 조수석에 앉아 바깥 풍경을 쳐다 보았지요.
오후가 물든 늦가을 논 바닥의 허수아비는 홀로 외롭지만 시선을 받네요.

"다시 학교로 돌아가자."
"그래. 꽃 받아줘서 고맙다."
"흠, 널 다시 봤어."
"전에 내게 고백했던 거 지금은 받아 드릴 수 있겠어."
"그렇게 쉽게 될 줄 알았니?"
"힘들겠지."
"그래."
"후, 그래도 잊혀지는 것 보단 친구로 남아 있는게 좋을 것 같다. 그리고 다시 그 고백을 받을 수 있도록 노력할게."
"훗! 왜 변했어?"
"네가 잊혀지지 않으니까. 그리고 가을하늘이 너무 높더라."
"추상적인 말은 싫어."
"자주 연락할게."
"다시 널 만나는 것은 자신있지만 널 예전처럼 사랑할는지는 모르겠다. 그래도 괜찮니?"
"괜찮아."
"오늘은 그냥 집에 데려다 줘."

어디까지 갔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다시 학교 앞으로 오니 겨울 해는 일찍 져 버리고 어두워지고 있었습니다.
승주는 날 그냥 보내지 않더군요.
뭔가 망설이더니 내 어깨에 손을 올렸습니다.
그리고 입술만 닿았지만 그는 나에게 짧은 입맞춤을 해 주었습니다.
그의 각오를 다시 한 번 느낄 수 있었지요.
그렇게 달콤하지는 않았지만 가슴을 떨었습니다.
피하고 싶은 마음은 전혀 들지 않았습니다.
짧은 그 순간 난 그 만을 사랑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습니다.

창 밖으로 아주 희미한 노을의 흔적이 하늘에 걸려 있습니다.
골목길...
옥수수가 죽어 있습니다.
한 동안 내게 다시 다가온 승주 때문에 가슴이 떨렸지요.
고운 미소가 맺히기도 했습니다.
그렇지만 잠옷으로 갈아 입을 때 이 옷을 준 녀석이 생각이 났습니다.
침대에 누워 눈을 감고 오늘 승주가 내게 보여 주었던 행동과 자판기 뒤에 숨어 있었던 철수를 번갈아 떠 올려 보았습니다.
모르게 내 마음 속으로 헤집고 들어 온 철수는 잊기 싫은 존재가 되어 버린지 오래 전이지요.
승주가 없는 동안 철수와 지냈던 그 정겨움을 계속 갖고 싶습니다.
연하라 생각치 못했던 철수에게 품었던 감정들이 결코 가벼운 것이 아님을 알아 가고 있습니다.
철수와 지냈던 시간은 승주와 지냈던 시간보다 오히려 더 정겨운 것이었습니다.
박철수.
그와 지내면서 승주 생각을 자주 했었지요.
그리고 철수 때문에 승주를 잊어 갔었습니다.
승주를 만나면 그 반대가 되겠지요.
그런데 그렇게 하기가 싫어요.
철수와 지내면서 승주 생각은 하겠는데, 승주를 만나면서 철수를 잊어 가는 건 하기 싫습니다.
내가 연인을 만들어 가면서 동생같은 철수를 생각하며 아파하는 꼴은 참 웃길 것 같습니다.
연하면 연하 답게 굴 것이지.
우연히 만났던 승주 때문에 일주일 동안 나를 피했던 철수가 오늘 승주가 내 앞에 나타난 것을 보았으니 또 날 피하겠지요?
내가 승주를 만나 연인사이가 된다면 철수는 내 앞에 나타나지 않을 것 같습니다.
훗, 녀석은 나를 독차지 하고 싶은가 봅니다.
그렇게 생각한다면 나를 자기의 연인으로 만들어야지요.
연인 사이였다면 오늘 찾아 온 옛사랑은 눈물을 흘리며 가지고 왔던 꽃다발을 어딘가에 버렸겠지요.
내 마음이 누군가로 완전히 채워지지 않았기 때문에 옛사랑을 받아 들였다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승주에겐 좀 미안하지만요.
그러지도 못하면서 내가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것은 볼 자신이 없다?
참 이기적이네요.
연하라서 그런가요?
내가 더 이기적인가 봅니다.
내가 철수를 연인이라 생각한 적이 있던가요?
지금 내가 생각하는 것이 철수와 승주를 재고 있는 것 같네요.
철수를 잃기가 싫어서 내게 유리한 생각들만 하나 봅니다.
승주를 만나도 철수와 지냈던 그 시간들을 공유할 수 있다면 승주를 부담없이 만나겠습니다.
철수 생각 때문에 밤 늦게 승주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나야 은정이."
"응. 왜?"
"오늘 입맞춤 그거 친했던 친구와 다시 만났기 때문에 한거지 다른 뜻은 없는거야?"
"그 말을 왜?"
"한 번 더 말할 게. 오늘 우리는 친구로 만난것이지, 연인으로 만난 건 아니라는 거. 내가 예전에 고백했던 것은 잊어."
"어, 응. 그럴게."
"잘 자."

