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소설수필

[곽재구] 사평역에서

by 황해원 posted Oct 07,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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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평역에서


곽재구




막차는 좀처럼 오지 않았다

대합실 밖에는 밤새 송이눈이 쌓이고

보라 수수꽃 눈 시린 유리창마다

톱밥 난로가 지펴지고 있었다

그믐처럼 몇은 졸고

은 감기에 쿨럭이고

그리웠던 순간들을 생각하며 나는

한 줌의 밥을 불빛 속에 던져 주었다

내면 깊숙이 할 말들은 가득해도

청색의 손바닥을 불빛 속에 적셔 두고

모두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산다는 것이 때론 술에 취한 듯

두릅의 굴비 한 광주리의 사과를

만지작거리며 귀향하는 기분으로

침묵해야 한다는 것을

모두들 잘 알고 있었다

오래 앓은 기침 소리와 쓴 약 같은 입술 담배 연기 속에서

싸륵싸륵 눈꽃은 쌓이고

그래 지금은 모두들 눈꽃의 화음에 귀를 적신다

자정 넘으면

설음도 뼈아픔도 다 설원인데

단풍잎 같은 몇 잎의 차창을 달고

밤 열차는 또 어디로 흘러가는지

그리웠던 순간들을 호명하며 나는

한 줌의 눈물을 불빛 속에 던져 주었

 

 

◈ 잠시 기다리시면 낭송시가 흐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