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와컬럼

모병제?

by 황해원 posted Oct 18,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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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user.chol.com/%7Eskidrow6/nondan/army.htm 최근 들어 갈수록 양심적 병역거부와 모병제 논의가 거세어지고 있다. 인권을 이야기하기도 하고, 징집된 병사들의 기회비용을 이야기하기도 하는 등, 많은 이유들이 제시되고 있다. 모병제나 대체 복무제도 등에 대한 논의는 충분히 있을 수 있을 수 있는 일이라 생각한다. 국방을 달성하는데는 여러 가지 방법이 있을 수 있고, 징병제가 역사적으로 고정불변되어야 할 아무런 이유는 없다. 현대전에서 노동 집약적인 군대와 기술 집약적인 군대간의 전투력 격차라는 것은 실로 대단해서, 미국 주도의 정예군이 북한군보다 떨어질 것 없는 군대들에 대해서 일방적인 전투를 벌이는 것은 이제는 흔한 일이 되었다. 때문에, 대한민국의 상비군 체계에 대해서도 심사숙고할 때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최근 사회적으로 논의되고 있는 징병제 폐지론은 대단히 위험하다고 본다. 그 이유는, 그릇된 사실과 가정을 기초로 하고 군대를 사회악으로 전제한 채 군대가 사라져야 할 대상으로서 논의되고 있기 때문이다.

몇 년 전 딴지일보에서는 징병제를 폐하라는 자칭 군사전문가의 시류영합적인 3회짜리 연재 글이 올라온 적이 있다. 홈지기는 그 글에 대해서 3회짜리 반론글을 쓴 적이 있는데, 사회적인 징병제 폐지주장의 논리가 반영되어있는 딴지일보의 징병제 폐지론의 주된 골자는, 남한의 군사력이 북한보다 강하니까 현재의 군사력을 유지할 이유가 없고 징집된 장병들이 사회에서 일하지 못하는 높은 기회비용을 발생시키므로 징병제를 폐지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다른 징병제 폐지 논리들을 봐도 여기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그런데, 홈지기는 인터넷의 자칭 군사전문가들이 아무나 한번씩 다 해보는 남북한 군사력 비교라는 것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고 본다. 그런 주장들을 일일이 구체적으로 열거해서 문제를 지적하자면 끝도 없기에 생략하고, 그런 류의 수정주의적 주장들은 대개 국방당국이 제시하는 수치적인 데이터가 숫자놀음에 불과하고  국군 장비 기술적 우위가 크므로 그 수적 우위를 무시해도 좋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기술적 격차를 무시한 숫자 대비가 부정확한 것이듯, 수적 비교를 배제한 기술만의 비교 역시 무의미하다. 더욱이, 남한의 군사력이 우세하다고 주장하는 글들은 합리적이라기보다는 부정확하고 단편적인 사실들을 자의적으로 짜맞추어 남한의 군사력이 우위인 부분만 확대해석하는 주관적 선입견에 입각한 글들이 대부분이다. 수치놀음으로 북한군이 우세하다고 하는 것이 위험하다고 주장하지만, 자의적인 편견과 사실 왜곡들을 근거로 남한의 군사력이 우세하니까 군대를 줄여도 된다는 주장이 더 위험한 선동행위일 것이다. 주한 미군이 없어도 남한이 우세하다는 논지를 펴면서 주한미군에만 있는 장비를 언급한다든지 주한미군이 있어야만 가능한 작전을 남한의 군사력이라고 이야기하는 것을 보면, 도대체 무슨 말을 하겠다는 건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심지어 어떤 자칭 군사전문가는, 주한미군 전력이 있으니 국군을 줄여도 된다는 황당한 주장을 하기도 했다.

