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11.4 주일 설교
가장 멋진 대통령
대통령의 취임 연설을 기도로 시작한 멋진 대통령이 있었습니다. 현재 미국 대통령인 George W. Bush의 아버지인 George Bush입니다. 그는 취임 연설을 다음과 같이 시작했습니다.
"저는 대통령으로서 첫 행동을 기도로 시작하겠습니다. 여러분도 함께 머리 숙여 기도할 것을 부탁드립니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 우리 모두 머리 숙여 당신의 크신 사랑에 감사드립니다. 오늘날 우리에게 평화를 주시고 그 평화가 지속될 것이라는 믿음에 대한 감사 기도를 받아 주시옵소서. 우리 각자에게 맡기신 일을 할 수 있는 힘주시고 주님의 뜻이 무엇인지 귀기울여 듣게 하시고 우리 마음속에 '권력은 다른 사람을 돕는 데만 사용하는 것'이란 구절을 깊이 새기게 하여 주시옵소서. 우리에게 주어진 권력은 우리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니며 세상에서 남들에게 나타내기 위한 것도 아니며 명예를 획득하기 위한 것도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권력을 사용할 곳은 오직 하나이니 그것은 국민을 섬기고 돕는 데만 사용하게 해주시옵소서. 주여! 우리를 도와 주시옵소서. 아멘!
대통령으로서의 첫 행동을 기도로 시작하는 조지 부시 대통령의 용기있는 신앙에 놀라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리고 왜 자신에게 하나님께서 권력을 주셨는지를 깨닫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살고자 하는 겸손함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기도의 중요성
기도는 하나님께서 당신의 자녀들에게 주신 최고의 특권입니다. 하나님은 기도를 통하여 우리를 만나주십니다. 하나님은 기도를 통하여 하늘의 영광과 축복을 내려 주십니다. 세상을 이길 수 있는 지혜와 능력을 주십니다. 하나님은 기도를 통하여 인격적인 관계를 맺으십니다.
기도는 태중에 있는 생명을 살리는 탯줄과 같습니다. 엄마의 뱃속에 있는 태아는 탯줄을 통하여 영양분을 공급받습니다. 성도는 험한 세상 속에서 기도의 탯줄을 통하여 영적인 영양분을 공급받습니다. 따라서 기도하지 않고 신앙 생활을 한다는 것은 얼마나 어리석고 무모한 것인가를 알 수 있습니다. 신앙 생활을 하면서도 하나님과의 기도의 줄이 단절되어 있다면 그것은 영적인 호흡이 중단된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기도의 줄이 끊어지면 원망과 불평이 많아집니다. 기쁨과 감사가 사라집니다. 교회오기가 싫어지고, 점점 세상 것에 관심을 두게 됩니다. 이기심의 노예가 됩니다. 대화가 없는 부부사이가 파경으로 끝나는 것처럼, 기도없는 신앙생활은 영적 파국으로 치달을 수 밖에 없습니다.
기도로 세계를 움직인 사람들
어느 시대든지, 어느 민족이든지 기도가 왕성할 때는 놀라운 부흥의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초대교회 공동체가 함께모여 기도에 최우선 순위를 두고 힘쓸 때에 성령의 놀라운 능력이 임했습니다. 그들은 모이기에 힘쓰며, 말씀을 배우기에 힘썼습니다. 땅끝까지 이르러 복음의 증인되는 사역을 감당했습니다. 그 원동력은 바로 기도였습니다. 성경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들 역시 기도의 용사였습니다. 야곱은 하나님의 얍복강가에서 밤을 지새우며 기도함으로 축복을 받았습니다. 모세는 민족이 위기에 처했을 때에 손을 들고 기도하므로 아말렉의 공격을 물리쳤습니다. 다니엘은 뜻을 정하고 기도하므로 우상 앞에 무릎 꿇지 않은 용기있는 자가 되었습니다. 엘리야는 생명을 건 기도를 통하여 바알과 아세라의 우상을 불살랐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도 역시 기도의 사람들이었습니다. 기도하러 가던 베드로와 요한은 예수 이름의 능력으로 앉은 뱅이를 일으키는 놀라운 이적을 행했습니다. 바울과 실라는 감옥에서도 찬송과 기도를 통하여 옥문이 열리고 간수가 회개하고 주께로 돌아오는 것을 보았습니다. 예수님의 동생 야고보는 얼마나 기도를 했던지 죽었을 때 그의 무릎은 낙타무릎처럼 굳어 있었다고 합니다. 이와같이 성경에 등장하는 모든 하나님의 사람들은 기도의 용사들이었습니다.
