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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원이세상

담아온 글들

연하가......
2005.01.01 11:49

[이현철] 연하가 어때서(24회)

조회 수 463 추천 수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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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많은 시간이 흐르면 아무리 가슴에 품었던 사람이라도 잊혀지게 마련이다.
사람의 뇌는 자기 편의에 의해서 시간속으로 기억했던 것을 잊게끔 만들어져 있다.
짧은 시간에 쉽게 잊혀지는 것이 있는가 하면 긴 시간을 두고 잊기 위해 노력해야 되는 경우도 있다.
그리고 많은 시간 그리워하면서 잊음을 외면하는 경우도 있다.
은정이 누나가 멀리 있는 동안 그리웠다.
그 짧은 시간을 통해 은정이 누나는 내게 있어 이미 많은 그리움을 주는 존재가 되어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내 마음이 내가 생각하는 것 보다 앞서 걸어 가고 있음을 느꼈다.
어느새 하늘 속에 있게 된 것일까.
사람들은 하늘이 자기의 머리 위 멀리 있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 우리는 하늘 속에 살고 있다.
누나를 사랑하게 될 것 같다고 생각했다.
사랑하지 말자고도 생각했다.
훗, 내가 그런 생각들을 한 것은 아무래도 누나를 사랑하기 때문에 내 뱉은 말 같다.
작년엔 이렇지 않았는데...
올 해는 가을을 유난히 탈 것 같다.
절대 티를 내지 말자.
그리고 배를 째는 한이 있어도 아니라고 시치미를 떼야겠다.


외할아버지 댁에 간다고 간 것이지만 거의 베낭 여행을 하는 것 같았어요.
곳곳을 많이 돌아 다녔거든요.
일 년 가까이 외할아버지 댁에 머물렀을 때보다 더 많은 곳을 돌아 다녔습니다.
그 곳의 좋은 기억들을 품고 난 귀국 비행기를 탔습니다.
이제 몇 시간 후면 한국에 도착합니다.
외할아버지는 여전히 건강하셨구요.
내년에는 한국을 한 번 나오실거라 하셨습니다.
할아버지를 떠난 아쉬움이 있지만 한국에는 내 사람들이 있지요.
아빠, 엄마가 보고 싶네요.
그리고 그 녀석 생각이 많이 납니다.

오스트리아로 놀러 갔을 때, 아주 인상에 남는 곳이 있었어요.
호수위에 작은 마을이 떠 있는 듯한 모습이었지요.
후후, 그 곳을 떠나면서 문득 철수와 한 번쯤 다시 와 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 녀석 데리고 다니면 재밌지요.
한국이 가까워 질수록 철수 녀석 생각이 자꾸 나는 것은 왜일까요.
좋은 기억을 공유했던 사람이 그녀석 뿐만이 아닐진데, 철수 녀석 생각이 납니다.
한 달정도 헤어져 있었다고 이렇게 보고 싶은 건 녀석이 내게 있어 큰 의미가 되었다는 것을 뜻하겠지요.
연하도 괜찮을까?
녀석이 연상은 싫다고 했지요.
녀석의 그런 생각 쯤 바꾸는 것은 어렵지 않습니다.
철수는 재밌고 같이 있고 싶기는 하지만 멋있고 기대고 싶은 그런 성숙함은 보이지 않습니다.
그래서 조금 더 시간을 흘러 보낼까 합니다.
이국에선 이국적 정서 때문에 묘한 그리움이 있지요.
승주 생각도 많이 났습니다.
철수 녀석은 승주 분위기도 많이 가지고 있습니다.
그 사람 보단 밝은 모습이지만요.
승주는 생각이 났지만 이제 같이 있고 싶다는 느낌은 그 사람이 아닙니다.
아직 다른 인연을 꿈꾸고는 있지만 지금 흘러가는 생각 속엔 승주 그 사람은 잊혀지는 중이고, 철수는 혹시나 하며 마음이 가고 있지요.
승주 선물을 하나 샀어요.
그게 예의일 것 같아서, 잊혀지기 싫다고 말한 사람이었으니까 작은 선물 하나를 샀지요.
포장이 예쁘게 되어 있지만 그렇게 큰 의미가 있는 건 아닙니다.
차라리 스위스에 갔을 때 찐한 그리움을 가지고 산 볼품없는 상자의 목동 인형이 훨씬 의미가 있는 것이지요.
별에 나오는 목동 있지요?
철수가 생각 나 하나 샀습니다.
비행기 내에서 전화해 봤어요?
후훗, 평일이기에 날 마중 나올 사람이 없습니다.
아빠가 마중 나와 줄 것이라 했지만 그냥 나 혼자 들어 간다고 말했었지요.
근데 생각해 보니까 부려 먹을 수 있는 놈을 놔두고 나 혼자 많은 짐들을 들고 초라하게 귀국하기는 싫었습니다.
삐삐 치기는 어렵겠지요?
철수 집에다 전화를 해 보았습니다.
지금 한국은 아침 8시 정도 됐을 겁니다.
세 시간 쯤 후에는 한국에 도착할 겁니다.
또 아버님이 받으셨습니다.

