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동물이 쓰이는 욕.
우리 민족이 사용해 왔고, 또 현재까지 사용되고 있는 욕 가운데는 동물에 빗대어 하는 욕이 의외로 많은 것을 볼 수 있다. 아마도 이것은 우리 민족이 다른 민족에 비해 상상력이 풍부하고 이 풍부한 상상력을 생활에 접목시키는 표현력 또한 풍부하다는 이유로 바꿔 말할 수 있겠다. 비록 그것이 욕이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그렇게 자랑스럽지는 않겠지만, 욕이 아닌 다른 분야에서도 이런 점들을 접할 수 있는 것으로 보아서 오히려 다른 민족에 비해 언어 표현력의 우수성은 인정해야 할것이다. 이것은 아무래도 우리 민족성의 일부이며,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한글은 이런 의미에서 우리 민족성을 아주 적절하게 수용하고 있는 잘 만들어진 그릇과도 같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한 가지 좋은 예로 황진이의 시조 한 수를 들어보자.
冬至ㅅ달 기나긴 바믈 한 허리를 버혀 내어
春風 니블 아래 서리서리 너헛다가
어른님 오신 날 밤이여든 구뷔구뷔 펴리라
한글로 써서 우리의 감정이 잘 표현된 이 시조를 英譯(영역) 한다면 과연 감정의 移入(이입)이 제대로 될 것인가? 특히 '서리서리 넣었다가 구뷔 구뷔 펴리라'는 대목은 세계 어느나라의 언어를 사용 하더라도 100% 감정 이입은 불가능할 것이다.
이러한 예는 얼마든지 있으며, 이는 우리 한글의 우수성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럼 이제부터 이렇게 우수한 한글로 표현된 우리 민족의 격한 감정을 나타내는 동물이 쓰인 욕에 관해서 알아 보도록 하자.
① 금수만도 못한 놈.
禽獸(금수)라 하면 날짐승과 길짐승을 통괄하여 부르는 말이다. 즉, 영장류인 사람을 제외한 모든 짐승을 통칭하는 말로 쓰이고 있다. 그렇지만 이 말은 사람을 가리키기도 하는데, 인륜이나 도덕을 짓밟는 행동을 일삼는 자에게 욕으로서 "금수 같은 놈"이라고 쓰이고 있다. "금수 같은 놈"이라는 말도 이런 뜻을 내포하고 있는데, "금수만도 못한 놈"은 과연 어떤 '놈'일까? 아마도 돈 때문에 제 아버지를 죽이는 그런 사람이 이 부류에 속하지 않 을까 하는 생각이다.
② 여우 같은 년(늑대 같은 놈).
이 욕은 주로 여자를 향해 하는 욕이며 상대적으로 남자에게는 "늑대 같은 놈"이라는 욕이 쓰이고 있다. 이 욕에는 각각 동물의 특징을 사람의 성격이나 외양에 비유하는 뜻이 담겨져 있다.
여우라 하면 우리 민족에게는 교활함의 대명사로 통하고 있다. 그래서 예로부터 사람을 홀리거나 괴롭히는 요물 가운데서도 꼬리가 아홉 달린 九尾狐(구미호)를 으뜸으로 치고 있으며, 이는 옛날 이야기나 귀신 이이야기 속에 여우가 등장하는 횟수를 보면 가히 짐작이 가고도 남으리라. 서양의 경우도 예외는 아니어서 "foxy" 라 하면 교활한 사람을 나타내고 있다. 그렇지만 서양의 여우가 함축하고 있는 뜻은 다분히 섹스어필 하고 있다는 것이 우리와 차이라면 차이라 하겠다. 惱殺的(뇌쇄적)인 미모의 여인을 여우에 비유한다 해서 우리가 쓰고 있는 욕으로서의 의미가 전달되는 것은 아니니까 말이다.
늑대 또는 이리에 비유되는 남자에게 쓰여지는 욕은 정신 분석학적으로 설명하고 싶다. 프로이드의 정신 분석에 따르면 인간의 모든 심리적 기능의 종합체인 의식(Mind)은 원시적이고 본능적인 동물에 가까운 이드(Id)와 의식과 이성적 행동을 통제하는 자아(Ego), 그리고 이드를 통제하는 무의식적 기제인 초자아(Super ego)로 나뉘어져 있다고 한다.
평상시 우리는 자아의 통제를 받으며 살고 있지만 때때로 머리를 치켜드는 이드의 존재를 확인하게 된다. 보통 이러한 이드는 초자아에 의해 행동으로 옮겨지는 것이 실패로 끝 나기는 하지만, 간혹 초자아가 관여할 틈도 없이 본능적으로 움직이게 되는 경우가 있다. 이 본능은 동물에 가깝다기보다 동물 그 자체라 해도 과언은 아니다. 아름다운 여인을 보면 性交(성교)하고 싶어지는 욕망, 화가 났을 때 상대방을 공격하고 싶어지는 충동 등등 사람 안에 있는 모든 동물적인 것은 바로 이 이드이다. 사람이 사람답게 살 수 있는 것은 이 이드를 통제하고 있는 초자아가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런 초자아는 알코올이나 마약, 또는 향정신성 약품에 의해서 기능의 마비를 초래할 수 있다. 다시말해 동물에 가깝게 된다는 것이다.
평소 초자아에 의해 억압되어 있던 이드는 이 때 행동으로 표출되는 양상을 보인다. 그래서 술 먹으면 개 된다는 말이 생겨난 것이다. 그렇지만 평소에도 이런 면을 보이는 사람이 있다. "늑대 같은 놈"은 이런 사람을 가리키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영국 영화에 자주 등장하는 늑대인간은 상징적인 의미로서 설득력이 있다고 하겠다. 물론 영화에서는 외모가 늑대로 변하지만 초자아를 상실한 인간의 모습에서 그 외모가 상상되어진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③ 오사리 잡놈.
이 욕은 온갖 못된 짓을 거침없이 해대는 불량배를 일컫는 것으로 오사리에 잡아 올려진 잡것을 말하는 것이다. '오사리'란 '올사리'가 변한 말로 이른 철 사리에 잡은 새우나 해산물이라는 말이다. '올'은 '올벼(일찍 자란 벼)'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이르다는 뜻이고, '사리'는 매달 보름과 그믐에 潮水(조수)가 밀려오는 시각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참고로 '올'이 쓰이는 말로는 '올밤' '올고구마' '올감자' '올서리' 등이 있 다.
④ 멍텅구리.
"멍텅구리"는 원래 바닷물고기의 이름이다. 헌데 이 고기는 못생긴 데다가 굼뜨고 동작이 느려 아무리 위급한 상황이라도 벗어나려는 노력조차 하지 못한다. 그래서 이 고기같이 행동이 느리고 융통성이 없는 답답한 사람을 일컬어 이렇게 부른다. 판단력이 약한 데다가 행동마저 느리다면 정말 답답하긴 할 것이다. 그렇지만 천성이 그렇다면 "멍텅구리"라고 매도하는 것은 자제해야 할 일이다. 그런 욕을 먹는 본인은 또 얼마나 답답하겠는가. 참고로 멍텅구리 낚시라는 것이 있는데 이것은 멍텅구리를 잡는것이 아니라 낚시의 한 방법으로 떡밥 뭉치에 여러개의 낚시바늘을 달아서 하는 낚시질이다.
⑤ 미련 곰탱이.
이 욕도 위에서 말한 "멍텅구리"와 비슷한 뜻을 담고 있는데 아무래도 석연치 않은 구석이 있는것 같다. 생태계에서 곰은 그렇게 미련하지가 않음에도 불구하고 이런 욕이 생긴 것은 뭔가 와전된 내용이 있지않나 싶다. 곰의 느릿한 행동에서 이런 말이 생겨 났을까? 그렇지만 곰이 물고기를 사냥하는 모습에서는 전혀 그런 면 이 보이지를 않는다. 아무래도 우리나라의 개국 신화인 단군신화와 관계가 있지않나 생각되는데, 동물로서의 곰과 호랑이 운운하는 이 신화의 내용은 여러분도 잘 아다시피 일제에 의해서 개조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사람을 곰으로 둔갑을 시켜버린 일제는 당연히 곰의 미련스러움을 두각시켜야 했을 것이다. 그래야 우리 민족에게 철저히 자괴감을 안겨줄 수 있으니까 말이다. 우리는 하루 빨리 곰 하면 떠오르는 마늘먹으며 100일을 버틴 신화 속 동물로서의 곰을 잊어야할 것이다. 그것이 우리 민족의 자존심을 복구하는 길이니까. 신화 속 熊女(웅녀)는 곰이 아니라 상징으로서 땅을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욕만큼은 의식적으로 사용하지 말아야겠다는 것을 감히 주장한다.
