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영락청년들에게...
샬롬!! 영락청년들 모두 변함없이 잘들 생활하고 계시죠? 제가 여러분들의 곁을 떠나올 때는 조금은 쌀쌀한 봄이었는데 이제는 제법 더운 늦봄이 되었습니다. 이곳 조교들은 '훈련받기 딱 좋은 날씨'라며 비아냥 아닌 비아냥을 피워대지만 날씨가 좋으면 좋은대로 나쁘면 나쁜대로 힘든 것이 훈련이 아닐까요? 다른 사람은 어떨지 몰라도 저는 그렇더군요... 헤헤...
여긴 지금 의무대입니다. 사회에 '병원'과 같은 곳이죠. 사회에 있을 때에도 왠만해선 갈일이 없었던 제가 왜 여기에 와있는지 조금 의아할 따름입니다. 혹시 여러분 '찰과상'이라고 들어보셨나요? 고등학교 체육시간에 이론으로만 배웠던 '찰과상'을 이곳에서는 많이 볼 수 있네요. 근데 저는 좀 심합니다.(참고로 찰과상이란 흔히 말해 '물집잡힌 것'을 말한답니다) 왼발 앞축 전부를 까먹었거든요. 얼른 상상이 안가시죠? 쉽게 설명하면 왼쪽 발바닥 앞부분 껍질이 훌러덩 벗겨졌다고 이해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이제 좀 이해가 가시나요? 허허.
벌써 5일째입니다. 저는 겨우 이런 상처가지고 5일씩이나 '의무대'에 있을 줄은 몰랐습니다. 사회에 있으면 연고발라서 2~3일 내버려두면 다 나을 수 있는 것을 군대에 오니까 소독약에다 빨간약 발라주는 것이 전부더군요. 연고에는 왜그리 인색하던지... 그러면 벌써 내무실로 복귀했을 것을...
제가 얼마전 집에 보낸 편지에 동생에게 '청년부 홈페이지에 내소식좀 잘 남겨달라'고 부탁을 했었는데 제대로 전했는지 많이 궁금해요. 저는 지금 경기도 포천 오뚜기부대 신교대에 훈련병으로 있습니다. 오는 5월 18일에는 역시 오뚜기부대 어느 내무실에서 이병 계급을 달고 있을테지요. 맨처음 의정부 306보충대에서 제가 '오뚜기부대'로 자대배치를 받았다는 말을 들었는데 약간 어리버리했습니다. 사실 저는 어떤 부대인지 몰랐지만 같은 보충대 친구들이 저를 보며 '죽었다', '안됐다' 등의 위로(?)의 말을 하는 것을 듣고 '아차'싶었습니다. 언젠가 제가 청년부 홈페이지에 '나중에 제대하고나서 주님의 일에 헌신할 기회가 있을 때 남들은 쉽게 할 수 없는 어렵고 힘든 일을 맡고 싶다'는 내용의 글을 올린 적이 있그 말이 실행에 올겨질 줄은 몰랐거든요. 하지만 이곳에 와보니 아직까지는 견딜만 합니다. 그렇게 빡세다는 오뚜기부대훈련이 이정도(?)라면 다른 부대들의 훈련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허허... 너무 자만에 찬 말인가요. 어쩌면 아직까지 시작도 안했을지도 모르는데 말입니다.
