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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원이세상

담아온 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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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일기는 내가 선생 노릇을 그만두려 하다가 다시 교단에 서며 쓴 글들이다. 나는 감동 없는 일상을 못 견뎌한다. 어린이들에게 나는 늘 새로워야 했고, 어린이들 앞에 서서 나는 늘 살아 있는 생명 자체로 싱그러워야 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아이들 앞에 선 내 자세는 구태의연했고, 내 생각은 타성에 젖어 고루했으며, 사랑은 열정이 식어 시들해졌고, 일상은 무기력하고 지루하기만 했다. 그러니까 이 일기들은 내가 나에게 채찍질을 한 부끄러운 글들이다.


또 봄이 가고 있다. 나이 스물두 살에 교단에 서면서 나는, 선생 노릇으로 한평생 행복하자고 다짐했다. 싱싱한 어깨, 까만 머리의 푸른 내 청춘 앞에 앉아 있는 코흘리개들을 보며, 이들과 함께 인생을 시작했으니 머리가 하얗게 셀 때까지 아이들과 함께 살기로 다짐했었다. 그런 삶도, 그런 한평생도 아름다울 수 있으리라는 생각을 했다. 지금도 그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일기는, 논리적이지도 않고, 학문적이거나, 전문적이거나, 이론적인 글이 아니다. 생각나는 대로 하루 동안 떠도는 자기 생각을 두서없이 기록한 글이다. 서툴고 어색하고 유치하고 남이 보면 부끄러운 자기반성과 쇄신의 기록이 일기 아닌가.


교실 앞 놀이터에 살구나무가 한 그루 있다. 내가 이 학교 1학년에 입학할 때 이 나무는 청년이었다. 이제 나무는 아름드리가 되어 늙어간다. 늙은 몸에도 꽃을 다문다문 피운다. 오래된 가지에 꽃을 피우면 때론 고졸하고, 때론 고색창연해 보인다. 살구나무 살구꽃을 보며 나는 봄마다 얼마나 까닭 없이 설렜던가. 잘살아온 나무다. 그 살구나무에 올해도 꽃이 피었다가 졌다.


아이들이 뛰어 노는 운동장, 그 땅을 달리는 아이들의 튼튼한 발길들을 나는 오늘도 바라본다.


 

2006년 봄 내가 태어나 자란 덕치초등학교 2학년 교실에서                 

 

김용택                 

           

 

 

4월13일 수요일  

   

아이들 같은 마음이 되어야 한다. 많은 반성을 한다. 아이들에게 했던 내 잘못, 성급함, 조급함, 앞뒤 생각지 않고 나무라고 따지는 버릇을 고쳐야 한다. 평상심으로 아이들을 편안하게 대해야 한다.

 

오늘은 아이들과 잘 지냈다. 성심으로 성실하게 아이들 앞에 서야 한다. 나 자신에게 진정 부끄러움이 없어야 한다. 잘못하면 나의 잘못을 스스로에게 시인해야 한다. 마음이 편해야 한다. 양심과 상식에 비추어 스스로에게 부끄럽지 않고 떳떳해야 한다.

 

교육은 지식을 전달하기보다는 인간의 향기를 사람들에게 전해주어야 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늘 그렇듯이 자신에게 부끄러움이 없는 것. 한번 잘못한 것을 다시 반복하지 말아야 한다.

 

선생님이 선생님인 것은, 사람들이 선생님이라고 부르며 어려워하고 존경하는 것은, 선생이  인간을 가르치기 때문이다. 인간을 “가르친다”는 것은 자기 인격을 바로 세워가는 인격자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자신의 잘못이 사람에게 가 닿고, 사람을 아프게 하고, 따라서 자기 자신을 아프게 하기 때문이다. 선생은 자기 잘못을 늘 반성하고 자기를 아이들 앞에 바로 세우려 노력할 때만 선생이다. 그러한 노력을 하면서 다른 사람에게 자극받기에 선생은 위대한 인격자가 되어간다.