⑥ 쥐 좆도 모르는 년(쥐 뿔도 모르는 놈).
이 욕은 아무것도 모르면서 설쳐대는 사람에게 쓰는 욕으로 이에 얽힌 옛날 이야기가 있어 한 토막 소개할까 한다. 옛날 한 소년이 있었는데 이 소년에게는 못된 버릇이 하나 있었다. 손톱 이나 발톱을 깍으면 마당에 함부로 버리곤 하는 버릇인데, 부모님에게 주의를 받고도 이 버릇은 고쳐지지 않았다.
물론 이 소년이 장성하여 장가를 들었어도 그 버릇은 여전했다. 아마 우리 속담에 세살 적 버릇 여든까지 간다는 말이 있지? 아뭏튼 장가를 가서 꽤 오랜 세월이 지난 후에 그는 난감한 일을 당하게 되었다. 자기와 똑같이 생긴 사람에 의해서 그는 집을 뱁겨나는 신세가 되었다. 원래 가짜는 진짜보다 더 진짜처럼 보이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다를 바가 없는 것인가 보다. 그는 할 수 없이 걸식을 하며 이 곳 저 곳을 떠돌아 다니며 생활을 했다. 집 생각이 간절했지만 다시 찾아오면 죽인다는 가짜의 엄포에 집으로 갈 엄두는 내지도 못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남루한 차림을 한 스님을 한 분 만나게 되었는데 자신의 신세 타령을 늘어놓게 되었다. 이 말을 들은 스님이 사내를 딱하게 여겨 방도를 한 가지 일러주었는데 스님이 주는 고양이 한 마리를 들고 집으로 가서 그 가짜 앞에 내려 놓으라는 것이었다. 사내는 半信半疑(반신반의)하 며 이래 죽으나 저래 죽으나 마찬가지니 스님이 시키는대로 해보고 죽더라 도 죽자고 결심을 하고 집으로 향했다.
그리고, 그 스님이 시키는대로 가짜 앞에다 다짜고짜 고양이를 내려 놓았다. 순간 고양이는 쏜살같이 그 가짜에게 달려들어 온 몸을 마구 물어뜯는 것이었다. 잠시 후 발악을 하던 가짜는 연기를 뿜으며 고양이 만한 쥐로 변해 버렸다. 고양이가 늠름하게 쥐의 목을 물고 대문 밖으로 나가는데 대문 밖에는 뜻하지 않게 고양이를 준 스님이 서있었다. 스님은 어리둥절하는 사내에게 이 사건의 전모를 밝혀 주었다. 이 쥐는 사내가 어려서 부터 함부로 깍아버린 손톱과 발톱을 주워 먹으며 몇십년을 살았는데, 이 사내의 精氣(정기)를 받아 이런 둔갑을 할 수 있었단다.
그러니 앞으로는 손톱이나 발톱을 깍아 함부로 버리지 말라 는 말과 함께 옛날 이야기답게 "뿅"하고 사라졌다. 물론 사내는 그 후부터 그렇게 고치기 힘든 버릇을 고친 것은 두 말 할 나위가 없다. 그런데 이 사내, 곰곰히 생각할수록 마누라가 괘씸했다. 자신이 떠도는 동안 쥐와 동침을 했다는 얘긴데, 몰라도 그렇게 모를 수가 있냐는 듯이 사내는 입버릇 처럼 말을 했단다.
"쥐 좆도 모르는 여편네 같으니라구. . . "
⑦ 돼지 불까는 소리하고 자빠졌네.
얼토당토 않은 얘기를 지껄이는 사람에게 퉁명스레 내뱉는 이 욕은 돼지가 불알을 까며 내지르는 비명 소리를 연상되게 해 조금은 희극적인 요소를 내포하고 있는듯 보여진다. '불'은 물론 '불알'의 줄임말이다. 돼지가 질러대는 이 소리는 들어본 사람만이 그 느낌을 전달 받을 수 있을 것이다.
⑧ 놓아기른 망아지 새끼.
이 욕은 천방지축 날뛰는 사람을 가리키고 있다. 망아지라 하면 고집이 세기로 유명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이런 망아지를 자유롭게 놓아 길렀다는 말인데 제멋대로 날뛰는 모양이 연상되는 욕이다. 이런 망아지를 길들이자면 어떤 사람인지 고생께나 하겠다.
⑨ 똬리 튼 뱀 같은 년.
표독스러운 모습으로 잔뜩 독기를 품고있는 여자를 일컫는 이 욕에는 살의마저 감도는 모습이 보여진다. 女子含怨(여자함원)이면 五月飛霜(오월비상)이라는 옛말이 연상되는 욕이다. 여자에게 한을 품게 해서 오월에 서리가 내리는 일이 없도록 해야겠다.
⑩ 양의 탈을 쓴 놈.
이 욕은 '양의 탈을 쓴 늑대'라는 말이 줄어든 것이다. 위선자라는 얘긴데, 욕이라기 보다는 속담에서 파생된 이 말은 다시말해 "늑대 같은 놈"이 라는 욕과 중복되므로 이만 접도록 하겠다.
⑪ 벽창호(벽창우).
고집이 세고 무뚝뚝한 사람, 또는 앞 뒤가 꽉 막힌 사람을 일컫는 말인 "벽창호"의 원래 말은 "벽창우"이다. 평안북도 碧潼(벽동)과 昌城(창성)지방의 소가 유난히 크고 힘이 셌다고 하는데서 유래된 이 말은 각 지방의 앞 글자를 따서 "벽창우"라고 하였는 바, '벽창우-> 벽창오-> 벽창호'로 변천 과정을 거친듯 하다. 그런데 이렇게 힘이 좋고 튼튼한 소를 왜 앞뒤가 막힌 사람에 비유를 해서 불렀을까. 그 이유는 이렇게 설명할 수 있겠다. 힘이 셌던 만큼 소를 이용해 농사를 짓던 시절에는 당연히 인기도 있고, 값이 비쌌던것 만은 당연했으리라. 그래서 소시장이 열리면 팔도 각지에서 이 소를 사기 위해 사람들이 몰려 들었을 것은 보지 않더라도 짐작이 가는 일이다. 이 때 팔려가는 "벽창우"에게 황당했던 것은 평소 자기를 다루던 소리가 바꿨다는 점이었을 것이다. 즉 평안도 사투리에 익숙해 있던 소에게 다른 지방 사투리로 가라거나 서라고 명령을 하니 무슨 소린지 금방 적응이 되지 않았을 것이고, 당연히 이 소를 사가는 사람은 말 안듣고 고집불통인 소에게 짜증을 냈을 것이다. "아, 이놈의 벽창우가 왜 이리 고집을 부려?" 그 후에는 물론 길을 잘들여 유용하게 썼겠지만 운반 과정에서 고생한 것을 생각해서 고집불통이거나 앞뒤가 막힌 사람에게 "벽창우 같다"라는 비유를 하게된 것으로 보아진다.
⑫ 꺼벙이(꺼병이).
한 때 만화의 주인공으로 맹위(?)를 떨친 바 있는 이 "꺼벙이"라는 말 또한 "벽창우"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원래 말에서 변형이 된것이다. 즉, 암 수 구분이 안되는 거칠고 못생긴 꿩의 어린 새끼에서 파생된 이 말은 '꿩 비육아리-> 꿩병아리-> 꿩병이-> 꺼병이-> 꺼벙이'라는 변천 과정을 겪 어 왔다. 현재 쓰이는 뜻은 외모가 어딘가 부족한듯 하고 거칠게 생긴 사람, 즉 촌스럽다는 뜻을 담고 있다고 하겠다.