"그 처잔가?"
"네."
"아침부터 무슨 일인가?"
"네? 부탁할게 좀 있어서요."
"24살이라고 했던가?"
"네."

나중에 카드 결제할 때, 돈 많이 물게 되면 철수더러 갚아라고 해야 겠다.
아버님, 이거 비행기에서 거는 전화란 말이에요.

"철수 아직 자거든? 잠깐 기둘려 봐."
"네."

이게 내가 오늘 한국 도착하는 걸 알텐데 아직까지 자고 있단 말이야?

"철수야 그 나이 많은 여자한테 전화 왔다."

다 들려요 아버님. 24살이 많은건가?
2분 동안 비싼 기내 전화기를 들고 침묵했습니다.

"여보세요."

전혀 반가워 하는 목소리가 아닙니다.
이런 녀석을 내가 그리워 했다니...

"나야."
"한국에 돌아 온거에요?"
"지금 가고 있어."
"가고 있어요? 어디로?"
"지금 서울가고 있단 말이야."
"어디 딴데서 내렸어요?"
"지금 비행기 안이야."
"에이, 비행기에서 어떻게 전화를 해요."

바보 같은 놈.

"넘어가자. 본론만 말할게. 11시까지 김포 공항으로 나와."
"거긴 왜요?"
"나 그 시간에 입국 할거야. 대한항공이고 뮌헨에서 탔어."
"진짜 비행기 안이에요?""
"응. 너 오늘 할 일 없지? 누나 마중 나와."
"아이쒸, 나도 할 일이 있을 수 있단 말입니다."
"나올거지? 누나가 네 선물도 몇 개 샀다?"
"11시까지 가면 돼요?"
"응. 2청사야."

녀석의 선물을 산 건 사실이에요.
미소가 담긴 선물입니다.


아침 옅은 잠 속에 은정이 누나가 나오는 꿈을 꾸었다.
애틋한 내용은 아니다.
그냥 보약 배달하러 갔다가 우연히 누나 만나 인사하는 꿈이었다.
그래도 누나가 나왔기 때문에 애틋했다.
약속을 잡고 어디로 놀러 갈 수도 있었는데 울 아버지가 날 깨우셨다.
방학인데 늦잠 좀 자게 놔두지.
전화 왔댄다.
나이 많은 여자에게서. 처음엔 누군지 몰랐다.
누나가 오늘 한국으로 오는 날이었지만 아침부터 날 찾을거라 생각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누나는 아버지를 겁내기 때문에 거의 호출을 한다.
잠결에 전화를 받았는데 은정이 누나였다.
반가워 할 틈도 없었다.
누나에게서 비행기 안에서도 전화를 할 수 있다는 것을 배웠다.
다이하드에서 보았던 것이 사실었다니...

아침이 바빠졌다.
나는 공항하고 친하지 않았기 때문에 일찍 서둘러야 했다.
버스를 타고 갈까 생각하다가 외국 나갔다 오는 사람들의 짐이 가볍지 않을 것이라 생각하고 직접 운전 해 가기로 했다.
어제 아버지가 외출을 하셨기 때문에 차에 기름이 많을 것이라 생각했다.
빨간 불 들어 오더라.
기름 넣어라고...
우리 아버지 만원치 이상 기름을 넣는 일이 거의 없다.
하루에 만원씩 7만원 주던 주급이 방학이다 술값이다 까여서 4만원으로 줄어 있는 상태였다.