 

특히 어린이들 앞에서 자기를 큰 사람으로 키워가려는 노력은 끊임이 없어야 한다. 추호도 거짓이 없어야 한다. 추호도 자기 자신을 속여서는 안 된다.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러움이 없어야 하는 삶이 초등학교 선생의 삶이다. 양심과 인간으로서의 정직함을 털끝만큼도 잃어서는 안 된다. 투명하고 티끌 하나 없는 하늘처럼 맑고 높아야 한다.

 

인간을 다시 생각한다. 선생을 다시 생각한다. 시인을 다시 생각한다. 세상을 다시 생각한다. 사랑을, 세상에 대한 깊고 깊은 애정을 다시 생각한다.

 

세상 끝까지 부드러운 사람이 되어라. 풀잎처럼 부드러운 심성을 갈고 닦아라.

성스러움은 인간으로 바로 서는 일이다. 마음속 욕심을 다 버리는 일이다.

 

나는 오랜 세월 근거 없는 모함과 터무니없는 비판을 들으며 살아왔다. 어처구니없는 소문들이 나를 괴롭혔다. 소문과 짐작만으로 음해하는 사람들에게 나는 한 번도 변명하지 않았고 그들을 설득하려 들지도 않았다.

 

세상에는 남의 말만 듣고 사람을 난도질하는 인간들이 너무 많았다. 시를 쓴다는 사람, 교육을 한다는 사람들이 더 그랬다. 내 말은 한마디도 듣지 않고 함부로 지껄이고 다니는 반지성적 지식인들이 너무나 많았고, 그들은 또 자기네들끼리 패거리를 만들었다.

 

그런 일을 당한 사람은 나뿐이 아닐 것이다. 배웠다는 지식인들이 그러할진대 약하고 힘없는 사람들은 얼마나 많은 상처를 받고 힘들어하며 살아가는가.

 

나는 가치가 없으면 고민도 하지 않으려 했다. 유신 시대와 군부독재 시대, 교장의 말을 듣지 않는다고 나는 늘 매도당했다. 내가 왜 교장 말을 들어야 하는가. 나는 누구 말이든 옳으면 순순히 듣는다. 나는 누구 말이나 싫으면 듣지 않는다. 그게 내 삶의 태도였다. 지금도 나는 그렇게 산다. 지금도 나는 용택하고 같이 근무하니 힘들겠다고 서로 묻고 답하는 치졸한 인간들 틈에 산다. 물론 나의 인간적인 한계도 있으리라. 그러나 나는 적어도 남의 말만 듣고 칼을 들진 않았다. 그 터무니없는 말을 누가 했느냐고 물으면 아무도 누구라고 답하지 못한다. 우린 우리가 사는 세상 속에서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그 얼마나 괴롭힘을 당하고 사는가. 남의 말만 듣고 사람을 난도질하는 인간들 속에서 말이다. 그들이 보면 배가 아프겠지만 나는 아직도 이렇게 성하다.

 

 

 

8월30일 월요일 흐림. 태풍이 온다고 함

 

아침에 학교에 오니 아이들 여럿이 복도 쪽 창문에 붙어 시끄럽다. 다가가 보니, 유리 창 밖에 커다란 왕거미 집이 부서져 있고, 왕거미는 죽은 듯이 대롱대롱 매달려 있다. 누가 거미집을 이렇게 망가뜨렸냐고 물었다. 5학년 학생이었다. 이마에 꿀밤을 한 대 먹였다.

 

"너희 집을 누가 이렇게 부숴버리면 넌 어떻게 할래?"

 

거미는 그때까지 죽은 척 매달려 있었다. 어린 시절 저런 거미줄에 참새가 걸려 있기도 했다. 삼대 끝에 삼각형을 만들어 거미집을 거두고 매미, 잠자리를 잡던 일이 생각난다. 어린 시절 일은 다 그립다. 학교 운동장을 뛰놀던 동무들 얼굴이 잠깐 스쳐간다.