종교개혁을 일으켰던 루터는 기도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나는 새벽 3시간을 하나님께 드리지 않으면 그날은 마귀의 지배를 받게 된다"고 말했습니다. 따라서 그는 "바쁘기 때문에 더 기도해야 겠다"고 고백했습니다. 죤 낙스는 "오 하나님, 나에게 스코틀랜드를 주옵소서. 그렇지 않으면 나는 죽겠나이다." 라고 기도했습니다. 중국에 선교의 횃불을 밝힌 허드슨 테일러, 아프리카의 복음화를 위해 헌신했던 리빙스턴, 감리교의 창시자 요한 웨슬레 등 세계를 움직인 모든 사람들은 기도에 생명을 걸었던 사람들입니다.
오늘 우리들이 영적 무력감에 빠진 이유는?
오늘 우리의 신앙이 점점 무기력해지고, 침체되는 원인이 무엇입니까? 왜 그렇게 교회가 많이 있는데도 우리의 현실은 어두워져만 갑니까? 그 이유는 기도의 등불이 꺼져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기도의 능력이 사라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제가 어렸을 적만 해도 교회에 가면 기도의 열기가 대단했습니다. 초등학교 때에 저는 부모님을 따라 새벽기도를 다닌 기억이 있습니다. 금요일에는 철야기도를 했습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는 기도의 무릎이 점점 약해져 가고 있습니다.
어느덧 교회 안에 기도의 소리가 아닌 사람의 소리가 커지고 있습니다. 성령의 능력이 아닌 사람의 지식과 경험이 높이 평가되고 있습니다.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가지 않고 온갖 프로그램을 따라가고 있습니다. 그 결과는 무엇입니까? 교인들의 숫자는 점점 줄어들고 있습니다. 교회의 생명력은 고갈되고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오히려 손가락질을 당할 때도 있습니다.
그 근본 원인이 무엇일까요? 바로 기도의 부족이요, 기도의 능력을 상실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성지교회가 꿈을 이루는 교회가 되기 위해서는 기도의 능력을 회복해야 한다고 믿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증거하는 생명력 있는 교회가 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기도의 등불을 켜야 합니다. 기도가 사라진 교회는 기름없는 등불과 같습니다. 휘발유가 들어있지 않은 자동차와 같습니다. 우리교회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기도의 불을 지펴야 합니다. 뜨거운 기도를 통하여 성령의 능력을 체험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기름부으심을 통하여 우리의 가슴이 뜨거워 질 때 세계를 가슴에 품고 나아갈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가르쳐 주신 기도의 자세는?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하여 예수님께서는 기도의 자세와 방법, 그리고 결과에 대해서 말씀하고 계십니다. 산상수훈의 말씀을 통하여 이미 예수님은 유대인들의 잘못된 기도에 대해서 지적해 주셨습니다. 그들은 중언부언하는 기도를 했습니다. 외식적이고 형식적인 기도에 빠졌습니다.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먹고, 마시고 입는 것에 대해서 집착했습니다. 염려하며, 의심하며 기도했습니다.
어쩌면 예수님 당시의 유대인들과 같은 모습으로 우리가 기도생활을 하고 있지 않나 생각해 봅니다. 우리들이 기도하면서 의심할 때가 얼마나 많습니까? 체면 때문에 형식적으로 기도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우리의 기도가 성숙되지 못하고 아직도 먹고 마시고 입는 것에 얼마나 많은 기도의 시간을 투자하고 있습니까? 따라서 하나님은 우리로 하여금 바른 기도의 자세가 무엇인가를 보여주고 계십니다. 그것이 바로 주기도문입니다. 주기도문을 통하여 바른 기도의 모범이 무엇인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주기도문은 금요 심요 기도회를 통해서 설교를 하고 있습니다. 금요 심야 기도회에 나오셔서 예수님이 친히 가르쳐 주신 주기도문을 통해 기도의 바른 이해와 능력을 체험하시기를 원합니다.
오늘 본문은 예수님께서 가르쳐 주신 기도의 결론 부분입니다.
