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출생및 사망에 관한 욕.
욕 가운데는 상대방은 물론 상대방의 조상까지 욕되게 하는 욕이 있다. 후손의 잘못으로 인해 그 조상까지 욕되게 한다는 것은 결코 바람직한 일은 아닌것 같다. 역설적으로 잘못이 없는 사람에게 이런 욕을 남용 한다면 결국 그 욕은 자신에게 되돌아 오는 결과를 얻게될 것이다.
그럼 이런 욕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지금부터 이런 종류의 욕에 대하 여 알아보도록 한다.
① 칠뜨기 같은 놈.
七朔(칠삭)둥이, 즉 열 달만에 태어난 것이 아니라 일곱 달만에 태어난 어딘가 부족한 사람이라는 말이다. 朔(삭)은 달이 차고 기우는데 걸리는 시간, 즉 한 달을 가리키는 옛사람들이 사용하던 일개월의 의미이다.
이와 비슷한 욕으로 "여덟 달 반"이라는 것이 있다. 팔삭둥이라고도 하는 이 욕도 역시 어머니의 胎(태) 속에 있던 달수를 가리키는 것이다. 그렇다면 滿朔(만삭)둥이는 가장 완벽한 사람이라는 말인가?
수양대군을 도와 김종서, 황보인등을 죽이고 端宗(단종)을 폐위시키며 세상을 거머쥐었던 한명회가 칠삭둥이라고 한다. 이 사람은 어디가 그렇게 많이 부족해서 남들이 부러워하는 부와 권력을 거머쥐었단 말인가? 아무래도 태 속의 달수와 사람의 됨됨이와는 전혀 무관하다고 증명이 되는 셈이다.
이 욕을 도태시키기 위해서 출생시 인큐베이터(Incubator) 신세를 졌던 요즘의 칠삭둥이나 팔삭둥이들은 만삭둥이들 보다 두배 세배의 노력을 기울여 결코 부족하지 않은, 오히려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아야 할 것이다.
② 후레아들 놈.
배운 데 없이 제 멋대로 자라서 버릇이 없는 놈이라는 뜻으로 두 가지의 어원이 하나로 합쳐져서 전해 내려오는 이 욕의 이면에는 아버지를 욕되게 하는 뜻이 숨겨져 있다.
두 가지의 어원 가운데 어떤 것이 먼저 이 욕을 만들어지게 했는지 자세하지 않지만 그 뜻에 있어서는 같은 맥락으로 이해하면 될것이다.
먼저 국어학적인 면을 살펴 보자면, 이 욕의 원 말은 "홀의 아들" 또는 "홀의 자식"에서 호레자식-> 호로자식-> 후레자식으로 변화 되었다고 보고 있다. 홀은 짝이 없는 외톨이란 뜻으로 ㅎ -> ㅎ오 -> ㅎㅇ -> ㅎ옷 -> 홋 -> 홀 이라고 변화가 되어왔고, 이 욕에서는 아버지 없이 홀어머니 밑에서 성장을 한 자식이란 의미로 쓰이고 있다. 이 욕 때문인지는 몰라도 요즘에도 홀어머니 밑에서 성장을 한 사람은 버릇이 없고 독선적이라 하여 취직을 할때나 맞선을 볼때 감점의 요인으로 작용을 하고있다. 아무래도 집안에 무섭게 훈계하며 이끌어주는 아버지라는 존재가 없어서 함부로 자랐고, 그래서 버릇이 없다고 단정을 짓는 처사인것 같기도 하다. 이런 점에서 볼 때 비록 무능하더라도 아버지가 살아 있다는 것은 그 존재 가치만을 따져 보아도 무시할 수 없는 존재인것 만은 확실하다고 할 수 있겠다.
다음으로 역사학적인 면을 살펴 보자면, 후레자식으로 변화 과정을 거친 "호로아들" 혹은 "호로자식"의 호로를 胡虜(호로), 즉 중국 북방의 이민족인 凶奴(흉노)를 가리키는 말로 보고 있다. 그러므로 이 욕은 상대방을 오랑캐의 자식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오랑캐의 자식이니 아버지가 오랑캐인 것은 당연지사가 아닌가?
우리 민족은 단일 민족으로 그 자긍심이 대단하다. 이는 세계화 추세에 있는 현재의 시점으로도 바람직한 일이라고 생각하며, 이러한 민족성 때문에 타민족, 그것도 오랑캐라고 업신 여기고 있는 北方胡虜(북방호로)의 피가 섞인 자식을 예의도 없는 버릇없는 놈이라고 치부해 버리고 마는 것이다. 비록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가 세계화의 물결 속에 있더라도 우리의 것을 무시하거나 잊어버리고는 올바른 세계관이 정립될 수 없다. 우리의 것을 지키지 않은 채 세계화의 물결 속에 휩쓸린다면 그것은 隸屬(예속)일 뿐 아무것도 아니다.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 아닐까?
소위 말하는 X세대의 머리 속에 한국적인 의식이 빠져나가 정신적 의미로서의 "후레아들 놈"을 만들지 않도록 기성세대나 신세대 모두가 노력을 아끼지 말아야 할것이다. 앞으로 20년 또는 30년 후 그들이 이끌어 나갈 우리 민족의 미래를 위해서......
③ 종간나 새끼.
이 욕은 주로 함경도 지방에서 쓰이던 욕으로 정확한 뜻은 종년의 새끼를 말한다. 그러니까 상대방의 어머니를 종년으로, 상대방을 그 종년에게서 태어난 새끼로 비하시켜 부르는 것이다.
"간나"는 여자를 일컫는 "가시나" 또는 "가시내"에서 비롯된 말이다. "간나"의 어원인 "가시"는 15세기 이전까지 꽃을 가리키는 말로 쓰이다가 그 후로는 아내를 뜻하는 말로 쓰이게 되었다.이에 대한 보충 자료로는 신라시대의 화랑을 들 수 있겠다. 화랑을 옛날에는 '가시나'라고 불렀다. 이렇게 부르게 된것은 화랑이 초기에는 처녀로 조직이 된데서 비롯 되었다고 한다. 그 후 화랑은 처녀 차림을 한 총각으로 代替(대체)되고 처녀는 '가시나'로 부르게 되었다. 이 '가시나'의 吏讀式(이두식) 표현이 바로 花郞(화랑)이다.
그래서 花郞(화랑)의 명칭도 초기에는 花娘(화랑)으로 불리다가 총각으로 대체되면서 娘(랑)이 郞(랑)으로 바뀌게 되었다. 이 郞(랑)은 이두식 표현으 로 무리(徒)를 나타내는 '네'의 옛 형태인 '나'를 소리옮김 한 것이다. 또한 '가시'는 꽃을 뜻 옮김 한 이두식 표현이다. 그러므로 '가시나'를 直譯(직역) 하자면 '꽃들'이 되는 셈이다.
아직도 지방의 사투리나 俗語(속어)들 속에는 이 '가시'라는 말이 살아있어 이상의 說(설)을 뒷받침 하고있다. 몇가지 예를 들어보자면 이렇다.
* 각시 : 갓 시집 온 여자.
* 가시버시 : 부부의 낮춤말.
* 가시어미 : 장모.
* 가시아비 : 장인.
* 가시집 : 각시의 집, 곧 처갓집.
이상의 설명과는 별도로 우스갯 소리로 구전되어 오는 '가시내'에 대한 다른 어원이 하나 있어 소개할까 한다.
옛날, 갓 쓰고 도포입던 시절에 남장을 한 처녀 하나가 길을 가고 있었는데 뒤따라 가던 선비가 길을 물어보려고 불러 세우자니, 뒷모습이 체구도 작고 아담한게 걸음걸이도 남자같지는 않은데 갓 쓰고 도포를 입었더라. 뭐라 부를 길이 막연하던 선비가 급한 김에 부른다는 소리가 "어이, 앞에 갓 쓴애!" 했단다. 이렇게 불러 세워놓고 길을 물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문제의 '갓쓴 애'는 남자가 아닌 여자였단다. 그 이후로 여자를 가리켜 '갓쓴애'라고 부르게 된것이 오늘날의 '가시내'로 변화되어 왔다고 한다.
물론 이 이야기는 우스갯 소리지만 화랑, 즉 '가시나'가 변화되어 온 역사적 사실이 배후에 깔려있는 것을 알 수 있다. 단지 여장을 한 남자가 남장을 한 여자로 둔갑(?)을 했을 뿐이다.
어떻튼 이 "종간나 새끼"에서 '간나'의 어원은 좋은 것에서 비롯 되었지만 오늘날의 뜻은 욕으로 통용이 되고 있으니 함부로 써서는 않될것 같다.
어떤 여자고 간에 '가시내'라고 부르면 좋아 하겠는가? 하기야 지나간 유행가 가운데는 '범띠 가시내'라는 곡도 있기는 했지만 말이다. 그래도 욕 가운데 가장 애교스러운 욕이 이 "가시내"인것 같다.
④ 촌놈.
이 욕은 서울이 아닌 지방에서 태어난 사람을 일컫는 말로 촌은 시골을 가리키고 있다. 아무래도 지방화 시대를 맞고 있는 요즘에는 어울리지 않는 욕인것 같다.
그리고, 이 '촌놈'이라는 뜻에는 꼭 출신성분만을 나타내고 있지는 않다. 서울에서 태어난 사람에게도 이 '촌놈'이나 '촌년'이라는 욕이 쓰여지기도 한다. '촌'은 숙달되지 않거나 어울리지 않는 것에 대한 형용사로 쓰이는 것이다. 좋게 말하자면 세상에 물들지 않은 순진함 이랄까? 그렇더라도 촌놈소리 들으면 기분이 좋지는 않다. 더군다나 여자에게 쓰여지는 '촌년'이라는 욕은 그 억양에 있어서 '촌놈'보다 더 천박하게 들린다.
이 욕이 쓰이는 몇가지 실례를 들면서 이번 회는 이만 마칠까 한다.
* 촌놈 배부른게 최고다.-> 아무것도 모르는 무식쟁이 에게는 이것저것 가릴것 없이 많이 먹는게 우선이다. (배고픈 시절에 많이 쓰였던 말이다.)
* 촌년 바람나면 씹구멍에 불난다.-> 순진한 여자가 남자를 알게되면 물 불 가리지 않고 덤벼든다.
* 촌년 서방질에 날 새는줄 모른다.-> 위의 뜻과 비슷하다. 또 이와 같은 뜻으로 쓰이는 말에는 '늦게 배운 도둑질에 날 새는줄 모른다'라는 것이 있다.
⑤ 쌍놈.(쌍놈의 새끼)
이 욕은 兩班官僚體制(양반관료체제) 하에 있던 조선시대의 신분제도를 반영하고 있는 욕으로서 사회적으로 가장 천대를 받았던 賤民(천민)을 가리키고 있다.
양반은 잘 알고 있다시피 文班(문반)과 武班(무반)을 일컫는 말로서 사회적 신분이 높고 경제력이 강하며, 사회를 이끌어 가는 최고의 신분계층이라고 할 수 있었다. 양반이라는 계급은 후손에게 세습되었으며, 이는 다른 계급의 사람도 마찬가지였다.
조선시대의 신분을 살펴보면 크게 네가지로 나뉘는데 兩班(양반, 사대부), 中庶(중서), 常民(상민), 賤民(천민)이 그것이다. 그리고, 이 계급은 다시 士(사)와 庶(서), 良(양)과 賤(천)으로 대별 되었지만 실제적으로는 천민을 제외하고는 모두 자유인이라고 할 수 있었다. 천민의 자유는 朝廷(조정)이나 그가 속한 士大夫家(사대부가)에서 통제를 하고 있었으며, 원칙적으로 천민과 자유인(천민을 제외한 모든 계급의 사람) 사이에는 모든 인간적인 교통이 단절되어 있었다. 즉, 천민은 인간 이하로 취급되고 있었으며 노비의 경우 생사여탈권은 전적으로 그 주인에게 주어져 있었다.
이런 천민에는 여러 부류의 사람이 있었는데 참고적으로 몇가지 알아보고 넘어가도록 하겠다.
* 公賤(공천)-> 죄를 범하여 신분이 강등되거나 조정의 관리에게 배분규정대로 나누어 주고 남아 관청에 귀속된 奴婢(노비). 官婢(관비)라고도 한다.
* 私賤(사천)-> 사사로이 개인집에서 부리던 종으로서 婢僕(비복), 白丁(백정), 俳優(배우, 노래나 줄타기, 연극 등을 직업으로 하는 광대), 娼女(창녀), 巫覡(무격, 무당과 박수를 뜻함) 등이 이에 속한다.
조선시대에 이런 노비들은 상당수 있었으며, 英祖(영조) 40년(1764년) 刑曹(형조)에 귀속되어 掌隸司(장예사)라고 불리기 전까지 掌隸院(장예원)이라 하여 독립된 관청에서 관할하고 있었다. 이런 노비들에게 免賤(면천)의 기회가 있었는데 천민에서 양민으로 신분 상승하는 것을 贖良(속량), 또는 贖身(속신)이라고 했다.
공천이 속량할 수 있는 기회는 나라에 큰 공을 세우거나 2품 이상의 官員(관원, 오늘날의 고급공무원)에게 첩으로 들어가 자녀를 낳게되면 속량할 수 있게 된다. 이 경우에는 자신의 나이와 비슷한 노비 하나를 자기 대신 賤役(천역)에 종사하게 하고 장예원에 신고를 해야했으며, 대역을 보충시키지 못하면 다시 천민으로 환원된다. 사천인 경우에는 전적으로 그 주인에게 권한이 주어졌다.
이렇게 비참하게 생활을 했던 천민을 쌍놈이라고 일컬었던 바, 이 욕은 상대방의 출신성분을 비하시키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자신이 낳은 자식에게 화가 난다고 '이 쌍놈의 새끼'라고 한다면 자기 스스로는 물론 조상에게까지 욕이 미친다고 할 수 있겠다.
요즘이야 양반 쌍놈이 따로 없지만 그래도 '쌍놈' 소리를 들으면 기분이 좋지 않은 것만은 사실이다.
⑥ 뙤놈.
'뙤놈'은 중국인을 비하시켜 부르는 말이다. 그렇기는 하지만 이 욕에는 우리 민족 스스로를 비하시키고 있는 숨은 뜻이 있다.
조선시대나 그 이전의 시대에서 우리는 중국의 영향을 많이 받아왔다. 물론 중국은 우리보다 문화나 힘에 있어서 앞서 있었던 것을 부정할 수 없다. 그래서 중국은 우리 민족에게 大國(대국)이라 불리웠다. 이렇게 대국이라 불리우던 중국 사람을 대국놈이라 했는데 이 대국이라는 말 자체가 '놈'이라고 비하시키는 인칭을 썼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小國(소국)이라고 인정하는것 밖에는 안된다.
'대국놈'은 그 후 격음화 현상을 겪으면서 '떼국놈'으로 변화되었고, 다시 '국'자를 탈락시킨 '떼놈'으로 불리다가 발음상 더 된소리인 '뙤놈'으로 바뀌었다.
이 욕의 뜻에는 중국인을 가리키는 말 외에도 의심이 많은 사람을 말하고 있기도 하다. 아마도 중국인의 과장된(속된 말로 '뻥'이라고도 한다.) 표현을 좋아하는 민족성이나 기질을 반영하고 있는것 같다. 자신들이 과장이 심하다는 것을 알고 있으니 다른 사람에 대한 의심이 많은것은 당연한 일이 아니겠는가.
한 가지 예로 의심이 많은 사람을 가리켜서 '뙤놈 빤스를 입었냐?'라고 되묻는 말이 있다. 이 말에서도 중국인이 의심이 많다는 것이 간접적으로 잘 나타나 있다.
아뭏튼 이런 중국이 이제는 경제적으로 우리에게 뒤지고 있으니 예전에 대국이라 불렀던 우리가 스스로에게 자존심이 상하지 않을 수가 없다. 이런 이유 때문인지 우리가 중국보다 월등 했다는 上古史(상고사)에 관한 재평가 작업이 진행 중이며, 이에 대한 책이 많이 팔리고 있다. 상했던 자존심을 복구하려는 보상심리가 적절하게 작용했다고 볼 수도 있겠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사실은 객관적인 史料(사료)를 토대로한 정확한 史觀(사관)이 우선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역사에 민족간의 감정 개입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 하겠다.
이런 점에서 일본 교과서에 오류로 지적되고 있는 동남아 역사에 대한 문제는 개인적인 차원에서 심히 유감이라 생각한다.
⑦ 애비 모르는 자식. (절자식)
이 욕은 상대방의 어머니를 욕되게 하는 뜻이 담겨있다. 버릇없고 막 되먹은 사람을 가리켜서 하는 이 욕은 '후레아들 놈'과 비슷한 뜻을 담고 있지만 속 뜻이 어머니를 표적으로 삼는 것이 다르다 하겠다.
어미가 자식을 낳으면 분명 아비가 있는 것은 당연한 사실이나, 그 아비가 누군지 모른다는 것은 뭔가 출생의 비밀이 담겨져 있다는 말이 된다. 성교의 상대가 너무 많아서 그 아비를 가늠할 수가 없을 수도 있겠지만 예로부터 전해져 내려왔던 이 욕의 기원은 다른 곳에 있다.
잘 알다시피 여자가 受胎(수태)를 못하는 이유는 두가지 경우가 있다. 여자가 石女(석녀, 돌계집)이거나, 남자가 생식기가 불완전한 鼓子(고자)이거나 하는 경우이다. 전자의 경우는 씨받이라 하여 다른 여자를 통해 자식을 낳음으로서 대를 이어가는 수단이 존재하고 있었다. 이 때 수태를 못하는 여자를 대신하여 남자의 씨를 받아주는 여자를 씨받이라고 일컬었던 바, 영화배우 강수연이 열연한 영화의 제목과 동일하다. 씨받이의 애환(?)이랄까, 아뭏튼 씨받이에 대해서 자세하게 알고 싶다면 이 영화를 참고하는 것도 나쁘지는 않겠다. 그리고, 한가지 더 첨부 하자면 현대판 씨받이인 대리모는 육체적인 관계를 갖지 않고 人工受精(인공수정)을 통하여 수태를 한다.
그러나, 후자의 경우는 문제가 약간 다르다. 씨받이와 반대의 입장인 씨내리는 절대 공식적으로 행해지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비밀 유지를 위하여 씨내리 한 남자를 멀리 보내거나, 죽이는 경우도 있었다. 물론 이런 일은 그리 흔치 않았으며, 이와 병행해서 쓰이던 또 한가지 방법은 절에 가서 치성을 드리는 것이다. 소위 말해서 백일치성을 드린다고 하는 방법인데, 종교적인 힘을 빌어 아이를 갖겠다는 의도이다. 그런데, 이 종교적인 힘(?)이 옛날에는 절대적이었던 모양이다. 백일 이라면 석 달 하고도 열흘 인데, 그동안 부부관계를 맺지 않았음에도 수태를 해서 하산하는 경우가 왕왕 있었다. 보통은 시어머니와 동행을 하는데, 이 때 시어머니는 며느리 에게 절에 가서는 스님의 말에 절대 복종하라는 다짐을 받는다고 한다. 그래서 얌전한 여자를 가리켜서 '절에 간 색시같다'라는 말도 생겨난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
이렇게 얌전한 색시를 수태시키는 것은 시어머니의 使嗾(사주)를 받은 스님이 할 일 이었다. 그러나, 아무리 시어머니의 사주를 받았다 하더라도 맨 정신의 사대부집 며느리와 정을 통하기는 어려웠으리라 보아진다. 그래서 종종 쓰이던 방법이 정신을 잃게하는 약초를 사용해서 劫奪(겁탈)을 했던 것이다. 물론, 며느리가 고분고분 스님의 말을 잘 듣는다면 굳이 약초의 힘을 빌리지 않더라도 부처님에 대한 치성은 성공적으로 끝냈을 일이지만......
어떻튼, 이런 경위로 태어난 사람을 '애비 모르는 자식'이나, 절에 가서 부처님의 은덕으로 났다해서 '절자식'이라 불렀던 것이다. 비밀에 부쳐졌어야 될 일이 누설이 되고 이 사실이 상대방에게 욕으로 쓰일 때, 상대방은 물론 이려니와 그 어머니의 수치심을 짐작할 수 있을까. 하물며 떳떳한 출생의 이력을 가지고 있는 사람에게 이런 욕을 쓴다는 것은 시쳇말로 명예훼손으로 고소 당해 싸다고 하겠다.
아이를 못낳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고통을 받았는데 이런 욕까지 듣는다면 과연 살고싶은 생각이 날까? 하기야 요즘은 이런 사람들을 위해서 정자은행이나 인공수정같은 과학적인 수태방법이 많이 개발되어 있어서 옛날같이 일방적으로 서러움을 받지는 않는 세상이 되었지만 말이다.
이와 흡사한 얘기로 日精寺(일정사)와 月精寺(월정사)에 관한 근거없는 流言蜚語(유언비어)가 있는데 이는 특정한 姓氏(성씨)에 대한 모독이 될까하여 이곳에는 쓰지 않겠다. 다만, 이 유언비어가 위의 얘기를 뒷받침하고 있는 예이기에 언급했던 바 오해의 소지가 없기를 바라며, 이 욕을 위시해 이런 유언비어는 퍼뜨리지 않는것이 밝은 사회를 만들어 가는데 초석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⑧ 씹어 죽일 놈. 쳐 죽일 놈.(박살낼 놈)
이 욕도 아주 원색적인 욕 가운데 하나이다. 이 욕이 원색적인 이유로는 그 억양이 드센 것을 차치하더라도 인간의 목숨을 강제로 끊어지게 하겠다는, 그것도 편히 죽이는게 아니라 씹던가 쳐서 아주 고통스럽게 죽이겠다는데 있다.
"씹어 죽일 놈"이라는 욕은 말 그대로 씹어 죽인다는 저주의 뜻이 담겨져 있는데 "간을 내어 씹어 먹어도 시원찮을 놈"과 그 의미의 전달 효과는 크게 다르지 않다고 보아진다.