유형 전투력이란 간단히 장비의 숫자곱하기 전투효율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여기서 전투효율은 장비의 기술적인 우위를 통해 달성된다. 때문에, 숫자가 많지만 기술적으로 떨어지는 군대와, 숫자가 적지만 기술적으로 앞서는 군대의 전력을 비교하라는 것은 인터넷의 가짜 전문가들이 아니라 어떤 진짜 전문가에게라도 난해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남한의 군사력이 우세하다고 주장하는 진짜 전문가의 이름들이 도용되기도 하지만, 전세계의 모든 군사전문가들이 모두 그렇다는 것이 아닌 바에는 자기한테 유리한 주장을 하는 전문가를 자의적으로 인용하는 것은 아무 의미 없는 것이다.
앞서에서, 현대전에서는 기술적 격차가 일방적인 전투결과를 가져온다고 하였다. 그런데, 이러한 일방적인 전투결과를 가져오는 것은 군사력 시스템 전반적으로 한 세대 이상 차이가 나는 경우에나 가능하다. 그 정도의 일방적인 기술적 격차가 아니라면, 서로 같이 깨지면서 한쪽이 조금 덜 깨지는 정도에 불과하다. 이를테면, 장갑이 조금 더 튼튼하고 주포 화력이 조금 더 센 전차를 가지고 있다고 해서 상대편보다 압도적인 전투결과는 발생하지 않는다는 얘기다. 그런 류의 어설픈 기술적 우위는 전술적인 대책으로 충분히 상쇄될 여지가 있고, 수적인 우위에 의해서도 쉽게 무너진다. 국군의 기술적 전력이 무슨 이라크 침공한 미군과 동격쯤 되는 줄 착각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이미 도태되었어야 할 무기들을 가지고서 억지로 "숫자"를 채우고 있는 국군이 북한군보다 기술적으로 압도적이라고 할 충분한 근거는 없다.


수적인 우위를 흔히 쉽게 생각하는데, 수적인 우위는 전체 전투력뿐만 아니라 지휘관에게 그만큼 폭넓은 작전선택의 자유를 부여해주고, 계량적인 수적 우위는 지휘관의 전술적인 운용 여하에 따라서 실제 접적 현장에서는 그보다 몇 배가 될 수도 있다. 국군 전차가 1000대고 북한 전차가 3000대니까 국군 전차 한 대가 북한 전차 3대만 잡으면 된다고 생각하는 것은 유치한 산수놀음에 불과하다. 그런 식으로 싸워서는 쌍방 모두 전멸한다는 얘기밖에 안되기 때문에, 그러한 비율은 최소한 그 정도를 유지해야 하는 하한선이 그렇다는 것일 뿐이다. 그에 더해서, 숫자가 더 많은 측은 작전기동의 자유를 누릴 수 있고 그 결과 원하는 지점에 전투력을 집중 운용할 수 있기 때문에, 실제 접적 장소에서는 국군 전차 10대가 북한 전차 30대를 만나는 것이 아니라 100대, 200대를 만나게 될 수도 있다. 또, 북한 전차 1000대가 아군 전차 1000대와 대치하여 소강상태를 이루고, 나머지 2000대가 다른 전선을 유린한다면, 수적으로 소수인 측에서는 위험을 무릅쓰고 공세적으로 적을 찾아 나서지 않는 한에는 마땅한 대책이 없지만, 소모전은 수적으로 우세한 측에게 오히려 유리하다.
  공군의 경우에도 흔히 공군력에서 기술적 우세가 더욱 결정적인 것이라고 생각하기 쉬우나, F-16 4기 편대가 5-6대의 MiG-21 편대정도는 상대할 수 있겠지만, 10여 대 이상을 한꺼번에 상대하기는 힘들다. 때문에 아무리 기술적으로 앞선다고 해도 어느 정도 출격횟수가 적에 비해서 크게 뒤떨어지지 않을 정도로 수적으로 뒷받침이 역시 되어야 한다. 이것은 한국공군뿐만 아니라 우리보다 훨씬 기술적으로 앞선 미국공군에게조차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 군장비의 하이-로우 믹스라는 개념은 그래서 존재하는 것이다. 기술적으로 앞서면 수적 우위는 무시해도 된다는 소리는 전장 현실을 모르는 헛소리에 지나지 않는다. 적 전차 3-4대가 사방을 포위해서 조여 들어오고 있는데 K-1전차병이 적 전차의 기술적 열세를 생각하며 기뻐하기라도 하겠는가.