처음 훈련에 임했을 때가 생각납니다. 연병장에 있는 흙의 반은 우리 훈련병들이 먹어치웠을 겁니다. 이유도 모르고 얼차려를 받기가 일쑤였고 조교들의 상소리에 익숙해져 왠만한 동물관련 은어나 숫자관련 비속어에는 꿈쩍도 안하게 되었습니다. 목이 마르면 흙먼지를 마시고 배고프면 욕을 먹어야 정상인 것처럼 느꼈던 지난 4주... 어찌보면 평화로웠고 어찌보면 지옥같았던 지난 시간들이 이젠 아무렇지도 않게 느껴질 정도로 익숙해졌어요. 가끔 따뜻한 바람에 녹아부는 솔잎향이 너무 달콤해 몇초간 정신을 차릴 수 없었던 기억... 혹시 여러분들은 있으신가요? 아마 고된 훈련뒤에 주어지는 '10분간 휴식'시간이 아니라면 느낄 수 없을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너무 빨리 잊혀져가나 봅니다. 제게 그렇게 따뜻한 말들을 건네주었던 여러분들의 음성이 하나둘씩 잊혀져 갑니다. 지금의 '믿음있는 군인'을 만들어준 여러분들의 모습들이 자꾸 잊혀져갑니다. 취침시간에 잠들기전 기억하던 영락식구들의 모든 것들이 점점 가물가물해져갑니다. 절대로 잊지 않겠노라고 다짐을 하고 입소했었는데 이젠 그 다짐이 무색해져갈 정도입니다. 여러분들과 함께 찍었던 사진한장 챙겨오지 못한 것이 후회스러울 정도입니다.
가끔, 아주 가끔 제가 군대에 오기전 청년부 예배시간에 청년부로 보냈던 편지를 읽는 시간이 기억납니다. 많은 청년들이 웃고 넘겼던 수많은 편지들이 떠오른 적이 있었습니다. 그땐 왜 몰랐는지... 청년부로 편지를 보냈던 형제 자매들의 간절한 그 마음을 왜 몰랐는지... 이제서야 그 간절한 마음을 알 수 있을 것같습니다. 여러분들은 느낄 수 있나요? 한자 한자에 담긴 그 유언같은 마음을 말입니다.
이 편지를 언제 보낼지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여러분들이 제 소식을 보는 날에도 저는 여러분을 볼 수 없을 것같습니다. 짧긴 하지만 70여일 뒤에 있을 4박 5일의 100일 휴가나 노려야겠군요. 저나 이 편지를 보는 여러분이나 모두 건강한 모습으로 뵙길 기도하겠습니다.
여러분들께 조금이라도 더 제 소식을 전해드리고 싶은 마음에 펜을 들긴 했지만 편지를 쓰는 정해진 시간이 있는지라 내용도 글씨도 엉망인 것 같네요. 다음에 또 기회가 있을 때 그 때 더 자세하고 정성스러운 편지를 약속해드리겠습니다. 항상 건강하시구요. 하루하루 즐겁고 활기찬 나날이 되길 멀리에서 나마 기도드리겠습니다. 이만 줄일께요. 평안하세요~!!
2001년 5월 2일
취침점호시간 몇분 전에 의무대에서 해원이가 보냅니다.
(5월 3일 정오에 퇴실했습니다. 할렐루야!!)
* '돌격'은 오뚜기부대 경례구호입니다!! ^_^
덧붙이는 말 : 2일이라고 했지만 목요일인 3일이 되어서야 마무리를 지었습니다. 편지쓰기가 쉽지 않네요. 가끔 세수할 때 코를 풀면 피가 섞여나오곤 합니다. 강하다고 생각했는데 그렇지 않은가봐요. 여러가지로 힘든 나날입니다. 저뿐만이 아니라 모든 국군장병들을 위해 기도해주세요.
참! 청년부 홈페이지는 잘 돌아가나요? 확신반 의심반으로 염려를 해봅니다.
답장을 기대하고 싶지만 이곳에 18일까지 있기 때문에, 그리고 이 편지를 빨리 보낼 수 없을 것같기 때문에 섣불리 기대는 하지 않겠습니다. 자대배치를 받으면 보내주세요.
그리고 보현이는 어디로 배치를 받았는지 궁금하네요. 서로 연락하기로 했는데...
※ 결국 이 편지는 보내지 못하고 세면가방 어딘가에 쳐박혀있다가 물에 번진 채로 집으로 옮겨졌다.
