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09월 07일] 059. 보고싶어서...

by 황해원 posted Aug 25,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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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OO에게...

안녕 OO야! 그동안 잘있었지? 물론 나도 잘있다. 일주일 전만 해도 더워서 못견디겠다며 웃옷을 벗어제키고 땀을 흘렸는데 이젠 전투복 소매를 내리지 않으면 쌀쌀함을 심하게 느낄 정도로 서늘해졌단다. 제복규정에 대해서 민간인이... 그것도 유학생이 알리야 없겠지만... 암튼 그래. 그곳은 어때? 미국은 벌써 가을인가? 지도를 보니까 윗쪽 지방이던데... 그럼 여기보다 더 춥겠지?
방금 야간근무를 갔다왔어. 후임병 녀석이 내 다음 근무자를 늦게 깨우는 바람에 30분이나 늦게 복귀했어. 30분이나 늦게 왔으니 서둘러 잠을 자야 하는 것이 정상이겠지만 오늘은 왠지... OO에게 편지를 쓰고 싶어서 말이야...
너의 믿을 수 없는 편지를 받은지 한달은 벌써 넘었지만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더 믿을 수가 없어진단다. 왜일까. 네가 보낸 것같지 않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이상하게 더 커져만 간단다. 머때문일까. 설마 네가 나에게 그런 끔찍한 말들을 보낼리가 없지... 설마. 그말이 사실일지라도...
너를 기다린지 2년하고도 한달째... 보통사람이라면 어땠을까. 다른 사람들을 보니까 2년이란 시간이 길게 느껴지는지 1년도 견디지 못하고 이곳의 멋진 사나이들을 버리고 새사람을 만나는 경우가 많더라고. 그시간을 기다리는 것이 그렇게 힘든 일일까. 나는 2년이란 식나이 지나도 OO를 보낸 2년하고도 한달 전과 똑같은데... 그러고보면 나도 참 기특해. 남들은 1년도 하기 함든 기다림을 어떻게 2년하고도 한달을 기다릴 수가 있는지...
그래... 나의 경우를 비춰보면 잠깐 한눈을 팔 수도 있겠지. 나나 너나 좋은 것을 보면 마음이 생기는 사람이니까. 물건이든 사람이든... 뭐 그런거 아니겠어? 견물생심... 나만 유난히 그런건지는 모르겠지만 희안하게도 예쁘고 나한테 잘해주는 여자를 보면 사귀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라고. 하지만 결국 내가 돌아갈 곳은 OO, 너라는 것을 생각하면 요동치던 마음이 조금씩 잠잠해져... 글쎄... 너도 나같은 사람이니까. 잠시든 자주든 나와 같은 생각이 들었겠지? 나도 그런데 어떻게 내가 사랑하는 너를 원망할 수가 있겠어. OO같으면 그러겠니?
우리 소대에서 내가 좋아하는 선임병 중에 한분이 이렇게 너를 잊지 못하는 나에게 그러더라구. "야~ 너는 하루종일 그생각만 하냐~" 왜?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떠올리는 것이 이상한가? 전혀 연관이 없는 물건만 봐도 OO가 생각나는데 어떻게 하라고... 머리 위에 앉은 새를 쫓을 수가 있어도 머리 위로 지나가는 새까지는 내가 어쩔 수가 없잖아. 아침에 일어나서 일과를 시작할 때부터 잠이 들 때까지 바람이 불면 나뭇잎들이 부딪히듯이 머리에 계속 와 부딪히는데 나보고 어떻게 하라고~
이젠 인정해야 하는 것일까. 영화에서... TV드라마에서... 노래 가사에서만 들어오던... 남의 이야기처럼 생각해오던 일들이 이젠 나의 일이 되었다는 것을 슬프지만 인정해야 할 시간이 된 것일까. 그곳에선 온통 어떻게 하겠다던 말들이 막상 내가 닥치게 되니까 뭐라고 그랬는지 생각나지가 않는다.
네 새 남자친구... 어떤 사람일까. 납다 좋은 사람인 것이야 당연한 것일테고... OO와 같은 유학생일까. 아니면 이민간지 오래된 한국인? 그것도 아니면 그곳에서 태어나 한번도 그곳을 떠나지 않은 교민2세? OO는 외국인과는 별로 뜻이 없다고 했으니까 푸른 눈과는 사귀지 않을거야. 더글라스 장. 마이클 신. 머 이런 사람과 재미있는 시간을 보내겠지.
얼마나 많이 외로웠을까. 나와의 약속을 지켜야 한다는 강박관념 속에서 하루하루를 지내느라 괴롭기도 했겠지. 그 사람을 처음 봤을 때는 갈등 속에서 지내는 날도 있었겠고. 결국 그 사람을 선택하게 되었을 때는 자책감 속에서 스스로를 학대하기도 했겠지. 불쌍한 우리 OO. 내가 좀더 능력있고 믿음이 강한 청년이었더라면 OO를 그런 사막같은 곳에서 혼자 그런 고통을 겪게는 하지 않았을텐데...
그 사람과는 행복한지 모르겠다. 그래야 될텐데... 내 생각이 나지 않을만큼 재미있고 즐거운 나날을 보내야 할텐데...
너무 많은 이야기를 해버렸구나. 긴 이야기는 지루하기만 할 뿐인데 말이야.
이상하게 잠이 오질 않는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에게 하지 못한 이야기를 쓴다는 설레임 때문일까. 그래 못다한 이야기는 다음에 또 하자. 오늘이 마지막날은 아니니까.
그래~ 항상 건강하길 기도할게! 공부 열심히 하고 행복하고 알찬 하루하루가 되길 바라며 이만 줄인다. 안녕.

2002년 9월 8일
새벽근무를 다녀와서
잊지못해 네게 편지를 쓰는 해원이가.

P.s:추신은 사랑하는 사람에게
쓰는 거라는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
사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