군사력 비교는 이렇게 복잡다단한 문제를 가지고 있는데, 불과 몇백 줄의 취미로 쓴 글을 가지고 남한 전력이 북한을 압도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지적 허세로 사람들을 현혹하는 사기행각 이상일 수가 없다. 그러나 좋다. 사실에 대한 접근이 아니라 믿음의 문제로 치환해서 남한 전력이 북한보다 우세하다고 믿는다 해보자. 그렇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전쟁이 안난다는 보장이나 군대를 줄여도 된다는 근거는 될 수 없다.
2차대전 직전 영불 연합군과 독일군의 군사력을 비교해본다면 영불 연합군이 수적으로 우세였음은 물론, 장비도 독일군보다 객관적으로 뛰어났다. 논란의 여지가 없이 대부분의 사람들은 영불연합군의 전투력이 독일군을 능가했다고 말할 수 있다. 게다가 영불연합군은 독일군이 쳐들어올 것을 알고 기다리고 있었으며 거대한 요새 방어선을 가지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수적으로도 열세이고 기술적으로도 뛰어나지 않은 독일군에게 6주만에 패전했다. 군사력 비교, 그것도 자의적으로 꿰어 맞추어 남한이 북한보다 강하다는 자의적인 결론을 근거로 전쟁발발 가능성을 예측하겠다는 것은 웃기는 짓이다. 더욱이, 그런 결론을 근거로 군대를 줄여도 된다고 하는 것은, 사실에 대한 전문성 있는 접근이 아니라 빨간 머리띠 묶고 마이크 붙잡고 구호 외치는 것에 다름 아니다.

모 포탈 사이트에는 모병제 논의를 활성화시키는 차원에서 모병제의 장점에 대해서 많은 글들이 있다. 물론, 모병제를 하면 여러 장점들이 있을 수 있다. 그렇지만, 모병제는 무조건 다 좋고 징병제는 무조건 다 나쁜 것이 아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는 앞으로가 아니라 이미 몇 십년 전에 모병제를 했어야 할 것이고 전세계 역사상 징병제를 했거나 하는 나라가 하나도 없어야 할 것이다.
모병제는 여건에 따라 선택할 수 있는 하나의 국방정책이다. 그러나, 모병제와 징병제는 각자 장단점이 혼재되어 있다.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것은 "어떻게 하면 국방을 효율적으로 달성할 수 있을 것인가"가 되어야 할 것이며, 여러 방법들의 장단점에 대해서 깊은 심사숙고가 필요하다. 전 세계에 징병제를 하는 국가와 모병제를 하는 국가가 혼재하고 있는 것은, 징병제 국가가 모병제 국가보다 인권의식이 희박해서도 아니고, 징병제 국가의 젊은이들이 사회적으로 쓸모없는 인간들이라서도 아니다. 모두 다 자국이 가장 적합하다고 판단하는 국방의 방법이 있고, 그 방법에 필요한 인적자원이 있으며, 그 요구되는 인적자원 소요를 충당할 수단으로서 그 나라에 맞는 인력 충원방법을 가지는 것이다. 그리고 그 방법이 현재의 우리에게는 징병제이다. 군대에서 인권이 제한된다거나 군대에 있는 사람이 사회에 있었으면 돈을 많이 벌 수 있다거나 하는 것은 선동의 소재는 될 수 있을지언정, 정책 대안의 합리적인 논거는 결코 될 수 없다.

모병제 주장의 근거 중 하나로, 모병제를 하면 초과인력으로 인한 비용도 줄어들고 전력 효율화로 돈이 굳는다는 주장이 있다. 모 포탈 사이트에서 제시한 사례를 한가지만 보자. K-1전차의 연간 정비유지비용이 1억원 가량인데, 징집된 사병에 의해 K-1전차가 운용되기 때문에 이 비용이 발생하는데 비해서 연봉 3000만원의 부사관이 전차를 운용하면 전체로는 오히려 절약된다.는 주장이 있다. 이것은, 초보운전자가 모는 자동차는 돈이 많이 들고 고참 운전자가 모는 자동차는 돈이 하나도 안든다는 얘기나 똑같이 허무 맹랑한 얘기다. 1억원의 연간 정비유지비용의 대부분이 미숙련 승무원에 의해 발생한다는 것은 아무 근거 없는 헛소리에 불과하다. 전차장은 지금도 부사관이다. 뿐만 아니라, 모병제가 되면 부사관 혼자서 탱크 모나? 나머지 3명의 모병제 사병에게도 늘어나는 복지후생과 의식주 예산은 별도로 하고 월급만도 각각 연봉 2천만원씩은 줘야 할텐데, 그렇다면 연간 1억원의 정비유지비용이 모병제 하에서는 그 돈이 한푼도 안들어간다고 하더라도 그 돈이 고스란히 승무원 월급으로 나가야 하는 처지이다.
징병제를 모병제로 바꾸면 인건비가 대폭 줄거라고 흔히 생각하는데, 현재 사병들 의식주에 들어가는 돈이 얼마나 된다고 머릿수를 줄이면 돈이 대폭 남는다는 건지 의문이 아닐 수 없다. 60만 병력을 30만으로 줄인다고 할 때, 징집된 60만명의 월급과 의식주 비용을 전원이 직업 군인인 30만명에게 나눠줘서는 택도 없다. 즉 인건비가 줄기는커녕 대폭 상승할 수밖에 없다. 또한, 병력이 줄면 그에 상응하는 장비의 첨단화가 이루어져야 하는데, 첨단장비라는 것은 고성능이 될수록 비용대 효과면에서는 형편 없어진다. 즉, 병력이 반으로 줄었다고 해서 장비 투자비용을 두 배로 늘리는 것으로는 줄어든 전력을 대체할 수 없고 몇 배 더 많은 돈이 들어가야 전력이 유지될 수 있다는 것이다.

