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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십니까, 박두만입니다. 예, 지금은 녹즙기 영업합니다. 전직 형사였죠. 제가 남들 앞에 나서는 게 영 서툴러서…. 아, 녹즙기는 잘 팔리냐고요. 제가 누굽니까. 사람들 눈만 보면 필이 딱 옵니다. 안 살 사람들은 눈을 똑바로 못보거든요.

올 봄에는 구질구질 비가 엄청 내리데요. 비만 오면 잡생각이 다 나는데, 사건 현장을 다시 찾아간 날도 그런 기분이었습니다. 여자애가 "어떤 아저씨가 며칠 전에 다녀갔다"고 하는데 기분 묘하데요. 그놈 잡는다고 뛰어다니던, 추억이라면 추억들도 떠오르고 그게 말짱 헛짓 아니었나, 그래도 나라와 국민을 위해서 그랬던 거 아닌가, 그러다가 그 놈을 당장 다시 잡고 싶은 생각도 들고.

지금이라도 다시 나서라고요? 어이고, 그 짓을 다시요? 차라리 녹즙기 장사는 처자식 먹여살린다는 목표라도 있죠. 그 변태 쫓아다니는 건 목표도 없어요. 나라와 국민? 그건 하는 말이지. 일단 화성 건 정도 되면 이놈 잡아서 족치겠다는 생각밖엔 없어, 그런데 그 생각에 빠지면 마약은 저리 가라인 기라. 머릿속에 피가 이, 한 곳으로 쫙 몰리면서, 살짝 도는 거지요. 맞습니다.

집념. 그게 사람 미치게 만들죠. 거시기에 털 없는 용의자 찾아서 목욕탕서 남의 물건만 쳐다보는 짓 집념 없이 하겠습니까. 더구나 부하 형사는 다리 잘리고 억울한 용의자는 눈 앞에서 기차에 깔려 죽고 해봐요 그땐 너 죽고 나 죽자죠.

그 집념땜에 약간의 우발적인 그 사고가 있기 마련인데, 고문이네, 비과학적 수사네, 써대잖아요. 과학수사 좋아하시네. 그래 막판에 박현규를 DNA 판독 결과땜에 놔주니까 속이 시원합디까?

까놓고 얘기해서 관객분들 그땐 이미 우리 편이었잖아요. 매달든지 패서라도 그 놈 입에서 자백이 나오기를 얼마나 바랐습니까. 과학수사 좋아했던 서형사가 막판에 "무조건 자백만 들으면 돼"하는 거 보셨죠. 그 거예요. 한참 가다 보면요. 뭐가 옳고 그른지 헷갈리게 됩니다. 내가 총들고 설치는 서형사 말리고 박현규한테 "밥은 먹고 지내냐"고 했는데, 그때 제 심정도 헷갈리는 거였습니다. 너도 사람이라 입에 밥을 쳐넣고 사나 싶기도 했고, 저도 나같이 고생하는 게 좀 안타깝기도 했던거 같고.

저같은 사람도 유식한 말로 시대의 희생양인 거 같습니다. 그때 학생놈들 데모 해대고 박종철이네 성고문이네 큰 사건 뻥뻥 터지는데 별 태도 안 나는 미궁 사건땜에 인생 종친 우리가 그렇지 않습니까. 아, 물론 그 범죄에 희생된 피해자들한테야 이런 말씀 못드리지만요.

그런데 그 자식 아직 살아 있을까요. 그 자식두 나처럼 세끼 먹고 로또 긁어대고 자식들한테 나쁜 놈 조심하라고 하겠죠? 변태 자식. 너, 영화도 보고 내 말도 다 듣고 있겠지. 그래 실실 비웃고 있지? 하지만 너 동네 허수아비에 써 있는 말 잊지 마라. "자수하지 않으면 사지가 썩어 죽을 것이다."


이윤정 영화 칼럼니스트


*** 이윤정씨는 서울대 인류학과를 졸업하고 영화 담당 기자로 일하다 로스앤젤레스로 건너가 육상효 감독의 '아이언 팜'프로듀서를 했다. 현재 joins.com에 '이윤정의 필름 토크'를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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