또 하나 "쳐 죽일 놈"이라는 욕은 "박살낼 놈"이라고 쓰기도 하는데 이 "撲殺(박살)"이라는 말은 사람만이 아니라 물건에도 쓰여지고 있다. 원래의 의미는 '쳐 죽인다'라는 한자말로서 살아있는 생명체에 해당되는 말이지만 요즘에는 어떤 물건을 산산이 조각내어 부순다는 뜻으로도 통하고 있다. 다시말해 어떤 사물이 외부의 충격으로 인해 파괴되어 원래의 쓰임새가 없어질 경우 '박살났다'고 하는데, 이는 인간의 죽음과도 무관하지 않다고 보아진다.
여기서 잠깐 죽음은 우리 민족에게 있어서 어떤 의미로 받아들여지고 있는지, 또는 받아들여져 왔는지 생각해보고 가도록 하자.
삶과 대칭 관계에 있는 죽음에 대한 문제는 인간에게 있어서 영원한 숙제가 아닐 수 없다. 지구상에 존재하고 있는 각종의 종교에서도 이 문제를 깊이있게 다루고 있지만 그에 대한 명쾌한 해답은 아직 얻어지지 않고 있다. 만일 이 문제에 대한 해답이 얻어진다면 인간의 삶에 대한 목적 또한 명확하게 밝혀지게 될것이고 인간이 살아가는 방법 또한 획일화 될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인간이 살아가는 모습들이 지금보다는 훨씬 재미가 없어질 것이다. 그럴 수 밖에 없는 것이, 지옥이 있다는 것이 확인 된다면 과연 나쁜짓을 하면서 살아갈 사람이 있겠는가.
어떻튼, 이 죽음이란 문제는 인간이 살아있는 한 풀리지 않을 것으로 생각한다. 愚問賢答(우문현답) 같은 말이 될지 모르겠지만 한마디 확실하게 할 수 있는 말은 죽어봐야 안다는 것 뿐이다. 그렇다고 살아있는 동안 이 죽음이란 문제를 전혀 의식하지 않을 수는 없다. 비록 종교가 없는 사람일지라도 나름대로 죽음에 대한 철학은 가지고 있다고 본다. 그것은 인간은 누구나가 한번은 죽는다는 것을 긍정하고 있다는 것이며, 그런 죽음을 인정하는 것이 인간의 메카니즘이라고 생각한다.
욕에 연관되어서 죽음을 생각해 보는것은 죽음에 대한 답을 얻고자 함이 아니다. 우리 민족의 죽음에 대한 생각은 어떤 것이며 어떤 말로 변천되어 지금에 이르렀나를 알아봄으로 해서 우리 민족의 의식을 더듬어 보자는 것이다. 세계화의 물결 속에서 소중한 우리것이 빛을 잃어가고 있는 이 때에 우리 민족의 의식을 더듬어 보는 것도 의미있는 일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죽음은 동사형인 '죽다'에서 온 말이다. '죽다'는 명사 '죽'+ 접미사 '-다'가 붙어 이루어진 말로서 파찰음이 없었던 고대국어 '숙'에서 변화 되었다는 학설과 '뒤(ㄱ)'에서 변화 되었다는 학설이 있는데 이 글이 욕에 대한 글이니 만큼 비속어를 중심으로 풀이한 후자 쪽의 학설을 따르겠다.
'죽다'의 비속어로 쓰이는 표현은 '뒤지다' 또는 '뒈지다'이다. '뒈지다'는 '두어'+'지다'가 합해져서 이루어진 말로 '두어지다'의 줄임말로 볼 수가 있다. '두어지다'에서 '두어'의 원형은 '뒷다'로 '뒷'은 뒤(ㅎ)-> 뒷 으로 히읗 종성체언이 변형된 것이다.
(참고:釋譜詳節석보상절 6-2, 히읗 종성은 기역소리로 나는 경우가 있다.)
그렇다면 '뒤'가 뜻하는 것은 무엇인가. '뒤'는 방위로는 북쪽을 뜻하고, 계절로는 겨울을, 동물로는 곰을, 별로는 북두칠성을, 소리로는 우면조를, 성으로는 여성을 상징한다. 여성이나 곰으로 상징되는 '뒤'는 이 글의 앞부분에서도 언급했다시피 땅과 연관지어 진다. 땅은 인간이 태어난 곳이며, 또 인간이 되돌아 갈 곳이기에 땅으로의 회귀라는 관점에서 본다면 '죽다'는 '뒤'에서 발전 되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또한 우리 민족에게 북두칠성에 대한 별 신앙은 원시신앙을 연구하는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문화 인류학에서는 우리 민족이 북쪽의 별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이유를 고아시아족의 원 거주지가 시베리아 부근이었기 때문이라고 풀이하고 있다. 그런 이유로 '별'이 쓰인 흔적을 여러 곳에서 찾아볼 수 있다. 유명한 산의 봉우리 가운데 비로봉이라는 봉우리를 많이 보는데, 이 비로봉이라는 말이 별의 방언형인 '빌'에서 비롯된 말이라 하겠다. 그리고, 자기의 소원대로 되기를 바라며 기도한다는 뜻의 '빌다'라 는 말도 '별'에서 발전 되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두고 온 고향 하늘 위의 별을 그리워하는 마음이 담겨있다고나 할까.
이처럼 우리 민족에게 있어서 '뒤'는 시간적으로는 지나온 과거이며, 공간적으로는 두고 온 고향(시베리아 부근)을 나타내고 있다. 그래서 '뒤지다'라고 하면 우리의 원거주지였던 곳으로 되돌아 갔다는 말이 된다. 즉, 현재의 삶이 아니라 과거의 삶으로 되돌아 갔다는 말이다. 죽음을 끝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또 다른 싯점에서의 삶으로 보고있는 것이다. '죽었다'의 존칭어로 쓰이는 '돌아가셨다'라는 말을 보더라도 이상의 학설이 충분한 설득력을 가진다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죽음의 동사형인 '죽다'를 정리해 본다면 이렇다.
디다 -> 뒤(ㄱ)다 -> ㄷ다 -> 쥑다 -> 죽다
* 삼국사기등의 자료에서 뒤를 디(知)로 쓰고있는 경우가 보이고 있으며, '죽인다'를 '지긴다'로 발음하는 경상도 사투리도 참고가 된다고 하겠다.
* 더 자세한 내용은 다음의 책을 참고 바람.
서재극 "중세 국어의 단어족 연구" 1979
배해수 "현대 국어의 생명종식어에 대한 연구" 1982
정호완 "우리말의 상상력" 1991
⑨ 급살 맞을 놈. 조살할 놈.
지난 장에서는 욕에 연관해서 우리 민족이 생각하는 인간의 죽음에 대한 것을 말의 뿌리를 더듬어 가며 잠시 생각해 보았다. 물론 이 짧은 글 속에서 죽음에 대해 해답이나 결론을 내리려는 생각은 추호도 없다. 단지, 한번쯤 이런 기회를 통해서 죽음에 대한 생각을 해보는 것으로 만족하고 싶다. 누구나 한 번은 맞이하는 것이기에 나름대로의 의의는 있다고 본다. 그렇다고 날마다 이런 생각에 집착해 있다면 이것은 정상적인 삶에 있어서 아주 곤란한 문제일 수 밖에 없다. 최소한 이 글을 대하는 사람들 만큼은 죽음에 매료되지 말기를 바라면서 욕에 대한 얘기를 계속할까 한다.
이 욕은 보통 "급살 맞아 뒈질 놈"이라고 쓰이는데 "뒈질 놈"의 말 풀이는 지난 회에서 한 바와 같으며, "조살할 놈"은 단독적으로 주로 쓰이고 있다. 이 두 가지 욕의 공통점이라면 모두 죽음을 말하고 있으나 그 죽음의 내용은 서로 다르다고 할 수 있다.
"급살"의 '살'은 煞(살)로 종교적이거나 정신적 의미를 포함하고 있으며, 사람이나 물건을 해치는 아주 독하고 모진 기운을 일컫는다. 우리 민족의 정서 속에서의 '살'은 악귀가 씌였다고 하여 무당의 살풀이 굿을 통해 이런 기운을 씻어버리곤 했다. 세간에서 쓰이는 말로 "살 맞았다"라던가, "살 내 렸다" "살 올랐다"라고 쓰이는 말이 모두 이런 종류의 '煞(살)'인 것이다.
'살' 맞은 예로는 초상집이나 혼인집, 또는 고사 지내는 집에 갔다가 탈이 난 경우가 있고, 친구들끼리 장난치다가 주먹으로 한 대 때렸는데 상대방이 죽어버린 경우도 있다. 이런 '살'을 철저히 믿어왔던 우리 선조들은 그래서 집안에 아이가 태어나거나 태어날 달에는 초상집 출입을 하지 않았 고, 평상시에도 초상집이나 귀신을 부르는 행사에 참여하고 와서는 소금을 몸에 부리면서 "고수레"를 불러 "살오름"또는 "살맞음"을 예방하곤 했다.
물론 요즈음에는 미신이라 하여 대부분의 사람들이 거리낌 없이 행동 하지만 아직 그 옛날의 사고방식이 모두 없어진 것은 아니다. 특히 장사하는 사람들에게 이런 모습이 많이 남아 있는데, 이것은 미신이라기 보다는 우리의 풍습이 되어버린 듯 하다. 이 욕이 간혹 들리는 것으로 봐도 증명이 되고 남음직 하다. 참고로 "고수레" 또는 "고시레"의 뜻은 건강을 지켜주는 福神(복신)을 가리키고 있으며, 우리 민족의 원시신앙인 "굿"이나 "무당"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조살할 놈"의 '살'도 인간의 죽음을 말하고 있지만 他動詞(타동사)인 殺(살)이라기 보다는 自動詞(자동사)인 死(사)로 해석이 된다. 즉, "早死(조사)를 할 놈"이 줄어서 된 말로 인간의 염원인 無病長壽(무병장수)에 역행되는 욕이라 하겠다. 그리고, 여기서 죽음의 의미는 보편적인 것이며, 포괄적이고, 물리적인 것이라 할 수 있겠다.
이렇듯 죽음을 細分化(세분화)한 이 두 욕설은 죽은 뒤 영혼의 이동이라는 문제에 있어서 다시 만나게 된다.
"죽다"의 의미를 가지고 파생된 우리말을 가만히 살펴보면 그 다양함에 놀라지 않을 수 없거니와 죽은 뒤 영혼의 이동에 따라 그 표현이 달라짐에 다시 한 번 놀라게 된다. 즉, 우리말에 있어서 죽음이라는 단어는 영혼의 존재를 인정하는 곳에서 부터 출발한다고 할 수 있다.
죽은 뒤 영혼이 이승에서보다 높고 좋은 곳으로 가는것을 상승이동이라 하여 昇天(승천)하다, 昇遐(승하)하다, 登仙(등선)하다, 神仙(신선)되다, 陟方(척방)하다, 天堂(천당)가다, 極樂(극락)가다, 往生極樂(왕생극락)하다, 入滅(입멸)하다, 圓寂(원적)하다, 入寂(입적)하다, 歸元(귀원)하다, 歸眞(귀진)하다, 彼岸(피안)으로 가다 등으로 표현된다.
이와는 반대로 영혼이 이승에서보다 낮고 나쁜 곳으로 가는것을 하강이동이라 하여 地獄(지옥)가다, 地下(지하)가다, 黃天(황천)가다, 九泉(구천)가다, 冥府(명부)가다, 餓鬼(아귀)되다, 畜生(축생)되다 등으로 표현된다. 또한 상승도 하강도 아닌, 단지 이승과 緣(연)을 끊는다는 표현으로 魂魄(혼백)이 떠나다, 혼이 나가다, 세상을 하직하다, 棄世(기세)하다, 別世(별세)하다, 세상을 달리하다, 幽明(유명)을 달리하다, 永訣終天(영결종천)하다 등이 있다.
"급살맞아 뒈질 놈"이나 "조살할 놈"이라는 이 두 욕설에서 나타나고 있는 죽음은 하나같이 영혼의 하강이동을 기원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기에 이 욕을 자세히 풀이 하자면 이렇다. 이승에서 급살을 맞거나 早死(조사)를 하라고하니 욕이 되고, 저승 간 영혼은 몹쓸 곳(소위 말하는 지옥이나 연옥)으로 가라고하니 이 또한 욕이 되니, 이 어찌 심한 욕이지 않을 수 있을까.
그러나, 문제는 이런 욕을 습관적으로 하는 사람에게도 있지만 더 큰 문제는 이런 욕을 먹어도 싼 사람이 이승에서 같은 공기를 호흡하고 있다는 것이다. 죽으면 썩을 몸 아끼느라 죄짓고 살다저승 간 영혼 하강이동 하지말고 몸이 수고롭더라도 하늘에 떳떳하고 스스로에 떳떳한 삶을 살도록 하자.
이것은 종교를 초월한 문제라고 생각한다.
⑩ 썩을 놈.
이 항목을 욕의 범주에 넣을까를 두고 무척 고민했다. 어차피 죽어 썩을 몸인데 단지 '놈'자 하나 붙였다고 욕이라 해야하나? 누구는 죽으면 火葬(화장)한다고 하니 "썩을 놈"이라는 욕이 성립이 않된다고 하지만, 그래도 "썩을 놈"은 "썩을 놈"이다. 뼈가루 한 티끌이라도 땅에 뿌려져 들꽃, 들풀, 나무에 거름이 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강에 뿌리면 물고기밥 되어 물고기의 살과 뼈 되었다가 다시 썩을진대. 인간은 누구나 "썩을 놈"이 아닐까.
여기서 '놈'자는 그저 愛稱(애칭)으로 받아 들였으면 한다. '놈'자는 꼭 욕으로만 쓰이는 것은 아니니까. 卑下(비하)의 뜻은 내포되어 있으나 받아들이는 경우에 따라 귀엽게 들릴 수도 있는것이 바로 이 '놈'자인것 같다. 굳이 욕이라 해석을 하자면 "씹새끼"와 같지 않을까? 어떤 경우에는 상대방의 있는 그대로를 말함으로서 그것이 욕이 되는 때가 있다. 그렇다면 욕은 진실인가. 아니면 진실이 욕인가? 여러분들의 생각은 어떤지 궁금하다.
7. 조선시대 刑罰(형벌)이 사용되어진 욕.
조선시대 형벌이 사용되어진 욕에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다.
"젠장 맞을 놈(태질 할 놈)"
"경을 칠 놈"
"육실할 놈"
"오살할 놈"
"우라질 놈(오라질 놈)"
"떼갈 놈"
"주리를 틀 놈"
"치도곤 맞을 놈"
"끓는 물에 삶아 죽일 놈(육장낼 놈)" 등등.
이상 욕들의 공통점 가운데 하나는 사용자 층이 주로 나이가 많이 드신 노인들이라는 것이다. 요즘의 젊은이들이 "씹새끼"나 "개새끼" 또는 "좆까 네"등의 욕을 입에 달고 살듯이 노인들이 젊었을 때 아마도 이런 욕들을 많이 사용해 왔었던 것으로 보여진다. 욕의 특성상 이런 욕들이 어떤 자료로 전해져 내려오는 것은 없고 주로 口傳(구전)에 의해서 전해지는 것이 특징이라 할 수 있겠는데, 여러분도 잘 아다시피 욕은 그 사회의 시대적 상황을 많이 반영하고 있는 언어 가운데 하나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았을 때 1945년의 해방은 우리 민족에게 현대로 넘어오는 과도기였고, 이런 과도기를 지나온 어른들이 썼던 욕은 현대에 이르러서 서서히 그 사용하는 빈도수가 줄어들고 있다고 하겠다. 다시 말해서 욕의 모양이 바뀌고 있다는 것이다. 욕의 세대교체라고나 할까? 아니, 이미 세대교체는 끝난 셈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상의 욕들을 분석해 봄으로 해서 우리 조상들이 그 당시(조선시대) 형벌에 대해 가지고 있었던 생각이나 사회적 분위기 등을 알아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이것이 욕이기는 하지만 분석을 통해서 음미해 보는 것도 나름대로 의미는 있다고 보아진다. 우리 선조들의 욕을 분석한다는 것이 恥部(치부)라면 치부랄 수 있겠지만 이 언어 역시 우리 선조들이 썼던 것이고, 또한 이런 욕설 속에서 우리 선조들의 생활상 이 극명하게 드러난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비단 부정적이지 만은 아닐 것이 다.
그럼 먼저 본격적인 욕의 분석에 들어가기 앞서 조선시대 刑典(형전)에 대한 예비지식을 알아보고 가도록 하겠다. 그러는 편이 아무래도 위에서 언급했던 욕과 그 당시 이욕을 주로 사용했던 사회적 상황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것이다.
① 경국대전을 중심으로 본 조선시대의 刑法(형법).
조선시대의 법은 삼권분립이 이루어져 있지 않은 채 혼재되어있었으며, 刑事節次(형사절차)에 있어서도 糾問主義的(규문주의적) 성격을 띠고 있었다. 규문주의란 판관이 직권으로 피의자를 체포하고, 일방적으로 심문, 또는 고문을 가한 후 판결까지 내리는 것으로 삼권분립이 확실한 민주주의 체제 아래서는 찾아볼 수 없는 형사제도이다. 이러한 형사제도라 하더라도 순수한 의미의 刑法典(형법전)이나 民法典 (민법전)이란 없었고, 다만 형사 중심이냐 민사 중심이냐 하는 차이점만 있었다. 또한, 법전 안의 어느 규정은 민사와 형사에 모두 적용되도록 정해 놓은 부분도 많이 보이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법 이전에 各司(각사. 행정 육조에 딸린 각 부서)와 宮房(궁방. 대군이나 왕자군, 공주, 옹주의 집)은 물론 권문세도가에 이르기까지 불법적으로 사람을 가두거나 형 집행을 남발하였으므로 실제적으로 백성들에게 법전은 큰 의미가 없었다.
사실 조선 시대의 법은 백성들을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관계기관을 주대상으로 하는 행정법의 성격을 띠고 있었다. 민사에 관한 규정도 있었으나 이는 백성에게 作爲(작위), 不作爲(부작위)를 명령하는 강제법규였다는 점에서 관리가 지켜야 할 행정법규로서의 민사법에 지나지 않았다.
이런 이유로 조선시대의 역대 국왕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私事囚禁(사사수금)이나, 私門濫刑(사문남형)을 금지하는 명을 내렸으나 조선시대가 막을 내릴 때까지 없어지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그러한 악습은 21세기를 바라 보고 있는 현재까지 구태의연하게 踏襲(답습)되고 있는 실정이다. 돈이나 권력 앞에서 무력해지는 법을 그래도 열심히 지키며 살아가고 있는 지금 우리들의 모습은 어찌보면 조선시대 권문세도가에 눌려 살던 民草(민초)와 별반 다를게 없다는 생각이다.후일의 역사 속에서 지금 우리들의 삶의 모습이 조선시대를 살던 백성들의 모습이 되지 않으리라는 보장은 없는 것이다.
폐일언하고 다시 조선시대의 형법에 대해서 알아보도록 하자. 형법을 관장하던 부서는 행정육조 가운데 조선시대의 대표적인 사법기관 이라고 할 수 있는 刑曹(형조)이며, 大司寇(대사구), 또는 刑判(형판)으로 불리우기도 했던 정2품 벼슬의 형조판서가 책임자로 앉아 있었다. 형조를 구성하는 부서로는 詳覆司(상복사), 考律司(고율사), 掌禁司(장금 사), 掌隸司(장예사)의 4司(사)가 있었고, 각 司(사)의 담당업무는 대략 다음과 같았다.
* 상복사 : 중죄의 재심업무
* 고율사 : 법령의 조사 및 범죄자의 조사업무
* 장금사 : 감옥과 도로 및 禁令(금령)에 관한 업무
* 장예사 :
노예의 簿籍(부적)과 포로에 관한 업무 이 외에 兵曹(병조)로 소속이 바뀌기 전까지 좌우 포도청이 형조에 소속되어 있었고, 律令(율령)과 刑具(형구)에 관한 사무를 맡아보던 律學廳 (율학청)과 죄수를 가두거나 刑執行(형집행)을 담당하던 典獄署(전옥서)가 하부기관으로서 형조의 지휘, 감독을 받고 있었다.
이상으로 간단하게나마 조선시대의 형법에 대하여 알아 보았거니와 욕을 하다가 느닷없이 법을 다루려니 다소 딱딱해진 느낌을 피할 길이 없다. 해 서 이제부터는 조선시대 형벌이 쓰여진 욕의 실례를 들어가면서 설명을 할 까 한다.
② 젠장 맞을 놈. (태질 할 놈)
"넨장 맞을 놈"이라고 쓰이기도 하는 이 욕은 조선시대 끔찍스런 형벌 가운데 하나인 朱杖撞問刑(주장당문형)에서 비롯되었다고 볼 수 있다. 亂杖 (난장)이라고 더 많이 알려진 이 주장당문형이란 일종의 고문형인데 죄수를 가운데 두고 여러명이 그 주위를 돌면서 붉은 몽둥이로 닥치는대로 때리는 형벌이다. 오뉴월 개 패듯 한다고나 할까? (이것을 유식한 말로 犬打 式 毆打(견타식 구타)라고 한다.)
이때 때리는 몽둥이가 붉은 색이었기 때문에 이런 이름이 붙여졌으며, 중종6년(1511년)과 영조46년(1770년)에 이 형벌이 왕명으로 금지 되었으나 세간에서는 여전히 이 난장이 자행되고 있었다. 난장은 주로 상민이나 천민의 계급인 사람이 신분이 높은 여자를 범하였거나 近親相姦(근친상간) 등 반인륜적인 죄를 지은 범인을 다스리는 형벌로 쓰였다. 물론 왕명으로 금지되어 공식적으로는 행하여지지 않았으나 私 罰(사벌)로서의 난장은 민간에 오랜 관습으로 존재하고 있었다.