미군은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군사력을 가지고 있지만, 세계에서 가장 군대의 비용대비 효율이 낮은 국가이기도 하다. 단지 엄청난 비용을 투자하여 낮은 효율을 대체함으로써 전체 전력이 강할 뿐이다. 이를테면, 차세대 보병인 랜드워리어 병사 한명은 M-16 소총병 17명을 상대할 수 있다는 계산치가 있다. 그런데, 랜드워리어 한명에 드는 비용은 소총병 17명에 들어가는 돈보다 더 든다. 그렇지만 미군이 나름대로 저효율로 고비용을 투자하면서 정예 전력을 육성하는 데에는 나름대로 이유가 있다. 우리가 흔히 보는 "미군"은 미국의 국방정책의 전체가 아니라 그중 상비군인데, 미군 현역 부대들은 본질적으로 해외 원정군이며, 그 특성상 정예화될 수밖에 없다. 노동 집약적인 군대를 가져서는 해외 파병의 신속성을 달성할 수도 없고 그런 대규모 부대를 해외에 유지하기도 그만큼 힘들어지기 때문이다. 즉, 군사력 육성에 투자되는 비용 중 상당부분이 병참소요 감소로써 상쇄되며, 이는 비용의 문제를 떠나서 해외 작전 가능여부와도 직결된다. 만약 미군이 이라크군 수준의 기술력을 가졌더라면, 1차 걸프전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쿠웨이트에만 55만명의 병력과 4000대의 전차를 가진 이라크군에 대해서 훨씬 많은 병력을 투입해야 했을 것이다. 실제 투입된 미군은 35만의 병력과 전차 2000대였는데, 그래도 미국의 모든 수송능력을 총 동원하여 수개월간의 수송작전을 펼쳐야만 했다. 그보다 더 많은 병력을 수송해야 했다면 아마 미군은 국가 수송능력의 한계로 인하여 걸프전에서 전투 자체를 제대로 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해외 원정군인 미군은 첨단 기술력을 바탕으로 정예화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랜드워리어 시스템을 예로 든다면, 현용 보병 30명의 1개 소대 분의 전투력을 수송할 필요가 있을 때 랜드워리어 보병은 2명만을 수송하면 된다는 얘기다. 그렇지만 미국도 국익과 관련한 해외 작전이 아니라 자국 방어에 있어서는 무작정 많은 돈을 쏟아부어서 최첨단 전력을 유지하는 것만은 아니다. 주방위군은 2선급 무기들로 장비되며, 모병제라고 해서 군인만 전쟁에 나가는 것이 아니라 유사시에는 징병제로 즉시 전환할 수 있도록 징병 대상자들에 대해서 병역 등록을 하고 있다.
국군은 본질적으로 해외 파병과 상관이 없다. 따라서, 국군이 미군을 흉내 내어 병력을 줄이는 대신 첨단화시키는 것이 반드시 국방을 위해 가장 합리적인 대책이라고 말하기는 힘들다. 주어진 상황과 조건에 따라서 적합한 방책을 찾는 것이 가장 중요하고, 그 방책이 꼭 소수의 첨단병력이어야 할 군사적인 필연성은 없다. 국가를 방어하기 위해서는 어차피 팔다리 달린 사람은 모두 나와서 연탄집게라도 들고 싸워서 침략군의 점령의지에 대항하여야 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가 침략에 처했을 때, 소수의 현역부대가 그들을 막지 못한다면 나머지 국민들은 국방은 자기와 상관 없는 일이라고 손가락 빨면서 침략을 인정할 것인가?