첫째,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다" 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기도는 먼저 구하는 것입니다. 기도생활을 처음 하는 사람이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는 수준 높은 기도를 할 수 없습니다. 신앙생활의 초보일때는 대부분 자신의 문제와 소원을 가지고 주님 앞에 기도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신앙의 초보일 때 기도의 출발점이 되어야지 계속되면 문제가 됩니다. 자신의 소원을 이루기 위한 기도로 우리의 기도가 채워져 있다면 그것은 속히 고쳐져야 합니다.
미신적인 기도와 기독교의 기도의 차이점은?
세상의 모든 종교에도 기도가 있습니다. 그들의 기도의 대부분은 자신의 소원을 이루기 위한 수단으로 기도의 방법을 이용합니다. 미신을 섬기는 자들은 신을 감동시켜서 자신들의 소원을 이루고자 하는 이기심을 가지고 기도합니다. 그래서 지성으로 공을 드립니다. 절에 가서 백일기도 하는 분을 보셨습니까? 천배, 삼천배를 하며 기도하는 분을 보셨습니까? 얼마나 지극정성을 드리는지 모릅니다. 왜 그렇습니까? 정성을 드려서 부처님을 감동시켜야 복을 받기 때문입니다. 결국 자기 소원 성취를 이루기 위한 이기심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기도는 차원이 다릅니다. 우리는 구하는 것 자체가 다릅니다. 미신을 섬기는 자들은 환경을 바꾸어서 자신들의 소원을 이루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내 소원을 이루기 위해서 기도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뜻을 이루기 위해서 기도합니다. 우리는 환경이 변화되기를 위해서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자신이 변화 되기를 위해서 기도합니다. 우리 자신의 삶의 태도, 가치관이나 인생관이 바꾸어지기를 기도합니다. 나 중심적인 이기심에서 벗어나 섬기고 베풀고 나누는 삶을 살기 위해 기도합니다.
우리도 역시 건강을 구하고, 지혜를 구하고, 사업이 잘되기를 구합니다. 세상에서 지위를 얻고, 출세하기를 구합니다. 자녀들이 형통하기를 위해서 기도합니다. 여기서 끝나면 미신을 섬기는 자들의 기도와 다를 바가 없습니다. 분명한 차이점은 이런 모든 것을 구하는 목적이 다르다는 것입니다. 무엇을 위해서 우리가 구하는 것입니까?
마6:33절입니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위해서 우리는 구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우리들이 이 땅에서 천국백성으로서의 아름다운 삶을 살며,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 속에서 살기 위해서 구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돈을 구하고, 지식을 구하고, 명예를 구하는 모든 목적은 바로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를 통하여 그분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함입니다. 자신을 위해서 쌓아두기 위한 이기심이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를 이 땅에 이루기 위해서, 곧 주기 위해서 기도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구해도 얻지 못하는 이유는?
그런데 우리가 구한다고 해서 모든 것이 응답되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가 구해도 얻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우리 자신만의 이기적인 욕심으로 쓰려고 구할 때입니다. 정욕을 위해 구할 때 하나님은 응답하지 않습니다.
예를 들면 이런 것입니다. 운동경기를 하는데 '하나님 우리 편이 꼭이기게 해주세요' 이런 기도를 하면 하나님이 들어 주실까요? 그러면 상대편에 있는 신앙인들은 '하나님이 우리편이 대승을 거둘 수 있도록 도와주세' 그러면 공평하신 하나님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무승부로 경기가 끝나면 참 은혜롭겠지요? 자기가 기도했는데 자기 팀이 지면 하나님이 내 기도를 듣지 않은 것일까요? 아닙니다. 그것은 구하는 내용 자체가 신앙적이지 못합니다. 물론 이기면 지는 것보다는 좋겠죠? 그러나 결과는 하나님께 맡기고, 이 경기를 통하여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기를 원하는 진실함이 중요하지 않을까요?
저는 이렇게 기도하는 사람도 봤습니다. 남편이 하도 술을 먹고 자기를 때리니까 이분이 화가 났던지 '하나님 우리 남편 저렇게 살바야에 죽여주세요' 오죽 화가 나면 남편 죽여달라고 했겠어요. 그러나 그것은 기도가 아닙니다. 이왕이면 '하나님 내 남편이지만 너무 밉습니다. 그렇지만 저 사람도 하나님 만나면 변화될 줄로 믿습니다. 믿음으로 인내하게 하셔서 승리하게 해주세요' 이쯤 되야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기도가 되지 않겠습니까?