아직까지 이 형벌이 존재하고 있었다면 아마도 난장맞아 죽을 사람 여럿 있었을 것 이다. 이상과 같은 난장의 형에서 비롯된 이 욕의 정확한 의미는 "네 난장을 맞을 놈" 또는 "제 난장을 맞을 놈"이 줄어들었다고 볼 수 있겠다. 다시 말해서 근친상간을 했거나 신분이 높은 여자를 범한 놈이라는 말이 된다. 좀 더 함축하자면 "제미 붙을 놈"과 그 뜻이 일맥상통 한다고 볼 수도 있겠다. "태질 할 놈"이라는 욕에서 '笞(태)질'의 뜻도 난장과 크게 다르지 않다. 단, 매질할 때 쓰는 도구의 크기나 강도에 있어서 杖(장)보다는 약하다는 차이가 있다. 도구의 차이로 길이는 같았으며, 굵기에서만 0.2cm 태보다 장이 더 굵었다.
그러나, 行刑(행형)하는데 있어서 이 규격은 잘 지켜지지 않은 것으로 보아진다. 그런 이유로 나라에서는 형의 집행방법을 엄격히 지키도록 법으로 만들어 놓은것이 아닐까.
(경국대전 형전 중 濫刑(남형)에 관한 조항 참고)
笞(태)란 죄인의 볼기를 치는 도구로서 법전에 나와있는 규격은 길이 약 106cm, 굵은쪽 두께 약 0.8cm, 가는쪽 두께 약 0.5cm의 옹이를 없앤 가시 나무 회초리이다. 태형은 비교적 가벼운 죄를 다스리는데 쓰였던 형벌로서 형을 집행할 때는 형틀에 묶은 뒤 하의를 벗기고 볼기를 치는데 가는쪽으 로 쳐야하며, 부녀자는 간음한 여자를 제외하고 하의를 벗기지 않았다고 한다.
이 태형 가운데 가장 무서웠던것은 태로 등을 난타하는 笞背刑(태배 형)이라는 것이 있었다. 물론 이 형벌도 고문형의 일종으로 심한 경우 사망에 이르게 되며, 참고적으로 이 형은 세종12년(1430년)에 왕명에 의해서 없어졌다고 한다. 어떤 물건을 집어 던질 때 쓰는 속어로 "패대기 친다"라는 말과 관계가 있지않나 싶다.
③ 경을 칠 놈.
이 욕은 혼을 내주겠다는 뜻으로 쓰이고 있는데 여기서 말하는 '경'은 자 자할 경( )으로 조선시대 형벌 가운데 刺字刑(자자형)을 가리키고 있다. 자자형은 주로 재물에 관한 죄를 지은 사람에게 내려졌던 형벌로서 장형 이나 徒刑(도형)으로 治罪(치죄)한 후 얼굴이나 팔뚝에 4.5cm 크기로 盜官錢(도관전)이나 槍奪(창탈), 强盜(강도)라는 문신을 새기는 것이다.
자자형을 얼굴에 가하는 것을 '경면'이라 했는데 예종원년(1468년)에 생겨난 이 형벌은 비인간적인 이유로 거의 시행되지 않다가 영조16년(1740년)에는 팔뚝에 가하는 자자형까지 모두 없어졌다.
"경을 친다"는 것은 얼굴에 자자형을 가한다는 것이다. 즉, 상대방을 도둑놈이나 강도라고 하는 말과 같은 것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비교적 오래전에 없어졌고, 또한 거의 시행되지 않았던 형벌인데 아직까지 이 욕이 남아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아마도 중국의 영향이 컸다고 생각 한다. 그 한가지 예로 사마 천의 "史記列傳(사기열전)" 제5 손자.오기열전 편에 손빈이 방연에게 얼굴에 자자형을 당하고 두 다리를 잘리우는 형벌을 받는 장면이 나온다.
이때 방연은 손빈에게 그야말로 "경을 친"것이다. 물론 먼 훗날 손빈은 방연에게 더 큰 경을 쳐서 빚을 갚았지만 말이다. 이렇듯 이 욕은 중국의 형벌이 작품 속이나 역사 속에 전해져 내려오면서 우리 정서와 만나 아주 우리것이 되어버린 예라고 하겠다. 여기서 잠시 조선시대와 중국의 五刑(오형)에 대하여 알아보고 넘어가도록 하자.
<조선시대의 5형>
1. 笞刑(태형):가벼운 죄를 다스림. (上述)
2. 杖刑(장형):보편적인 죄를 다스림. (上述)
3. 徒刑(도형):태형이나 장형을 덧붙여 다스림. 拘禁(구금)하여 강제 勞役 (노역)을 시킴.
4. 流刑(유형):
중죄를 범하였으나 죽이지는 못할 경우 먼 지방으로 귀양 살이를 보냄. 거리에 따라 2000리, 2500리, 3000리의 3등급이 있었으며 반 듯이 장 100대가 얹어지며 妻(처)와 妾(첩)은 따라가게 했고, 부모나 자손 은 본인의 의사에 따라 결정하게 했다. 또한 서울을 중심으로 3000리가 않되는 경우에는 우회함으로 해서 거리를 채우도록 했다.
5. 死刑(사형):絞首(교수)나 斬首(참수). (다음장에 詳述)
<중국의 5형>
1. 墨刑(묵형):자자형 또는 경형.
2. 刑:코를 베는 형벌. (코벨 의)
3. 刑:발 뒷꿈치를 베는 형벌. (발 뒤꿈치 벨 월)
4. 宮刑(궁형):
불알을 까는 형벌. 생식기 불능. 이 형벌의 대표적인 희생 자로는 "史記(사기)"를 지은 사마 천을 들 수 있겠다.
5. 大 刑:목을 베는 형벌. (임금 벽)
④ 육실할 놈.
이 욕은 조선시대 5刑(형) 가운데 가장 極(극)한 형벌인 사형을 말하고 있다. 사형은 크게 두가지로 나누어져 있었는데, 그 정의를 법전에 의거하여 내려본다면 다음과 같다고 할 수 있다.
* 絞刑(교형. 교수형): 죄인의 두 손과 두 발목을 묶고 높은 곳에 매달아 목을 졸라 죽임.
* 斬刑(참형, 참수형): 죄인의 사지를 묶고 큰 칼로 목을 베어 죽임.
(絞 全其肢體 斬身首異處 교전기지체 참신수이처)
그러나, 조선시대에 사람을 죽이는 방법은 위의 두 가지 외에도 여러가 지가 있었는데 "육실할놈"의 '육시'도 그 가운데 하나이다. 이 욕은 '육시를 당해 죽을놈'이 줄어서 된 말로 육시는 한자의 쓰임에 따라 그 뜻이 달라 진다. 즉, 戮屍(육시)라 하면 이미 죽은자의 죄가 후일에 밝혀졌을 때 그 무덤을 파헤쳐 시체를 斬首(참수)하거나 四肢(사지)를 잘라버리는 陵遲處斬 (능지처참), 또는 剖棺斬屍(부관참시)를 말하는 것이고, 六弑(육시)라 하면 네 마리나 다섯 마리의 말이 끄는 馬車(마차)를 사지에 묶고 달리게 하여 사지를 다섯 토막이나 여섯 토막으로 찢어버리는 車裂(거열)을 말하는 것 이다.
물론 끔찍했던 이 형벌은 謀反大逆(모반대역)이나 殺父母(살부모)등 최고의 반도덕, 또는 체제 顚覆(전복)의 죄를 범한 사람들에게 행해졌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한명회가 죽은 뒤 연산군에 의해 이 부관참시를 당한 것은 여러분도 잘 아는 史實(사실)이리라. "육실할놈"이라는 이 욕은 이렇듯 끔찍한 뜻을 담고 있는 욕으로 민심이 흉흉했던 시대에 많이 쓰이면서 지금에 이르고 있다고 보아진다.
⑤ 오살할 놈.
이 욕도 역시 "육실할 놈"에서 소개되었던 것과 같이 車裂(거열)에서 비롯된 욕이다. 한자로는 五殺(오살)이며, 몸통과 사지를 찢어 다섯토막을 내어 죽인다는 말이다. 생각만 해도 끔찍스러운 이 '오살' 또한 반역죄등 중 죄를 범한 사람에게 행해졌던 형벌 가운데 하나이다. 그렇다면 우리 민족에게 이처럼 흉악한 욕이 人口(인구)에 膾炙(회자)되었던 까닭은 무엇일까.
이 이유는 아마도 과거 정치현실과 직접적인 연관이 있었던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다. 그 예로서 조선시대의 형벌은 體罰(체벌) 위주의 형벌이라는 점이다. 다시말해 백성을 다스리는 방법으로 몽둥이와 칼을 사용했다는 것이다. 여기에 다른 이유는 존재하지 않았으며, 백성들 또한 잘못하면 매를 맞는다는 생각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었다. 爲政者(위정자)들에게 있어서 이 방법 이야말로 가장 확실하고 빠른 방법이었을지는 몰라도 백성들, 또는 형집행을 당하는 사람들에게 있어서는 결코 민주적인 방법은 못되었다.
하기야 그 당시의 체제는 民主(민주)가 아니라 君主(군주)라는 것을 감안 한다면 당연했으리라 생각되기도 하지만, 문제는 과거가 아니라 민주주의 체제하 에 있는 현재인 것이다. 흔히 우리 민족성을 스스로 비하시키는 말 가운데 "조선놈은 맞아야 말을 듣는다"라는 것이 있다.
물론 이 말이 비롯되어진 것은 왜정시대를 거치면서라고 알려져 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를 짓밟은 왜놈들은 어떤 근거 에서 이런 말을 만들어 냈을까. 그것은 아마도 그들이 조선시대의 형벌이 체벌 위주라는 사실에 감안하여 이런 속설을 퍼뜨림으로 우리 민족 스스로 가 自愧感(자괴감)에 빠지도록 유도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다.
어떻튼 욕은 할지언정 이런 말만은 절대 쓰지 말아야겠다. 또한 매가 무서워 말을 듣는, 주관없는 思考(사고)도 버려야겠다. 그보다 앞서 가장 선행이 되어야 할 것은 권위를 내세운 폭력(폭력이라 함은 꼭 물리적이지 만은 않다.)이다.
이것이야말로 인간에게 있어서 가장 부도덕하며, 비민주적인 행위라고 감히 斷言(단언)한다.
이밖에 조선시대 사형 제도를 살펴보면 梟首(효수)와 棄市(기시), 그리고 賜死(사사)가 있는데, 효수라 하면 참수 후 잘라진 목을 기다란 막대기 끝 에 매달아 여러사람이 지나 다니는 곳에 걸어 놓는 것을 말하고, 기시라 하면 참형의 집행장소를 시장으로 하여 행한 뒤 그 시체를 길거리에 버리 는 것을 말한다. 효수는 원래 중국에서 유래된 형벌로 懸竿示衆(현간시중) 이라 불렸으며 중국의 소설이나(대표적인 예로 삼국지나 초한지 등) 역사서에서 찾아볼 수 있다. 사사는 조선시대 역사상 가장 많이 시행되었던 사형 가운데 하나로 王命 (왕명)으로 飮毒(음독)케 하는 것이다. 이 형벌 역시 왕족이나 공직자가 逆 謀(역모)에 연루되었을 때 시행되었던 것이며, 아마도 권력의 다툼에서 패했을 경우 억울하게 죽임을 당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보아진다.
이러한 사형제도는 그 방법이 바뀌기는 했지만 오늘날까지 형법 안에서 이어져 왔으며, 앞으로 비인간적이라는 이유로 이러한 법을 폐지시켜야 한다는 가부간의 문제는 숙제로 남아 있다고 할 수 있겠다.
⑥ 우라질 놈.(오라질 놈)
이 욕은 "오라질 놈"이라고도 많이 쓰이고 있으며 노인들이 입버릇처럼 많이 쓰고 있는 욕이라 하겠다. 심지어는 손자들의 뜻밖의 귀여운 행동에도 혼잣말처럼 이 욕을 사용하는 것으로 보아서 옛날부터 이 욕이 많이 쓰여져 왔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증명할 수 있다고 하겠다. 그렇다면 이 욕에서 나타나는 "우라(오라)"는 무엇인가. "우라"는 "오라"의 된소리로, 역시 조선시대 죄인을 묶을 때 사용했던 붉고 굵은 밧줄을 일컫는 "오랏줄"의 줄임말이다. 이 오랏줄의 사용은 현대의 형법에까지 이어져 중죄인의 경우 수갑을 채운 뒤 흰색의 捕繩(포승)줄로 결박짓고 압송하고 있다. '질'은 '지다'의 원형으로 뒷짐지다와 같이 두 손을 뒤로 젖혀 맞잡는 것을 말하는 것으로 "오라질"하면 두 손을 뒤로 젖혀 오랏줄로 결박을 진다 는 뜻이다. 그러므로 이 욕은 상대방이 못된 짓을 하여 오랏줄로 묶인다는 말이다.
⑦ 떼갈 놈.
이 욕 역시 "오라질 놈"과 비슷한 뜻을 담고 있는 욕으로서 죄를 지어 포도청에서 잡아 갈 놈이라는 말이다. 이렇듯 우리 민족이 사용해 왔던 욕에는 관청에서 잡아 가거나, 형벌을 당한다는 말이 많이 쓰이고 있다. 이는 우리 민족이(좀 더 세분화 하자면 권문 세도가를 제외한 일반 백성. 民草(민초).) 정부나 관청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었으며, 법은 일반 백성의 곁에 있었던 것이 아니라 일부 권력층에 있는 세도가들의 便宜物(편의물)이었다는 것이 증명되는 셈이다.
이러한 폐단은 백성을 주인으로 한다는 현체제(민주주의) 아래에서도 자행되어 왔던 일이며, 그렇기 때문에 아직까지 "떼간다"라는 말이 사용되어 왔다고 생각한다. 소위 任意同行(임의동행)이라는 형식을 빌어 사전 영장 없이 '떼잡혀'가서 폐인이 되거나 영영 돌아오지 않는 사람을 우리의 주위 에서 왕왕 보아왔던 것이 어제까지의 현실이다. 심지어 고문으로 죽음에 까지 이르게 한 사건은 가히 현대가 조선시대의 연장이라는 생각까지 들게 하고도 남음이 있으리라. 우리는 여기서 잘못된 역사는 되풀이되지 말아야 한다는 역사가 주는 교 훈을 한 번 더 상기하고 넘어가야 하겠다. 溫故而之新(온고이지신).
⑧ 주리를 틀 놈.
이 욕에서 말하고 있는 周牢(주리. 牢=굳을 뢰.로.) 역시 조선시대 형벌 가운데 하나였으며, 剪刀周牢刑(전도주뢰형)의 줄임말이다. 剪刀(전도)라 하면 가위의 한자말이며, 이 형의 이름에서도 나타나 있다시피 양 다리를 가위 벌리듯 찢는다는 말이다. 이 형벌은 일종의 고문형으로 죄인의 양 다리와 사지를 결박하여 의자에 앉히거나 바닥에 자빠뜨린 다음 붉은 색의 주릿대를 가랑이 사이에 넣고 벌리는 것으로 비록 誣告(무고)한 사람이더라도 없는 죄를 실토하고 마는 혹독한 방법이라 할 수 있겠다. 물론 이 형을 받은 뒤에 불구가 되는 경우 가 많았다.
이런 참혹한 형벌이기에 왕명으로 금지되기도 하였는데, 숙종5년(1679년) 의 옥사에서도 李元楨(이원정)의 반대로 이 형벌이 실행되지 않았고 영조8 년(1732년)에는 임금이 이 형벌을 革罷(혁파)할 것을 명한 역사적 사실이 기록되어 있기도 하다. 그러나, 이 형벌은 그 후로도 100여년을 넘게 비공식적으로 행해져 왔고 민간에서 이 형은 증오의 대상이 되어있었다. 그래서, 아주 못된 놈을 일컫는 욕으로 많이 쓰였으며 이 형에 대한 증오심을 상대방에게 轉移(전이)시키려는 의도가 욕하는 사람의 의식의 저변에 짙게 깔려 있었다.
⑨ 치도곤 맞을 놈.
治盜棍(치도곤)이란 말 그대로 도적을 다스리는 몽둥이로서 조선시대에 사용되었던 棍(곤)과 杖(장) 가운데 가장 중한 몽둥이 였다. 치도곤의 규격은 길이가 약 173cm 였으며 두께는 약 3cm로 다른 곤에 비해 넓적한 형태가 아니라 둥글었으며 치도곤이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었다.
아마 요즈음 의 데모 진압대 전경들이 가지고 다니는 몽둥이나 다듬이질에 사용되는 방망이를 상상하면 이해가 빠를 것이다.
참고적으로 이 외의 곤에는 重棍(중곤), 大棍(대곤), 中棍(중곤), 小棍(소곤)이 있었으며, 가장 작은 곤인 소곤의 규격은 길이 약 154cm, 폭 약 12cm, 두께 약 1.2cm의 넓적한 형태에 역시 소곤이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었다. 다른 나머지의 곤은 치도곤과 소곤의 규격 안에서 약간씩의 차이를 보이고 있었다고 생각하면 된다.
이 몽둥이로 형을 가할 때는 넓적다리와 둔부를 번갈아 때렸으며 도적이나 서울 지역, 또는 封山(봉산. 조선시대의 산림 보호정책으로 소나무 벌채 를 금지하는 지역.)에서 소나무를 伐採(벌채)한 죄인에 한해서 이 몽둥이로 다스렸다. 그러므로 이 욕은 "주리를 틀놈"이라는 욕과 비슷한 심리 상태에서 쓰여진 것으로 보여지며, 상대방을 도둑놈이라고 치부해 버리는 것이다. 도둑놈도 안잡힌 도둑이 아니라 붙잡혀서 치도곤을 맞을 도둑놈이라는 말이다. 이런 역사적인 배경을 알고서 이 욕을 듣는다면 글쎄 기분 좋을 사람은 아마 한 사람도 없을 것이다.
⑩ 끓는 물에 삶아 죽일 놈(육장낼 놈).
조선시대 형벌이 사용되어진 욕 가운데 마지막인 이 욕은 역시 말만 들어도 行刑(행형)되었던 형벌의 잔혹성이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이 형벌은 말로만 끔찍했지 실상은 그렇지가 않은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 욕은 烹刑(팽형. 삶을 팽)을 가리키는 것으로서 煮刑(자형. 삶을 자)이라 불리기도 했는데, 백성의 재물을 貪(탐)한 관리에게 국한되어 사용되진 것으로 보인다. 이 형벌의 자료로는 성종 때 노사신, 강희맹 등이 쓴 "東國與地勝覽(동국여지승람)"이 있는데, 이 자료에 의하면 "民間(민간)에서 말하기를 관원으로서 재물을 탐한 자를 惠政橋(혜정교) 위에서 삶는다 한다." 라는 대목이 이 형벌에 대한 설명으로 전하고 있다. 또 하나 비교적 상세하게 기록되어진 그 후의 자료로 경성형무소장을 지 냈던 中橋政吉(중교정길)이라는 일본사람이 지은 "朝鮮舊時의 刑政(조선구 시의 형정)"(1937년)을 들 수 있는데, 외국 사람의 시각으로 본 조선시대의 刑政(형정)이라는 관점에서 참고할만 하다.
이 자료를 근거로 팽형, 또는 자형의 집행방법을 살펴본다면 이렇다. 종로의 사람 많은 다리 위에 커다란 아궁이를 만들고 가마솥을 걸어 놓는다. 아궁이에는 나무가 지펴져 있으나 불을 붙이지는 않는다. 이런 준비가 끝나면 재판장 격인 포도대장이 엄숙하게 재판석에 나와 앉고 죄인에게 죄명을 선고하고 처형을 下命(하명)하면 빈 가마솥, 또는 미지근한 물이 담 긴 가마솥에 죄인을 쳐박아 넣고 불을 때는 시늉만 한다. 이 때 죄인은 죽은 듯이 있어야 하며, 형의 집행이 끝나서 가족에게 인도될 때에도 마치 끓는 물에 삶겨 죽은 듯 행동해야 한다. 가족들도 죽은사람 대하듯 呼哭 (호곡)하며 喪禮(상례)를 갖추어 죄인을 인도받아야 하며, 귀가 후 이 죄인은 몸은 살았으되 죽은자와 똑같이 취급을 받아 장례를 치루고 공식적으 로 가족 외에 아무도 만날 수 없으며 외부 출입도 일체 금지되었다고 한다.
이러한 절차로 보았을 때 이 형은 단지 삶아 죽이는 흉내만 냄으로 해서 다른 여러 사람에게 警鍾(경종)을 울리는 효과를 꾀하고 있다고 하겠다. 시쳇말로 여러 사람 앞에서 쪽팔림을 당했다고나 할까? 여하튼 조선시대의 형벌이 아무리 혹독했다 하더라도 재물을 탐한 죄를 물어 끓는 물에 삶겨 죽이지는 않았으리라 보아진다.
어떻게 보면 그 혹독했던 형벌 가운데 이 형벌은 우리 민족의 지혜가 엿보인다고 할 수도 있겠다. 그렇지만 욕으로 사용되는 의도에는 흉내가 아니라 다분히 실천의 의지가 엿보인다고 할 수 있겠다. 바꾸어 말하자면 저주가 담긴 살기 띤 말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리라. 그리고, 이 욕은 다른 말로 "肉醬(육장. 간장 장)낼 놈"이라고 쓰이기도 하는데 '육장'이란 고기를 잘게 쓸어서 만든 장조림을 말하며 위에서 언급 했던 팽형에서 팽자가 삶는다는 뜻 외에 요리를 뜻하고 있다는 점을 감안 하여 파생된듯 하다.
잘 알다시피 장조림은 삶은 고깃덩어리를 간장에 넣고 다시 한 번 쪼려서 만드는 음식이 아니던가. 아뭏튼 사람을 '육장' 낸다 니 말만 들어도 등골이 오싹해지지 않는가? 참고적으로 팽형의 기원을 더듬어 보자면 기원 전 중국으로 거슬러 올라 가게 된다. 姜太公(강태공. 呂尙.)의 도움을 얻어 주나라를 세운 武王(무왕) 에게 멸망당한 은나라의 마지막 왕인 紂王(주왕)의 暴政(폭정)에서 그 시초를 찾을 수 있다고 하겠다. 그 당시 주왕은 애첩 달기의 요염함에 혼을 빼 앗기고 있었는데 호화판의 궁을 지어놓고 그 안에서 온갖 난잡한 형태의 쾌락을 추구하고 있었다.