⑬ 새 대가리(닭 대가리).
머리가 안좋거나 외모 상으로 몸집에 비해 머리 부분이 작은 신체적 특 징을 가지고 있는 사람을 놀리는 이 말은 사용하는 사람에게는 욕이라 생각되지 않지만 듣는 입장에서는 분명한 욕으로 받아들여진다. 좀더 구체적으로 설명하자면, 머리가 안좋은 사람은 "새 대가리"라 불리 고, 신체적인 특징을 나타낼 때는 '닭 대가리'라 부르는데, 이러한 욕 속에 는 鳥類(조류)의 I.Q가 5라는 점을 수용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니까 이 욕은 상대방을 I.Q가 5밖에 안되는 저능아라고 치부해 버리는 것이다. 글쎄, 진짜 저능아라면 아마 이런 소리를 듣고도 히쭉거리며 웃을 것이다.
⑭ 벼룩의 간을 내어 먹을 놈(벼룩도 낯짝이 있다).
염치고 체면이고 가리지 않는 사람을 이렇게 부르는데, 아마 우리 주위 에도 이런 종류의 사람이 많이 존재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공무원의 신분으로 국민의 血稅(혈세)를 포탈한 사람들이 즐겨 먹었던 음식이 바로 '벼룩의 간 요리'였을 것이다. 또한, '벼룩의 낯짝'보다 작아진 낯짝을 애써 감추며 보도진의 플래쉬 세례를 피해 검찰로 향하는 사람들을 우리는 수없이 많이 보아왔다. 그저 재수가 없어서 잡혀왔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그야말로 도덕불감증 시대를 살고 있다는 것을 痛感(통감)한다.
10. 직업에 관한 욕.
직업에 관한 욕을 조사하다 보니 의외로 직업적인 특징을 담고있는 욕들을 많이 발견할 수 있었다. 아니, 욕이라기 보다는 오히려 隱語(은어)에 가깝다고 해야 옳을 것이다. 그래서 이렇게 조사된 은어들을 이 글 속에 포함시킬 것인가를 두고 나름대로 고민에 빠지기도 했었는데, 이 글의 성격이 현재까지 사용되어지는 욕만을 골라 쓰여져 왔다는 점을 고려하여 일단 이 글에서는 빼놓기로 하였다.
간단한 예로 술집에서 웨이터 생활을 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쓰여지는 은어를 들 수 있겠는데, 홀에서 써빙을 하는 사람을 "마당쇠"로, 문 앞에서 호객을 하거나 문을 열어주는 사람을 "문쇠"로, 화장실 앞에서 취한 사람의 시중을 들어주는 사람을 "변쇠"로 부르는 따위의 것들이다.
이런 은어에 대한 것은 따로 자료를 정리하여 차후에 쓰여질 예정이며, 본 항목에서는 가장 보편적으로 쓰이고 있는 직업에 관한 욕이 다루어질 것이다. 이 또한 우리 민족의 의식구조를 분석해 본다는 점에 있어서 나름대로의 의미는 있다고 본다.
① 양갈보(화냥년).
"양갈보"는 '갈보'라는 직업에 서양을 뜻하는 洋(양)자가 붙어 만들어진 합성어이다. '갈보'란 몸을 팔며 천하게 노는 계집을 일컫는 말로 예로부터 멸시의 대상이 되어왔는데, 6.25 이후 몰려든 미군에게 몸을 팔며 살아가는 기지촌의 여자들이 생겨나면서 이 "양갈보"라는 단어가 생겨나게 되었다.
이 말이 생겨났을 즈음에는 서양인과 같이 가는 여자만 봐도 "양갈보"니 "양공주"하면서 멸시의 눈길을 던지곤 했다. 어찌보면 외국인과 사귀는것 자체가 욕이 되어버리는 시대이기도 했다. 이와 비슷한 욕으로 "화냥년"이란 것이 있는데, 이는 남편이 아닌 샛서방 을 만들어 놓고서 정을 통하는 음란한 여자를 가리키는 욕이다.
전자가 프로라면 후자는 아마추어인 셈인데, 도덕적인 척도로서 양자를 가늠 한다면 글쎄. . . .
② 뱃놈 좆은 개좆이다.
이 욕은 원양선을 타는 외항선원을 비하시키고 있다. 몇 달씩 성적 욕구불만을 품은 채 바다 위를 떠돌았던 선원들이 어떤 항구이건 육지에 닿게 되면 이 불만을 해소 시키는데, 이 항구 저 항구를 떠돌며 性交(성교)하는 것이 동네 어떤 개와도 교미를 하는 개의 좆에 비유가 되었다.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성적 욕구불만을 해소시킨다는 점에 있어서 지극히 인간적이겠지만 그것도 정도의 문제인듯 싶다. 이런 이유를 앞세워 문란한 성관계가 지속된다면 돌이킬 수 없는 불행을 맞을 수도 있다는것을 간과해서는 않되겠다. 실제로 외항선원들의 AIDS 감염율이 높다는 것이 지상을 통해 보도된 일이 있는 것으로 보아서도 말이다.
③ 법 팔아먹는 놈.
비교적 엘리트 집단에 속하는 법조계의 사람을 비하시키고 있는 이 욕은 법을 다루는 사람들에게 있어서 어찌보면 警鍾(경종)으로서의 의미가 있다 고 말 할 수 있겠다. 판.검사를 비롯해 변호사나 법무사, 또는 사건 브로커에 이르기까지 법을 다루며 사는 사람들이 법을 물건으로 여기고 있다는 가정 아래서 생겨난 이 욕은 아무래도 법을 모르고 살아가는 일반인들이 법을 몰라서 받는 불이익에 대해 항변하듯이 내뱉고 있다고 하겠다. 법조계에 종사하는 사람은 최소한 청렴 결백은 차치하더라도 이런 욕을 듣지않기 위해서 노력해야 할 것이라 생각된다. 법이 없어도 살 수 있는 사회가 건강한 사회가 아닐까. "법률 없으면 범죄 없고 범죄 없으면 형벌 없다."
④ 도둑놈.
점잖은 말로 "梁上君子(양상군자)"라고도 쓰는 "도둑놈"이 과연 직업의 범주에 속할까? 이런 소리를 듣는 도둑이 있다면 섭섭해 할것 같아 편의상 직업의 범주에 넣기로 했다. 하기야 도둑질도 엄연히 따져 본다면 노동의 댓가(?)를 추구하는 일이니 직업이라면 직업일 수 있겠다. 직업 가운데 부가가치가 가장 높은 직업? 그렇다면 직업을 가리키는 말 자체로서 욕이 되어버리는 것은 이 "도둑놈"이라는것 밖에는 없을듯 하다.
⑤ 빌어먹을 놈(비럭질 할 놈).
변형된 말로 "베라먹을 놈"이라고 쓰이기도 하는 이 욕은 말 그대로 거렁뱅이가 되라는 저주의 뜻을 내포하고 있다고 하겠다. 빌어먹는다는 일 자체가 상대방의 동정심을 자극해 구걸을 한다는 점에 있어서 요즘같이 인심이 각박한 세상에서는 아마 이 짓도 해먹기 힘들 것 이다. 그래서인지 옛날에 비해서 이 빌어먹는 거지들이 많이 없어지긴 했다. 사지가 멀쩡하면서 빌어먹는다는 것은 어찌보면 "도둑놈"보다도 더 나쁘다는 생각이 든다.
⑥ 먹통.
앞뒤가 꽉 막힌 사람을 가리키는 이 욕은 목수들이 가지고 다는 연장 가운데 하나이다. 손바닥 만한 타원형으로 생긴 통 안에 먹물을 넣을 수가 있는데 이 먹통 안에서부터 먹물 먹인 줄이 나와 팽팽해진 줄을 튕김으로 서 직선을 글 수 있게 되어있다. 이 먹통을 이용해서 곡선은 그릴 수 없다 는 점을 감안하여 융통성 없이 앞뒤가 꽉 막힌 사람을 이렇게 부르기 시작한것 같다. 실제로 먹통 안도 앞뒤가 꽉꽉 막혀있다는 점도 고려해서 말이다. "멍텅구리"라는 욕과 비슷한 뜻을 가지고 있다.