3일 있으면 대입 수능시험이 있습니다. 우리교회도 입시생을 위해 축복기도를 하고, 입시생을 위한 기도회가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분명히 기억할 것은 바르게 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다른 애들은 어찌되든지 우리 아들, 딸 만큼은 꼭 좋은 대학에 들어가야 합니다. 다른 애들은 몸이 아파서 시험도 잘 못치르게 하시고, 할 수만 있으면 답도 밀려쓰고 해주세요. 그래서 우리 애는 꼭 대학가게 해주세요' 이쯤되면 기도 내용이 가히 엽기적인 수준이 아닙니까?
하나님은 그런 기도를 기뻐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우리 아이에게 지혜주셔서 지금까지 공부한데로 최선을 다하게 도와주세요. 진로를 열어주셔서 세상의 좋은 학문을 많이 배워서 하나님 영광위해 크게 쓰임받게 도와주세요. 다른 아이들도 실수하지 않고 잘 치룰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그래서 하나님의 귀한 일꾼들로 쓰임받게 해 주세요' 이쯤은 되어야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을까요?
시편37편 4절에 말씀하십니다.
"여호와를 기뻐하라 저가 네 마음의 소원을 이루어 주시리로다." 나의 이기심을 넘어서는 하나님이 기뻐 받으시는 기도를 올릴 때 하나님이 기뻐 받으시고 응답해 주실 줄 믿습니다.
믿음으로 구하라
또 한가지는 구하는 자의 자세입니다. 구한다고 다되는 것이 아닙니다. 아무리 구해도 믿음으로 구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하나님은 야고보서를 통해서 말씀하십니다.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의심하는 자는 마치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 물결 같으니 이런 사람은 무엇이든지 주께 얻기를 생각하지 말라."(약1:6-7)
"너희가 기도할 때에 무엇이든지 믿고 구하는 것은 다 받으리라 하시니라."(마21:22)
하나님께서는 기도하면서 믿지 못하면 받지 못한다는 것을 분명히 말씀합니다. 우리가 많은 기도를 하면서 얻지 못하는 이유는 의심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를 맺기 위한 것이 아니라 자기의 정욕을 위해 쌓아두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후안 까를로스 목사님은 우리 기도의 대부분은 하늘나라에서 잡동사니 쓰레기로 취급될 수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얼마나 많이 구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무엇을 위해서 얼마나 큰 믿음으로 구하는냐가 중요함을 말씀하고 계십니다.
둘째,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시집가지 않은 처녀 총각은 애인을 찾습니다. 장사하는 분은 손님을 찾습니다. 기업인은 돈을 찾습니다. 나이가 들면 명예를 찾습니다. 사람들은 누구나 무엇인가를 찾고 삽니다. 그러면 신앙인은 무엇을 찾을까요? 그것은 끊임없이 하나님을 찾는 것입니다. 내 삶의 모든 상황 속에서 하나님을 추구하는 것입니다. 예레미아 29장 12-13절에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내게 부르짖으며 와서 내게 기도하면 내가 너희를 들을 것이요, 너희가 전심으로 나를 찾고 찾으면 나를 만나리라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너희에게 만나지겠고"
우리가 기도하는 목적은?
우리가 기도하는 목적은 바로 하나님을 만나기 위함입니다. 인간의 근본적인 불안은 하나님을 만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만난 사람은 두려워 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내 곁에서 방패가 되어주심을 믿는 자는 불안해 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어디로 가든지 내가 너와 함께 하리라"는 믿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만나지 못하고 신앙생활하는 것은 정말 불행한 일입니다. 여러분은 살아계신 하나님을 만나셨습니까? 지금 이 질문에 만났다고 믿으신 분은 하나님을 만난 것입니다. 그런데 아직 잘 모르겠다고 생각하시는 분은 속히 하나님을 만나야 합니다. 하나님이 계신 것을 아는 것으로는 미완성입니다. 마귀도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아무리 이성적으로 알고 있어도 내가 살아계신 하나님을 만나지 못하면 삶의 능력이 나타나지 않습니다. 변화가 일어나지 않습니다.
아직 하나님을 만난 체험이 불확실한 분은 오늘 말씀을 붙잡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 전심으로 주님을 찾사오니 나를 만나주옵소서, 나를 변화시켜 주옵소서, 새롭게 하여 주옵소서' 전심으로 찾고 찾는 자에게 이 시간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만나 주시는 축복을 주실 줄로 믿습니다.