그 가운데 하나가 팽형으로 기름이나 물을 펄펄 끓이는 가마솥을 걸어놓고 기름을 바른 철봉을 세운 뒤 그 철봉을 잡고 사람을 건너게 했다고 한다. 물론 무사히 건너가면 살아날 수 있었으나 철봉 에 바른 기름의 미끈거림으로 대부분의 사람은 가마솥 안으로 떨어져 죽었다고 하는데 살려고 바둥거리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며 주왕과 달기는 무척 즐거워 했다고 한다. 우리는 이런 史實(사실)을 통해서 인간이 어디까지 잔혹해 질 수 있겠느냐는 의문을 한 번쯤 가져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러한 인간의 잔혹함은 비단 물리적인 행동에 의해서만이 아니라 언어의 폭력에 의해서도 가능하다는 것을 상기해 주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8. 욕 속의 개(犬).
개는 사람과 가장 오랜 세월을 함께 살아 온 동물이다.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속담이나 격언, 또는 상소리 속에서 이 동물이 많이 등장하고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물론 욕 속에서도 단연 개(犬)자가 들어가는 욕이 가장 많을 것이다. 그래서 개를 주제로 한 별도의 章(장)을 만들어 분석을 하려는 것이다. '개'자가 사용되어진 욕을 실례를 들어 설명하기에 앞서 먼저 '개'라는 단어를 분석해 보는 것이 순서일것 같다.
① 개의 두 가지 뜻.
욕에 나타나고 있는 개는 보통 두가지 뜻으로 쓰이고 있으며, 첫째로 동물로서의 개를 설명할까 한다. 동물로서의 개라는 말은 개가 짖는 소리인 '강강' '캉캉' '깡깡'에서 파생되었다.
즉, '강강' 짖는 동물이라 하여 '가희' 또는 '가이'라고 불렸던 바, 옛날의 문헌 안에서 발견되는 개는 다음과 같이 서술되고 있다.
* 계림유사 -> 狗曰家稀(구왈가희)
* 월인석보 -> 狗(구)遁 가히라
* 두시언해 -> 희불근 곳과 힌가야지 가얍도다
그러므로 개는 가희->가히->가이->개 라는 변천과정을 겪어 왔다고 보여지며, 강아지는 가히야지->가야지->강아지 로 변해 왔다고 보여8. 욕 속의 개(犬). 진다.
(개를 '강이'라고 부르는 사투리가 아직 남아있다.)
여기서 '아지'는 조그마한 것을 나타내는 우리말로서 가히+아지 라하면 개의 새끼를 말하는 것이 된다. 그러므로 동물의 새끼를 나타내는 말의 어미는 모두 아지로 끝나는 것을 볼 수 있다. 예외로 닭의 새끼는 아지가 아니라 '아리'로 끝나는데 이 또한 작은 것을 나타내는 말로 닭의 새끼가 내는 소리인 "비육비육"에서 병아리를 '비육'이라 했고, 비육+아리 라고 접미사가 붙어 병아리가 된 것이다.
둘째로 개는 동물이 아니라 단어의 앞에 붙는 접두사로 '함부로 되어 변변치 못한' 또는 '야생의'라는 뜻으로 쓰이고 있다. 즉, 접두사 '참-'과 반대 의 뜻으로 쓰이고 있으며 예를 들자면 '개나리, 개미나리, 개살구, 개떡, 개꿈' 등이 있다. 접두사 '참-'의 예로는 '참기름, 참외, 참말' 등이 있다. 다음 장부터는 '개'자가 들어가는 욕의 실례를 들어가며 이야기를 풀어 나가겠는데, 이상에서 설명한 '개'의 두가지 뜻을 상기하며 읽어 본다면 이 욕들에 대해 색다른 느낌을 받게 될 것으로 생각한다.
② 개새끼. 개같은 놈.
"개새끼"라는 이 욕은 "좆"이나 "씹"이 들어간 욕과 더불어 가장 많이 쓰이고 있는 것 중 하나이다. 사용 빈도수가 많은만큼 그 사용자층도 다양한데, 현재 우리나라의 남녀노소 구애됨이 없이 무차별적으로 사용되어 지고 있다고 보아진다. 심지어는 영화나, 텔레비젼의 드라마 속에서도 이 욕이 여과없이 표현될 정도니 얼마만큼 이 욕이 대중화되어 있다는 것이 짐작되리라.
500년 후에 개봉될 타임캡슐 속에 20세기 한국의 대표적인 욕으로 이 욕이 들어 있는지 궁금하다. 어떻튼 이 욕의 사전적 의미는 개와 같은 놈이라는 말로 상대방을 비하시키고 있다. 또는, 개의 자식이라는 뜻으로 상대방은 물론 그를 낳아준 부모까지도 욕되게 하는 말로 쓰이고 있다. 개의 자식이니 그 부모도 개라는 말이 아닌가. 그 외 다른 뜻으로도 해석을 할 수가 있겠는데, '개'를 동물이 아닌 접두사로 해석을 하더라도 그 뜻은 '새끼'라는 단어로 인해 역시 욕으로 받아들여진다고 하겠다.
이렇게 되면 "개새끼"라는 욕은 '함부로 되어 변변치 못한 새끼'라는 뜻이 되며, 최소한 상대방의 부모까지 욕되게 하는 의도는 없어진다고 하겠다. 그렇지만 역시 욕은 욕이며, 중요한 것은 이런 욕을 습관 적으로 사용해서는 안되겠다는 것이다. 또한, 비싼 밥 먹고 이런 욕 먹을 짓을 해서는 결코 이 욕이 도태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③ 개잡년(개잡놈).
이 욕은 '개년+잡년'이 합성되어 이루어진 말로 행실이 바르지 못하거나 난잡하고 더러운 여자나 남자를 가리켜서 하는 욕이다. 그러니까 상대방의 外觀(외관) 보다는 눈으로 직접적으로 보이지 않는 행동이나 처신을 탓하는 욕이라 하겠다. '개년'이나 '잡년'이라고 독립적으로 쓰이더라도 심한 욕이 되는데 두 욕을 한꺼번에 묶었으니 두 말할 나위가 있을까?
④ 개좆 같은 놈(개보지 같은 년).
"개좆 같은 놈"이라는 욕은 "3. 좆이 사용된 욕"에서 이미 서술하였기에 생략하기로 하고, 이와 비슷한 뜻으로 쓰이나 여성들에게 한해서 사용되는 "개보지 같은 년"이라는 욕에 대해서 말해볼까 한다.
이 욕에서 말하는 '개보지'는 물론 암캐의 생식기를 말하는 것이다. 잘 아다시피 개들은 (특히 동네를 배회하는 잡종견) 누가 보던말던 아무곳에서나 기회가 있으면 교미를 한다. 개들에게 있어서 암캐는 본능적인 성욕구의 대상으로 보여진다. 그러므로 암캐의 교미 대상은 어떤 종류의 개라도 상관하지 않고 단지 숫놈만을 가린다.
물론 일부 족보있는 개들은 같은 종류끼리 짝짓기를 하지만 그것은 다분히 사람들에 의해서 선택이 되는것일 뿐 개들의 의지와는 별개의 것이다. 족보있는 개라고 하더라도 발정시 잡종견과 섞여있다면 잡종견과 교미를 하게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런 이유로 "개보지 같은 년"이란 욕은 성적으로 문란하거나 추잡스러운 여자 라는 얘기가 된다. 참고로 성숙된 암캐의 발정은 일년에 두번 일어나며 발정기간은 약 20일 정도 지속된다. 발정 여부는 외음부의 부종과 혈액성 분비물을 보고 알 수 있는데 발정 개시 후 13일쯤 경과되면 외음부의 부종이 줄어들고 분비액의 색깔이 핑크색으로 옅어지게 된다.
이 때가 교미를 통한 임신의 최적기이다. 이 기간 동안에 주위의 숫컷들이 모여들게 되며 사람의 저지가 없으면 몇회라도 교미를 한다. 개의 임신기간은 61~63일 정도이며 3일 정도 늦거 나 빠를 수도 있다.
'개보지'를 개(犬)가 아닌 접두사로 쓰더라도 그 뜻에 큰 변화는 없다고 보아진다. 역시 '흔하다' 또는 '함부로'라는 뜻이 포함되어 자연적으로 개 (犬)를 연상시키게 되는 것이다. 그러니 '개보지'의 '개'가 개(犬)가 아니더라도 '흔한 보지' 또는 '함부로해도 되는 보지'라는 뜻이 되므로 발정난 암캐의 보지와 별반 다를것이 없겠다.
⑤ 개 망나니.
"개 백정"이라고 쓰기도하는 이 욕은 품위없거나 교양없는 막되먹은 사람을 가리키고 있다. 조선시대 최하위 계층으로서 갖은 설움과 멸시를 당하며 살았던 백정이나 망나니보다 더 천하게 보고있는 이 욕 속의 '망나니'는 물론 개 잡는 것을 업으로 삼고있는 사람이다. 개를 食用(식용)으로 쓰고있는 나라에서만 볼 수 있는 직업이라 하겠다.
⑥ 개 뼉다구 같은 놈.
이 욕도 역시 '개'가 들어간 모든 욕과 마찬가지로 함부로 되먹은 사람을 가리키고 있다. "개같은 놈"이라는 욕에서 '뼉다구'라는 말만 추가된 이 욕 은 아무짝에도 쓸모 없다는 뜻도 내포하고 있다. 또한 굶주린 개의 앙상한 몰골을 암시적으로 나타내고 있기도 한데, 이는 쓰레기통을 뒤지며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며 다니는 동네 잡종견의 보기 흉한 모습을 사람에 빗대어 나타낸 욕이기도 하다.
음식이던 지식이던 영양가 있는 것을 섭취한게 아니라 먹어서 똥만 만드는 것을 섭취해 외양이나 정신이 疲弊(피폐)해 있는 상태의 사람을 일컫는 이 욕에서 우리는 절대 이런 사람만은 되지 말아야겠다는 다짐을 한 번 해본다. 못되더라도 개의 뒷다리 정도는 되어야하지 않을까?
⑦ 개만도 못한 새끼.
이것은 분명히 사람에게 하는 욕이다. 사람에게 "개새끼"라거나 "개같은 새끼"라 해도 치욕적으로 들리는데 이 욕은 한술 더 떠서 개만도 못하다고 하니 욕의 급수로 따져 본다면 "개새끼"보다 한 단계 위일것 같다.
우리 민족의 정서에서 개는 몹시 천하다는 이미지로 받아 들여지고 있 다. 물론 주인을 알아보고 그 주인에게 충성한다는 좋은 의미로서 개도 있지만 일반적으로 '개같다'라고 한다면 안좋은 의미로 받아들여 진다. 이것은 확실히 동양과 서양의 차이라고도 말 할 수 있겠다. 한 가지 예로 얼마전 개봉된 서양의 영화 가운데 "개같은 내 인생"이라는 것이 있었다. 이 영화에서 말하고 있는 개는 우리가 상상했던 개와는 아주 많은 차이를 보이고 있다. 서양에서 개는 애완 동물로서 사람과 늘 가까이하며 귀여워해주고 사랑해 주는 대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아 마 그런 이유 때문에 개를 식용으로 쓰는 우리나라를 야만국이라고 공격하고 있는것 같다.
그런데 한 가지 이 사실만은 짚고 넘어가자. 개고기를 잘 먹는 우리나라 사람도 서양에서 애완용으로 키우는 그런 개들은 공짜로 줘도 안먹는다는 것이다. 왜? 맛이 없으니까! 어떻튼 서양, 특히 프랑스 쪽에서 우리나라를 개고기를 먹는다는 이유로 공격하고 있는것은 개고기를 먹는 사람 안 먹는 사람의 문제를 떠나서 문화의 침략이라고 규정지을 수 밖에 없다. 개고기를 먹고 안먹고의 문제는 우리 민족 스스로의 문제지 그네들이 관여할 문제는 아닌 것이다. 이 문제에 대해서 더 말 하다가는 욕 나올것 같아 이만 접도록 하겠다.
⑧ 개나발. 개소리.(개소리엔 똥이 약이다.)
아무렴 그렇지. 멍멍 짖어대는 개소리에는 역시 똥이 특효약이다. 똥 먹느라 조용하니 특효약이 아니고 뭣이겠는가. 물론 '똥'이 의미하는 것은 꼭 배설물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똥'은 상징적인 의미로 쓰여지고 있으며 "개소리"나 "개나발"은 동물인 '개'가 연상되어 개가 짖는 소리나 개가 부는 나팔이라고 생각되기 쉬우나 사실은 동물의 '개'가 아니라 접두사로서 쓰이고 있다. 따라서 "개나발"은 함부로 불어대는 나팔소리를 "개소리"는 함부로 지껄이는 소리를 가리키고 있으며 조금도 사리에 맞지 않는 허튼 소리나 엉터리같은 이야기를 빗대어 이렇게 말하는 것이다.
⑨ 개차반.
이 욕은 행동을 함부로 하거나 성격이 더러운 사람을 가리키는 말로서 상대방을 '똥'이라고 치부해 버리는 것이다. '차반'은 채반에서 비롯된 말로 새색시가 覲親(근친. 친정 어머니를 뵈 옴.)할 때나 근친 후 시집에 와서 정성껏 맛있게 잘 차려놓은 음식이나 음식상을 말하는 것인데 개에게 있어서 이렇듯 맛있는 음식은 똥이라 하여 이런 말이 생겨난듯 하다. 그래서 행동이나 매너가 더러운 사람을 가리켜 "개차반"이라고 일컫는 바, 개가 똥을 먹는 더러운 상황을 연상되게 하는 점잖은것 같지만 더러운 뜻을 내포하고 있는 욕이라 하겠다.
⑩ 개수작.
'酬酌(수작)'이란 술잔을 주고 받거나 말을 주고 받는 것을 가리키므로 "개수작"이라 하면 함부로 주고 받는 말을 일컫는 것이다. 그러나, 실제 쓰 이는 것은 사리에 맞지 않는 행동이나 말을 하는 사람에게 사용되고 있다. 특히 엉뚱한 행동에 대해서 "개수작 떨고있다"고 많이 쓰인다. 이 욕에서 '개'는 접두사로 쓰이고 있다고 하겠다.
⑪ 개불쌍놈.
성미가 아주 고약하거나 더러운 사람을 가리키는 이 욕은 "출생및 사망 에 관한 욕"에서 비교적 자세히 다루어진 "쌍놈"이라는 욕과 "개불"이라는 단어가 합성이 되어졌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개불쌍놈"에서 '개불'은 무얼 말하는 것일까. 그것은 바로 개의 불알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래서 이 욕은 "개 불알같은 쌍놈"이라는 말이 줄어진 것이라 하겠다. 어찌보면 "개 좆같은놈"과 비슷한 뜻을 담고 있다고 볼수 있다.
⑫ 개가 쓰여진 속담.
이 장에서 다루어지게 될 개는 모두 동물로서의 개가 될 것이다. 비록 욕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우리 민족이 흔하게 사용하고 있는 개가 쓰여진 욕을 이해하는데 다소나마 참고가 될까하여 첨부하는 바이다.
지난 장에서 말했듯이 개는 우리 민족에게 있어서 천하게 받아 들여지고 있는데 이는 개가 사용되어진 속담에서도 잘 나타나고 있다. 그럼 이제부터 개가 쓰여진 속담과 그 뜻에 대해서 대략적으로 알아보도 록 하자.
* 개눈엔 똥만 뵌다.->
누구든 제가 좋아하거나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 이 먼저 눈에 띈다.
* 미친개는 몽둥이가 약이다.->
미친개처럼 막돼먹은 놈은 때려서라도 버릇을 고쳐야 한다.
* 개같이 벌어 정승같이 쓴다.->
직업의 귀천을 따지지 않고, 또는 체면 가리지 않고 돈을 벌어 쓸때는 정승처럼 귀하게 쓴다.
* 개팔자가 상팔자.->
주인에게 먹을것과 입을것을 모두 제공받으므로 걱정할 필요가 없으니 걱정이 끊이지 않는 사람 팔자보다 좋다는 뜻.
* 오뉴월 개팔자.->
날이 더워 아무 곳에서나 걱정없이 늘어지게 잠을 자는 개의 팔자가 좋다는 뜻. 그렇더라도 삼복에는 신경 좀 쓰일껄?
* 오뉴월 개패듯 한다.->
개고기를 먹기 위해서 개잡는 모양을 빗대어 하는 말. 우스개 소리로 犬打式毆打(견타식구타)라 한다.
* 개 보름 쇠듯 한다.->
잘 먹고 지낼 때 도리어 잘 먹지 못하고 지냄. 정월 대보름에 개에게 먹이를 주면 여름에 파리가 꾀며 개가 여위므로 이 날은 개를 굶겼다는 기록이 "京都志(경도지)"나 "東國歲時記(동국세시기)" 에 전하고 있다. 그러나, 민간에서 알려진 실제 이유는 다분히 呪術的(주술적)인데 있다. 달은 음에 해당되고 정월 대보름에 여자들은 달을 쳐다보며 음의 기운을 쏘이는데 이 날 개에게 먹이를 주면 달과 相剋(상극) 관계에 있는 개가 힘이 솟아서 달을 먹어 버린다는 이유로 하루종일 개에게 먹이를 주지 않았던 풍속이 있었다. 이 날 만큼은 개팔자가 상팔자는 아니었으 리라.
* 제버릇 개주랴.->
세 살 버릇이 여든까지 간다는 속담과 같은 의미. 나쁜 버릇은 고치기가 힘들다.
* 개구멍에 망건치기.->
빼앗길까 봐 겁을 먹고 막고 있다가 막고 있던 그 물건까지 잃음.
* 개구멍으로 統凉(통량) 갓을 굴려 낼 놈.->
교묘하게 사기 수단을 부리는 사람. 토량갓(경남 통영(충무시)에서 만드는 질 좋은 갓.)
* 개털에 벼룩 끼듯.->
좁은 바닥에 많은 것이 득시글득시글 몰려있는 모양.
* 虎父無犬子(호부무견자)->
범같은 아버지에 개같은 자식은 없다. 콩 심은데 콩 난다고 할까? 種豆得豆 種瓜得瓜(종두득두 종과득과)
* 개가 웃을 일이다.->
도무지 사리에 맞지 않아 당찮은 일이라 개가 웃을 지경이다.
* 개가 짖는다고 다 도둑이 아니다.->
남들이 떠든다고 다 옳은 일은 아 니다.
* 개도 먹을 때는 건들지 않는다.->
물리니까. 큰 잘못을 저질렀어도 먹을 때는 때리지 않는다.
* 개똥도 약에 쓰려면 없다.->
보잘것 없고 흔한것도 쓰려고 찾으니 없 다.
* 사흘 굶은 개 몽둥이가 안뵌다.->
악에 받치면 체면도 두려움도 없다. 굶주림 앞에는 양반도 없다나?
* 개밥에 도토리다.->
무리에 끼지 못하고 따돌림을 당하는 신세다.
* 개새끼도 제 주인은 물지 않는다.->
배은망덕한 사람을 나무랄 때 쓰 는 말.
* 개새끼 친해봐야 똥칠만 한다.->
실이 나쁜 사람과 사귀면 언젠가는 봉변을 당하게 된다.
* 개새끼도 주인을 보면 꼬리 친다.->
사람이 개만 못하여 주인을 몰라 보느냐고 나무라는 말.
* 개가 똥을 마다하랴.->
돼먹지 못한 놈이 챙길 것은 다 챙긴다.
* 개하고 똥을 다투지.->
막돼먹은 사람과는 이해관계를 따지지 않는다.
⑬ 그 외 개가 들어간 단어.
* 개밥바라기->
금성(金星) 또는 장경성(長庚星), 태백성(太白星)이라 불 리우는 서쪽 하늘의 큰 별. 저녁에 보이는 금성을 '개밥바라기'라 부르는데 배가 고파진 개가 이 별이 뜰 때쯤 밥을 먹게 되므로 이렇게 불리우게 되 었다. 새벽의 동쪽 하늘에 보이는 금성은 샛별 또는 명성(明星), 啓明星(계명성)이라 불리운다.
* 개죽음->
무익한 죽음. 값 싼 죽음. * 개코-> 냄새를 잘 맡는 코. 은어로서 형사를 가리키기도 한다.
* 개털->
돈 없는 사람을 일컫는 죄수들의 은어. 반대말은 범털이라 한 다. 역시 개와 범은 상반되는 가치기준을 가지고 있다.
* 개피->
어떤 일에 함부로 뛰어들었다가 손해를 봄.
* 개꿈->
대중없이 함부로 꾸어진 꿈. 꿈에 개가 보였다고 해서 개꿈은 아니다.
* 개다리질->
방정맞고 얄밉게 구는 행동.
* 개뿔->
있으나 마나한 것. 아무 것도 아니다. 사족(蛇足).
* 개기름->
얼굴에 번질번질하게 끼는 기름.
* 개망신->
아주 큰 망신.
* 개폼->
실속도 없으면서 잘난 체 하는 것을 비웃는 말.
* 개꼴->
체면이 아주 엉망으로 된 꼬락서니.
*개꿀->
벌집에 들어 있는 채로의 꿀.
* 개꽃->
먹지 못하는 철쭉꽃을 참꽃에 대하여 일컫는 말. 또는 산에서 야생하는 7-8월에 줄기와 가지 끝에 흰 꽃이 피는 엉거시과의 1년초.
* 개잠->
개처럼 머리와 팔다리를 오그리고 자는 잠. 또는 아침에 깨었 다가 도로 드는 잠. 改잠.
* 개판->
무질서하고 난잡한 상태.
* 개떡->
매우 보잘것 없음. 농촌 생활이 궁핍한 때 주로 해먹던 떡으로 처음에는 겨로 만들었다 해서 '겨떡'이라 불리웠다. 맛이 거칠고 형편 없었으므로 이 처럼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을 개떡에 비유해서 '개떡같다'라는 말 이 생긴것으로 보아진다.
* 개똥참외->
길 가나 들에 저절로 자라서 열린 참외. 보통 참외보다 작고 맛이 없음.
* 개똥갈이->
개똥 거름을 주어 밭을 갊.
* 개개다->
성가시게 달라붙어 손해되다. '개긴다'라고 쓰는것은 잘못된 것이다.