⑦ 평생 그짓거리나 해 처먹어라(자손 대대로 해 처먹어라).
이 욕은 물론 못된 행실을 두고 이르는 말이기는 하지만 직업적인 측면에서 살펴 본다면 우리 민족의 직업관에 대한 잘못된 인식이 내재되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이 욕은 평생직장 이라던가 평생직업, 또는 대대로 이어지는 家業(가업)의 풍토를 전면적으로 부정하고 있다는 것이다. 대대로 이어지는 가업이란 匠人精神(장인정신)의 발로이며, 세분화 내지 전문화 되어가고 있는 현대 산업화의 초석이라고도 말 할 수 있는데, 이를 부정 하고서는 밀려드는 다국적 기업의 거센 도전을 이겨내기 힘들다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 이렇게 된다면 경제 식민지가 되어 버리는 것을 막지 못할 것이다. 이런 점으로 미루어 볼 때 하찮은 직업이라도 대를 이어 가업으로 계승해 나가는 일본인들에게서 우리는 무언가를 배워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한 가지 예로 대학을 졸업한 아들이 아버지의 대를 잇기 위해서 오뎅장사로 나선 경우를 얼마 전 T.V를 통해서 본 적이 있었다. 4대 째를 이어오 고 있다는 이들의 직업에 대한 자긍심은 대단 했으며, 우리의 경우라면 어떠했을까 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판.검사나 의사 변호사등 士(사)자가 들어가는 직업을 선호하는 우리 민족의 의식은 이제 바꿔져야 하지 않을까. 그 길이 교육의 쓸데없는 과열경쟁을 막고 진짜 인간답게 살아가는 방법이지 않을까 감히 생각을 해본 다. 직업에 귀천이 없다는 말이 말로만 그치치 말기를 바라며 이런 의미에 서 이 욕은 우리 민족에게 있어서 당연히 도태되어야 한다고 본다.
11. 맺음말.
욕이란 무엇일까? 이제까지 조사되고 분석된 여러 가지의 욕으로 미루어 보아 욕은 크게 세 가지로 분류해서 정의를 내릴 수 있겠다. 한 가지로 정의를 내리지 못하는 이유는 현대를 살아 가면서 그 만큼 욕의 쓰임새가 다양하는데 있다.
욕하는 사람의 입이 더러워 진다는 점과 저급한 수준이 표출된다는 점이 잘 인식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에서 욕의 기능은 더욱 확대되어 가고 있으며, 흉폭화 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는 욕이 사회상을 가장 직접적으로 반영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해 본다면 그만큼 현재 우리가 속해 있는 사회가 부조리와 불합리를 안고 있다는 결론을 유추해 낼 수 있다. 즉, 사회 구성원들이 욕을 해야 하는 경우가 많아졌다고 바꾸어 말 할 수 있겠다.
공무원의 비리와 삼풍 백화점의 붕괴를 통해 드러난 인명 경시 풍조를 제쳐 놓고라도 정치, 경제 등 사회 전반적인 분야에서 저절로 욕이 나오게끔 하는 일들이 속출하고 있는 이런 분위기 속에서 욕이 흉폭화 한다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르겠다. 이런 점에서 소위 말하는 엘리트 계층의 부패는 중 하위권에 속해 있는 사람들의 감정을 더욱 악화시키고 있다고 보아지며 이와 연관해서 감정 표현의 수단인 언어가 거칠어 지고 있는 것이다. 세상이 각박해 졌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이러한 문제는 어느 한 계층의 사람이 나선다고 개선될 사항이 아니다. 사회 구성원 모두가 노력해서 풀어야할 문제이므로 누구이던 간에 조금씩 양보하는 마음, 순리에 역행하지 않는 자세로 살아 간다면 분명 살기 좋은 사회, 욕 할 필요 없는 사회가 될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4장에 언급되었던 "씹알"은 다분히 종교적인 차원에서 포교의 뜻을 담고 발생한 욕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본다.
이제 처음에 거론 되었던 욕의 정의를 내리면서 이 글을 끝마칠까 한다.
이제껏 진행되어 왔던 이상의 욕을 통해서 우리 민족의 정서와 인간의 심리를 파악해 보려고 노력 했지만 수박 겉 핥기식이 되지 않았나 하는 마음에 새삼 부끄럼이 앞선다.
① 挑戰的(도전적) 의미로서의 욕.
욕의 기능 가운데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도전적 의미로서의 욕은 그 강도가 지나치게 되면 자칫 폭력으로 발전될 소지를 가지고 있다. 이런 경우는 자주 있어 왔으며, 어떻게 보면 싸움의 전초전은 심한 욕설에서부터 시작 된다고 보아진다.
이런 의미의 욕은 과격한 말로서 상대방의 기세를 제압하려는 의도가 담겨져 있는데 이런 의도가 먹혀들지 않으면 물리적인 힘이 행사 되는 과정을 겪게된다. 물론 심한 욕설을 해대는 모든 사람이 그런 과정을 겪는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심한 욕설을 하는 사람 가운데 폭력 성향이 짙은 사람은 정해져 있다는 것일까? 이 문제에 대한 답으로 최근 논의되고 있는 유전적 소인으로서의 범죄행동에 대한 사법제도 적용 여부를 대신하고 싶다.
범죄행동의 환경적 요인을 주장하는 기존의 환경론자나 심리학자의 견해와는 다르게 이 문제에 대해 유전적인 소인으로 보고 접근을 시도하고 있는 이들은 모든 사람이 일정한 시기에 징병검사를 하듯 유전인자(DNA)에 대한 검사를 실시 할 수도 있음을 조심스레 제시하고 있다. 물론 이에 따르는 윤리, 도덕적인 입장은 보호 받아야할 인간의 권리를 내세워 강력한 부정의 의사를 표시하고 있지만, 이 학설이 정설로 세상에 인식이 된다면 윤리나 도덕은 당연히 궤도 수정을 할것이라 보아진다. 천동설이 지동설로 바뀌었듯이. . . .
② 카타르시스 효과로서의 욕.
욕의 기능 가운데는 다분히 쌓였던 스트레스를 정화 한다는 의미도 포함하고 있다. 현대병의 모든 시초는 복잡해져 가는 사회 속을 헤쳐 나가면서 받는 스트레스라고 할 만큼 인간에게 있어서 이 스트레스는 풀어 버리지 않으면 않될것이 되어 버렸다. 이러한 스트레스의 요인은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의 곳곳에 산재되어 있으며 인간에게 수시로 받아 들여지고 있다. 욕은 이런 스트레스에 대해 어느정도 완충시켜 주는 역할을 하는데, 물론 욕의 정도가 심해지게 되면 공격성향을 띠게된다. 그러므로 심하게 다가오는 스트레스에 대해서 욕은 거친 행동을 수반하며 그 억양 또한 거세지는 특징을 보이고 있다.
③ 자기 확인으로서의 욕.
이 기능으로서의 욕은 친분의 척도에 따라서 그 강도가 달라진다. 흉허물이 없는 관계일수록 욕의 정도는 심해지며 이 때의 욕에는 그 정도가 심함에도 불구하고 공격성향이나 악의는 보여지고 있지 않다. 이 때 옆에서 보는 이로 하여금 눈살을 찌푸리게 만들기는 하지만 폭력으로 비화될 가능성은 없다고 보아진다.
이런 경우도 물론 모든 사람이 그런 것은 아니며 이런 사람의 심리기재는 자신의 존재 가치를 확인하려는 의도가 무의식 중에 깔려 있다고 하겠다. 보편적인 경우 이런 사람의 의식의 한쪽에는 세상에 대한 짙은 회의가 깔려 있으며 이것은 외부적으로 타인이 눈치를 못채도록 철저히 위장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위장하는 방법에는 여러가지가 있겠으나 보통은 화통한 성격으로 지극히 사교적인 모습으로 보여지고 있다. 이런 사람의 어린 시절은 대부분 정상적이지 않았다는 것이 특징이다.
