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햇살이 눈부신 여름, 갑자기 여우비가 내린다. 비를 피하려 보랏빛 꽃이 매달린 등나무 벤치로 뛰어드는 두 남녀, 그렇게 처음 만난 민우(송승헌 분)와 은혜는 서로에게 가슴 뛰는 사랑을 느낀다. 하지만 급작스런 교통사고로 은혜는 민우 곁을 떠나고 만다. 은혜를 잃은 민우는 가슴에 지울 수 없는 상처를 안고 방황한다. 오랜 세월이 지난 후, 은혜와 함께 갔던 산에서 민우는 혜원(손예진 분)을 만난다. 폭우로 길을 잃고 산장에서 하룻밤을 보내게 된 민우와 혜원은 알 수 없는 끌림의 여운을 남긴 채 아무렇지 않게 헤어지지만 그들은 운명적으로 다시 만난다. 그리고 서로를 선택할 수밖에 없는 지극한 사랑을 시작한다.
운명적 사랑
"전 운명적인 사랑은 안 믿어요. 그렇지만 이 드라마가 끝날 즈음 아마도 그 운명적인 사랑을 믿게 될지도 모르죠."
또렷한 목소리로 운명적 사랑을 믿지 않는다고 대답하는 손예진(22) 그녀는 천상 20대 신세대다. '첫 눈에 빠진 운명적 사랑?'이라는 느낌을 아직 느껴보지 못했다는 그녀는 다소 감성적이고 동화적인 사랑 법에 대해 고개를 갸웃거린다. 그러나 영상의 마술사 윤석호 감독을 믿음으로 동화속 사랑이라 할지라도 '지금은 모르겠다 말하지만 그 느낌을 분명 느끼리라'고 장담한다.

"가을 낙엽과 겨울눈이 있었던 전작과 달리 여름 사랑에는 초록빛의 나무들, 여우비, 꽃, 녹차 밭 등 산뜻하고 싱그러움이 있는 것 같아요. 이마에 송글송글 맺히는 땀에서 느껴지는 싱그러움 같은 것 말이에요."
계절시리즈로 이름 붙여진 윤석호 감독의 3번째 작품 <여름향기>에는 초록의 싱그러움과 비 온 후의 깨끗함이 컨셉이다. 첫 번째 작품<가을동화>에서는 낙엽과 가을 바다, 두 번째 작품<겨울연가>에서는 눈과 스키장이라면 세 번째 작품<여름향기>에서는 초록의 싱그러움과 비 온 뒤의 깨끗함을 배경 컨셉으로 잡았다. 또한 백혈병과 기억상실증, 그리고 심장 이식 등 각각 다른 내용 컨셉도 있지만 세 작품 모두 영상으로 보여지는 아름다움에 공통점을 두고 있다. 작품을 이끌어 나갈 여 주인공에게 작품을 대하는 첫 느낌을 물었더니 이마에 맺히는 땀에서 느끼는 산뜻함과 초록의 싱그러움, 한가지 더해서 지금은 믿지 않는 운명적인 사랑을 이 작품을 통해 느낄 수 있지 않을까 한단다.
혜원 그리고 예진.
"남자를 보자마자 두근거림이 있는 점에서는 좀 다른 것 같아요. 그리고 전 평소엔 말을 별로 안 하지만 할 말은 꼭 하고 마는 성격이에요. 그리고 눈물도 많아요.:"
눈빛이 선해서 손예진을 캐스팅 했다는 감독의 캐스팅 배경을 들으면 주인공의 이미지는 청순함과 순수, 그리고 맑은 영혼을 가졌음을 베이스로 깔고 있다. 극중 혜원의 성격은 초등학교 교사를 하다 꽃이 좋아 프로리스트가 되었다는 이력, 심장수술을 통해 원래 조용한 성격이 자신도 모르게 성격이 밝아졌고, 첫 눈에 운명적인 사랑을 예감하는 순수한 성격의 소유자가 혜원이다. 손예진은 조용한 성격이지만 해야할 말은 꼭 하고 마는 신세대적인 발랄함이 있는 20대다. 그러나 순정만화를 보면서 눈물을 흘린다는 손예진은 극중 혜원과 많이 달라 보이진 않는다. 캐릭터와 첫 만남에 다소 어색함을 보이는 그녀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극중 혜원과 연기자 예진은 어느 날 같은 느낌으로 우리에게 다가올 것을 예감할 수 있다.