* 출처 : C가 있는 홈페이지 ( http://myku.hihome.com/doc/chat/slang-1.html )
욕 가운데는 상대방은 물론 상대방의 조상까지 욕되게 하는 욕이 있다. 후손의 잘못으로 인해 그 조상까지 욕되게 한다는 것은 결코 바람직한 일은 아닌것 같다. 역설적으로 잘못이 없는 사람에게 이런 욕을 남용 한다면 결국 그 욕은 자신에게 되돌아 오는 결과를 얻게될 것이다.
그럼 이런 욕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지금부터 이런 종류의 욕에 대하 여 알아보도록 한다.
① 칠뜨기 같은 놈.
七朔(칠삭)둥이, 즉 열 달만에 태어난 것이 아니라 일곱 달만에 태어난 어딘가 부족한 사람이라는 말이다. 朔(삭)은 달이 차고 기우는데 걸리는 시간, 즉 한 달을 가리키는 옛사람들이 사용하던 일개월의 의미이다.
이와 비슷한 욕으로 "여덟 달 반"이라는 것이 있다. 팔삭둥이라고도 하는 이 욕도 역시 어머니의 胎(태) 속에 있던 달수를 가리키는 것이다. 그렇다면 滿朔(만삭)둥이는 가장 완벽한 사람이라는 말인가?
수양대군을 도와 김종서, 황보인등을 죽이고 端宗(단종)을 폐위시키며 세상을 거머쥐었던 한명회가 칠삭둥이라고 한다. 이 사람은 어디가 그렇게 많이 부족해서 남들이 부러워하는 부와 권력을 거머쥐었단 말인가? 아무래도 태 속의 달수와 사람의 됨됨이와는 전혀 무관하다고 증명이 되는 셈이다.
이 욕을 도태시키기 위해서 출생시 인큐베이터(Incubator) 신세를 졌던 요즘의 칠삭둥이나 팔삭둥이들은 만삭둥이들 보다 두배 세배의 노력을 기울여 결코 부족하지 않은, 오히려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아야 할 것이다.
② 후레아들 놈.
배운 데 없이 제 멋대로 자라서 버릇이 없는 놈이라는 뜻으로 두 가지의 어원이 하나로 합쳐져서 전해 내려오는 이 욕의 이면에는 아버지를 욕되게 하는 뜻이 숨겨져 있다.
두 가지의 어원 가운데 어떤 것이 먼저 이 욕을 만들어지게 했는지 자세하지 않지만 그 뜻에 있어서는 같은 맥락으로 이해하면 될것이다.
먼저 국어학적인 면을 살펴 보자면, 이 욕의 원 말은 "홀의 아들" 또는 "홀의 자식"에서 호레자식-> 호로자식-> 후레자식으로 변화 되었다고 보고 있다. 홀은 짝이 없는 외톨이란 뜻으로 ㅎ -> ㅎ오 -> ㅎㅇ -> ㅎ옷 -> 홋 -> 홀 이라고 변화가 되어왔고, 이 욕에서는 아버지 없이 홀어머니 밑에서 성장을 한 자식이란 의미로 쓰이고 있다. 이 욕 때문인지는 몰라도 요즘에도 홀어머니 밑에서 성장을 한 사람은 버릇이 없고 독선적이라 하여 취직을 할때나 맞선을 볼때 감점의 요인으로 작용을 하고있다. 아무래도 집안에 무섭게 훈계하며 이끌어주는 아버지라는 존재가 없어서 함부로 자랐고, 그래서 버릇이 없다고 단정을 짓는 처사인것 같기도 하다. 이런 점에서 볼 때 비록 무능하더라도 아버지가 살아 있다는 것은 그 존재 가치만을 따져 보아도 무시할 수 없는 존재인것 만은 확실하다고 할 수 있겠다.
다음으로 역사학적인 면을 살펴 보자면, 후레자식으로 변화 과정을 거친 "호로아들" 혹은 "호로자식"의 호로를 胡虜(호로), 즉 중국 북방의 이민족인 凶奴(흉노)를 가리키는 말로 보고 있다. 그러므로 이 욕은 상대방을 오랑캐의 자식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오랑캐의 자식이니 아버지가 오랑캐인 것은 당연지사가 아닌가?
우리 민족은 단일 민족으로 그 자긍심이 대단하다. 이는 세계화 추세에 있는 현재의 시점으로도 바람직한 일이라고 생각하며, 이러한 민족성 때문에 타민족, 그것도 오랑캐라고 업신 여기고 있는 北方胡虜(북방호로)의 피가 섞인 자식을 예의도 없는 버릇없는 놈이라고 치부해 버리고 마는 것이다. 비록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가 세계화의 물결 속에 있더라도 우리의 것을 무시하거나 잊어버리고는 올바른 세계관이 정립될 수 없다. 우리의 것을 지키지 않은 채 세계화의 물결 속에 휩쓸린다면 그것은 隸屬(예속)일 뿐 아무것도 아니다.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 아닐까?
소위 말하는 X세대의 머리 속에 한국적인 의식이 빠져나가 정신적 의미로서의 "후레아들 놈"을 만들지 않도록 기성세대나 신세대 모두가 노력을 아끼지 말아야 할것이다. 앞으로 20년 또는 30년 후 그들이 이끌어 나갈 우리 민족의 미래를 위해서......
③ 종간나 새끼.
이 욕은 주로 함경도 지방에서 쓰이던 욕으로 정확한 뜻은 종년의 새끼를 말한다. 그러니까 상대방의 어머니를 종년으로, 상대방을 그 종년에게서 태어난 새끼로 비하시켜 부르는 것이다.
"간나"는 여자를 일컫는 "가시나" 또는 "가시내"에서 비롯된 말이다. "간나"의 어원인 "가시"는 15세기 이전까지 꽃을 가리키는 말로 쓰이다가 그 후로는 아내를 뜻하는 말로 쓰이게 되었다.이에 대한 보충 자료로는 신라시대의 화랑을 들 수 있겠다. 화랑을 옛날에는 '가시나'라고 불렀다. 이렇게 부르게 된것은 화랑이 초기에는 처녀로 조직이 된데서 비롯 되었다고 한다. 그 후 화랑은 처녀 차림을 한 총각으로 代替(대체)되고 처녀는 '가시나'로 부르게 되었다. 이 '가시나'의 吏讀式(이두식) 표현이 바로 花郞(화랑)이다.
그래서 花郞(화랑)의 명칭도 초기에는 花娘(화랑)으로 불리다가 총각으로 대체되면서 娘(랑)이 郞(랑)으로 바뀌게 되었다. 이 郞(랑)은 이두식 표현으 로 무리(徒)를 나타내는 '네'의 옛 형태인 '나'를 소리옮김 한 것이다. 또한 '가시'는 꽃을 뜻 옮김 한 이두식 표현이다. 그러므로 '가시나'를 直譯(직역) 하자면 '꽃들'이 되는 셈이다.
아직도 지방의 사투리나 俗語(속어)들 속에는 이 '가시'라는 말이 살아있어 이상의 說(설)을 뒷받침 하고있다. 몇가지 예를 들어보자면 이렇다.
* 각시 : 갓 시집 온 여자.
* 가시버시 : 부부의 낮춤말.
* 가시어미 : 장모.
* 가시아비 : 장인.
* 가시집 : 각시의 집, 곧 처갓집.
이상의 설명과는 별도로 우스갯 소리로 구전되어 오는 '가시내'에 대한 다른 어원이 하나 있어 소개할까 한다.
옛날, 갓 쓰고 도포입던 시절에 남장을 한 처녀 하나가 길을 가고 있었는데 뒤따라 가던 선비가 길을 물어보려고 불러 세우자니, 뒷모습이 체구도 작고 아담한게 걸음걸이도 남자같지는 않은데 갓 쓰고 도포를 입었더라. 뭐라 부를 길이 막연하던 선비가 급한 김에 부른다는 소리가 "어이, 앞에 갓 쓴애!" 했단다. 이렇게 불러 세워놓고 길을 물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문제의 '갓쓴 애'는 남자가 아닌 여자였단다. 그 이후로 여자를 가리켜 '갓쓴애'라고 부르게 된것이 오늘날의 '가시내'로 변화되어 왔다고 한다.
물론 이 이야기는 우스갯 소리지만 화랑, 즉 '가시나'가 변화되어 온 역사적 사실이 배후에 깔려있는 것을 알 수 있다. 단지 여장을 한 남자가 남장을 한 여자로 둔갑(?)을 했을 뿐이다.
어떻튼 이 "종간나 새끼"에서 '간나'의 어원은 좋은 것에서 비롯 되었지만 오늘날의 뜻은 욕으로 통용이 되고 있으니 함부로 써서는 않될것 같다.
어떤 여자고 간에 '가시내'라고 부르면 좋아 하겠는가? 하기야 지나간 유행가 가운데는 '범띠 가시내'라는 곡도 있기는 했지만 말이다. 그래도 욕 가운데 가장 애교스러운 욕이 이 "가시내"인것 같다.
④ 촌놈.
이 욕은 서울이 아닌 지방에서 태어난 사람을 일컫는 말로 촌은 시골을 가리키고 있다. 아무래도 지방화 시대를 맞고 있는 요즘에는 어울리지 않는 욕인것 같다.
그리고, 이 '촌놈'이라는 뜻에는 꼭 출신성분만을 나타내고 있지는 않다. 서울에서 태어난 사람에게도 이 '촌놈'이나 '촌년'이라는 욕이 쓰여지기도 한다. '촌'은 숙달되지 않거나 어울리지 않는 것에 대한 형용사로 쓰이는 것이다. 좋게 말하자면 세상에 물들지 않은 순진함 이랄까? 그렇더라도 촌놈소리 들으면 기분이 좋지는 않다. 더군다나 여자에게 쓰여지는 '촌년'이라는 욕은 그 억양에 있어서 '촌놈'보다 더 천박하게 들린다.
이 욕이 쓰이는 몇가지 실례를 들면서 이번 회는 이만 마칠까 한다.
* 촌놈 배부른게 최고다.-> 아무것도 모르는 무식쟁이 에게는 이것저것 가릴것 없이 많이 먹는게 우선이다. (배고픈 시절에 많이 쓰였던 말이다.)
* 촌년 바람나면 씹구멍에 불난다.-> 순진한 여자가 남자를 알게되면 물 불 가리지 않고 덤벼든다.
* 촌년 서방질에 날 새는줄 모른다.-> 위의 뜻과 비슷하다. 또 이와 같은 뜻으로 쓰이는 말에는 '늦게 배운 도둑질에 날 새는줄 모른다'라는 것이 있다.
⑤ 쌍놈.(쌍놈의 새끼)
이 욕은 兩班官僚體制(양반관료체제) 하에 있던 조선시대의 신분제도를 반영하고 있는 욕으로서 사회적으로 가장 천대를 받았던 賤民(천민)을 가리키고 있다.
양반은 잘 알고 있다시피 文班(문반)과 武班(무반)을 일컫는 말로서 사회적 신분이 높고 경제력이 강하며, 사회를 이끌어 가는 최고의 신분계층이라고 할 수 있었다. 양반이라는 계급은 후손에게 세습되었으며, 이는 다른 계급의 사람도 마찬가지였다.
조선시대의 신분을 살펴보면 크게 네가지로 나뉘는데 兩班(양반, 사대부), 中庶(중서), 常民(상민), 賤民(천민)이 그것이다. 그리고, 이 계급은 다시 士(사)와 庶(서), 良(양)과 賤(천)으로 대별 되었지만 실제적으로는 천민을 제외하고는 모두 자유인이라고 할 수 있었다. 천민의 자유는 朝廷(조정)이나 그가 속한 士大夫家(사대부가)에서 통제를 하고 있었으며, 원칙적으로 천민과 자유인(천민을 제외한 모든 계급의 사람) 사이에는 모든 인간적인 교통이 단절되어 있었다. 즉, 천민은 인간 이하로 취급되고 있었으며 노비의 경우 생사여탈권은 전적으로 그 주인에게 주어져 있었다.
이런 천민에는 여러 부류의 사람이 있었는데 참고적으로 몇가지 알아보고 넘어가도록 하겠다.
* 公賤(공천)-> 죄를 범하여 신분이 강등되거나 조정의 관리에게 배분규정대로 나누어 주고 남아 관청에 귀속된 奴婢(노비). 官婢(관비)라고도 한다.
* 私賤(사천)-> 사사로이 개인집에서 부리던 종으로서 婢僕(비복), 白丁(백정), 俳優(배우, 노래나 줄타기, 연극 등을 직업으로 하는 광대), 娼女(창녀), 巫覡(무격, 무당과 박수를 뜻함) 등이 이에 속한다.
조선시대에 이런 노비들은 상당수 있었으며, 英祖(영조) 40년(1764년) 刑曹(형조)에 귀속되어 掌隸司(장예사)라고 불리기 전까지 掌隸院(장예원)이라 하여 독립된 관청에서 관할하고 있었다. 이런 노비들에게 免賤(면천)의 기회가 있었는데 천민에서 양민으로 신분 상승하는 것을 贖良(속량), 또는 贖身(속신)이라고 했다.
공천이 속량할 수 있는 기회는 나라에 큰 공을 세우거나 2품 이상의 官員(관원, 오늘날의 고급공무원)에게 첩으로 들어가 자녀를 낳게되면 속량할 수 있게 된다. 이 경우에는 자신의 나이와 비슷한 노비 하나를 자기 대신 賤役(천역)에 종사하게 하고 장예원에 신고를 해야했으며, 대역을 보충시키지 못하면 다시 천민으로 환원된다. 사천인 경우에는 전적으로 그 주인에게 권한이 주어졌다.
이렇게 비참하게 생활을 했던 천민을 쌍놈이라고 일컬었던 바, 이 욕은 상대방의 출신성분을 비하시키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자신이 낳은 자식에게 화가 난다고 '이 쌍놈의 새끼'라고 한다면 자기 스스로는 물론 조상에게까지 욕이 미친다고 할 수 있겠다.
요즘이야 양반 쌍놈이 따로 없지만 그래도 '쌍놈' 소리를 들으면 기분이 좋지 않은 것만은 사실이다.
⑥ 뙤놈.
'뙤놈'은 중국인을 비하시켜 부르는 말이다. 그렇기는 하지만 이 욕에는 우리 민족 스스로를 비하시키고 있는 숨은 뜻이 있다.
조선시대나 그 이전의 시대에서 우리는 중국의 영향을 많이 받아왔다. 물론 중국은 우리보다 문화나 힘에 있어서 앞서 있었던 것을 부정할 수 없다. 그래서 중국은 우리 민족에게 大國(대국)이라 불리웠다. 이렇게 대국이라 불리우던 중국 사람을 대국놈이라 했는데 이 대국이라는 말 자체가 '놈'이라고 비하시키는 인칭을 썼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小國(소국)이라고 인정하는것 밖에는 안된다.
'대국놈'은 그 후 격음화 현상을 겪으면서 '떼국놈'으로 변화되었고, 다시 '국'자를 탈락시킨 '떼놈'으로 불리다가 발음상 더 된소리인 '뙤놈'으로 바뀌었다.
이 욕의 뜻에는 중국인을 가리키는 말 외에도 의심이 많은 사람을 말하고 있기도 하다. 아마도 중국인의 과장된(속된 말로 '뻥'이라고도 한다.) 표현을 좋아하는 민족성이나 기질을 반영하고 있는것 같다. 자신들이 과장이 심하다는 것을 알고 있으니 다른 사람에 대한 의심이 많은것은 당연한 일이 아니겠는가.
한 가지 예로 의심이 많은 사람을 가리켜서 '뙤놈 빤스를 입었냐?'라고 되묻는 말이 있다. 이 말에서도 중국인이 의심이 많다는 것이 간접적으로 잘 나타나 있다.
아뭏튼 이런 중국이 이제는 경제적으로 우리에게 뒤지고 있으니 예전에 대국이라 불렀던 우리가 스스로에게 자존심이 상하지 않을 수가 없다. 이런 이유 때문인지 우리가 중국보다 월등 했다는 上古史(상고사)에 관한 재평가 작업이 진행 중이며, 이에 대한 책이 많이 팔리고 있다. 상했던 자존심을 복구하려는 보상심리가 적절하게 작용했다고 볼 수도 있겠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사실은 객관적인 史料(사료)를 토대로한 정확한 史觀(사관)이 우선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역사에 민족간의 감정 개입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 하겠다.
이런 점에서 일본 교과서에 오류로 지적되고 있는 동남아 역사에 대한 문제는 개인적인 차원에서 심히 유감이라 생각한다.
⑦ 애비 모르는 자식. (절자식)
이 욕은 상대방의 어머니를 욕되게 하는 뜻이 담겨있다. 버릇없고 막 되먹은 사람을 가리켜서 하는 이 욕은 '후레아들 놈'과 비슷한 뜻을 담고 있지만 속 뜻이 어머니를 표적으로 삼는 것이 다르다 하겠다.
어미가 자식을 낳으면 분명 아비가 있는 것은 당연한 사실이나, 그 아비가 누군지 모른다는 것은 뭔가 출생의 비밀이 담겨져 있다는 말이 된다. 성교의 상대가 너무 많아서 그 아비를 가늠할 수가 없을 수도 있겠지만 예로부터 전해져 내려왔던 이 욕의 기원은 다른 곳에 있다.
잘 알다시피 여자가 受胎(수태)를 못하는 이유는 두가지 경우가 있다. 여자가 石女(석녀, 돌계집)이거나, 남자가 생식기가 불완전한 鼓子(고자)이거나 하는 경우이다. 전자의 경우는 씨받이라 하여 다른 여자를 통해 자식을 낳음으로서 대를 이어가는 수단이 존재하고 있었다. 이 때 수태를 못하는 여자를 대신하여 남자의 씨를 받아주는 여자를 씨받이라고 일컬었던 바, 영화배우 강수연이 열연한 영화의 제목과 동일하다. 씨받이의 애환(?)이랄까, 아뭏튼 씨받이에 대해서 자세하게 알고 싶다면 이 영화를 참고하는 것도 나쁘지는 않겠다. 그리고, 한가지 더 첨부 하자면 현대판 씨받이인 대리모는 육체적인 관계를 갖지 않고 人工受精(인공수정)을 통하여 수태를 한다.
그러나, 후자의 경우는 문제가 약간 다르다. 씨받이와 반대의 입장인 씨내리는 절대 공식적으로 행해지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비밀 유지를 위하여 씨내리 한 남자를 멀리 보내거나, 죽이는 경우도 있었다. 물론 이런 일은 그리 흔치 않았으며, 이와 병행해서 쓰이던 또 한가지 방법은 절에 가서 치성을 드리는 것이다. 소위 말해서 백일치성을 드린다고 하는 방법인데, 종교적인 힘을 빌어 아이를 갖겠다는 의도이다. 그런데, 이 종교적인 힘(?)이 옛날에는 절대적이었던 모양이다. 백일 이라면 석 달 하고도 열흘 인데, 그동안 부부관계를 맺지 않았음에도 수태를 해서 하산하는 경우가 왕왕 있었다. 보통은 시어머니와 동행을 하는데, 이 때 시어머니는 며느리 에게 절에 가서는 스님의 말에 절대 복종하라는 다짐을 받는다고 한다. 그래서 얌전한 여자를 가리켜서 '절에 간 색시같다'라는 말도 생겨난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
이렇게 얌전한 색시를 수태시키는 것은 시어머니의 使嗾(사주)를 받은 스님이 할 일 이었다. 그러나, 아무리 시어머니의 사주를 받았다 하더라도 맨 정신의 사대부집 며느리와 정을 통하기는 어려웠으리라 보아진다. 그래서 종종 쓰이던 방법이 정신을 잃게하는 약초를 사용해서 劫奪(겁탈)을 했던 것이다. 물론, 며느리가 고분고분 스님의 말을 잘 듣는다면 굳이 약초의 힘을 빌리지 않더라도 부처님에 대한 치성은 성공적으로 끝냈을 일이지만......
어떻튼, 이런 경위로 태어난 사람을 '애비 모르는 자식'이나, 절에 가서 부처님의 은덕으로 났다해서 '절자식'이라 불렀던 것이다. 비밀에 부쳐졌어야 될 일이 누설이 되고 이 사실이 상대방에게 욕으로 쓰일 때, 상대방은 물론 이려니와 그 어머니의 수치심을 짐작할 수 있을까. 하물며 떳떳한 출생의 이력을 가지고 있는 사람에게 이런 욕을 쓴다는 것은 시쳇말로 명예훼손으로 고소 당해 싸다고 하겠다.
아이를 못낳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고통을 받았는데 이런 욕까지 듣는다면 과연 살고싶은 생각이 날까? 하기야 요즘은 이런 사람들을 위해서 정자은행이나 인공수정같은 과학적인 수태방법이 많이 개발되어 있어서 옛날같이 일방적으로 서러움을 받지는 않는 세상이 되었지만 말이다.
이와 흡사한 얘기로 日精寺(일정사)와 月精寺(월정사)에 관한 근거없는 流言蜚語(유언비어)가 있는데 이는 특정한 姓氏(성씨)에 대한 모독이 될까하여 이곳에는 쓰지 않겠다. 다만, 이 유언비어가 위의 얘기를 뒷받침하고 있는 예이기에 언급했던 바 오해의 소지가 없기를 바라며, 이 욕을 위시해 이런 유언비어는 퍼뜨리지 않는것이 밝은 사회를 만들어 가는데 초석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⑧ 씹어 죽일 놈. 쳐 죽일 놈.(박살낼 놈)
이 욕도 아주 원색적인 욕 가운데 하나이다. 이 욕이 원색적인 이유로는 그 억양이 드센 것을 차치하더라도 인간의 목숨을 강제로 끊어지게 하겠다는, 그것도 편히 죽이는게 아니라 씹던가 쳐서 아주 고통스럽게 죽이겠다는데 있다.
"씹어 죽일 놈"이라는 욕은 말 그대로 씹어 죽인다는 저주의 뜻이 담겨져 있는데 "간을 내어 씹어 먹어도 시원찮을 놈"과 그 의미의 전달 효과는 크게 다르지 않다고 보아진다.