아뭏튼 이러한 기능으로서 욕을 하는 것 또한 인간의 심리학적 메카니즘 이라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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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처 : C가 있는 홈페이지 ( http://myku.hihome.com/doc/chat/slang-1.html )
우리 민족이 사용해 왔고, 또 현재까지 사용되고 있는 욕 가운데는 동물에 빗대어 하는 욕이 의외로 많은 것을 볼 수 있다. 아마도 이것은 우리 민족이 다른 민족에 비해 상상력이 풍부하고 이 풍부한 상상력을 생활에 접목시키는 표현력 또한 풍부하다는 이유로 바꿔 말할 수 있겠다. 비록 그것이 욕이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그렇게 자랑스럽지는 않겠지만, 욕이 아닌 다른 분야에서도 이런 점들을 접할 수 있는 것으로 보아서 오히려 다른 민족에 비해 언어 표현력의 우수성은 인정해야 할것이다. 이것은 아무래도 우리 민족성의 일부이며,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한글은 이런 의미에서 우리 민족성을 아주 적절하게 수용하고 있는 잘 만들어진 그릇과도 같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한 가지 좋은 예로 황진이의 시조 한 수를 들어보자.
冬至ㅅ달 기나긴 바믈 한 허리를 버혀 내어
春風 니블 아래 서리서리 너헛다가
어른님 오신 날 밤이여든 구뷔구뷔 펴리라
한글로 써서 우리의 감정이 잘 표현된 이 시조를 英譯(영역) 한다면 과연 감정의 移入(이입)이 제대로 될 것인가? 특히 '서리서리 넣었다가 구뷔 구뷔 펴리라'는 대목은 세계 어느나라의 언어를 사용 하더라도 100% 감정 이입은 불가능할 것이다.
이러한 예는 얼마든지 있으며, 이는 우리 한글의 우수성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럼 이제부터 이렇게 우수한 한글로 표현된 우리 민족의 격한 감정을 나타내는 동물이 쓰인 욕에 관해서 알아 보도록 하자.
① 금수만도 못한 놈.
禽獸(금수)라 하면 날짐승과 길짐승을 통괄하여 부르는 말이다. 즉, 영장류인 사람을 제외한 모든 짐승을 통칭하는 말로 쓰이고 있다. 그렇지만 이 말은 사람을 가리키기도 하는데, 인륜이나 도덕을 짓밟는 행동을 일삼는 자에게 욕으로서 "금수 같은 놈"이라고 쓰이고 있다. "금수 같은 놈"이라는 말도 이런 뜻을 내포하고 있는데, "금수만도 못한 놈"은 과연 어떤 '놈'일까? 아마도 돈 때문에 제 아버지를 죽이는 그런 사람이 이 부류에 속하지 않 을까 하는 생각이다.
② 여우 같은 년(늑대 같은 놈).
이 욕은 주로 여자를 향해 하는 욕이며 상대적으로 남자에게는 "늑대 같은 놈"이라는 욕이 쓰이고 있다. 이 욕에는 각각 동물의 특징을 사람의 성격이나 외양에 비유하는 뜻이 담겨져 있다.
여우라 하면 우리 민족에게는 교활함의 대명사로 통하고 있다. 그래서 예로부터 사람을 홀리거나 괴롭히는 요물 가운데서도 꼬리가 아홉 달린 九尾狐(구미호)를 으뜸으로 치고 있으며, 이는 옛날 이야기나 귀신 이이야기 속에 여우가 등장하는 횟수를 보면 가히 짐작이 가고도 남으리라. 서양의 경우도 예외는 아니어서 "foxy" 라 하면 교활한 사람을 나타내고 있다. 그렇지만 서양의 여우가 함축하고 있는 뜻은 다분히 섹스어필 하고 있다는 것이 우리와 차이라면 차이라 하겠다. 惱殺的(뇌쇄적)인 미모의 여인을 여우에 비유한다 해서 우리가 쓰고 있는 욕으로서의 의미가 전달되는 것은 아니니까 말이다.
늑대 또는 이리에 비유되는 남자에게 쓰여지는 욕은 정신 분석학적으로 설명하고 싶다. 프로이드의 정신 분석에 따르면 인간의 모든 심리적 기능의 종합체인 의식(Mind)은 원시적이고 본능적인 동물에 가까운 이드(Id)와 의식과 이성적 행동을 통제하는 자아(Ego), 그리고 이드를 통제하는 무의식적 기제인 초자아(Super ego)로 나뉘어져 있다고 한다.
평상시 우리는 자아의 통제를 받으며 살고 있지만 때때로 머리를 치켜드는 이드의 존재를 확인하게 된다. 보통 이러한 이드는 초자아에 의해 행동으로 옮겨지는 것이 실패로 끝 나기는 하지만, 간혹 초자아가 관여할 틈도 없이 본능적으로 움직이게 되는 경우가 있다. 이 본능은 동물에 가깝다기보다 동물 그 자체라 해도 과언은 아니다. 아름다운 여인을 보면 性交(성교)하고 싶어지는 욕망, 화가 났을 때 상대방을 공격하고 싶어지는 충동 등등 사람 안에 있는 모든 동물적인 것은 바로 이 이드이다. 사람이 사람답게 살 수 있는 것은 이 이드를 통제하고 있는 초자아가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런 초자아는 알코올이나 마약, 또는 향정신성 약품에 의해서 기능의 마비를 초래할 수 있다. 다시말해 동물에 가깝게 된다는 것이다.
평소 초자아에 의해 억압되어 있던 이드는 이 때 행동으로 표출되는 양상을 보인다. 그래서 술 먹으면 개 된다는 말이 생겨난 것이다. 그렇지만 평소에도 이런 면을 보이는 사람이 있다. "늑대 같은 놈"은 이런 사람을 가리키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영국 영화에 자주 등장하는 늑대인간은 상징적인 의미로서 설득력이 있다고 하겠다. 물론 영화에서는 외모가 늑대로 변하지만 초자아를 상실한 인간의 모습에서 그 외모가 상상되어진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③ 오사리 잡놈.
이 욕은 온갖 못된 짓을 거침없이 해대는 불량배를 일컫는 것으로 오사리에 잡아 올려진 잡것을 말하는 것이다. '오사리'란 '올사리'가 변한 말로 이른 철 사리에 잡은 새우나 해산물이라는 말이다. '올'은 '올벼(일찍 자란 벼)'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이르다는 뜻이고, '사리'는 매달 보름과 그믐에 潮水(조수)가 밀려오는 시각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참고로 '올'이 쓰이는 말로는 '올밤' '올고구마' '올감자' '올서리' 등이 있 다.
④ 멍텅구리.
"멍텅구리"는 원래 바닷물고기의 이름이다. 헌데 이 고기는 못생긴 데다가 굼뜨고 동작이 느려 아무리 위급한 상황이라도 벗어나려는 노력조차 하지 못한다. 그래서 이 고기같이 행동이 느리고 융통성이 없는 답답한 사람을 일컬어 이렇게 부른다. 판단력이 약한 데다가 행동마저 느리다면 정말 답답하긴 할 것이다. 그렇지만 천성이 그렇다면 "멍텅구리"라고 매도하는 것은 자제해야 할 일이다. 그런 욕을 먹는 본인은 또 얼마나 답답하겠는가. 참고로 멍텅구리 낚시라는 것이 있는데 이것은 멍텅구리를 잡는것이 아니라 낚시의 한 방법으로 떡밥 뭉치에 여러개의 낚시바늘을 달아서 하는 낚시질이다.
⑤ 미련 곰탱이.
이 욕도 위에서 말한 "멍텅구리"와 비슷한 뜻을 담고 있는데 아무래도 석연치 않은 구석이 있는것 같다. 생태계에서 곰은 그렇게 미련하지가 않음에도 불구하고 이런 욕이 생긴 것은 뭔가 와전된 내용이 있지않나 싶다. 곰의 느릿한 행동에서 이런 말이 생겨 났을까? 그렇지만 곰이 물고기를 사냥하는 모습에서는 전혀 그런 면 이 보이지를 않는다. 아무래도 우리나라의 개국 신화인 단군신화와 관계가 있지않나 생각되는데, 동물로서의 곰과 호랑이 운운하는 이 신화의 내용은 여러분도 잘 아다시피 일제에 의해서 개조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사람을 곰으로 둔갑을 시켜버린 일제는 당연히 곰의 미련스러움을 두각시켜야 했을 것이다. 그래야 우리 민족에게 철저히 자괴감을 안겨줄 수 있으니까 말이다. 우리는 하루 빨리 곰 하면 떠오르는 마늘먹으며 100일을 버틴 신화 속 동물로서의 곰을 잊어야할 것이다. 그것이 우리 민족의 자존심을 복구하는 길이니까. 신화 속 熊女(웅녀)는 곰이 아니라 상징으로서 땅을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욕만큼은 의식적으로 사용하지 말아야겠다는 것을 감히 주장한다.
