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팀 기자로 국회를 출입하면서 궁금했고 여전히 궁금한 것은 “도대체 의원들은 얼마나 바쁠까”이다. 적어도 국회에서 쉽게 볼 수 있는 광경들만 보면 의원들은 많이 바쁠 것이란 ‘추측’(?)을 할 수 있다. 의원들에겐 뭔가 특별히 바쁜 것이 있다니깐!
국회의원들의 번쩍거리다 못해 찬란하게 빛나는 에쿠스, 체어맨, 그랜저에는 늘 ‘운전기사’님이 대기 중이시다. 의원 나리들은 아마 차 안에서 국정 현안을 고민하고 민생에 도움이 될 만한 자료들을 검토하느라 바빠서 운전기사를 대동하는 것일 게다. 바쁜 의원 나리들을 위해서라면 운전기사분들께 드리는 임금쯤이야 세금으로 팍팍 지원할 용의가 있지 않은가? 대한민국 국민들의 넓디넓은 아량으로 헤아려보면 말이다.
점심 시간이 되면 아무리 국회에서 가까운 식당일지라도 의원들은 꼭 승용차를 타고 식당으로 간다. 민생을 챙기느라 바쁜 의원님들이 시간을 절약하려면 걷지 말고 승용차를 타고 다녀야지. 그러나 건강은 꼭 챙기시는 의원님들. 급하게 음식을 먹으면 소화불량에 걸릴까봐 음식물을 꼭꼭 씹으며 2시간 동안 식사하시고, 영양을 고려해 호텔 중식당이나 한정식집에서 풀코스 요리를 음미하신다. ‘웰빙족’을 자처하는 ‘센스’ 있는 의원님들은 ‘의원 전용 헬스장’에 가서 러닝머신을 달려준다. 바빠서 승용차를 타고 다니는 분들인지라 운동량이 많이 부족하셨을 텐데, 특히 배 나온 의원님들, 운동하는 거 잊지 말아주삼!
날이면 날마다 오지 않는 비님 오는 날. 의원회관 정문을 지키시는 수위님들이 의원 나리가 비 맞지 않도록 우산을 손수 씌워주신다. 물론 국회의원 두 손에는 그 어떤 짐도 없다. 서류, 가방 등의 짐은 보좌관의 몫이다. 의원 나리들이 얼마나 바쁘셨으면 우산 챙길 시간은 물론 서류를 챙길 정신도 없으실까~.
의원회관에 가면 의원 전용 출입문과 일반인 출입문이 따로 구분돼 있다. 빨간 레드 카펫이 깔려서 사람이 가면 ‘스르륵’ 열리는 센서 능력이 기가 막힌 ‘자동문’이 의원님 전용 문이고, 그 옆에 양손에 힘 ‘팍팍’ 주고 세게 밀어야 삐거덕거리며 움직이는 회전문이 일반인들이 사용‘해야만’ 하는 문이다. 바쁘신 의원 나리들. 아암, 전용 문을 이용하셔서 시간 절약해야지요.
기사 때문에 기자들은 종종 의원들에게 설문지 응답을 부탁하거나 ‘서면 인터뷰’를 한다. 의원에게 직접 맡긴 설문지와 서면 인터뷰는 백이면 백 모두 보좌관의 몫이다. ‘의원님들이 얼마나 바쁘셨으면 설문지와 서면 인터뷰를 모두 보좌관에게 맡기시는 걸까?’ 하는 마음에 의원님 방을 힐끗 쳐다보면 신문이나 텔레비전을 열심히 보고 있는 의원들의 모습이 간간이 눈에 띈다. 역시 내 예상대로 의원님들은 바쁘셨어!
17대 국회 초기에 탈권위주의의 상징처럼 폐지된 ‘의원 전용 엘리베이터’를 다시 부활할지 여부를 두고 논란이다. 바쁘신 의원 나리들은 일반인들과 함께 엘리베이터를 기다리시면 안 되지~. 민생 챙기느라 너무 바쁜 의원님들 덕분에 이렇게 우리 국민들이 먹고살기 편한 걸 보면 ‘의원 전용 엘리베이터 부활’ 이슈가 제기될 법도 하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 의원님들께 감사의 표시로 ‘의원 전용 엘리베이터’ 만들어줍시다!
▣ 최은주 기자 flowerpig@hani.co.kr
[한겨레21 2006-09-08 18:07:16]
* 출처 : 엠파스 뉴스 ( http://news.empas.com/show.tsp/cp_hw/pol00/20060908n076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