또 하나 "쳐 죽일 놈"이라는 욕은 "박살낼 놈"이라고 쓰기도 하는데 이 "撲殺(박살)"이라는 말은 사람만이 아니라 물건에도 쓰여지고 있다. 원래의 의미는 '쳐 죽인다'라는 한자말로서 살아있는 생명체에 해당되는 말이지만 요즘에는 어떤 물건을 산산이 조각내어 부순다는 뜻으로도 통하고 있다. 다시말해 어떤 사물이 외부의 충격으로 인해 파괴되어 원래의 쓰임새가 없어질 경우 '박살났다'고 하는데, 이는 인간의 죽음과도 무관하지 않다고 보아진다.
여기서 잠깐 죽음은 우리 민족에게 있어서 어떤 의미로 받아들여지고 있는지, 또는 받아들여져 왔는지 생각해보고 가도록 하자.
삶과 대칭 관계에 있는 죽음에 대한 문제는 인간에게 있어서 영원한 숙제가 아닐 수 없다. 지구상에 존재하고 있는 각종의 종교에서도 이 문제를 깊이있게 다루고 있지만 그에 대한 명쾌한 해답은 아직 얻어지지 않고 있다. 만일 이 문제에 대한 해답이 얻어진다면 인간의 삶에 대한 목적 또한 명확하게 밝혀지게 될것이고 인간이 살아가는 방법 또한 획일화 될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인간이 살아가는 모습들이 지금보다는 훨씬 재미가 없어질 것이다. 그럴 수 밖에 없는 것이, 지옥이 있다는 것이 확인 된다면 과연 나쁜짓을 하면서 살아갈 사람이 있겠는가.
어떻튼, 이 죽음이란 문제는 인간이 살아있는 한 풀리지 않을 것으로 생각한다. 愚問賢答(우문현답) 같은 말이 될지 모르겠지만 한마디 확실하게 할 수 있는 말은 죽어봐야 안다는 것 뿐이다. 그렇다고 살아있는 동안 이 죽음이란 문제를 전혀 의식하지 않을 수는 없다. 비록 종교가 없는 사람일지라도 나름대로 죽음에 대한 철학은 가지고 있다고 본다. 그것은 인간은 누구나가 한번은 죽는다는 것을 긍정하고 있다는 것이며, 그런 죽음을 인정하는 것이 인간의 메카니즘이라고 생각한다.
욕에 연관되어서 죽음을 생각해 보는것은 죽음에 대한 답을 얻고자 함이 아니다. 우리 민족의 죽음에 대한 생각은 어떤 것이며 어떤 말로 변천되어 지금에 이르렀나를 알아봄으로 해서 우리 민족의 의식을 더듬어 보자는 것이다. 세계화의 물결 속에서 소중한 우리것이 빛을 잃어가고 있는 이 때에 우리 민족의 의식을 더듬어 보는 것도 의미있는 일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죽음은 동사형인 '죽다'에서 온 말이다. '죽다'는 명사 '죽'+ 접미사 '-다'가 붙어 이루어진 말로서 파찰음이 없었던 고대국어 '숙'에서 변화 되었다는 학설과 '뒤(ㄱ)'에서 변화 되었다는 학설이 있는데 이 글이 욕에 대한 글이니 만큼 비속어를 중심으로 풀이한 후자 쪽의 학설을 따르겠다.
'죽다'의 비속어로 쓰이는 표현은 '뒤지다' 또는 '뒈지다'이다. '뒈지다'는 '두어'+'지다'가 합해져서 이루어진 말로 '두어지다'의 줄임말로 볼 수가 있다. '두어지다'에서 '두어'의 원형은 '뒷다'로 '뒷'은 뒤(ㅎ)-> 뒷 으로 히읗 종성체언이 변형된 것이다.
(참고:釋譜詳節석보상절 6-2, 히읗 종성은 기역소리로 나는 경우가 있다.)
그렇다면 '뒤'가 뜻하는 것은 무엇인가. '뒤'는 방위로는 북쪽을 뜻하고, 계절로는 겨울을, 동물로는 곰을, 별로는 북두칠성을, 소리로는 우면조를, 성으로는 여성을 상징한다. 여성이나 곰으로 상징되는 '뒤'는 이 글의 앞부분에서도 언급했다시피 땅과 연관지어 진다. 땅은 인간이 태어난 곳이며, 또 인간이 되돌아 갈 곳이기에 땅으로의 회귀라는 관점에서 본다면 '죽다'는 '뒤'에서 발전 되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또한 우리 민족에게 북두칠성에 대한 별 신앙은 원시신앙을 연구하는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문화 인류학에서는 우리 민족이 북쪽의 별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이유를 고아시아족의 원 거주지가 시베리아 부근이었기 때문이라고 풀이하고 있다. 그런 이유로 '별'이 쓰인 흔적을 여러 곳에서 찾아볼 수 있다. 유명한 산의 봉우리 가운데 비로봉이라는 봉우리를 많이 보는데, 이 비로봉이라는 말이 별의 방언형인 '빌'에서 비롯된 말이라 하겠다. 그리고, 자기의 소원대로 되기를 바라며 기도한다는 뜻의 '빌다'라 는 말도 '별'에서 발전 되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두고 온 고향 하늘 위의 별을 그리워하는 마음이 담겨있다고나 할까.
이처럼 우리 민족에게 있어서 '뒤'는 시간적으로는 지나온 과거이며, 공간적으로는 두고 온 고향(시베리아 부근)을 나타내고 있다. 그래서 '뒤지다'라고 하면 우리의 원거주지였던 곳으로 되돌아 갔다는 말이 된다. 즉, 현재의 삶이 아니라 과거의 삶으로 되돌아 갔다는 말이다. 죽음을 끝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또 다른 싯점에서의 삶으로 보고있는 것이다. '죽었다'의 존칭어로 쓰이는 '돌아가셨다'라는 말을 보더라도 이상의 학설이 충분한 설득력을 가진다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죽음의 동사형인 '죽다'를 정리해 본다면 이렇다.
디다 -> 뒤(ㄱ)다 -> ㄷ다 -> 쥑다 -> 죽다
* 삼국사기등의 자료에서 뒤를 디(知)로 쓰고있는 경우가 보이고 있으며, '죽인다'를 '지긴다'로 발음하는 경상도 사투리도 참고가 된다고 하겠다.
* 더 자세한 내용은 다음의 책을 참고 바람.
서재극 "중세 국어의 단어족 연구" 1979
배해수 "현대 국어의 생명종식어에 대한 연구" 1982
정호완 "우리말의 상상력" 1991
⑨ 급살 맞을 놈. 조살할 놈.
지난 장에서는 욕에 연관해서 우리 민족이 생각하는 인간의 죽음에 대한 것을 말의 뿌리를 더듬어 가며 잠시 생각해 보았다. 물론 이 짧은 글 속에서 죽음에 대해 해답이나 결론을 내리려는 생각은 추호도 없다. 단지, 한번쯤 이런 기회를 통해서 죽음에 대한 생각을 해보는 것으로 만족하고 싶다. 누구나 한 번은 맞이하는 것이기에 나름대로의 의의는 있다고 본다. 그렇다고 날마다 이런 생각에 집착해 있다면 이것은 정상적인 삶에 있어서 아주 곤란한 문제일 수 밖에 없다. 최소한 이 글을 대하는 사람들 만큼은 죽음에 매료되지 말기를 바라면서 욕에 대한 얘기를 계속할까 한다.
이 욕은 보통 "급살 맞아 뒈질 놈"이라고 쓰이는데 "뒈질 놈"의 말 풀이는 지난 회에서 한 바와 같으며, "조살할 놈"은 단독적으로 주로 쓰이고 있다. 이 두 가지 욕의 공통점이라면 모두 죽음을 말하고 있으나 그 죽음의 내용은 서로 다르다고 할 수 있다.
"급살"의 '살'은 煞(살)로 종교적이거나 정신적 의미를 포함하고 있으며, 사람이나 물건을 해치는 아주 독하고 모진 기운을 일컫는다. 우리 민족의 정서 속에서의 '살'은 악귀가 씌였다고 하여 무당의 살풀이 굿을 통해 이런 기운을 씻어버리곤 했다. 세간에서 쓰이는 말로 "살 맞았다"라던가, "살 내 렸다" "살 올랐다"라고 쓰이는 말이 모두 이런 종류의 '煞(살)'인 것이다.
'살' 맞은 예로는 초상집이나 혼인집, 또는 고사 지내는 집에 갔다가 탈이 난 경우가 있고, 친구들끼리 장난치다가 주먹으로 한 대 때렸는데 상대방이 죽어버린 경우도 있다. 이런 '살'을 철저히 믿어왔던 우리 선조들은 그래서 집안에 아이가 태어나거나 태어날 달에는 초상집 출입을 하지 않았 고, 평상시에도 초상집이나 귀신을 부르는 행사에 참여하고 와서는 소금을 몸에 부리면서 "고수레"를 불러 "살오름"또는 "살맞음"을 예방하곤 했다.
물론 요즈음에는 미신이라 하여 대부분의 사람들이 거리낌 없이 행동 하지만 아직 그 옛날의 사고방식이 모두 없어진 것은 아니다. 특히 장사하는 사람들에게 이런 모습이 많이 남아 있는데, 이것은 미신이라기 보다는 우리의 풍습이 되어버린 듯 하다. 이 욕이 간혹 들리는 것으로 봐도 증명이 되고 남음직 하다. 참고로 "고수레" 또는 "고시레"의 뜻은 건강을 지켜주는 福神(복신)을 가리키고 있으며, 우리 민족의 원시신앙인 "굿"이나 "무당"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조살할 놈"의 '살'도 인간의 죽음을 말하고 있지만 他動詞(타동사)인 殺(살)이라기 보다는 自動詞(자동사)인 死(사)로 해석이 된다. 즉, "早死(조사)를 할 놈"이 줄어서 된 말로 인간의 염원인 無病長壽(무병장수)에 역행되는 욕이라 하겠다. 그리고, 여기서 죽음의 의미는 보편적인 것이며, 포괄적이고, 물리적인 것이라 할 수 있겠다.
이렇듯 죽음을 細分化(세분화)한 이 두 욕설은 죽은 뒤 영혼의 이동이라는 문제에 있어서 다시 만나게 된다.
"죽다"의 의미를 가지고 파생된 우리말을 가만히 살펴보면 그 다양함에 놀라지 않을 수 없거니와 죽은 뒤 영혼의 이동에 따라 그 표현이 달라짐에 다시 한 번 놀라게 된다. 즉, 우리말에 있어서 죽음이라는 단어는 영혼의 존재를 인정하는 곳에서 부터 출발한다고 할 수 있다.
죽은 뒤 영혼이 이승에서보다 높고 좋은 곳으로 가는것을 상승이동이라 하여 昇天(승천)하다, 昇遐(승하)하다, 登仙(등선)하다, 神仙(신선)되다, 陟方(척방)하다, 天堂(천당)가다, 極樂(극락)가다, 往生極樂(왕생극락)하다, 入滅(입멸)하다, 圓寂(원적)하다, 入寂(입적)하다, 歸元(귀원)하다, 歸眞(귀진)하다, 彼岸(피안)으로 가다 등으로 표현된다.
이와는 반대로 영혼이 이승에서보다 낮고 나쁜 곳으로 가는것을 하강이동이라 하여 地獄(지옥)가다, 地下(지하)가다, 黃天(황천)가다, 九泉(구천)가다, 冥府(명부)가다, 餓鬼(아귀)되다, 畜生(축생)되다 등으로 표현된다. 또한 상승도 하강도 아닌, 단지 이승과 緣(연)을 끊는다는 표현으로 魂魄(혼백)이 떠나다, 혼이 나가다, 세상을 하직하다, 棄世(기세)하다, 別世(별세)하다, 세상을 달리하다, 幽明(유명)을 달리하다, 永訣終天(영결종천)하다 등이 있다.
"급살맞아 뒈질 놈"이나 "조살할 놈"이라는 이 두 욕설에서 나타나고 있는 죽음은 하나같이 영혼의 하강이동을 기원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기에 이 욕을 자세히 풀이 하자면 이렇다. 이승에서 급살을 맞거나 早死(조사)를 하라고하니 욕이 되고, 저승 간 영혼은 몹쓸 곳(소위 말하는 지옥이나 연옥)으로 가라고하니 이 또한 욕이 되니, 이 어찌 심한 욕이지 않을 수 있을까.
그러나, 문제는 이런 욕을 습관적으로 하는 사람에게도 있지만 더 큰 문제는 이런 욕을 먹어도 싼 사람이 이승에서 같은 공기를 호흡하고 있다는 것이다. 죽으면 썩을 몸 아끼느라 죄짓고 살다저승 간 영혼 하강이동 하지말고 몸이 수고롭더라도 하늘에 떳떳하고 스스로에 떳떳한 삶을 살도록 하자.
이것은 종교를 초월한 문제라고 생각한다.
⑩ 썩을 놈.
이 항목을 욕의 범주에 넣을까를 두고 무척 고민했다. 어차피 죽어 썩을 몸인데 단지 '놈'자 하나 붙였다고 욕이라 해야하나? 누구는 죽으면 火葬(화장)한다고 하니 "썩을 놈"이라는 욕이 성립이 않된다고 하지만, 그래도 "썩을 놈"은 "썩을 놈"이다. 뼈가루 한 티끌이라도 땅에 뿌려져 들꽃, 들풀, 나무에 거름이 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강에 뿌리면 물고기밥 되어 물고기의 살과 뼈 되었다가 다시 썩을진대. 인간은 누구나 "썩을 놈"이 아닐까.
여기서 '놈'자는 그저 愛稱(애칭)으로 받아 들였으면 한다. '놈'자는 꼭 욕으로만 쓰이는 것은 아니니까. 卑下(비하)의 뜻은 내포되어 있으나 받아들이는 경우에 따라 귀엽게 들릴 수도 있는것이 바로 이 '놈'자인것 같다. 굳이 욕이라 해석을 하자면 "씹새끼"와 같지 않을까? 어떤 경우에는 상대방의 있는 그대로를 말함으로서 그것이 욕이 되는 때가 있다. 그렇다면 욕은 진실인가. 아니면 진실이 욕인가? 여러분들의 생각은 어떤지 궁금하다.
7. 조선시대 刑罰(형벌)이 사용되어진 욕.
조선시대 형벌이 사용되어진 욕에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다.
"젠장 맞을 놈(태질 할 놈)"
"경을 칠 놈"
"육실할 놈"
"오살할 놈"
"우라질 놈(오라질 놈)"
"떼갈 놈"
"주리를 틀 놈"
"치도곤 맞을 놈"
"끓는 물에 삶아 죽일 놈(육장낼 놈)" 등등.
이상 욕들의 공통점 가운데 하나는 사용자 층이 주로 나이가 많이 드신 노인들이라는 것이다. 요즘의 젊은이들이 "씹새끼"나 "개새끼" 또는 "좆까 네"등의 욕을 입에 달고 살듯이 노인들이 젊었을 때 아마도 이런 욕들을 많이 사용해 왔었던 것으로 보여진다. 욕의 특성상 이런 욕들이 어떤 자료로 전해져 내려오는 것은 없고 주로 口傳(구전)에 의해서 전해지는 것이 특징이라 할 수 있겠는데, 여러분도 잘 아다시피 욕은 그 사회의 시대적 상황을 많이 반영하고 있는 언어 가운데 하나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았을 때 1945년의 해방은 우리 민족에게 현대로 넘어오는 과도기였고, 이런 과도기를 지나온 어른들이 썼던 욕은 현대에 이르러서 서서히 그 사용하는 빈도수가 줄어들고 있다고 하겠다. 다시 말해서 욕의 모양이 바뀌고 있다는 것이다. 욕의 세대교체라고나 할까? 아니, 이미 세대교체는 끝난 셈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상의 욕들을 분석해 봄으로 해서 우리 조상들이 그 당시(조선시대) 형벌에 대해 가지고 있었던 생각이나 사회적 분위기 등을 알아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이것이 욕이기는 하지만 분석을 통해서 음미해 보는 것도 나름대로 의미는 있다고 보아진다. 우리 선조들의 욕을 분석한다는 것이 恥部(치부)라면 치부랄 수 있겠지만 이 언어 역시 우리 선조들이 썼던 것이고, 또한 이런 욕설 속에서 우리 선조들의 생활상 이 극명하게 드러난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비단 부정적이지 만은 아닐 것이 다.
그럼 먼저 본격적인 욕의 분석에 들어가기 앞서 조선시대 刑典(형전)에 대한 예비지식을 알아보고 가도록 하겠다. 그러는 편이 아무래도 위에서 언급했던 욕과 그 당시 이욕을 주로 사용했던 사회적 상황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것이다.
① 경국대전을 중심으로 본 조선시대의 刑法(형법).
조선시대의 법은 삼권분립이 이루어져 있지 않은 채 혼재되어있었으며, 刑事節次(형사절차)에 있어서도 糾問主義的(규문주의적) 성격을 띠고 있었다. 규문주의란 판관이 직권으로 피의자를 체포하고, 일방적으로 심문, 또는 고문을 가한 후 판결까지 내리는 것으로 삼권분립이 확실한 민주주의 체제 아래서는 찾아볼 수 없는 형사제도이다. 이러한 형사제도라 하더라도 순수한 의미의 刑法典(형법전)이나 民法典 (민법전)이란 없었고, 다만 형사 중심이냐 민사 중심이냐 하는 차이점만 있었다. 또한, 법전 안의 어느 규정은 민사와 형사에 모두 적용되도록 정해 놓은 부분도 많이 보이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법 이전에 各司(각사. 행정 육조에 딸린 각 부서)와 宮房(궁방. 대군이나 왕자군, 공주, 옹주의 집)은 물론 권문세도가에 이르기까지 불법적으로 사람을 가두거나 형 집행을 남발하였으므로 실제적으로 백성들에게 법전은 큰 의미가 없었다.
사실 조선 시대의 법은 백성들을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관계기관을 주대상으로 하는 행정법의 성격을 띠고 있었다. 민사에 관한 규정도 있었으나 이는 백성에게 作爲(작위), 不作爲(부작위)를 명령하는 강제법규였다는 점에서 관리가 지켜야 할 행정법규로서의 민사법에 지나지 않았다.
이런 이유로 조선시대의 역대 국왕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私事囚禁(사사수금)이나, 私門濫刑(사문남형)을 금지하는 명을 내렸으나 조선시대가 막을 내릴 때까지 없어지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그러한 악습은 21세기를 바라 보고 있는 현재까지 구태의연하게 踏襲(답습)되고 있는 실정이다. 돈이나 권력 앞에서 무력해지는 법을 그래도 열심히 지키며 살아가고 있는 지금 우리들의 모습은 어찌보면 조선시대 권문세도가에 눌려 살던 民草(민초)와 별반 다를게 없다는 생각이다.후일의 역사 속에서 지금 우리들의 삶의 모습이 조선시대를 살던 백성들의 모습이 되지 않으리라는 보장은 없는 것이다.
폐일언하고 다시 조선시대의 형법에 대해서 알아보도록 하자. 형법을 관장하던 부서는 행정육조 가운데 조선시대의 대표적인 사법기관 이라고 할 수 있는 刑曹(형조)이며, 大司寇(대사구), 또는 刑判(형판)으로 불리우기도 했던 정2품 벼슬의 형조판서가 책임자로 앉아 있었다. 형조를 구성하는 부서로는 詳覆司(상복사), 考律司(고율사), 掌禁司(장금 사), 掌隸司(장예사)의 4司(사)가 있었고, 각 司(사)의 담당업무는 대략 다음과 같았다.
* 상복사 : 중죄의 재심업무
* 고율사 : 법령의 조사 및 범죄자의 조사업무
* 장금사 : 감옥과 도로 및 禁令(금령)에 관한 업무
* 장예사 :
노예의 簿籍(부적)과 포로에 관한 업무 이 외에 兵曹(병조)로 소속이 바뀌기 전까지 좌우 포도청이 형조에 소속되어 있었고, 律令(율령)과 刑具(형구)에 관한 사무를 맡아보던 律學廳 (율학청)과 죄수를 가두거나 刑執行(형집행)을 담당하던 典獄署(전옥서)가 하부기관으로서 형조의 지휘, 감독을 받고 있었다.
이상으로 간단하게나마 조선시대의 형법에 대하여 알아 보았거니와 욕을 하다가 느닷없이 법을 다루려니 다소 딱딱해진 느낌을 피할 길이 없다. 해 서 이제부터는 조선시대 형벌이 쓰여진 욕의 실례를 들어가면서 설명을 할 까 한다.
② 젠장 맞을 놈. (태질 할 놈)
"넨장 맞을 놈"이라고 쓰이기도 하는 이 욕은 조선시대 끔찍스런 형벌 가운데 하나인 朱杖撞問刑(주장당문형)에서 비롯되었다고 볼 수 있다. 亂杖 (난장)이라고 더 많이 알려진 이 주장당문형이란 일종의 고문형인데 죄수를 가운데 두고 여러명이 그 주위를 돌면서 붉은 몽둥이로 닥치는대로 때리는 형벌이다. 오뉴월 개 패듯 한다고나 할까? (이것을 유식한 말로 犬打 式 毆打(견타식 구타)라고 한다.)
이때 때리는 몽둥이가 붉은 색이었기 때문에 이런 이름이 붙여졌으며, 중종6년(1511년)과 영조46년(1770년)에 이 형벌이 왕명으로 금지 되었으나 세간에서는 여전히 이 난장이 자행되고 있었다. 난장은 주로 상민이나 천민의 계급인 사람이 신분이 높은 여자를 범하였거나 近親相姦(근친상간) 등 반인륜적인 죄를 지은 범인을 다스리는 형벌로 쓰였다. 물론 왕명으로 금지되어 공식적으로는 행하여지지 않았으나 私 罰(사벌)로서의 난장은 민간에 오랜 관습으로 존재하고 있었다.
아직까지 이 형벌이 존재하고 있었다면 아마도 난장맞아 죽을 사람 여럿 있었을 것 이다. 이상과 같은 난장의 형에서 비롯된 이 욕의 정확한 의미는 "네 난장을 맞을 놈" 또는 "제 난장을 맞을 놈"이 줄어들었다고 볼 수 있겠다. 다시 말해서 근친상간을 했거나 신분이 높은 여자를 범한 놈이라는 말이 된다. 좀 더 함축하자면 "제미 붙을 놈"과 그 뜻이 일맥상통 한다고 볼 수도 있겠다. "태질 할 놈"이라는 욕에서 '笞(태)질'의 뜻도 난장과 크게 다르지 않다. 단, 매질할 때 쓰는 도구의 크기나 강도에 있어서 杖(장)보다는 약하다는 차이가 있다. 도구의 차이로 길이는 같았으며, 굵기에서만 0.2cm 태보다 장이 더 굵었다.