⑥ 쥐 좆도 모르는 년(쥐 뿔도 모르는 놈).
이 욕은 아무것도 모르면서 설쳐대는 사람에게 쓰는 욕으로 이에 얽힌 옛날 이야기가 있어 한 토막 소개할까 한다. 옛날 한 소년이 있었는데 이 소년에게는 못된 버릇이 하나 있었다. 손톱 이나 발톱을 깍으면 마당에 함부로 버리곤 하는 버릇인데, 부모님에게 주의를 받고도 이 버릇은 고쳐지지 않았다.
물론 이 소년이 장성하여 장가를 들었어도 그 버릇은 여전했다. 아마 우리 속담에 세살 적 버릇 여든까지 간다는 말이 있지? 아뭏튼 장가를 가서 꽤 오랜 세월이 지난 후에 그는 난감한 일을 당하게 되었다. 자기와 똑같이 생긴 사람에 의해서 그는 집을 뱁겨나는 신세가 되었다. 원래 가짜는 진짜보다 더 진짜처럼 보이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다를 바가 없는 것인가 보다. 그는 할 수 없이 걸식을 하며 이 곳 저 곳을 떠돌아 다니며 생활을 했다. 집 생각이 간절했지만 다시 찾아오면 죽인다는 가짜의 엄포에 집으로 갈 엄두는 내지도 못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남루한 차림을 한 스님을 한 분 만나게 되었는데 자신의 신세 타령을 늘어놓게 되었다. 이 말을 들은 스님이 사내를 딱하게 여겨 방도를 한 가지 일러주었는데 스님이 주는 고양이 한 마리를 들고 집으로 가서 그 가짜 앞에 내려 놓으라는 것이었다. 사내는 半信半疑(반신반의)하 며 이래 죽으나 저래 죽으나 마찬가지니 스님이 시키는대로 해보고 죽더라 도 죽자고 결심을 하고 집으로 향했다.
그리고, 그 스님이 시키는대로 가짜 앞에다 다짜고짜 고양이를 내려 놓았다. 순간 고양이는 쏜살같이 그 가짜에게 달려들어 온 몸을 마구 물어뜯는 것이었다. 잠시 후 발악을 하던 가짜는 연기를 뿜으며 고양이 만한 쥐로 변해 버렸다. 고양이가 늠름하게 쥐의 목을 물고 대문 밖으로 나가는데 대문 밖에는 뜻하지 않게 고양이를 준 스님이 서있었다. 스님은 어리둥절하는 사내에게 이 사건의 전모를 밝혀 주었다. 이 쥐는 사내가 어려서 부터 함부로 깍아버린 손톱과 발톱을 주워 먹으며 몇십년을 살았는데, 이 사내의 精氣(정기)를 받아 이런 둔갑을 할 수 있었단다.
그러니 앞으로는 손톱이나 발톱을 깍아 함부로 버리지 말라 는 말과 함께 옛날 이야기답게 "뿅"하고 사라졌다. 물론 사내는 그 후부터 그렇게 고치기 힘든 버릇을 고친 것은 두 말 할 나위가 없다. 그런데 이 사내, 곰곰히 생각할수록 마누라가 괘씸했다. 자신이 떠도는 동안 쥐와 동침을 했다는 얘긴데, 몰라도 그렇게 모를 수가 있냐는 듯이 사내는 입버릇 처럼 말을 했단다.
"쥐 좆도 모르는 여편네 같으니라구. . . "
⑦ 돼지 불까는 소리하고 자빠졌네.
얼토당토 않은 얘기를 지껄이는 사람에게 퉁명스레 내뱉는 이 욕은 돼지가 불알을 까며 내지르는 비명 소리를 연상되게 해 조금은 희극적인 요소를 내포하고 있는듯 보여진다. '불'은 물론 '불알'의 줄임말이다. 돼지가 질러대는 이 소리는 들어본 사람만이 그 느낌을 전달 받을 수 있을 것이다.
⑧ 놓아기른 망아지 새끼.
이 욕은 천방지축 날뛰는 사람을 가리키고 있다. 망아지라 하면 고집이 세기로 유명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이런 망아지를 자유롭게 놓아 길렀다는 말인데 제멋대로 날뛰는 모양이 연상되는 욕이다. 이런 망아지를 길들이자면 어떤 사람인지 고생께나 하겠다.
⑨ 똬리 튼 뱀 같은 년.
표독스러운 모습으로 잔뜩 독기를 품고있는 여자를 일컫는 이 욕에는 살의마저 감도는 모습이 보여진다. 女子含怨(여자함원)이면 五月飛霜(오월비상)이라는 옛말이 연상되는 욕이다. 여자에게 한을 품게 해서 오월에 서리가 내리는 일이 없도록 해야겠다.
⑩ 양의 탈을 쓴 놈.
이 욕은 '양의 탈을 쓴 늑대'라는 말이 줄어든 것이다. 위선자라는 얘긴데, 욕이라기 보다는 속담에서 파생된 이 말은 다시말해 "늑대 같은 놈"이 라는 욕과 중복되므로 이만 접도록 하겠다.
⑪ 벽창호(벽창우).
고집이 세고 무뚝뚝한 사람, 또는 앞 뒤가 꽉 막힌 사람을 일컫는 말인 "벽창호"의 원래 말은 "벽창우"이다. 평안북도 碧潼(벽동)과 昌城(창성)지방의 소가 유난히 크고 힘이 셌다고 하는데서 유래된 이 말은 각 지방의 앞 글자를 따서 "벽창우"라고 하였는 바, '벽창우-> 벽창오-> 벽창호'로 변천 과정을 거친듯 하다. 그런데 이렇게 힘이 좋고 튼튼한 소를 왜 앞뒤가 막힌 사람에 비유를 해서 불렀을까. 그 이유는 이렇게 설명할 수 있겠다. 힘이 셌던 만큼 소를 이용해 농사를 짓던 시절에는 당연히 인기도 있고, 값이 비쌌던것 만은 당연했으리라. 그래서 소시장이 열리면 팔도 각지에서 이 소를 사기 위해 사람들이 몰려 들었을 것은 보지 않더라도 짐작이 가는 일이다. 이 때 팔려가는 "벽창우"에게 황당했던 것은 평소 자기를 다루던 소리가 바꿨다는 점이었을 것이다. 즉 평안도 사투리에 익숙해 있던 소에게 다른 지방 사투리로 가라거나 서라고 명령을 하니 무슨 소린지 금방 적응이 되지 않았을 것이고, 당연히 이 소를 사가는 사람은 말 안듣고 고집불통인 소에게 짜증을 냈을 것이다. "아, 이놈의 벽창우가 왜 이리 고집을 부려?" 그 후에는 물론 길을 잘들여 유용하게 썼겠지만 운반 과정에서 고생한 것을 생각해서 고집불통이거나 앞뒤가 막힌 사람에게 "벽창우 같다"라는 비유를 하게된 것으로 보아진다.
⑫ 꺼벙이(꺼병이).
한 때 만화의 주인공으로 맹위(?)를 떨친 바 있는 이 "꺼벙이"라는 말 또한 "벽창우"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원래 말에서 변형이 된것이다. 즉, 암 수 구분이 안되는 거칠고 못생긴 꿩의 어린 새끼에서 파생된 이 말은 '꿩 비육아리-> 꿩병아리-> 꿩병이-> 꺼병이-> 꺼벙이'라는 변천 과정을 겪 어 왔다. 현재 쓰이는 뜻은 외모가 어딘가 부족한듯 하고 거칠게 생긴 사람, 즉 촌스럽다는 뜻을 담고 있다고 하겠다.