샬롬!! 영락청년들 모두 변함없이 잘들 생활하고 계시죠? 제가 여러분들의 곁을 떠나올 때는 조금은 쌀쌀한 봄이었는데 이제는 제법 더운 늦봄이 되었습니다. 이곳 조교들은 '훈련받기 딱 좋은 날씨'라며 비아냥 아닌 비아냥을 피워대지만 날씨가 좋으면 좋은대로 나쁘면 나쁜대로 힘든 것이 훈련이 아닐까요? 다른 사람은 어떨지 몰라도 저는 그렇더군요... 헤헤...
여긴 지금 의무대입니다. 사회에 '병원'과 같은 곳이죠. 사회에 있을 때에도 왠만해선 갈일이 없었던 제가 왜 여기에 와있는지 조금 의아할 따름입니다. 혹시 여러분 '찰과상'이라고 들어보셨나요? 고등학교 체육시간에 이론으로만 배웠던 '찰과상'을 이곳에서는 많이 볼 수 있네요. 근데 저는 좀 심합니다.(참고로 찰과상이란 흔히 말해 '물집잡힌 것'을 말한답니다) 왼발 앞축 전부를 까먹었거든요. 얼른 상상이 안가시죠? 쉽게 설명하면 왼쪽 발바닥 앞부분 껍질이 훌러덩 벗겨졌다고 이해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이제 좀 이해가 가시나요? 허허.
벌써 5일째입니다. 저는 겨우 이런 상처가지고 5일씩이나 '의무대'에 있을 줄은 몰랐습니다. 사회에 있으면 연고발라서 2~3일 내버려두면 다 나을 수 있는 것을 군대에 오니까 소독약에다 빨간약 발라주는 것이 전부더군요. 연고에는 왜그리 인색하던지... 그러면 벌써 내무실로 복귀했을 것을...
제가 얼마전 집에 보낸 편지에 동생에게 '청년부 홈페이지에 내소식좀 잘 남겨달라'고 부탁을 했었는데 제대로 전했는지 많이 궁금해요. 저는 지금 경기도 포천 오뚜기부대 신교대에 훈련병으로 있습니다. 오는 5월 18일에는 역시 오뚜기부대 어느 내무실에서 이병 계급을 달고 있을테지요. 맨처음 의정부 306보충대에서 제가 '오뚜기부대'로 자대배치를 받았다는 말을 들었는데 약간 어리버리했습니다. 사실 저는 어떤 부대인지 몰랐지만 같은 보충대 친구들이 저를 보며 '죽었다', '안됐다' 등의 위로(?)의 말을 하는 것을 듣고 '아차'싶었습니다. 언젠가 제가 청년부 홈페이지에 '나중에 제대하고나서 주님의 일에 헌신할 기회가 있을 때 남들은 쉽게 할 수 없는 어렵고 힘든 일을 맡고 싶다'는 내용의 글을 올린 적이 있그 말이 실행에 올겨질 줄은 몰랐거든요. 하지만 이곳에 와보니 아직까지는 견딜만 합니다. 그렇게 빡세다는 오뚜기부대훈련이 이정도(?)라면 다른 부대들의 훈련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허허... 너무 자만에 찬 말인가요. 어쩌면 아직까지 시작도 안했을지도 모르는데 말입니다.