그러나, 行刑(행형)하는데 있어서 이 규격은 잘 지켜지지 않은 것으로 보아진다. 그런 이유로 나라에서는 형의 집행방법을 엄격히 지키도록 법으로 만들어 놓은것이 아닐까.
(경국대전 형전 중 濫刑(남형)에 관한 조항 참고)
笞(태)란 죄인의 볼기를 치는 도구로서 법전에 나와있는 규격은 길이 약 106cm, 굵은쪽 두께 약 0.8cm, 가는쪽 두께 약 0.5cm의 옹이를 없앤 가시 나무 회초리이다. 태형은 비교적 가벼운 죄를 다스리는데 쓰였던 형벌로서 형을 집행할 때는 형틀에 묶은 뒤 하의를 벗기고 볼기를 치는데 가는쪽으 로 쳐야하며, 부녀자는 간음한 여자를 제외하고 하의를 벗기지 않았다고 한다.
이 태형 가운데 가장 무서웠던것은 태로 등을 난타하는 笞背刑(태배 형)이라는 것이 있었다. 물론 이 형벌도 고문형의 일종으로 심한 경우 사망에 이르게 되며, 참고적으로 이 형은 세종12년(1430년)에 왕명에 의해서 없어졌다고 한다. 어떤 물건을 집어 던질 때 쓰는 속어로 "패대기 친다"라는 말과 관계가 있지않나 싶다.
③ 경을 칠 놈.
이 욕은 혼을 내주겠다는 뜻으로 쓰이고 있는데 여기서 말하는 '경'은 자 자할 경( )으로 조선시대 형벌 가운데 刺字刑(자자형)을 가리키고 있다. 자자형은 주로 재물에 관한 죄를 지은 사람에게 내려졌던 형벌로서 장형 이나 徒刑(도형)으로 治罪(치죄)한 후 얼굴이나 팔뚝에 4.5cm 크기로 盜官錢(도관전)이나 槍奪(창탈), 强盜(강도)라는 문신을 새기는 것이다.
자자형을 얼굴에 가하는 것을 '경면'이라 했는데 예종원년(1468년)에 생겨난 이 형벌은 비인간적인 이유로 거의 시행되지 않다가 영조16년(1740년)에는 팔뚝에 가하는 자자형까지 모두 없어졌다.
"경을 친다"는 것은 얼굴에 자자형을 가한다는 것이다. 즉, 상대방을 도둑놈이나 강도라고 하는 말과 같은 것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비교적 오래전에 없어졌고, 또한 거의 시행되지 않았던 형벌인데 아직까지 이 욕이 남아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아마도 중국의 영향이 컸다고 생각 한다. 그 한가지 예로 사마 천의 "史記列傳(사기열전)" 제5 손자.오기열전 편에 손빈이 방연에게 얼굴에 자자형을 당하고 두 다리를 잘리우는 형벌을 받는 장면이 나온다.
이때 방연은 손빈에게 그야말로 "경을 친"것이다. 물론 먼 훗날 손빈은 방연에게 더 큰 경을 쳐서 빚을 갚았지만 말이다. 이렇듯 이 욕은 중국의 형벌이 작품 속이나 역사 속에 전해져 내려오면서 우리 정서와 만나 아주 우리것이 되어버린 예라고 하겠다. 여기서 잠시 조선시대와 중국의 五刑(오형)에 대하여 알아보고 넘어가도록 하자.
<조선시대의 5형>
1. 笞刑(태형):가벼운 죄를 다스림. (上述)
2. 杖刑(장형):보편적인 죄를 다스림. (上述)
3. 徒刑(도형):태형이나 장형을 덧붙여 다스림. 拘禁(구금)하여 강제 勞役 (노역)을 시킴.
4. 流刑(유형):
중죄를 범하였으나 죽이지는 못할 경우 먼 지방으로 귀양 살이를 보냄. 거리에 따라 2000리, 2500리, 3000리의 3등급이 있었으며 반 듯이 장 100대가 얹어지며 妻(처)와 妾(첩)은 따라가게 했고, 부모나 자손 은 본인의 의사에 따라 결정하게 했다. 또한 서울을 중심으로 3000리가 않되는 경우에는 우회함으로 해서 거리를 채우도록 했다.
5. 死刑(사형):絞首(교수)나 斬首(참수). (다음장에 詳述)
<중국의 5형>
1. 墨刑(묵형):자자형 또는 경형.
2. 刑:코를 베는 형벌. (코벨 의)
3. 刑:발 뒷꿈치를 베는 형벌. (발 뒤꿈치 벨 월)
4. 宮刑(궁형):
불알을 까는 형벌. 생식기 불능. 이 형벌의 대표적인 희생 자로는 "史記(사기)"를 지은 사마 천을 들 수 있겠다.
5. 大 刑:목을 베는 형벌. (임금 벽)
④ 육실할 놈.
이 욕은 조선시대 5刑(형) 가운데 가장 極(극)한 형벌인 사형을 말하고 있다. 사형은 크게 두가지로 나누어져 있었는데, 그 정의를 법전에 의거하여 내려본다면 다음과 같다고 할 수 있다.
* 絞刑(교형. 교수형): 죄인의 두 손과 두 발목을 묶고 높은 곳에 매달아 목을 졸라 죽임.
* 斬刑(참형, 참수형): 죄인의 사지를 묶고 큰 칼로 목을 베어 죽임.
(絞 全其肢體 斬身首異處 교전기지체 참신수이처)
그러나, 조선시대에 사람을 죽이는 방법은 위의 두 가지 외에도 여러가 지가 있었는데 "육실할놈"의 '육시'도 그 가운데 하나이다. 이 욕은 '육시를 당해 죽을놈'이 줄어서 된 말로 육시는 한자의 쓰임에 따라 그 뜻이 달라 진다. 즉, 戮屍(육시)라 하면 이미 죽은자의 죄가 후일에 밝혀졌을 때 그 무덤을 파헤쳐 시체를 斬首(참수)하거나 四肢(사지)를 잘라버리는 陵遲處斬 (능지처참), 또는 剖棺斬屍(부관참시)를 말하는 것이고, 六弑(육시)라 하면 네 마리나 다섯 마리의 말이 끄는 馬車(마차)를 사지에 묶고 달리게 하여 사지를 다섯 토막이나 여섯 토막으로 찢어버리는 車裂(거열)을 말하는 것 이다.
물론 끔찍했던 이 형벌은 謀反大逆(모반대역)이나 殺父母(살부모)등 최고의 반도덕, 또는 체제 顚覆(전복)의 죄를 범한 사람들에게 행해졌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한명회가 죽은 뒤 연산군에 의해 이 부관참시를 당한 것은 여러분도 잘 아는 史實(사실)이리라. "육실할놈"이라는 이 욕은 이렇듯 끔찍한 뜻을 담고 있는 욕으로 민심이 흉흉했던 시대에 많이 쓰이면서 지금에 이르고 있다고 보아진다.
⑤ 오살할 놈.
이 욕도 역시 "육실할 놈"에서 소개되었던 것과 같이 車裂(거열)에서 비롯된 욕이다. 한자로는 五殺(오살)이며, 몸통과 사지를 찢어 다섯토막을 내어 죽인다는 말이다. 생각만 해도 끔찍스러운 이 '오살' 또한 반역죄등 중 죄를 범한 사람에게 행해졌던 형벌 가운데 하나이다. 그렇다면 우리 민족에게 이처럼 흉악한 욕이 人口(인구)에 膾炙(회자)되었던 까닭은 무엇일까.
이 이유는 아마도 과거 정치현실과 직접적인 연관이 있었던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다. 그 예로서 조선시대의 형벌은 體罰(체벌) 위주의 형벌이라는 점이다. 다시말해 백성을 다스리는 방법으로 몽둥이와 칼을 사용했다는 것이다. 여기에 다른 이유는 존재하지 않았으며, 백성들 또한 잘못하면 매를 맞는다는 생각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었다. 爲政者(위정자)들에게 있어서 이 방법 이야말로 가장 확실하고 빠른 방법이었을지는 몰라도 백성들, 또는 형집행을 당하는 사람들에게 있어서는 결코 민주적인 방법은 못되었다.
하기야 그 당시의 체제는 民主(민주)가 아니라 君主(군주)라는 것을 감안 한다면 당연했으리라 생각되기도 하지만, 문제는 과거가 아니라 민주주의 체제하 에 있는 현재인 것이다. 흔히 우리 민족성을 스스로 비하시키는 말 가운데 "조선놈은 맞아야 말을 듣는다"라는 것이 있다.
물론 이 말이 비롯되어진 것은 왜정시대를 거치면서라고 알려져 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를 짓밟은 왜놈들은 어떤 근거 에서 이런 말을 만들어 냈을까. 그것은 아마도 그들이 조선시대의 형벌이 체벌 위주라는 사실에 감안하여 이런 속설을 퍼뜨림으로 우리 민족 스스로 가 自愧感(자괴감)에 빠지도록 유도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다.
어떻튼 욕은 할지언정 이런 말만은 절대 쓰지 말아야겠다. 또한 매가 무서워 말을 듣는, 주관없는 思考(사고)도 버려야겠다. 그보다 앞서 가장 선행이 되어야 할 것은 권위를 내세운 폭력(폭력이라 함은 꼭 물리적이지 만은 않다.)이다.
이것이야말로 인간에게 있어서 가장 부도덕하며, 비민주적인 행위라고 감히 斷言(단언)한다.
이밖에 조선시대 사형 제도를 살펴보면 梟首(효수)와 棄市(기시), 그리고 賜死(사사)가 있는데, 효수라 하면 참수 후 잘라진 목을 기다란 막대기 끝 에 매달아 여러사람이 지나 다니는 곳에 걸어 놓는 것을 말하고, 기시라 하면 참형의 집행장소를 시장으로 하여 행한 뒤 그 시체를 길거리에 버리 는 것을 말한다. 효수는 원래 중국에서 유래된 형벌로 懸竿示衆(현간시중) 이라 불렸으며 중국의 소설이나(대표적인 예로 삼국지나 초한지 등) 역사서에서 찾아볼 수 있다. 사사는 조선시대 역사상 가장 많이 시행되었던 사형 가운데 하나로 王命 (왕명)으로 飮毒(음독)케 하는 것이다. 이 형벌 역시 왕족이나 공직자가 逆 謀(역모)에 연루되었을 때 시행되었던 것이며, 아마도 권력의 다툼에서 패했을 경우 억울하게 죽임을 당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보아진다.
이러한 사형제도는 그 방법이 바뀌기는 했지만 오늘날까지 형법 안에서 이어져 왔으며, 앞으로 비인간적이라는 이유로 이러한 법을 폐지시켜야 한다는 가부간의 문제는 숙제로 남아 있다고 할 수 있겠다.
⑥ 우라질 놈.(오라질 놈)
이 욕은 "오라질 놈"이라고도 많이 쓰이고 있으며 노인들이 입버릇처럼 많이 쓰고 있는 욕이라 하겠다. 심지어는 손자들의 뜻밖의 귀여운 행동에도 혼잣말처럼 이 욕을 사용하는 것으로 보아서 옛날부터 이 욕이 많이 쓰여져 왔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증명할 수 있다고 하겠다. 그렇다면 이 욕에서 나타나는 "우라(오라)"는 무엇인가. "우라"는 "오라"의 된소리로, 역시 조선시대 죄인을 묶을 때 사용했던 붉고 굵은 밧줄을 일컫는 "오랏줄"의 줄임말이다. 이 오랏줄의 사용은 현대의 형법에까지 이어져 중죄인의 경우 수갑을 채운 뒤 흰색의 捕繩(포승)줄로 결박짓고 압송하고 있다. '질'은 '지다'의 원형으로 뒷짐지다와 같이 두 손을 뒤로 젖혀 맞잡는 것을 말하는 것으로 "오라질"하면 두 손을 뒤로 젖혀 오랏줄로 결박을 진다 는 뜻이다. 그러므로 이 욕은 상대방이 못된 짓을 하여 오랏줄로 묶인다는 말이다.
⑦ 떼갈 놈.
이 욕 역시 "오라질 놈"과 비슷한 뜻을 담고 있는 욕으로서 죄를 지어 포도청에서 잡아 갈 놈이라는 말이다. 이렇듯 우리 민족이 사용해 왔던 욕에는 관청에서 잡아 가거나, 형벌을 당한다는 말이 많이 쓰이고 있다. 이는 우리 민족이(좀 더 세분화 하자면 권문 세도가를 제외한 일반 백성. 民草(민초).) 정부나 관청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었으며, 법은 일반 백성의 곁에 있었던 것이 아니라 일부 권력층에 있는 세도가들의 便宜物(편의물)이었다는 것이 증명되는 셈이다.
이러한 폐단은 백성을 주인으로 한다는 현체제(민주주의) 아래에서도 자행되어 왔던 일이며, 그렇기 때문에 아직까지 "떼간다"라는 말이 사용되어 왔다고 생각한다. 소위 任意同行(임의동행)이라는 형식을 빌어 사전 영장 없이 '떼잡혀'가서 폐인이 되거나 영영 돌아오지 않는 사람을 우리의 주위 에서 왕왕 보아왔던 것이 어제까지의 현실이다. 심지어 고문으로 죽음에 까지 이르게 한 사건은 가히 현대가 조선시대의 연장이라는 생각까지 들게 하고도 남음이 있으리라. 우리는 여기서 잘못된 역사는 되풀이되지 말아야 한다는 역사가 주는 교 훈을 한 번 더 상기하고 넘어가야 하겠다. 溫故而之新(온고이지신).
⑧ 주리를 틀 놈.
이 욕에서 말하고 있는 周牢(주리. 牢=굳을 뢰.로.) 역시 조선시대 형벌 가운데 하나였으며, 剪刀周牢刑(전도주뢰형)의 줄임말이다. 剪刀(전도)라 하면 가위의 한자말이며, 이 형의 이름에서도 나타나 있다시피 양 다리를 가위 벌리듯 찢는다는 말이다. 이 형벌은 일종의 고문형으로 죄인의 양 다리와 사지를 결박하여 의자에 앉히거나 바닥에 자빠뜨린 다음 붉은 색의 주릿대를 가랑이 사이에 넣고 벌리는 것으로 비록 誣告(무고)한 사람이더라도 없는 죄를 실토하고 마는 혹독한 방법이라 할 수 있겠다. 물론 이 형을 받은 뒤에 불구가 되는 경우 가 많았다.
이런 참혹한 형벌이기에 왕명으로 금지되기도 하였는데, 숙종5년(1679년) 의 옥사에서도 李元楨(이원정)의 반대로 이 형벌이 실행되지 않았고 영조8 년(1732년)에는 임금이 이 형벌을 革罷(혁파)할 것을 명한 역사적 사실이 기록되어 있기도 하다. 그러나, 이 형벌은 그 후로도 100여년을 넘게 비공식적으로 행해져 왔고 민간에서 이 형은 증오의 대상이 되어있었다. 그래서, 아주 못된 놈을 일컫는 욕으로 많이 쓰였으며 이 형에 대한 증오심을 상대방에게 轉移(전이)시키려는 의도가 욕하는 사람의 의식의 저변에 짙게 깔려 있었다.
⑨ 치도곤 맞을 놈.
治盜棍(치도곤)이란 말 그대로 도적을 다스리는 몽둥이로서 조선시대에 사용되었던 棍(곤)과 杖(장) 가운데 가장 중한 몽둥이 였다. 치도곤의 규격은 길이가 약 173cm 였으며 두께는 약 3cm로 다른 곤에 비해 넓적한 형태가 아니라 둥글었으며 치도곤이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었다.
아마 요즈음 의 데모 진압대 전경들이 가지고 다니는 몽둥이나 다듬이질에 사용되는 방망이를 상상하면 이해가 빠를 것이다.
참고적으로 이 외의 곤에는 重棍(중곤), 大棍(대곤), 中棍(중곤), 小棍(소곤)이 있었으며, 가장 작은 곤인 소곤의 규격은 길이 약 154cm, 폭 약 12cm, 두께 약 1.2cm의 넓적한 형태에 역시 소곤이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었다. 다른 나머지의 곤은 치도곤과 소곤의 규격 안에서 약간씩의 차이를 보이고 있었다고 생각하면 된다.
이 몽둥이로 형을 가할 때는 넓적다리와 둔부를 번갈아 때렸으며 도적이나 서울 지역, 또는 封山(봉산. 조선시대의 산림 보호정책으로 소나무 벌채 를 금지하는 지역.)에서 소나무를 伐採(벌채)한 죄인에 한해서 이 몽둥이로 다스렸다. 그러므로 이 욕은 "주리를 틀놈"이라는 욕과 비슷한 심리 상태에서 쓰여진 것으로 보여지며, 상대방을 도둑놈이라고 치부해 버리는 것이다. 도둑놈도 안잡힌 도둑이 아니라 붙잡혀서 치도곤을 맞을 도둑놈이라는 말이다. 이런 역사적인 배경을 알고서 이 욕을 듣는다면 글쎄 기분 좋을 사람은 아마 한 사람도 없을 것이다.
⑩ 끓는 물에 삶아 죽일 놈(육장낼 놈).
조선시대 형벌이 사용되어진 욕 가운데 마지막인 이 욕은 역시 말만 들어도 行刑(행형)되었던 형벌의 잔혹성이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이 형벌은 말로만 끔찍했지 실상은 그렇지가 않은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 욕은 烹刑(팽형. 삶을 팽)을 가리키는 것으로서 煮刑(자형. 삶을 자)이라 불리기도 했는데, 백성의 재물을 貪(탐)한 관리에게 국한되어 사용되진 것으로 보인다. 이 형벌의 자료로는 성종 때 노사신, 강희맹 등이 쓴 "東國與地勝覽(동국여지승람)"이 있는데, 이 자료에 의하면 "民間(민간)에서 말하기를 관원으로서 재물을 탐한 자를 惠政橋(혜정교) 위에서 삶는다 한다." 라는 대목이 이 형벌에 대한 설명으로 전하고 있다. 또 하나 비교적 상세하게 기록되어진 그 후의 자료로 경성형무소장을 지 냈던 中橋政吉(중교정길)이라는 일본사람이 지은 "朝鮮舊時의 刑政(조선구 시의 형정)"(1937년)을 들 수 있는데, 외국 사람의 시각으로 본 조선시대의 刑政(형정)이라는 관점에서 참고할만 하다.
이 자료를 근거로 팽형, 또는 자형의 집행방법을 살펴본다면 이렇다. 종로의 사람 많은 다리 위에 커다란 아궁이를 만들고 가마솥을 걸어 놓는다. 아궁이에는 나무가 지펴져 있으나 불을 붙이지는 않는다. 이런 준비가 끝나면 재판장 격인 포도대장이 엄숙하게 재판석에 나와 앉고 죄인에게 죄명을 선고하고 처형을 下命(하명)하면 빈 가마솥, 또는 미지근한 물이 담 긴 가마솥에 죄인을 쳐박아 넣고 불을 때는 시늉만 한다. 이 때 죄인은 죽은 듯이 있어야 하며, 형의 집행이 끝나서 가족에게 인도될 때에도 마치 끓는 물에 삶겨 죽은 듯 행동해야 한다. 가족들도 죽은사람 대하듯 呼哭 (호곡)하며 喪禮(상례)를 갖추어 죄인을 인도받아야 하며, 귀가 후 이 죄인은 몸은 살았으되 죽은자와 똑같이 취급을 받아 장례를 치루고 공식적으 로 가족 외에 아무도 만날 수 없으며 외부 출입도 일체 금지되었다고 한다.
이러한 절차로 보았을 때 이 형은 단지 삶아 죽이는 흉내만 냄으로 해서 다른 여러 사람에게 警鍾(경종)을 울리는 효과를 꾀하고 있다고 하겠다. 시쳇말로 여러 사람 앞에서 쪽팔림을 당했다고나 할까? 여하튼 조선시대의 형벌이 아무리 혹독했다 하더라도 재물을 탐한 죄를 물어 끓는 물에 삶겨 죽이지는 않았으리라 보아진다.
어떻게 보면 그 혹독했던 형벌 가운데 이 형벌은 우리 민족의 지혜가 엿보인다고 할 수도 있겠다. 그렇지만 욕으로 사용되는 의도에는 흉내가 아니라 다분히 실천의 의지가 엿보인다고 할 수 있겠다. 바꾸어 말하자면 저주가 담긴 살기 띤 말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리라. 그리고, 이 욕은 다른 말로 "肉醬(육장. 간장 장)낼 놈"이라고 쓰이기도 하는데 '육장'이란 고기를 잘게 쓸어서 만든 장조림을 말하며 위에서 언급 했던 팽형에서 팽자가 삶는다는 뜻 외에 요리를 뜻하고 있다는 점을 감안 하여 파생된듯 하다.
잘 알다시피 장조림은 삶은 고깃덩어리를 간장에 넣고 다시 한 번 쪼려서 만드는 음식이 아니던가. 아뭏튼 사람을 '육장' 낸다 니 말만 들어도 등골이 오싹해지지 않는가? 참고적으로 팽형의 기원을 더듬어 보자면 기원 전 중국으로 거슬러 올라 가게 된다. 姜太公(강태공. 呂尙.)의 도움을 얻어 주나라를 세운 武王(무왕) 에게 멸망당한 은나라의 마지막 왕인 紂王(주왕)의 暴政(폭정)에서 그 시초를 찾을 수 있다고 하겠다. 그 당시 주왕은 애첩 달기의 요염함에 혼을 빼 앗기고 있었는데 호화판의 궁을 지어놓고 그 안에서 온갖 난잡한 형태의 쾌락을 추구하고 있었다.