대한민국의 국방정책은 일정한 전력의 상비군을 유지하는 것이고, 그러한 전력을 유지하기 위해서 하염없이 많은 돈을 써서 소수정예군을 유지할 수 없기 때문에 비용대 효과에서 우위인 징병제를 택해서 비용을 절감하고 인력으로 전투력을 충원하고 있는 것이다. 그나마 앞으로는 징병제를 유지하더라도 소요 병력을 충당하기 힘들 것이라는 걱정을 앞에 두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돈을 더 내면 되니까 모병제하자는 말은 화장실 가기 전이니까 할 수 있는 소리에 불과하다. 모병제를 지지하는 측에서도 모병제를 한다고 하면 각 가정마다 연간 수백만원의 국방비를 더 부담해야 한다는 계산을 인용하고 있다. 국방비를 GNP대비 1% 올리는데도 많은 사회적인 논의를 거쳐야 하는데, 단지 사병들이 사회에 나가서 돈을 버니까 이득이라는 근거 하나로 가정당 연간 몇 백만원의 국방비를 더 내라고 한다는 것은 현실적인 설득력이 없다. 그렇게 필요한 돈을 막 걷을 수 있다면 모병제뿐만 아니라 뭔들 못할까. 쓸 수 있는 예산이 늘어나더라도 한정될 수밖에 없으니까 마음대로 못하는 것이다. 돈 더 들면 더 걷어서 주면 된다는 말은 탁상공론일 뿐이다.
병역 의무를 돈으로 대체한다는 것은 사회 불평등을 심화시킬 소지도 가지고 있다. 고위층 자제들이 군대를 빠진다는 것이 징병제의 폐단으로 지적되고 있지만, 그것은 제도 자체에서 해결할 문제이지 징병제 폐지의 합당한 근거가 될 수는 없다. 징병제를 폐지하고 세금으로 병역을 대체한다면, 고위층에게는 별 부담이 안되는 대신 능력 없는 사람들에게는 그것이 큰 짐이 될 수도 있다. 돈 몇 백만원 쯤이야 있는 집 자식에게는 하룻밤에 쓸 용돈이지만 없는 사람에게는 1년치 생활비이다. 이런 마당에 국방비를 동일하게 부담한다는 것은 있는 사람은 돈 몇 푼 내고 가지지 못한 사람들이 병역 의무를 떠맡으라고 제도적으로 강제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징집된 사병들이 빼앗기고 있는 기회비용이라는 것도 그렇다. 지금 이사회에서는 사병들이 빼앗긴 기회비용을 정책적으로 보상해주지 않고 있다. ROTC출신정도나 되면 모를까 사병들은 군경력을 실질적인 사회경력으로 인정받지 못한다. 군가산점을 폐지하는 등, 군대에서 잃은 기회비용이라는 개념을 인정치 않고 있다. 그런데 사병의 기회비용이라는 오히려 현재로서 배척당하고 있는 개념을 모병제의 근거로 삼는다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 기회비용이라는 것이 그렇게 크다면, 지금 당장 현금이 아니라 정책적으로라도 군필자들에게 그 비용을 보상해줄 방도를 마련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징집된 사병들이 사회에 있으면 모두가 일정수준의 소득을 올릴 것이라고 어떻게 장담하는가? 서구라면 몰라도 우리나라는 정서상 20대 초반은 상당수가 부모님의 품안에 있다. 즉, 군대에 있을 시간에 돈을 벌어서 그중 일부를 국방비로 부담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는 생산적인 일을 하지 않으면서 부모님이 세금을 대신 짊어질 경우도 많을 것이다. 지금도 별다른 계획 없이 아르바이트로 번 돈 용돈으로 탕진하는 젊은이들 깔렸다. 사병들이 빼앗기는 기회비용이 있다면, 사병들이 사회에 있었다면 소모하였을 것이나 군대에 있음으로 해서 절약되는 소모비용도 일정부분 있을 수 있다. 모병제가 되어 젊은이들이 사회로 나오면 그 대다수가 생산성 있는 일을 할 것이므로 세금을 더 내더라도 사회적으로 이익이라는 것은 최선의 희망에 불과하다. 더욱이, 지금 사회에 있는 젊은이들도 일자리를 못 구해서 청년 실업이 문제가 되고 있는데 군대에 갈 사람을 안보냈다고 해서 무슨 사회적 생산성이 대폭 높아지겠는가. 지금도 군대로 도피하다시피 들어가는 마당에 말이다. 모병제를 지지하는 어떤 주장에서는 모병제를 하면 군생활이 직업이 되어 일자리가 늘어나니까 실업자가 줄어든다고 하기도 하던데, 군병력을 늘리는 것은 실업율 감소로 이어지고 병력을 줄이면 실업율이 늘어난다는 것은 사회적 상식이다. 모르고 그런 소리를 한다면 모병제니 징병제니 따위를 이야기할 자격이 없는 것이고, 알면서 그런다면 악질적인 선동행위이다. 모병제의 장점을 드는 논리들 중 상당수가 이런 식으로 사실과 다른 억지를 쓰고 있어, 오히려 모병제의 타당성을 해치고 있다. 사실 모병제 주장을 보면 정책 대안으로서의 심사숙고라기보다는, 진실여부는 아예 관심이 없이 그저 듣기 좋은 말만 덕지덕지 갖다 붙여서 사람들을 선동하는데 급급하다는 인상을 지울 수가 없다.