처음 훈련에 임했을 때가 생각납니다. 연병장에 있는 흙의 반은 우리 훈련병들이 먹어치웠을 겁니다. 이유도 모르고 얼차려를 받기가 일쑤였고 조교들의 상소리에 익숙해져 왠만한 동물관련 은어나 숫자관련 비속어에는 꿈쩍도 안하게 되었습니다. 목이 마르면 흙먼지를 마시고 배고프면 욕을 먹어야 정상인 것처럼 느꼈던 지난 4주... 어찌보면 평화로웠고 어찌보면 지옥같았던 지난 시간들이 이젠 아무렇지도 않게 느껴질 정도로 익숙해졌어요. 가끔 따뜻한 바람에 녹아부는 솔잎향이 너무 달콤해 몇초간 정신을 차릴 수 없었던 기억... 혹시 여러분들은 있으신가요? 아마 고된 훈련뒤에 주어지는 '10분간 휴식'시간이 아니라면 느낄 수 없을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너무 빨리 잊혀져가나 봅니다. 제게 그렇게 따뜻한 말들을 건네주었던 여러분들의 음성이 하나둘씩 잊혀져 갑니다. 지금의 '믿음있는 군인'을 만들어준 여러분들의 모습들이 자꾸 잊혀져갑니다. 취침시간에 잠들기전 기억하던 영락식구들의 모든 것들이 점점 가물가물해져갑니다. 절대로 잊지 않겠노라고 다짐을 하고 입소했었는데 이젠 그 다짐이 무색해져갈 정도입니다. 여러분들과 함께 찍었던 사진한장 챙겨오지 못한 것이 후회스러울 정도입니다.
가끔, 아주 가끔 제가 군대에 오기전 청년부 예배시간에 청년부로 보냈던 편지를 읽는 시간이 기억납니다. 많은 청년들이 웃고 넘겼던 수많은 편지들이 떠오른 적이 있었습니다. 그땐 왜 몰랐는지... 청년부로 편지를 보냈던 형제 자매들의 간절한 그 마음을 왜 몰랐는지... 이제서야 그 간절한 마음을 알 수 있을 것같습니다. 여러분들은 느낄 수 있나요? 한자 한자에 담긴 그 유언같은 마음을 말입니다.
이 편지를 언제 보낼지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여러분들이 제 소식을 보는 날에도 저는 여러분을 볼 수 없을 것같습니다. 짧긴 하지만 70여일 뒤에 있을 4박 5일의 100일 휴가나 노려야겠군요. 저나 이 편지를 보는 여러분이나 모두 건강한 모습으로 뵙길 기도하겠습니다.
여러분들께 조금이라도 더 제 소식을 전해드리고 싶은 마음에 펜을 들긴 했지만 편지를 쓰는 정해진 시간이 있는지라 내용도 글씨도 엉망인 것 같네요. 다음에 또 기회가 있을 때 그 때 더 자세하고 정성스러운 편지를 약속해드리겠습니다. 항상 건강하시구요. 하루하루 즐겁고 활기찬 나날이 되길 멀리에서 나마 기도드리겠습니다. 이만 줄일께요. 평안하세요~!!
2001년 5월 2일
취침점호시간 몇분 전에 의무대에서 해원이가 보냅니다.
(5월 3일 정오에 퇴실했습니다. 할렐루야!!)
* '돌격'은 오뚜기부대 경례구호입니다!! ^_^
덧붙이는 말 : 2일이라고 했지만 목요일인 3일이 되어서야 마무리를 지었습니다. 편지쓰기가 쉽지 않네요. 가끔 세수할 때 코를 풀면 피가 섞여나오곤 합니다. 강하다고 생각했는데 그렇지 않은가봐요. 여러가지로 힘든 나날입니다. 저뿐만이 아니라 모든 국군장병들을 위해 기도해주세요.
참! 청년부 홈페이지는 잘 돌아가나요? 확신반 의심반으로 염려를 해봅니다.
답장을 기대하고 싶지만 이곳에 18일까지 있기 때문에, 그리고 이 편지를 빨리 보낼 수 없을 것같기 때문에 섣불리 기대는 하지 않겠습니다. 자대배치를 받으면 보내주세요.
그리고 보현이는 어디로 배치를 받았는지 궁금하네요. 서로 연락하기로 했는데...
※ 결국 이 편지는 보내지 못하고 세면가방 어딘가에 쳐박혀있다가 물에 번진 채로 집으로 옮겨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