승주와 함께 내게 온 저 화려한 265송이의 장미는 올 해를 넘기기전에 모두 시들어 버리겠지요.
훗!
지금 입고 있는 이 잠옷은...

철수는 예상대로 연락을 끊었습니다.
승주를 만난 바로 다음 날부터 철수는 도서관에 나오지 않았습니다.
어이없게도 철수는 자취생활도 포기했나 봅니다.
내근처엔 오기도 싫다 이건가요?
이틀전에 철수 방 문틈에 끼워 놓았던 어느 음식점의 광고 전단이 오늘도 그대로 꼿혀 있습니다.
철수는 통학을 하나 봅니다.
내가 자기를 찬거야 뭐야.
그거 아니잖아.
그리고 같이 있다가 어색한 상황 벌어진 것도 아니고 자기가 숨어서 봤으면서 왜 날 피하는 지 모르겠습니다.

대학원 시험 때문에 금요일날 서울로 가지 않았습니다.
밤 늦게까지 도서관에 있었어요.
열한시가 다 되어서 도서관을 나왔는데 눈이 내리고 있더군요.
철수에게 약속한 게 있지요.
녀석은 내게 전화하지 않았습니다.
방에 혼자 있다 철수에게 삐삐를 쳐 줄까 하다 그냥 포기했습니다.
니가 그렇게 나오면 나도 널 찾지 않을테다.
옛사랑도 돌아 왔는데 내가 아쉬울 게 뭐 있냐.
그때. 승주에게 전화가 왔습니다.

"밤 늦게 앤일이야?"
"대학원 시험 때문에 요즘 바쁘지?"
"응."
"주말에 한 번 봤으면 좋겠는데."
"이 번주는 힘들겠다. 다음 주에 대학원 시험 봐야 돼. 또 곧 기말 시험 있잖아. 약사 고시도 떡 버티고 있고."
"계속 바쁘겠구나."
"응. 오빠는 바쁘지 않아? 참 오빠는 코스모스 졸업이지?"
"오빠 소리 하지 마라 야."
"하하, 아직 조금 어색한가 보다. 예전엔 그러지 않았는데 나도 모르게 오빠 소리가 나왔어."
"너, 사귀는 사람 있니?"
"왜? 예전처럼 피해 주려구?"
"아니야. 그냥 내가 받은 느낌 때문에 물어 본거야."
"사귀는 사람 없어. 그리고 내가 언제 연인 사이로 사귄 사람이 있었나?"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는 제법 있었지."
"훗, 그랬었나?"
"참, 거기도 눈 오니?"
"응. 서울도 눈이 와?"
"제법."
"오늘 전화는 내일 만날까 하는 것 때문에 한거야?"
"안부 묻는 것도 포함 돼. 열심히 하되 건강도 생각 해."
"알았어. 전화 해줘서 고마워."
"별말을. 참, 그 후배는 잘 살고 있니?"
"철수? 녀석이 또 삐쳐서 날 안만나 주네."
"안 만나 줘? 너에게서 처음 들어 보는 말 같다."
"응?"
"정희씨는?"
"걔는 뭐."
"그래 오늘 밤 좋은 꿈 꿔라."
"알았어. 오빠도 잘 자."
"또 오빠라고 그랬다."
"곧 예전으로 돌아가겠지 뭐. 안녕"

철수 생각하다 승주 전화를 받으니까 승주가 다소 어색하게 느껴졌나 봅니다.
승주에게 밤 늦게 안부전화를 받으니 기분이 괜찮네요.
철수야 날 피하면 너만 손해다.