⑬ 새 대가리(닭 대가리).
머리가 안좋거나 외모 상으로 몸집에 비해 머리 부분이 작은 신체적 특 징을 가지고 있는 사람을 놀리는 이 말은 사용하는 사람에게는 욕이라 생각되지 않지만 듣는 입장에서는 분명한 욕으로 받아들여진다. 좀더 구체적으로 설명하자면, 머리가 안좋은 사람은 "새 대가리"라 불리 고, 신체적인 특징을 나타낼 때는 '닭 대가리'라 부르는데, 이러한 욕 속에 는 鳥類(조류)의 I.Q가 5라는 점을 수용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니까 이 욕은 상대방을 I.Q가 5밖에 안되는 저능아라고 치부해 버리는 것이다. 글쎄, 진짜 저능아라면 아마 이런 소리를 듣고도 히쭉거리며 웃을 것이다.
⑭ 벼룩의 간을 내어 먹을 놈(벼룩도 낯짝이 있다).
염치고 체면이고 가리지 않는 사람을 이렇게 부르는데, 아마 우리 주위 에도 이런 종류의 사람이 많이 존재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공무원의 신분으로 국민의 血稅(혈세)를 포탈한 사람들이 즐겨 먹었던 음식이 바로 '벼룩의 간 요리'였을 것이다. 또한, '벼룩의 낯짝'보다 작아진 낯짝을 애써 감추며 보도진의 플래쉬 세례를 피해 검찰로 향하는 사람들을 우리는 수없이 많이 보아왔다. 그저 재수가 없어서 잡혀왔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그야말로 도덕불감증 시대를 살고 있다는 것을 痛感(통감)한다.
10. 직업에 관한 욕.
직업에 관한 욕을 조사하다 보니 의외로 직업적인 특징을 담고있는 욕들을 많이 발견할 수 있었다. 아니, 욕이라기 보다는 오히려 隱語(은어)에 가깝다고 해야 옳을 것이다. 그래서 이렇게 조사된 은어들을 이 글 속에 포함시킬 것인가를 두고 나름대로 고민에 빠지기도 했었는데, 이 글의 성격이 현재까지 사용되어지는 욕만을 골라 쓰여져 왔다는 점을 고려하여 일단 이 글에서는 빼놓기로 하였다.
간단한 예로 술집에서 웨이터 생활을 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쓰여지는 은어를 들 수 있겠는데, 홀에서 써빙을 하는 사람을 "마당쇠"로, 문 앞에서 호객을 하거나 문을 열어주는 사람을 "문쇠"로, 화장실 앞에서 취한 사람의 시중을 들어주는 사람을 "변쇠"로 부르는 따위의 것들이다.
이런 은어에 대한 것은 따로 자료를 정리하여 차후에 쓰여질 예정이며, 본 항목에서는 가장 보편적으로 쓰이고 있는 직업에 관한 욕이 다루어질 것이다. 이 또한 우리 민족의 의식구조를 분석해 본다는 점에 있어서 나름대로의 의미는 있다고 본다.
① 양갈보(화냥년).
"양갈보"는 '갈보'라는 직업에 서양을 뜻하는 洋(양)자가 붙어 만들어진 합성어이다. '갈보'란 몸을 팔며 천하게 노는 계집을 일컫는 말로 예로부터 멸시의 대상이 되어왔는데, 6.25 이후 몰려든 미군에게 몸을 팔며 살아가는 기지촌의 여자들이 생겨나면서 이 "양갈보"라는 단어가 생겨나게 되었다.
이 말이 생겨났을 즈음에는 서양인과 같이 가는 여자만 봐도 "양갈보"니 "양공주"하면서 멸시의 눈길을 던지곤 했다. 어찌보면 외국인과 사귀는것 자체가 욕이 되어버리는 시대이기도 했다. 이와 비슷한 욕으로 "화냥년"이란 것이 있는데, 이는 남편이 아닌 샛서방 을 만들어 놓고서 정을 통하는 음란한 여자를 가리키는 욕이다.
전자가 프로라면 후자는 아마추어인 셈인데, 도덕적인 척도로서 양자를 가늠 한다면 글쎄. . . .
② 뱃놈 좆은 개좆이다.
이 욕은 원양선을 타는 외항선원을 비하시키고 있다. 몇 달씩 성적 욕구불만을 품은 채 바다 위를 떠돌았던 선원들이 어떤 항구이건 육지에 닿게 되면 이 불만을 해소 시키는데, 이 항구 저 항구를 떠돌며 性交(성교)하는 것이 동네 어떤 개와도 교미를 하는 개의 좆에 비유가 되었다.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성적 욕구불만을 해소시킨다는 점에 있어서 지극히 인간적이겠지만 그것도 정도의 문제인듯 싶다. 이런 이유를 앞세워 문란한 성관계가 지속된다면 돌이킬 수 없는 불행을 맞을 수도 있다는것을 간과해서는 않되겠다. 실제로 외항선원들의 AIDS 감염율이 높다는 것이 지상을 통해 보도된 일이 있는 것으로 보아서도 말이다.
③ 법 팔아먹는 놈.
비교적 엘리트 집단에 속하는 법조계의 사람을 비하시키고 있는 이 욕은 법을 다루는 사람들에게 있어서 어찌보면 警鍾(경종)으로서의 의미가 있다 고 말 할 수 있겠다. 판.검사를 비롯해 변호사나 법무사, 또는 사건 브로커에 이르기까지 법을 다루며 사는 사람들이 법을 물건으로 여기고 있다는 가정 아래서 생겨난 이 욕은 아무래도 법을 모르고 살아가는 일반인들이 법을 몰라서 받는 불이익에 대해 항변하듯이 내뱉고 있다고 하겠다. 법조계에 종사하는 사람은 최소한 청렴 결백은 차치하더라도 이런 욕을 듣지않기 위해서 노력해야 할 것이라 생각된다. 법이 없어도 살 수 있는 사회가 건강한 사회가 아닐까. "법률 없으면 범죄 없고 범죄 없으면 형벌 없다."
④ 도둑놈.
점잖은 말로 "梁上君子(양상군자)"라고도 쓰는 "도둑놈"이 과연 직업의 범주에 속할까? 이런 소리를 듣는 도둑이 있다면 섭섭해 할것 같아 편의상 직업의 범주에 넣기로 했다. 하기야 도둑질도 엄연히 따져 본다면 노동의 댓가(?)를 추구하는 일이니 직업이라면 직업일 수 있겠다. 직업 가운데 부가가치가 가장 높은 직업? 그렇다면 직업을 가리키는 말 자체로서 욕이 되어버리는 것은 이 "도둑놈"이라는것 밖에는 없을듯 하다.
⑤ 빌어먹을 놈(비럭질 할 놈).
변형된 말로 "베라먹을 놈"이라고 쓰이기도 하는 이 욕은 말 그대로 거렁뱅이가 되라는 저주의 뜻을 내포하고 있다고 하겠다. 빌어먹는다는 일 자체가 상대방의 동정심을 자극해 구걸을 한다는 점에 있어서 요즘같이 인심이 각박한 세상에서는 아마 이 짓도 해먹기 힘들 것 이다. 그래서인지 옛날에 비해서 이 빌어먹는 거지들이 많이 없어지긴 했다. 사지가 멀쩡하면서 빌어먹는다는 것은 어찌보면 "도둑놈"보다도 더 나쁘다는 생각이 든다.
⑥ 먹통.
앞뒤가 꽉 막힌 사람을 가리키는 이 욕은 목수들이 가지고 다는 연장 가운데 하나이다. 손바닥 만한 타원형으로 생긴 통 안에 먹물을 넣을 수가 있는데 이 먹통 안에서부터 먹물 먹인 줄이 나와 팽팽해진 줄을 튕김으로 서 직선을 글 수 있게 되어있다. 이 먹통을 이용해서 곡선은 그릴 수 없다 는 점을 감안하여 융통성 없이 앞뒤가 꽉 막힌 사람을 이렇게 부르기 시작한것 같다. 실제로 먹통 안도 앞뒤가 꽉꽉 막혀있다는 점도 고려해서 말이다. "멍텅구리"라는 욕과 비슷한 뜻을 가지고 있다.