 

어느 날 새들이 벚나무 가지에 앉아 있는 걸 봤다. 나는 동무 한 명과 함께 돌을 주워 새에게 힘껏 날렸다. ‘퍽!’ 하는 소리가 난 후 새가 깃털을 날리며 빙글빙글 떨어졌다. 발 앞에 툭 떨어진 새를 보다가 우리 둘은 얼굴을 마주 보았다. 그때 놀라워하던 친구 표정이 지금 도 잊히지 않는다. 초등학교 2학년 때 일이다.

 

대학입시요강이 바뀌었다. 교육을 바로잡는 새로운 제도가 될 수 있을까? 교육 문제를 생각하면 가슴부터 답답해진다.

 

내 아이만 최고라고 생각하는 엄마들의 이 철저한 이기주의가 나는 무섭다. 무조건 남들을 밟고 넘어가야 산다는 이 동물적인 본능이 나는 두렵다. 경쟁이 극대화된 야만성 앞에서는 사람이 제대로 사람의 정신으로 서 있을 땅이 한 치도 없다. 무서운 경쟁력이 지배하는 이 사회가 나는 무섭고 겁이 난다. 너도 잘살고 나도 잘살자는 게 아니라 오로지 나 하나만 잘살아야 한다는 이 반사회적인 심보가 정말 치 떨리게 무섭다.

 

우리 아이들을 보라. 다 큰 아이들의 삶을 부모가 결정해주고 아이들은 그저 따라만 간다. 그것이 습관화되어 아무것도 스스로 결정하지 못한다. 그렇게 자라다 보니 책임지는 것이 하나도 없다. 그러다가 어른이 되면 방황하고, 현실을 도피하고, 젊음과 삶을 탕진한다.

 

어려운 일만 있으면 남에게 덤터기를 씌우고 자신은 빠져버리려는 얄팍하고 쩨쩨한 속셈이 우리 정신 사회를 지배하게 되었다. 말 그대로 공동체적인 삶이 무너진 우리 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아이들에게 공동체적인 삶의 방식을 길러주는 것이다. 나 살고 너 죽는 식으로 무한 경쟁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하는 야만적인 방식이 아니라, 나와 네가 같이 어울려 살게 해주며 사회적인 책임감을 길러주는 교육이 필요하다. 제도도 거기에 맞추어야 한다. 경쟁에서 이겨 나만 사는 사회가 아니라 더불어 사는 사람의 가치가 최고 가치가 되는 인간 교육이 되어야 한다.

 

경제가 최우선인 사회 가치는 인간다운 삶의 가치를 철저하게 망가뜨린다. 그래서 젊은이들이 아이 낳기를 거부하는 반사회적인 행동을 보이는 것을 보면 두려움이 엄습할 때가 있다. 그들은 마치 우리 사회의 가치 자체를 거부하는 듯 보인다. 그들은 우리가 사는 이 사회의 가치가 싫은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희망이 없다는 해석도 가능하다.

 

너무 흥분했나 보다. 난 흥분을 잘한다. 화도 잘 내고, 흥분도 잘하고 덤벙대기도 잘하고, 난 아직 철이 덜 들었다. 그건 내가 제일 잘 안다. 침착해져라, 김용택!

 

 

 

10월6일 수요일. 날씨 맑고 맑음.

 

오늘은 국어 읽기 1교시만 하고 무서운 수학만 3교시했다. ‘즐거운 시간’은 안 했다.

 

그리고 수학 시간에 선생님께서 코피가 났다. 근데 선생님께서 그 이유가 종현이, 한빈이 때문이랬다. 그리고 휴지는 선생님 가방에서 김다은이가 가져왔다.

 

강수의 어제 일기다. 공포의 수학 시간을 즐거운 수학 시간으로 만들자.