군대가 인권을 유린하는 사회의 적이고 그런 군대로부터 젊은이들을 보호하기 위해 징병제를 폐지해야 한다는 것은 논의의 소재조차 될 수 없다. 군대는 사회전체의 인권을 수호하는 곳이지, 실천하는 곳이 아니다. 모병제를 하면 군대의 이미지가 개선되고 군내 인권환경이 좋아질 것이라고 하는데, 지금처럼 군대를 사회의 암적인 존재로 여겨서는 모병제가 되면 군대의 인식은 대폭 더 나빠지면 나빠졌지 개선될 하등의 이유가 없을 것이다. 군대에 대한 인식이 우리보다 나쁠 이유가 없는 미국에서도 군대는 할 일 없는 사람들이 가는 곳인데, 군대를 욕하면서 모병제를 성사시켜 놓고는 군대를 얼마나 더한 쓰레기 집단으로 치부할지 소름이 끼친다. 군 내부의 사병들의 인권문제는, 군대라는 특성상 모병제로 가더라도 절대적으로 변할 수 없는 부분들이 엄존한다. 모병제로 가면 그런 부분들이 좋아질 것이라는 것은 한낱 꿈이다. 모병제 군대에도 가혹행위는 있다. 우리나라 군대의 불필요한 가혹행위들은 징병제의 특성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일본 황군의 잔재에 더 가깝다.

현재 논의되고 있는 모병제 논의는 국방에 해를 끼칠 수 있는 위험한 선전선동이라고 본다. 그 이유는 단지 북한과의 대치상황의 문제를 떠나서, 본질적으로 징병제 폐지론이 군대가 사회의 공적이라는 네가티브 적인 인식을 근거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모병제를 하더라도 군대가 없어지는 것이 아니다. 지금도 군대에 대한 인식이 나빠서 군대를 안가는 것이 오히려 떳떳하고 심지어 소신있는 행위로까지 받아들여지고 있는데, 군대는 나쁜 곳이고 악이라고 선전해놓고 모병제를 하면 도대체 누가 기꺼이 군대를 가서 내 대신 죽어주려고 하겠는가. 군대의 폐해를 강조해서 징병제의 폐지근거로 삼는 것은 모병제에서 필요한 자원병의 공급을 가로막아 도리어 모병제를 현실에서 멀어지게 하는 결과만을 낳을 뿐이다.
모병제가 되면 개인들이 병역 의무의 짐에서 벗어난다는 것은 망상이다. 일부 주장에서는 모병제가 되면 귀찮은 예비군 훈련도 안받아도 되니까 좋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앞서도 말했다시피 모병제가 되어 상비전력(현역)이 소수화 첨단화가 되더라도 유사시 모든 국민이 무기를 들고 나서야 한다는 것에는 변함이 없다. 즉, 모병제가 되더라도 예비군은 없어질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오히려 강화되어야 할 것이다. 지금은 군필자에 대해서 예비군 편입을 시키므로 예비군 훈련이 형식적인 것에 그치더라도 예비군의 전력화를 기대할 수 있다. 그렇지만, 모병제가 된다면 군경력이 없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예비군 자원을 편성해야 하므로 훈련이 보다 실질적이 되어야 하고 예비군 전력관리가 지금보다 오히려 강화되어야 유사시에 최소한의 쓸모있는 전투력으로 활용할 수 있다.