"드라마 캐릭터는 '청순하다'. '섹슈얼하다', '발랄하다'등 정해진 이미지를 가지고 연기자들 앞에 나타나잖아요. 그러다 보니 팬들이 극중 캐릭터와 연기한 배우들의 이미지를 동일 시 하는 경향이 많아요. 같은 맥락에서 저도 지금까지 연기한 캐릭터가 강하기 보다 여리고 순한 역이 많다 보니 '첫 사랑'의 이미지가 많은 게 아닌가 생각됩니다."
연기자들은 본인이 출연한 작품의 수만큼 각기 다른 이미지를 갖는다. 물론 극중 캐릭터의 이미지와 비슷하다는 이유가 첫 번째로 캐스팅 이유가 되기도 하지만 연기자에 따라 완전히 다른 이미지의 캐릭터를 연기하기도 한다. 그러나 정작 연기자 본인이 가진 개성은 극중 이미지에 가려지기도 한다. 손예진 역시 여린 '첫사랑'의 이미지 뒤에 가려진 본인만의 개성이 있노라 항변한다. 그러나 '첫사랑' 이미지가 그리 나쁘지 않다는 말과 함께 굳이 그 이미지를 바꾸고 싶지 않지만 천천히 또 다른 매력을 내 보이겠다며 앙증맞은 대답을 한다.
내 가슴 뛰게 만드는 그 남자 송승헌
"눈이 참 예뻐요. 속눈썹도 길구요. 아마 눈을 보면 주인공 혜원이 느끼는 설래는 맘이 생기지 않을까 싶어요. 처음 본 그 순간 사랑을 느끼고 가슴 두근거림이 있는 대본을 읽으면서 어떻게 소화해 내야하나 고민도 많았는데 송승헌씨 눈을 보면 그 느낌이 생길 것 같아요."
눈을 뗄 수 없고, 쳐다보기만 해도 쿵쾅거리며 가슴을 진정시켜야 하는 절절한 사랑을 연기해야 하는 손예진의 고민은 간단치가 않단다. 예쁜 눈을 가진 상대를 만나 감정 몰입에 도움은 받을 수 있겠지만 쿵쾅거리는 가슴을 표현하는 얼굴표정, 홍조 띤 얼굴 등 어떤 식으로 표현해 내야할지 본인 뿐 아니라 감독의 고민이기도 하단다. 심지어 감독은 내면 연기를 위해 아예 진짜 사랑에 빠져버리라는 주문까지 해 제작현장은 웃음바다가 된다.

"감독님을 믿지만 이렇게 많은 분들이 관심 가져주시는 것이 인터뷰 전까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부담스러워요. 웬 만큼 해서는 안될 것 같아요."
2001년 드라마 <맛있는 청혼>으로 데뷔, 영화 <취화선>, <연애소설>, <클래식> 등 잇달아 좋은 연기 선 보인 그녀지만 이번 작품은 심적 부담이 만만찮단다. 윤석호 감독의 계절 시리즈 전작들의 대 성공이 그 원인이기도 하지만 그 외 많은 사람들의 관심이 그 무게를 더 하기 때문이다. 전작들과 달리 <여름향기>는 방송 전부터 대만의 알파 레코드에 판권이 팔린 상태라 주인공인 손예진은 국내 팬 뿐 아니라 동남아시아 팬들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 시작부터 심상찮은 이번 작품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가지는 관심들이 과히 나쁘지만은 않은 듯 열심히 해서 좋은 결과를 가져올 수 있도록 최선을 다 하겠다고 야무진 대답을 하는 손예진은 이번 드라마가 끝나면 유럽여행을 할 계획이란다.
< 가을동화>의 은서, <겨울연가>의 유진 그리고 <여름향기>의 혜원, 이 들의 사랑은 영혼과 함께 하는 사랑이다. 운명적 사랑이다, 필연적 사랑이다, 그리고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하는 아름다운 사랑인 것이다.
이 아름다운 사랑의 모티브가 되는 여우비는 햇살이 한창인 여름하늘에 갑자기 쏟아지는 비, '호랑이가 장가가는 날', 혹은 '여우가 시집가는 날' 내리는 비다.
'영상으로 볼 때도 햇빛에 물방울이 비치기 때문에 가장 아름다운 순간의 비'라고 감독은 여우비를 소개한다. 우리의 청춘도 짧은 사랑도 모두 찬란한 여우비를 닮았다는 감독의 말처럼 여름 한낮, 달콤한 오수와 더불어 여우비 와 함께 찾아올 상큼한 여름향기를 기다려 보자.
- 글 정은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