승주와 전화 통화를 한 후 얼마 안 있어 전화가 한 통 더 왔지요.
늦은 밤이었기에 철순가 했었지요.
정희였어요.
얘는 양반 되기는 힘들겠어요.
정희의 목소리가 많이 가라 앉아 있었습니다.

"나 대학원 시험 본다고 전화 한거야?"
"아니. 그냥 전화할 사람이 없어서."
"뭐야 너?"
"그거 한 번 알아 봐 줄래?"
"뭘?"
"학교 앞에 빈 상가가 있는지."
"왜?"
"나 약국 차리게. 나 저 번주에 사표 냈어."
"응? 사표를 내? 일년도 못채우고?"
"헤헤, 육개월만 넘으면 경력으로 인정 되잖아. 나 철규씨랑 헤어졌다? 한 달가까이 됐어."
"응? 그건 또 무슨 말이야?"
"그냥 잊기로 했어. 잊을 자신이 충분히 있으니까."
"왜? 싸웠어?"
"그런 건 아니지만 내가 너무 손해 본다고 생각했어."
"뭐야? 너 잊을 자신은 있는거야? 많이 좋아했었잖아."
"그 얘기는 접어 두자. 상가 있는지만 알아봐 줘. 내가 모은 돈은 턱없이 부족하지만 부모님 도움을 좀 받아서 작지만 내가 직접 약국을 경영할거야. 난 지금까지 너무 끌려 가는 생활만 했던 거 같아."
"정말 그렇게 할려구?"
"응."
"근데 왜 학교 앞에서...?"
"니가 예전에 학교 앞을 생각해 보라고 했잖아."
"그럼 학교 근처에서 살겠네?"
"당연히."
"야, 잘됐다. 나랑 계속 보겠다 그럼."
"그래 기집애야. 학교 근처서 하게되면 심심하진 않을 것 같애. 친구들도 종종 찾아 와 줄테고 바쁘면 너에게 약국을 맡겨도 될테니까. 그리고 셔터 맨도 있잖아 ."
"셔터맨? 누구?"
"철수. 녀석에게 전화를 했더니 자기가 셔터맨 해 주겠대. 아주 잘됐다고 그러던데?"
"그래? 치. 철수가 내 얘기 안 하던?"
"했어. 네 얘기 하니까 잘 먹고 잘살아라.라고 전해 달라던데?"
"뭐야?"
"너, 승주 다시 만났다며?"
"응."
"그래 예전 느낌이 들던?"
"아직은..."
"나는 철규씨와 헤어지고 나서 딱 일주일을 울었어. 그 걸로 끝이야. 더 이상 철규씨에 대한 미련은 없어. 아니다라고 생각하니까 그 사람에게 가졌던 감정이 깨끗이 없어 졌어. 훗, 그리고 다시 그런 감정들이 생길 것 같지 않아."
"무슨 말 하는거야?"
"물론 넌 나와 다르겠지만 그냥 추억 속으로 묻어 두는게 오히려 나을 수도 있어."
"나는 잊고 싶어서 잊은게 아니잖아."
"예전 보다 더 조심스러울텐데?"
"그럴까?"
"나도 잘 몰라."
"사람마다 틀리겠지."
"참, 너 철수에게 잘 해라?"
"응? 그 녀석 내게 삐쳤어."
"삐칠만 해."
"왜 삐쳤대?"
"그걸 왜 내게 물어 보니? 하여튼 나 약국 차릴만한 상가 있으면 연락해 줘. 이 번달 말에는 몇 일 네 방 신세를 좀 져야겠다."
"그래."
"전화 좀 해라 기집애야."
"너도 안 했잖아."

정희의 전화를 받았습니다.
매정하지 못할 것 같던 그녀가 연인과 헤어졌다는 말을 참 담담하게 했습니다. 정희가 내 곁으로 온다.
내가 질투하게 될 지도 모르겠군요.

"전화 바꿨습니다."
"나야, 정희."
"어? 누나가 왠일이에요?"
"너 목소리 듣고 싶어서. 사랑하는 사람 생겼다고 통 연락이 없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어딨어? 잠깐만요."

아버지의 눈초리가 날카롭게 변했다.
씩 웃어 주고는 전화기를 들고 내 방으로 들어 왔다.