"기름 2만원치만 넣어라."

울 아버지 내게 열쇠를 주시면서 하신 말씀이다.
너무 하십니다 아버지.

공항에서 많이 헛갈렸다.
주차 시킬 곳을 찾지 못해서.
공항 주차비 졸라 비쌌다.
한 시간 째 누나가 나타나길 기다리고 있다.
3주만에 누나의 모습이 낯설게 느껴지거나 변했을 거라고 생각지는 않지만 누나의 모습이 어떨지 기대되고 궁금했다.

뽕뽕!
저 비행긴가벼.
게시판에 도착을 알리는 불빛이 빛나는 비행기의 이름이 누나가 말한 그것이다.
이제 곧 나타나겠지.
20분이 흘렀다.
엄청 긴 시간이 흘렀다.
드렁크 하나를 끌고 선글라스를 낀 채 짧은 면바지에 푸른 색 티를 입은 예쁜 아가씨가 두리번 거리더니 나를 보고 웃는다.
저 아가씬가벼.
촌스럽게 선글라스가 너무 크다.
얼굴이 작은건가?
쪽 팔린다.
손은 흔들지 마라 야.
씩 웃으면서 누나에게 다가 갔다.

"오랜만이네요?"
"응. 나 많이 보고 싶었지?"

검지 손가락을 세워서 누나의 볼을 찔러 줌으로서 그 답을 대신했다.

"야간 비행기 타고 왔어요? 아침에 도착하네?"

누나가 선글라스를 벗고 날 아주 한심스럽다는 표정으로 쳐다 보았다.
11시도 아침이 맞는데...

"시차에 대해서 전혀 개념이 없구나? 별 일 없었지?"
"응. 누나는 재미있었어요?"
"그럼."
"나도 내년엔 배낭 여행이나 가 볼까?"
"군대 갔다 오지 않은 애는 힘들걸."

또 애라고 그랬다. 으쒸!

"내 선물 뭐 사왔어요?"
"트렁크에 있어. 나중에 꺼내 줄게. 누나가 오늘은 피곤해서 집에 가 자야겠다."
"데려다 줄게요."
"그래, 담에 맛있는 거 사줄게. 나 없는 동안 심심했지?"
"너무 그렇게 단정하지 마세요."

심심하긴 심심했다.
주차비 3500원은 누구에게 받냐?
누나를 집까지 데려다 주었다.
내 옆에서 계속 생글생글 웃는 누나의 모습이 곱다.
여름 햇살처럼 말이다.
내 선물까지 사오고 맘에 든다.

"차 한잔 하고 가. 누나 방 구경시켜 줄게."
"집에 아무도 없어요?"
"아줌마 와 계실걸."
"파출부 아줌마요?"
"응."
"남자 데려가면 뭐라 그러지 않아요?"
"니가 남자니?"

또 무시 당했다.
그렇게 큰 빌라는 아니었지만 상당히 고급스러웠다.
거실에 원목의 가구들과 가죽 소파가 멋있게 놓여져 있었고, 발밑에는 카페트까지 있다.
우리 집 마루에는 대로 만든 돗자리가 깔려 있다.
비교 된다.
누나하고 어머님 옷들을 위한 방이 따로 마련되어 있었다.
방이 네개 있었는데 서재로 이용하는 방은 구경 못했다.
부모님 방에도 침대가 놓여져 있었다.
우리 부모님 온돌을 고집하신다.
나도 온돌이다.
재수생 내 동생도 온돌이다.
나 자취하면서 침대 첨 써 봤다.
우리 집에도 짐 방이 두개나 있다.
내가 자취 생활 한 이후로 내 방이 짐방이 되었다.
우리 아버지가 약재를 모아 놓는 방이 따로 하나 더 있다.
우리 집도 잘산다 뭐.
우리 아버지 한약방 주인이다.
아참 우리 아버지는 한의사라고 불러 달라셨다.
우리 아버지 우리 집과 한약방이 들어 선 그 건물의 건물주다.
우리 아버지 고정 고객이 많으신 잘 나가시는 한약방 주인이다.
아참 한의사시다.
근데 은정이 누나집의 실내 분위기에서 기가 좀 죽었다.
은정이 누나 집은 꾸며 놓고 사는 집이었다.
누나 방엔 바로크 양식?
대충 저렇게 등받이가 긴건 다 그렇게 말하더라.
하여튼 고급스런 의자와 테이블도 있었고, 울 엄마 화장대 보다 고급스런 원목의 화장대와 진열장도 있었다.
침대도 더블 침대로 침대보가 상당히 이국적이었다.
피아노는 칠 줄 아는 걸까?
피아노도 방안에 있었다.
그리고 많은 책들...
벽에걸린 4절지 만한 액자 속의 누나의 모습은 조금 어려 보였지만 예뻤으며 그 옆에 서 계시는 아버님과 어머님의 모습 또한 멋있고, 세련되고 젊어 보이셨다.