셋째,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열릴 것이요" 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닺힌 문 밖에서 아무리 기다려도 문은 열리지 않습니다. 내가 적극적으로 두드려야 합니다. 갈급한 심령으로 매달려야 합니다. 그때 문이 열리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가리켜서 "양의 문(요10:9)" 이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리고 "내가 문 밖에서서 문을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서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계3:20)고 말씀하십니다. 주님은 지금도 우리의 마음의 문을 두드리고 계십니다.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 나라의 꿈을 꾸며, 새로운 가능성을 향하여 나아가도록 문을 두드려 깨우고 계십니다.
아직 잠들어 있는 영혼이 있으면 흔들어 깨우시기를 바랍니다. 주님의 이름으로 여러분의 가정의 문을 두드리시기 바랍니다. 일터의 문을 두드리시기 바랍니다. 사업장의 문을 두드리시기 바랍니다. 믿고 구하며 두드릴 때에 축복의 문이 열릴 줄로 믿습니다.
그리고 아직도 예수님을 알지 못하는 영혼들의 마음의 문을 두드리시기 바랍니다. <2001 예수 생명 잔치>가 진행중에 있습니다. 한 사람도 구경꾼이 없기를 바랍니다. 아직도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세상의 썩어질 것에 만족하며 사는 자가 있다면 기도함으로 흔들어 깨우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이 눈물로 기도하며 지속적으로 두드릴 때에 하나님께서 반드시 열려 주시는 복을 주실 줄로 믿습니다.
반드시 좋은 것으로 주시는 하나님
예수님은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구하는 이마다 얻을 것이요, 찾는 이가 찾을 것이요, 두드리는 자에게 열릴 것이라고 약속하고 계십니다. 이 약속을 믿고 담대하게 기도하십시오. 반드시 여러분의 믿음의 기도를 응답해 주실 것입니다. 아들이 떡을 달라하면 돌을 줄 부모가 어디 있으며, 생선을 달라하면 뱀을 줄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육신의 부모라도 자식에게 좋은 것을 주시는데, 피값을 주고 우리를 구원하신 하나님께서 어찌 믿음으로 하나님의 뜻을 따라 구하는 자에게 주시지 않겠습니까?
하나님은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채워 주십니다. 그런데 내가 보기에 좋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 보시기에 좋은 것으로 주신다는 것입니다. 내가 보기에 아무리 좋아 보여도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으면 받을 수 없습니다. 따라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믿음의 기도를 드리는 것이 중요합니다. 내가 구하는 것이 응답되지 않을 때는 빨리 기도의 내용을 바꾸어야 합니다. 그것이 응답받는 기도의 비결입니다.
오늘 12절은 황금율이라고 합니다. 기도의 결론으로 주신 황금율은 "내가 대접을 받으려면 먼저 대접하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내가 하기 싫으면 다른 사람에게도 시키지 말라"는 의미입니다. 이것이 바로 성경의 전체 내용이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즉 기도는 내가 받아서 쌓아두기 위해서가 아니라 주기 위해서 하는 것입니다. 내가 받은 주님의 사랑을 나누기 위해서 기도하는 것입니다.
주님이 기뻐하시는 기도로 우리의 삶이 채워지게 될 때 있어야 할 것을 아시는 주님께서 더 풍성한 것으로 채워 주실줄로 믿습니다.
스펄젼 목사님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기도는 어쩌다 생각나서 하는 것이 아니라, 날마다의 일과이고 습관이며 날마다 해야 할 신성한 노동이며 삶이다." 그렇습니다. 기도는 성도의 선택이 아니라 필수요 의무입니다. 기도는 바로 하나님을 향한 성도의 신성한 노동이요 삶인 것입니다.
기도의 등불을 밝히자!
사랑하는 성지 가족 여러분! 가정에 기도의 등불을 밝히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의 일터에, 사업장에 기도의 불을 붙이시기 바랍니다. 기도는 모든 문제를 해결하며, 천국의 보고를 여는 열쇠이기 때문입니다. 성지가족 모두가 하나님이 기뻐 받으시는 기도에로의 회복을 통하여 하늘의 기쁨을 누리시기를 원합니다. 성령의 능력을 덧입고 복음의 증인되는 사역을 감당하시기를 원합니다. 그리고 능력있는 기도꾼이 되어 더좋은 것으로 채워주시는 주님의 은총을 날마다 경험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출처 : 성지교회 ( http://sungjii.or.kr/sulkyo/211104.ht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