 

우리 시대에 큰 교육자가 없는 것은 바로 모두가 코앞의 이익을 좇아가버렸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큰 인물이 나타날 수 없는 우리의 정신 풍토는 참으로 척박하고 건조하고 메마르다. 이 가볍고 얕은 정신 풍토는 더럽고 추한 인간만을 만들어낸다. 그러나 박토에서도 꽃은 핀다. 그런 꽃이 오히려 빛이 진할 수도 있다.

 

나는 척박한 땅에 핀 작고 진한 빛을 가진 꽃이고 싶다.

 

 

 

11월 10일 수요일 날씨 잔뜩 흐림.

 

민세 녀석 학교에 갔다.

 

민세 학교에 가면 늘 살아 있는 사람 냄새가 난다.

 

수능이 낼 모랜데 아이들이 음악회에 나와 신나게 논다.

 

이 학교 아이들의 얼굴을 보면 살아 있다. 빗속에서 옷을 다 적신 채 흙탕물을 뒤집어쓰고 공을 차는 아이들 모습이 막강해 보인다.

 

이 학교에서는 아이들이 다 사람대접을 받는다.

 

공부를 못한다고 기죽어 지내거나, 선생님과 친구들에게 무시당하는 경우가 없다. 똑같은 사람대접을 받는다.

 

민세 학교는 그런 학교다. 열린 공간과 터진 사고, 자유로운 생활이 아이들 얼굴을 살아 있게 해주고 사람 얼굴을 갖추도록 해준다. 민세에게는 그곳이 천국이다.

 

아이들과 어울려 생활하며 민세는 사람의 귀함과 행복의 맛을 배웠으리라. 어른이 되면 민세는 행복을 찾아가고, 만들며 살 것이다. 그게 역사여야 한다. 함께 더불어 행복을 만들어 가는 공동체적인 삶을 학교에서 맛보도록 해야 한다. 시험에 따른 등수로 사람을 평가하지 말고 저마다 타고난 사람다움으로 세상을 꾸며가야 한다. 그게 이루어질 수 없는 이상이라고 해도 사람들은 적어도 그런 이상을 향해 나가야 한다. 너 죽고 나 사는, 추악한 경쟁을 제일로 삼는 세상은 사람이 살 세상이 아니다. 하지만 우리가 추구해야 하는, 이루고자 하는 세상을 찾아보기가 무척 힘들다. 이 꿈 없는 삭막한 세계를 우린 그냥 무력하게 살아간다.

 

우리 아이에게 우린 지금 무엇을 가르치는가. 어떤 사람이 되라고 가르치고 어떤 세상을 이루라고 가르치는가. 지금 우린 어디로 가는가. 채워지지 않고 헛배만 부른 부유함을 어찌할 것인가.

 

민세는 참 좋은 학교를 다녔다. 민세도, 나도, 우리 식구 모두 그 학교를 진정으로 사랑한다. 이런 메마른 세상이지만 그래도 그곳엔 사람들이 살고, 사람의 냄새가 난다. 가슴이 아려오고 피가 따뜻해져온다.

 

한빛고등학교를 생각하면 사랑이란 말의 의미를 되새기게 된다. 잊지 못할, 민세에게, 나에게, 우리 식구에게 잊지 못할 곳이다. 나의 학교였으며, 그 학교를 다니지 않는 민해의 애틋한 학교였고, 그 학교를 생각하면 그냥 매가리 없이 눈물이 절로 나오는 아내가 사랑하는 행복한 학교였다. 노래 공연을 하는 동안 아내 곁에 계신 교감선생님은 내내 눈물 바람을 하셨단다.

 

아이들도, 나도, 아내도 선생님들도 다 그랬다. 그곳은 그렇게 눈물과 감동이 살아나는 곳이다.

 

 

 

 

김용택의 교단일기」(김용택 지음 / 김영사 발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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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해원 2006.05.16 23:05
    나는 이런 분들을 '선생님'이라고 부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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