"저거 누나 몇 살때 찍은 거에요?"
"대학 갓 들어와서 찍었지 아마."
"부모님 연세는?"
"왜? 사진의 모습이 젊어 보이시지? 두 분 다 이제 50이야."

우리 아버지하고 같네.
우리 아버지도 보약을 많이 드셔서 그런지 나이보다 젊어 보이신다.
세련되어 보이시지는 않지만...
누나 부모님도 동갑이시네?
연애결혼 하셨나?

누나 방의 테이블에서 커피 한 잔 얻어 먹으며 누나가 짐을 푸는 광경을 목격했다.
왠 인형을 저렇게 많이 사왔다냐?

"너 선물. 인형을 보니까 네 생각이 많이 나더라. 그래서 생각 날 때마다 하나 씩 샀어."

저 인형들이 내 선물?
우리 나라에도 있는 인형들이다.
포장되지 않은 박스 속 도자기로 된 목동의 인형만이 조금 이국적이다.
작은 인형에서부터 승헌이가 놓고 간 인형 크기만한 것 까지 총 다섯개다.

"다섯 개 다 내꺼에요?"
"응."
"정희 누나 선물은 안 사왔어요?"
"정희에게는 이거."

멋있는 쇼울이다.
나도 목돌이 같은 마후라나 하나 사 줄 것이지.
으이쒸, 또 어린 애로 취급 받았다.
내가 그래도 남자거든요.
근데 남자에게 인형을 선물해?
그것도 다섯개 씩이나?
저거 나이 많은 여자 맞아?
웃고 있는데 기분 나쁜 표정 지을 수도 없고...

"감사합니다."
"네 방이 좀 삭막하잖아. 인형으로 분위기 살려 봐."

노란 오리 인형을 볼 때 내가 왜 생각이 났을까?
서양 도깨빈가?
이거 볼때도 내 생각이 났단 말이여?

"그건 뭐에요?"

누나가 물건을 꺼내는 것에서 예쁘게 포장 된 무언가를 발견했다.
내 인형들 보다 비밀이 담겨 있고 있어 보이는 물건 같다.

"이거? 혹시나 해서."
"부모님 선물?"
"부모님 것은 따로 있어. 이건 주지 못할 것 같아."
"누구 승주 그 사람 선물이에요?"
"응."

누나의 미소가 곱다.
그렇게 느껴졌다.
그 사람 생각으로 그에게 줄 선물을 보는 누나의 시선또한 부러운 것이었다.
조금 슬프다.

누나의 집에서 오래 있지는 못했다.
점심 먹고 가라는 걸 그냥 나왔다.
종이 가방이 두개가 필요했다.
내게 필요없는 인형들이지만 그래도 좋아하는 누나가 선물한 거라 소중히 보관해야 겠다.
8월 남은 방학 동안 기분 좋은 일이 생길까.
그냥 누나하고 만나는 시간엔 기분이 좋을 것 같다.

"가볼게요."
"그래. 마중 나와서 고마워."
"나오라고 시켰잖아요."
"훗! 내일 연락할게."
"그러세요."
"나 보고 싶었지?"

응, 많이 보고 싶었어.

"한 번쯤 생각은 나더이다."
"치. 나는 네 생각 많이 났었어 임마."

친한 후배의 기억으로 동생의 기억으로 많이 생각나면 뭐 합니까.
그리움이 있는 사랑하는 사람의 기억 한 번이면 가려질 덧 없는 것일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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