현재의 안보환경에서 모병제가 시기상조라는 주장은 충분히 타당성이 있는 얘기다. 모병제라는 것은 국방의 임무를 일부의 군인들에게만 전가한다는 것이 아니라, 평시에는 소수의 상비군만을 유지하고 유사시에는 병력을 동원하여 전력을 충당하는 것을 의미한다. 유사시 전 국민을 대상으로 병력동원을 하지 않는 나라는 없다. 어느 나라든 전국민이 국방의 의무를 지며, 단지 평시의 상비군의 규모를 얼마나, 어떻게 유지하는가에 따라서 표면적인 징병 정책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홈지기의 기억으로는, 홈지기가 향토사단에 근무할 당시 예비군 동원 시간계획이 48시간인가 그랬었다. 동원령 선포 후 48시간까지 예비군 부대 편성을 마친다는 말이다. 그리고 그렇게 편성된 부대도 실전에 당장 투입되는 것이 아니라 가능하면 다소의 재교육 기간을 가지도록 계획되어 있다. 그런데, 남북간에 전쟁이 벌어지면 수일 내로 결정적인 국면은 다 끝난다. 예비군이 동원 완료되기도 전에 이미 전투의 주요 고비가 넘어간다는 얘기이다. 따라서, 현재의 상황에서는 평시에 소수 인원만 상비군으로 유지하고 유사시에 병력을 동원하는 방법으로는 예상되는 근미래의 위협에 적절한 대처가 불가능하기 때문에 불가피하게 강력한 상비군을 보유할 수밖에 없다. 6주를 끈 2차대전 초기 프랑스전선에서도, 프랑스의 예비군 사단들은 숫자는 많았지만 마지노선 함락이라는 전투의 주요한 고비가 넘어간 다음에 전선에 투입되었기 때문에 패전을 막지 못했다. 이스라엘군도 예비군 전력에 국방을 의지하고 있지만, 이스라엘의 국방정책은 선제공격이며, 이스라엘이 선제공격을 받았을 때는 초기에 심각한 패배를 감수해야만 했었다.

소총으로 무장한 병사들이 전장에서 점차 할 일이 없어지는 현대전의 양상을 볼 때, 그에 합당한 전력구조를 유지하기 위해서 중장기적으로 모병제는 불가피할 것이다. 그렇지만 그것은 군대가 악이니까 사라져야 한다는 이유에서가 아니라, 장차 유사시에 국방의 주 전력으로 쓰일 수 있는 상비군 전력 구조를 가지기 위해서이다. 그리고 그러한 상비군 전력 구조의 개편은 현재의 안보환경에서는 힘들다고 본다. 한정된 예산으로 모병제를 한다면 불가피하게 상비군의 전력은 상당히 감소할 것을 감수하지 않으면 안된다. 남북한 전력비가 열세에서 약간 우세로 바뀐다고 해서 안보환경이 크게 안전해지는 것은 아니다. 북한군은 공세적으로 편성되고 배치되어 있다. 이러한 적대적인 상황이 바뀌지 않는 한, 안보환경은 전력차가 지금보다 남한이 더 우세해지더라도 본질적으로 변했다고 할 수 없다.
현재의 안보환경에 여유가 생기기 시작하면, 그때부터는 모병제 논의가 필요할 것이라고 본다. 그것은 우리 젊은이들이 충분한 준비와 무기를 갖추지 못한 채 유사시에 적들에게 맞서 인해전술로 개죽음하지 않고, 훌륭히 자기 몫을 하면서 국방의 의무를 다할 수 있게끔 할 수 있는 기반을 제공해주기 위해서이다. 나를 대신하여 기꺼이 죽을 위험을 무릅쓰는 사람들에게 그 위험을 무릅쓰기에 적합한 무기와 장비를 주고 합당한 예우를 해주는 것이 그들로부터 수혜를 받고 있는 사람들의 의무일 것이지만, 징병제에서는 충분히 그렇게 할 수 없기 때문이다.


* 출처 : http://user.chol.com/%7Eskidrow6/nondan/army.ht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