"왜?"
"울 아버지 옆에 계셨어요. 어쩐 일이에요?"
"나 잘하면 다시 학교로 갈 것 같애."
"그래요? 대학원 갈거에요?"
"아니. 약국 차릴려구."
"에? 좋은 직장 놔두고 왜 약국을 차려?"
"철수 보고 싶어서."
"나 보고 싶어 하는 건 아는데, 약국 차리는 거 하고 무슨 상관이야."
"너네 학교 앞에다 차릴려구."
"우리 학교 앞에다? 누나는 우리 학교 안 나왔수?"
"차리게 되면 자주 놀러 와."
"약국 차리면 내가 셔텨맨 해 주지 뭐. 누나는 내 첫사랑이잖수."
"후후, 은정이와는 잘돼 가?"
"은정이 누나, 승주 그 새끼 만나잖아. 요즘 통 보이지도 않아요."
"은정이가 승주씨를 만나?"
"승주 그 새끼가 꽃을 무식하게 많이 싸가지고 학교로 찾아 와 완전 쌩 쇼를 했다는 거 아닙니까. 누나가 그냥 좋다고 따라 가 버리대요."
"질투하니? 승주씨보고 자꾸 새끼라 그런다? 너보다 세살 많아."
"대통령도 안 보는데선 욕하는데 뭐 어때. 그나저나 오늘 누나가 전화해 줘서 조금 위안이 되네요."
"나도 위안 좀 받으려고 했는데 접어 둬야 겠다."
"위안?"
"흠, 나 철규씨랑 헤어졌다? 그리고 병원도 그만뒀어."
"정말요?"
"잘됐지?"
"뭐가 잘돼? 왜 그랬어요?"
"잘됐잖아. 너 예전에 했던 말 물리면 안된다. 나중에 애인에게 차이게 되면 너 찾아 오라고 했지?"
"차였어요?"
"내가 찼다."
"헛! 누나는 생각보다 매정한 거 같애요."
"그 말을 왜?"
"누나가 그 사람하고 사귄게 몇 년이야? 누나는 참 순정파인거 같았는데, 결국은 헤어지는군요. 누나가 항상 그랬죠? 밋밋하지만 그게 편할 것 같다.라는 말. 왜 이제는 헤어지는 게 더 편할 것 같던가요?"
"응."
"지금 그 사람 많이 생각나지는 않죠? 누나가 그 사람 얘기를 할 때 목소리가 전혀 바뀌지 않았어요."
"헤어진 지 한 달 가까이 되어가."
"혼자서 너무 많은 걸 정리하지 말아요."
"니 걱정이나 해. 은정이가 승주씨를 다시 만난다? 넌 차이겠네?"
"내가 언제 은정이 누나하고 사겼어요?"
"사랑한다며?"
"우쒸, 내가 언제 사랑한다고 했어요. 맘이 있다고 했지."
"그게 그거지 뭐. 은정이는 철수를 후배로만 생각했을테고, 그리고 옛사랑이 다시 나타났다? 승주가 언제 찾아 왔었니?"
"삼일 전에요. 둘이 잘 먹고 잘 살아라 그래!"
"은정인 나보다 덜 매정해. 끊고 맺고 하는게 겉으로 보기에는 확실한 거 같지 만 나 보다 더 여린 애야."
"그래서요?"
"그렇다는거지. 네 생각 많이 할걸 아마."
"됐어요. 누나 언제 약방 차릴건데요?"
"약국이다 임마. 아마 12월달 중순?"
"이제 애인도 없으니까 크리스마스가 참 쓸쓸하겠네요?"
"철수하고 보내면 되지 뭐."
"내가 뭐 항상 솔로로 있을 줄 알아요?"
"후후, 은정이 아니면 나겠지 뭐."
"철수야 전화기 가져 와!"
"저 소리 들었죠?"
"응. 이만 끊을게."
"네. 약방 차리게 되면 자주 놀러 갈게요."
"그래. 안녕."

나이 많은 여자 하나가 내 삶 속으로 돌아 오려 한다.
내 주위엔 왜 나이 많은 여자들만 있는 겨.
정희 누나를 좋아하지만 이제 은정이 누나에게 갖는 그런 감정은 없다.
그래도 쓸쓸했던 기분이 조금 풀어졌다.
은정이 누나가 승주를 만나면 난 정희 누나를 만나면 된다.
잘해 봐라 그래.
정희 누나가 했던 말이 기분 나쁘다.
자기 아니면 은정이라구?
세상 반이 여자다.
다 공주병 환자들이여.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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