⑦ 평생 그짓거리나 해 처먹어라(자손 대대로 해 처먹어라).
이 욕은 물론 못된 행실을 두고 이르는 말이기는 하지만 직업적인 측면에서 살펴 본다면 우리 민족의 직업관에 대한 잘못된 인식이 내재되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이 욕은 평생직장 이라던가 평생직업, 또는 대대로 이어지는 家業(가업)의 풍토를 전면적으로 부정하고 있다는 것이다. 대대로 이어지는 가업이란 匠人精神(장인정신)의 발로이며, 세분화 내지 전문화 되어가고 있는 현대 산업화의 초석이라고도 말 할 수 있는데, 이를 부정 하고서는 밀려드는 다국적 기업의 거센 도전을 이겨내기 힘들다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 이렇게 된다면 경제 식민지가 되어 버리는 것을 막지 못할 것이다. 이런 점으로 미루어 볼 때 하찮은 직업이라도 대를 이어 가업으로 계승해 나가는 일본인들에게서 우리는 무언가를 배워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한 가지 예로 대학을 졸업한 아들이 아버지의 대를 잇기 위해서 오뎅장사로 나선 경우를 얼마 전 T.V를 통해서 본 적이 있었다. 4대 째를 이어오 고 있다는 이들의 직업에 대한 자긍심은 대단 했으며, 우리의 경우라면 어떠했을까 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판.검사나 의사 변호사등 士(사)자가 들어가는 직업을 선호하는 우리 민족의 의식은 이제 바꿔져야 하지 않을까. 그 길이 교육의 쓸데없는 과열경쟁을 막고 진짜 인간답게 살아가는 방법이지 않을까 감히 생각을 해본 다. 직업에 귀천이 없다는 말이 말로만 그치치 말기를 바라며 이런 의미에 서 이 욕은 우리 민족에게 있어서 당연히 도태되어야 한다고 본다.
11. 맺음말.
욕이란 무엇일까? 이제까지 조사되고 분석된 여러 가지의 욕으로 미루어 보아 욕은 크게 세 가지로 분류해서 정의를 내릴 수 있겠다. 한 가지로 정의를 내리지 못하는 이유는 현대를 살아 가면서 그 만큼 욕의 쓰임새가 다양하는데 있다.
욕하는 사람의 입이 더러워 진다는 점과 저급한 수준이 표출된다는 점이 잘 인식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에서 욕의 기능은 더욱 확대되어 가고 있으며, 흉폭화 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는 욕이 사회상을 가장 직접적으로 반영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해 본다면 그만큼 현재 우리가 속해 있는 사회가 부조리와 불합리를 안고 있다는 결론을 유추해 낼 수 있다. 즉, 사회 구성원들이 욕을 해야 하는 경우가 많아졌다고 바꾸어 말 할 수 있겠다.
공무원의 비리와 삼풍 백화점의 붕괴를 통해 드러난 인명 경시 풍조를 제쳐 놓고라도 정치, 경제 등 사회 전반적인 분야에서 저절로 욕이 나오게끔 하는 일들이 속출하고 있는 이런 분위기 속에서 욕이 흉폭화 한다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르겠다. 이런 점에서 소위 말하는 엘리트 계층의 부패는 중 하위권에 속해 있는 사람들의 감정을 더욱 악화시키고 있다고 보아지며 이와 연관해서 감정 표현의 수단인 언어가 거칠어 지고 있는 것이다. 세상이 각박해 졌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이러한 문제는 어느 한 계층의 사람이 나선다고 개선될 사항이 아니다. 사회 구성원 모두가 노력해서 풀어야할 문제이므로 누구이던 간에 조금씩 양보하는 마음, 순리에 역행하지 않는 자세로 살아 간다면 분명 살기 좋은 사회, 욕 할 필요 없는 사회가 될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4장에 언급되었던 "씹알"은 다분히 종교적인 차원에서 포교의 뜻을 담고 발생한 욕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본다.
이제 처음에 거론 되었던 욕의 정의를 내리면서 이 글을 끝마칠까 한다.
이제껏 진행되어 왔던 이상의 욕을 통해서 우리 민족의 정서와 인간의 심리를 파악해 보려고 노력 했지만 수박 겉 핥기식이 되지 않았나 하는 마음에 새삼 부끄럼이 앞선다.
① 挑戰的(도전적) 의미로서의 욕.
욕의 기능 가운데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도전적 의미로서의 욕은 그 강도가 지나치게 되면 자칫 폭력으로 발전될 소지를 가지고 있다. 이런 경우는 자주 있어 왔으며, 어떻게 보면 싸움의 전초전은 심한 욕설에서부터 시작 된다고 보아진다.
이런 의미의 욕은 과격한 말로서 상대방의 기세를 제압하려는 의도가 담겨져 있는데 이런 의도가 먹혀들지 않으면 물리적인 힘이 행사 되는 과정을 겪게된다. 물론 심한 욕설을 해대는 모든 사람이 그런 과정을 겪는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심한 욕설을 하는 사람 가운데 폭력 성향이 짙은 사람은 정해져 있다는 것일까? 이 문제에 대한 답으로 최근 논의되고 있는 유전적 소인으로서의 범죄행동에 대한 사법제도 적용 여부를 대신하고 싶다.
범죄행동의 환경적 요인을 주장하는 기존의 환경론자나 심리학자의 견해와는 다르게 이 문제에 대해 유전적인 소인으로 보고 접근을 시도하고 있는 이들은 모든 사람이 일정한 시기에 징병검사를 하듯 유전인자(DNA)에 대한 검사를 실시 할 수도 있음을 조심스레 제시하고 있다. 물론 이에 따르는 윤리, 도덕적인 입장은 보호 받아야할 인간의 권리를 내세워 강력한 부정의 의사를 표시하고 있지만, 이 학설이 정설로 세상에 인식이 된다면 윤리나 도덕은 당연히 궤도 수정을 할것이라 보아진다. 천동설이 지동설로 바뀌었듯이. . . .
② 카타르시스 효과로서의 욕.
욕의 기능 가운데는 다분히 쌓였던 스트레스를 정화 한다는 의미도 포함하고 있다. 현대병의 모든 시초는 복잡해져 가는 사회 속을 헤쳐 나가면서 받는 스트레스라고 할 만큼 인간에게 있어서 이 스트레스는 풀어 버리지 않으면 않될것이 되어 버렸다. 이러한 스트레스의 요인은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의 곳곳에 산재되어 있으며 인간에게 수시로 받아 들여지고 있다. 욕은 이런 스트레스에 대해 어느정도 완충시켜 주는 역할을 하는데, 물론 욕의 정도가 심해지게 되면 공격성향을 띠게된다. 그러므로 심하게 다가오는 스트레스에 대해서 욕은 거친 행동을 수반하며 그 억양 또한 거세지는 특징을 보이고 있다.
③ 자기 확인으로서의 욕.
이 기능으로서의 욕은 친분의 척도에 따라서 그 강도가 달라진다. 흉허물이 없는 관계일수록 욕의 정도는 심해지며 이 때의 욕에는 그 정도가 심함에도 불구하고 공격성향이나 악의는 보여지고 있지 않다. 이 때 옆에서 보는 이로 하여금 눈살을 찌푸리게 만들기는 하지만 폭력으로 비화될 가능성은 없다고 보아진다.
이런 경우도 물론 모든 사람이 그런 것은 아니며 이런 사람의 심리기재는 자신의 존재 가치를 확인하려는 의도가 무의식 중에 깔려 있다고 하겠다. 보편적인 경우 이런 사람의 의식의 한쪽에는 세상에 대한 짙은 회의가 깔려 있으며 이것은 외부적으로 타인이 눈치를 못채도록 철저히 위장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위장하는 방법에는 여러가지가 있겠으나 보통은 화통한 성격으로 지극히 사교적인 모습으로 보여지고 있다. 이런 사람의 어린 시절은 대부분 정상적이지 않았다는 것이 특징이다.
아뭏튼 이러한 기능으로서 욕을 하는 것 또한 인간의 심리학적 메카니즘 이라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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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처 : C가 있는 홈페이지 ( http://myku.hihome.com/doc/chat/slang-1.html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