그 가운데 하나가 팽형으로 기름이나 물을 펄펄 끓이는 가마솥을 걸어놓고 기름을 바른 철봉을 세운 뒤 그 철봉을 잡고 사람을 건너게 했다고 한다. 물론 무사히 건너가면 살아날 수 있었으나 철봉 에 바른 기름의 미끈거림으로 대부분의 사람은 가마솥 안으로 떨어져 죽었다고 하는데 살려고 바둥거리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며 주왕과 달기는 무척 즐거워 했다고 한다. 우리는 이런 史實(사실)을 통해서 인간이 어디까지 잔혹해 질 수 있겠느냐는 의문을 한 번쯤 가져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러한 인간의 잔혹함은 비단 물리적인 행동에 의해서만이 아니라 언어의 폭력에 의해서도 가능하다는 것을 상기해 주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8. 욕 속의 개(犬).
개는 사람과 가장 오랜 세월을 함께 살아 온 동물이다.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속담이나 격언, 또는 상소리 속에서 이 동물이 많이 등장하고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물론 욕 속에서도 단연 개(犬)자가 들어가는 욕이 가장 많을 것이다. 그래서 개를 주제로 한 별도의 章(장)을 만들어 분석을 하려는 것이다. '개'자가 사용되어진 욕을 실례를 들어 설명하기에 앞서 먼저 '개'라는 단어를 분석해 보는 것이 순서일것 같다.
① 개의 두 가지 뜻.
욕에 나타나고 있는 개는 보통 두가지 뜻으로 쓰이고 있으며, 첫째로 동물로서의 개를 설명할까 한다. 동물로서의 개라는 말은 개가 짖는 소리인 '강강' '캉캉' '깡깡'에서 파생되었다.
즉, '강강' 짖는 동물이라 하여 '가희' 또는 '가이'라고 불렸던 바, 옛날의 문헌 안에서 발견되는 개는 다음과 같이 서술되고 있다.
* 계림유사 -> 狗曰家稀(구왈가희)
* 월인석보 -> 狗(구)遁 가히라
* 두시언해 -> 희불근 곳과 힌가야지 가얍도다
그러므로 개는 가희->가히->가이->개 라는 변천과정을 겪어 왔다고 보여지며, 강아지는 가히야지->가야지->강아지 로 변해 왔다고 보여8. 욕 속의 개(犬). 진다.
(개를 '강이'라고 부르는 사투리가 아직 남아있다.)
여기서 '아지'는 조그마한 것을 나타내는 우리말로서 가히+아지 라하면 개의 새끼를 말하는 것이 된다. 그러므로 동물의 새끼를 나타내는 말의 어미는 모두 아지로 끝나는 것을 볼 수 있다. 예외로 닭의 새끼는 아지가 아니라 '아리'로 끝나는데 이 또한 작은 것을 나타내는 말로 닭의 새끼가 내는 소리인 "비육비육"에서 병아리를 '비육'이라 했고, 비육+아리 라고 접미사가 붙어 병아리가 된 것이다.
둘째로 개는 동물이 아니라 단어의 앞에 붙는 접두사로 '함부로 되어 변변치 못한' 또는 '야생의'라는 뜻으로 쓰이고 있다. 즉, 접두사 '참-'과 반대 의 뜻으로 쓰이고 있으며 예를 들자면 '개나리, 개미나리, 개살구, 개떡, 개꿈' 등이 있다. 접두사 '참-'의 예로는 '참기름, 참외, 참말' 등이 있다. 다음 장부터는 '개'자가 들어가는 욕의 실례를 들어가며 이야기를 풀어 나가겠는데, 이상에서 설명한 '개'의 두가지 뜻을 상기하며 읽어 본다면 이 욕들에 대해 색다른 느낌을 받게 될 것으로 생각한다.
② 개새끼. 개같은 놈.
"개새끼"라는 이 욕은 "좆"이나 "씹"이 들어간 욕과 더불어 가장 많이 쓰이고 있는 것 중 하나이다. 사용 빈도수가 많은만큼 그 사용자층도 다양한데, 현재 우리나라의 남녀노소 구애됨이 없이 무차별적으로 사용되어 지고 있다고 보아진다. 심지어는 영화나, 텔레비젼의 드라마 속에서도 이 욕이 여과없이 표현될 정도니 얼마만큼 이 욕이 대중화되어 있다는 것이 짐작되리라.
500년 후에 개봉될 타임캡슐 속에 20세기 한국의 대표적인 욕으로 이 욕이 들어 있는지 궁금하다. 어떻튼 이 욕의 사전적 의미는 개와 같은 놈이라는 말로 상대방을 비하시키고 있다. 또는, 개의 자식이라는 뜻으로 상대방은 물론 그를 낳아준 부모까지도 욕되게 하는 말로 쓰이고 있다. 개의 자식이니 그 부모도 개라는 말이 아닌가. 그 외 다른 뜻으로도 해석을 할 수가 있겠는데, '개'를 동물이 아닌 접두사로 해석을 하더라도 그 뜻은 '새끼'라는 단어로 인해 역시 욕으로 받아들여진다고 하겠다.
이렇게 되면 "개새끼"라는 욕은 '함부로 되어 변변치 못한 새끼'라는 뜻이 되며, 최소한 상대방의 부모까지 욕되게 하는 의도는 없어진다고 하겠다. 그렇지만 역시 욕은 욕이며, 중요한 것은 이런 욕을 습관 적으로 사용해서는 안되겠다는 것이다. 또한, 비싼 밥 먹고 이런 욕 먹을 짓을 해서는 결코 이 욕이 도태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③ 개잡년(개잡놈).
이 욕은 '개년+잡년'이 합성되어 이루어진 말로 행실이 바르지 못하거나 난잡하고 더러운 여자나 남자를 가리켜서 하는 욕이다. 그러니까 상대방의 外觀(외관) 보다는 눈으로 직접적으로 보이지 않는 행동이나 처신을 탓하는 욕이라 하겠다. '개년'이나 '잡년'이라고 독립적으로 쓰이더라도 심한 욕이 되는데 두 욕을 한꺼번에 묶었으니 두 말할 나위가 있을까?
④ 개좆 같은 놈(개보지 같은 년).
"개좆 같은 놈"이라는 욕은 "3. 좆이 사용된 욕"에서 이미 서술하였기에 생략하기로 하고, 이와 비슷한 뜻으로 쓰이나 여성들에게 한해서 사용되는 "개보지 같은 년"이라는 욕에 대해서 말해볼까 한다.
이 욕에서 말하는 '개보지'는 물론 암캐의 생식기를 말하는 것이다. 잘 아다시피 개들은 (특히 동네를 배회하는 잡종견) 누가 보던말던 아무곳에서나 기회가 있으면 교미를 한다. 개들에게 있어서 암캐는 본능적인 성욕구의 대상으로 보여진다. 그러므로 암캐의 교미 대상은 어떤 종류의 개라도 상관하지 않고 단지 숫놈만을 가린다.
물론 일부 족보있는 개들은 같은 종류끼리 짝짓기를 하지만 그것은 다분히 사람들에 의해서 선택이 되는것일 뿐 개들의 의지와는 별개의 것이다. 족보있는 개라고 하더라도 발정시 잡종견과 섞여있다면 잡종견과 교미를 하게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런 이유로 "개보지 같은 년"이란 욕은 성적으로 문란하거나 추잡스러운 여자 라는 얘기가 된다. 참고로 성숙된 암캐의 발정은 일년에 두번 일어나며 발정기간은 약 20일 정도 지속된다. 발정 여부는 외음부의 부종과 혈액성 분비물을 보고 알 수 있는데 발정 개시 후 13일쯤 경과되면 외음부의 부종이 줄어들고 분비액의 색깔이 핑크색으로 옅어지게 된다.
이 때가 교미를 통한 임신의 최적기이다. 이 기간 동안에 주위의 숫컷들이 모여들게 되며 사람의 저지가 없으면 몇회라도 교미를 한다. 개의 임신기간은 61~63일 정도이며 3일 정도 늦거 나 빠를 수도 있다.
'개보지'를 개(犬)가 아닌 접두사로 쓰더라도 그 뜻에 큰 변화는 없다고 보아진다. 역시 '흔하다' 또는 '함부로'라는 뜻이 포함되어 자연적으로 개 (犬)를 연상시키게 되는 것이다. 그러니 '개보지'의 '개'가 개(犬)가 아니더라도 '흔한 보지' 또는 '함부로해도 되는 보지'라는 뜻이 되므로 발정난 암캐의 보지와 별반 다를것이 없겠다.
⑤ 개 망나니.
"개 백정"이라고 쓰기도하는 이 욕은 품위없거나 교양없는 막되먹은 사람을 가리키고 있다. 조선시대 최하위 계층으로서 갖은 설움과 멸시를 당하며 살았던 백정이나 망나니보다 더 천하게 보고있는 이 욕 속의 '망나니'는 물론 개 잡는 것을 업으로 삼고있는 사람이다. 개를 食用(식용)으로 쓰고있는 나라에서만 볼 수 있는 직업이라 하겠다.
⑥ 개 뼉다구 같은 놈.
이 욕도 역시 '개'가 들어간 모든 욕과 마찬가지로 함부로 되먹은 사람을 가리키고 있다. "개같은 놈"이라는 욕에서 '뼉다구'라는 말만 추가된 이 욕 은 아무짝에도 쓸모 없다는 뜻도 내포하고 있다. 또한 굶주린 개의 앙상한 몰골을 암시적으로 나타내고 있기도 한데, 이는 쓰레기통을 뒤지며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며 다니는 동네 잡종견의 보기 흉한 모습을 사람에 빗대어 나타낸 욕이기도 하다.
음식이던 지식이던 영양가 있는 것을 섭취한게 아니라 먹어서 똥만 만드는 것을 섭취해 외양이나 정신이 疲弊(피폐)해 있는 상태의 사람을 일컫는 이 욕에서 우리는 절대 이런 사람만은 되지 말아야겠다는 다짐을 한 번 해본다. 못되더라도 개의 뒷다리 정도는 되어야하지 않을까?
⑦ 개만도 못한 새끼.
이것은 분명히 사람에게 하는 욕이다. 사람에게 "개새끼"라거나 "개같은 새끼"라 해도 치욕적으로 들리는데 이 욕은 한술 더 떠서 개만도 못하다고 하니 욕의 급수로 따져 본다면 "개새끼"보다 한 단계 위일것 같다.
우리 민족의 정서에서 개는 몹시 천하다는 이미지로 받아 들여지고 있 다. 물론 주인을 알아보고 그 주인에게 충성한다는 좋은 의미로서 개도 있지만 일반적으로 '개같다'라고 한다면 안좋은 의미로 받아들여 진다. 이것은 확실히 동양과 서양의 차이라고도 말 할 수 있겠다. 한 가지 예로 얼마전 개봉된 서양의 영화 가운데 "개같은 내 인생"이라는 것이 있었다. 이 영화에서 말하고 있는 개는 우리가 상상했던 개와는 아주 많은 차이를 보이고 있다. 서양에서 개는 애완 동물로서 사람과 늘 가까이하며 귀여워해주고 사랑해 주는 대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아 마 그런 이유 때문에 개를 식용으로 쓰는 우리나라를 야만국이라고 공격하고 있는것 같다.
그런데 한 가지 이 사실만은 짚고 넘어가자. 개고기를 잘 먹는 우리나라 사람도 서양에서 애완용으로 키우는 그런 개들은 공짜로 줘도 안먹는다는 것이다. 왜? 맛이 없으니까! 어떻튼 서양, 특히 프랑스 쪽에서 우리나라를 개고기를 먹는다는 이유로 공격하고 있는것은 개고기를 먹는 사람 안 먹는 사람의 문제를 떠나서 문화의 침략이라고 규정지을 수 밖에 없다. 개고기를 먹고 안먹고의 문제는 우리 민족 스스로의 문제지 그네들이 관여할 문제는 아닌 것이다. 이 문제에 대해서 더 말 하다가는 욕 나올것 같아 이만 접도록 하겠다.
⑧ 개나발. 개소리.(개소리엔 똥이 약이다.)
아무렴 그렇지. 멍멍 짖어대는 개소리에는 역시 똥이 특효약이다. 똥 먹느라 조용하니 특효약이 아니고 뭣이겠는가. 물론 '똥'이 의미하는 것은 꼭 배설물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똥'은 상징적인 의미로 쓰여지고 있으며 "개소리"나 "개나발"은 동물인 '개'가 연상되어 개가 짖는 소리나 개가 부는 나팔이라고 생각되기 쉬우나 사실은 동물의 '개'가 아니라 접두사로서 쓰이고 있다. 따라서 "개나발"은 함부로 불어대는 나팔소리를 "개소리"는 함부로 지껄이는 소리를 가리키고 있으며 조금도 사리에 맞지 않는 허튼 소리나 엉터리같은 이야기를 빗대어 이렇게 말하는 것이다.
⑨ 개차반.
이 욕은 행동을 함부로 하거나 성격이 더러운 사람을 가리키는 말로서 상대방을 '똥'이라고 치부해 버리는 것이다. '차반'은 채반에서 비롯된 말로 새색시가 覲親(근친. 친정 어머니를 뵈 옴.)할 때나 근친 후 시집에 와서 정성껏 맛있게 잘 차려놓은 음식이나 음식상을 말하는 것인데 개에게 있어서 이렇듯 맛있는 음식은 똥이라 하여 이런 말이 생겨난듯 하다. 그래서 행동이나 매너가 더러운 사람을 가리켜 "개차반"이라고 일컫는 바, 개가 똥을 먹는 더러운 상황을 연상되게 하는 점잖은것 같지만 더러운 뜻을 내포하고 있는 욕이라 하겠다.
⑩ 개수작.
'酬酌(수작)'이란 술잔을 주고 받거나 말을 주고 받는 것을 가리키므로 "개수작"이라 하면 함부로 주고 받는 말을 일컫는 것이다. 그러나, 실제 쓰 이는 것은 사리에 맞지 않는 행동이나 말을 하는 사람에게 사용되고 있다. 특히 엉뚱한 행동에 대해서 "개수작 떨고있다"고 많이 쓰인다. 이 욕에서 '개'는 접두사로 쓰이고 있다고 하겠다.
⑪ 개불쌍놈.
성미가 아주 고약하거나 더러운 사람을 가리키는 이 욕은 "출생및 사망 에 관한 욕"에서 비교적 자세히 다루어진 "쌍놈"이라는 욕과 "개불"이라는 단어가 합성이 되어졌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개불쌍놈"에서 '개불'은 무얼 말하는 것일까. 그것은 바로 개의 불알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래서 이 욕은 "개 불알같은 쌍놈"이라는 말이 줄어진 것이라 하겠다. 어찌보면 "개 좆같은놈"과 비슷한 뜻을 담고 있다고 볼수 있다.
⑫ 개가 쓰여진 속담.
이 장에서 다루어지게 될 개는 모두 동물로서의 개가 될 것이다. 비록 욕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우리 민족이 흔하게 사용하고 있는 개가 쓰여진 욕을 이해하는데 다소나마 참고가 될까하여 첨부하는 바이다.
지난 장에서 말했듯이 개는 우리 민족에게 있어서 천하게 받아 들여지고 있는데 이는 개가 사용되어진 속담에서도 잘 나타나고 있다. 그럼 이제부터 개가 쓰여진 속담과 그 뜻에 대해서 대략적으로 알아보도 록 하자.
* 개눈엔 똥만 뵌다.->
누구든 제가 좋아하거나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 이 먼저 눈에 띈다.
* 미친개는 몽둥이가 약이다.->
미친개처럼 막돼먹은 놈은 때려서라도 버릇을 고쳐야 한다.
* 개같이 벌어 정승같이 쓴다.->
직업의 귀천을 따지지 않고, 또는 체면 가리지 않고 돈을 벌어 쓸때는 정승처럼 귀하게 쓴다.
* 개팔자가 상팔자.->
주인에게 먹을것과 입을것을 모두 제공받으므로 걱정할 필요가 없으니 걱정이 끊이지 않는 사람 팔자보다 좋다는 뜻.
* 오뉴월 개팔자.->
날이 더워 아무 곳에서나 걱정없이 늘어지게 잠을 자는 개의 팔자가 좋다는 뜻. 그렇더라도 삼복에는 신경 좀 쓰일껄?
* 오뉴월 개패듯 한다.->
개고기를 먹기 위해서 개잡는 모양을 빗대어 하는 말. 우스개 소리로 犬打式毆打(견타식구타)라 한다.
* 개 보름 쇠듯 한다.->
잘 먹고 지낼 때 도리어 잘 먹지 못하고 지냄. 정월 대보름에 개에게 먹이를 주면 여름에 파리가 꾀며 개가 여위므로 이 날은 개를 굶겼다는 기록이 "京都志(경도지)"나 "東國歲時記(동국세시기)" 에 전하고 있다. 그러나, 민간에서 알려진 실제 이유는 다분히 呪術的(주술적)인데 있다. 달은 음에 해당되고 정월 대보름에 여자들은 달을 쳐다보며 음의 기운을 쏘이는데 이 날 개에게 먹이를 주면 달과 相剋(상극) 관계에 있는 개가 힘이 솟아서 달을 먹어 버린다는 이유로 하루종일 개에게 먹이를 주지 않았던 풍속이 있었다. 이 날 만큼은 개팔자가 상팔자는 아니었으 리라.
* 제버릇 개주랴.->
세 살 버릇이 여든까지 간다는 속담과 같은 의미. 나쁜 버릇은 고치기가 힘들다.
* 개구멍에 망건치기.->
빼앗길까 봐 겁을 먹고 막고 있다가 막고 있던 그 물건까지 잃음.
* 개구멍으로 統凉(통량) 갓을 굴려 낼 놈.->
교묘하게 사기 수단을 부리는 사람. 토량갓(경남 통영(충무시)에서 만드는 질 좋은 갓.)
* 개털에 벼룩 끼듯.->
좁은 바닥에 많은 것이 득시글득시글 몰려있는 모양.
* 虎父無犬子(호부무견자)->
범같은 아버지에 개같은 자식은 없다. 콩 심은데 콩 난다고 할까? 種豆得豆 種瓜得瓜(종두득두 종과득과)
* 개가 웃을 일이다.->
도무지 사리에 맞지 않아 당찮은 일이라 개가 웃을 지경이다.
* 개가 짖는다고 다 도둑이 아니다.->
남들이 떠든다고 다 옳은 일은 아 니다.
* 개도 먹을 때는 건들지 않는다.->
물리니까. 큰 잘못을 저질렀어도 먹을 때는 때리지 않는다.
* 개똥도 약에 쓰려면 없다.->
보잘것 없고 흔한것도 쓰려고 찾으니 없 다.
* 사흘 굶은 개 몽둥이가 안뵌다.->
악에 받치면 체면도 두려움도 없다. 굶주림 앞에는 양반도 없다나?
* 개밥에 도토리다.->
무리에 끼지 못하고 따돌림을 당하는 신세다.
* 개새끼도 제 주인은 물지 않는다.->
배은망덕한 사람을 나무랄 때 쓰 는 말.
* 개새끼 친해봐야 똥칠만 한다.->
실이 나쁜 사람과 사귀면 언젠가는 봉변을 당하게 된다.
* 개새끼도 주인을 보면 꼬리 친다.->
사람이 개만 못하여 주인을 몰라 보느냐고 나무라는 말.
* 개가 똥을 마다하랴.->
돼먹지 못한 놈이 챙길 것은 다 챙긴다.
* 개하고 똥을 다투지.->
막돼먹은 사람과는 이해관계를 따지지 않는다.
⑬ 그 외 개가 들어간 단어.
* 개밥바라기->
금성(金星) 또는 장경성(長庚星), 태백성(太白星)이라 불 리우는 서쪽 하늘의 큰 별. 저녁에 보이는 금성을 '개밥바라기'라 부르는데 배가 고파진 개가 이 별이 뜰 때쯤 밥을 먹게 되므로 이렇게 불리우게 되 었다. 새벽의 동쪽 하늘에 보이는 금성은 샛별 또는 명성(明星), 啓明星(계명성)이라 불리운다.
* 개죽음->
무익한 죽음. 값 싼 죽음. * 개코-> 냄새를 잘 맡는 코. 은어로서 형사를 가리키기도 한다.
* 개털->
돈 없는 사람을 일컫는 죄수들의 은어. 반대말은 범털이라 한 다. 역시 개와 범은 상반되는 가치기준을 가지고 있다.
* 개피->
어떤 일에 함부로 뛰어들었다가 손해를 봄.
* 개꿈->
대중없이 함부로 꾸어진 꿈. 꿈에 개가 보였다고 해서 개꿈은 아니다.
* 개다리질->
방정맞고 얄밉게 구는 행동.
* 개뿔->
있으나 마나한 것. 아무 것도 아니다. 사족(蛇足).
* 개기름->
얼굴에 번질번질하게 끼는 기름.
* 개망신->
아주 큰 망신.
* 개폼->
실속도 없으면서 잘난 체 하는 것을 비웃는 말.
* 개꼴->
체면이 아주 엉망으로 된 꼬락서니.
*개꿀->
벌집에 들어 있는 채로의 꿀.
* 개꽃->
먹지 못하는 철쭉꽃을 참꽃에 대하여 일컫는 말. 또는 산에서 야생하는 7-8월에 줄기와 가지 끝에 흰 꽃이 피는 엉거시과의 1년초.
* 개잠->
개처럼 머리와 팔다리를 오그리고 자는 잠. 또는 아침에 깨었 다가 도로 드는 잠. 改잠.
* 개판->
무질서하고 난잡한 상태.
* 개떡->
매우 보잘것 없음. 농촌 생활이 궁핍한 때 주로 해먹던 떡으로 처음에는 겨로 만들었다 해서 '겨떡'이라 불리웠다. 맛이 거칠고 형편 없었으므로 이 처럼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을 개떡에 비유해서 '개떡같다'라는 말 이 생긴것으로 보아진다.
* 개똥참외->
길 가나 들에 저절로 자라서 열린 참외. 보통 참외보다 작고 맛이 없음.
* 개똥갈이->
개똥 거름을 주어 밭을 갊.
* 개개다->
성가시게 달라붙어 손해되다. '개긴다'라고 쓰는것은 잘못된 것이다.
* 출처 : C가 있는 홈페이지 ( http://myku.hihome.com/doc/chat/slang-1.html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