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말했다

양창순 대인관계클리닉 원장의 마음경영론

by 황해원 posted Jul 14,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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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ermedia.net/news/newsdetail.php?uid=8546&category=15“카리스마 버리고 나르시시즘을 사랑하라”

인간개발경영자연구회가 지난 6월 14일 개최한 제1505회 세미나에서는 양창순 대인관계클리닉 원장이 ‘성공하는 리더들의 마음경영’이라는 주제로 강연을 했다. 이를 발췌해 싣는다.


타임지에서 2006년도 인물로 ‘YOU’를 선택한 것은 내가 가장 중요하고 당신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이다. 
이 심리를 모르면, 앞으로 다가올 개인의 시대에 조직과 가정을 정서적 공동체로 이끌 수 없다.


위대한 기업으로 발전한 조직은 카리스마가 넘치는 리더가 아니라 나르시시즘을 이해하는 리더가 이끈다.


오늘 내가 말하는 심리 한 가지만 알면 내 마음의 80%, 상대방 마음의 80% 이상을 알 수가 있다. 그것은 ‘심리 중의 심리’라고 말할 수 있는데, 바로 나르시시즘이다.


그동안 우리는 나르시시즘이라고 하면 공주병, 왕자병 정도로만 생각을 했는데, 사실은 그것이 아니라 우리 정신의 양식이다.


나르시시즘을 한마디로 이야기하면 자기 사랑이라고 할 수 있다. 누가 뭐라고 해도 내가 가장 옳고, 내가 가장 중요한 사람이고, 그런 나를 세상은 인정을 해줘야 한다는 심리다. 내 자신이 가장 하찮다고 느껴지는 열등감도 사실은 나르시시즘의 다른 표현이다. 내게 나르시시즘이 있는데, 그것이 충족되지 않으면 어쩌나 하는 불안감이 열등감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나르시시즘과 연관된 욕구는 사랑과 인정의 욕구이다. 이것은 현대인들이 가장 갈망하는 욕구이고, 내가 오늘 말하는 주제이다. 하위욕구가 만족이 될 때 상위 욕구에 대한 갈망이 생겨난다. 사랑과 인정의 욕구가 충족되지 못하면 자기실현화의 욕구가 생겨나지 않는다.


반대로 상위 욕구가 만족되면 하위 욕구는 만족스럽지 않아도 행복하다.


우리가 살기 위해서는 밥을 먹고 숨을 쉬어야 하고, 우리가 생존하기 위해서는 사랑과 인정의 욕구가 충족되어야 한다. 그것은 우리 정신의 양식이다. 그런 사랑과 욕구에 대한 갈망이 채워지지 않으면 모든 것들을 다 가지고 있어도 정신적으로는 배 고프고 목 마르다.


요즘 젊은 친구들을 이해하는 데 있어 싸이월드와 블로그를 논하지 않고서는 불가능하다. 이것은 바로 나르시시즘을 이용해서 만든 것이다.


나르시시즘을 이용한 싸이월드·블로그 

싸이월드는 미국에까지 수출한다고 하는데, 이 복잡한 현실에서 내 얘기를 들어줄 사람이 없지만 나는 하고 싶은 얘기가 너무 많을 때, 내 싸이월드와 내 블로그에 들어가면 내 마음대로 얘기할 수 있고, 내 마음대로 일촌 공개나 비공개 등을 결정 할 수 있다. 내가 가장 옳고, 내가 가장 중요한 나르시시즘의 심리인 것이다.


요즘에는 조직마다 감성경영이 화두다.


우리는 사실 생각하는 동물이 아니라 감정의 동물이다. 여러분들도 생각으로는 참아야지 하는데, 참지 못하고 한 대 때리고 나서 후회했던 경험이 있을 것이다.


그것은 우리 뇌가 그렇게 생겼기 때문이다. 생각하고 판단하는 것에 관여하는 대뇌피질이라는 부위가 있고, 그 안에 변형계라고 해서 감정에 작용하는 부위가 있는데, 생각에서 감정으로 명령을 내리는 네트워크가 하나라면, 감정에서 생각으로 명령을 내리는 네트워크는 세 배나 더 많다는 것이 밝혀졌다. 그래서 우선 생각할 겨를도 없이 때리고 나서 후회하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우리를 이끌어 가는 감정과 연관된 심리가 바로 나르시시즘이다.


감정이라는 것은 한마디로 말하면 마음의 감각이라고 할 수 있다. 시각을 통해서 보고, 청각을 통해서 듣고, 후각을 통해서 냄새를 맡는 것이 살아 있는 동안에 자동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처럼, 감정은 우리가 알든 모르든 간에 그냥 느껴진다는 것이다. 그것을 가장 예민하게 건드리는 것이 바로 나르시시즘이다.


나를 인정해주고 격려해주고 사랑해주는 사람이 없으면 행복하지 않다. 가장 불행한 순간에도 “세상 모든 사람들이 너의 곁을 떠나도 나는 너의 곁에 있을게” 하고 말해주는 사람이 있다면 우리는 불행하지 않다.


짐 콜린스란 사람이 《좋은 기업을 넘어서 위대한 기업으로》라는 책을 썼다. 좋은 기업을 넘어서 위대한 기업으로 발전한 조직의 특성은 무엇일까 조사를 해봤더니, 그런 기업은 카리스마가 넘치는 리더가 이끄는 기업이 아니라 인간을 이해하는 리더, 인간의 심리, 인간의 나르시시즘을 이해하는 리더가 이끄는 기업이었다.


우리 안에는 무궁무진한 잠재능력이 있다. 융이라는 정신과 의사가 “우리의 무의식에는 집단 무의식이 있다”고 했는데, 인간이 생겨난 이래 인간이 경험한 모든 것들이 유전자를 통해 흐르고 있다. 단지 그것을 누가 일깨워 내고, 일깨워 내지 못하는가에 대한 차이일 뿐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그것을 이끌어 낼 수 있는가. 건강한 나르시시즘을 가진 사람만이 이끌어 낼 수 있다.


나르시시즘은 자기 확신을 이끌어 낼 수 있는 원동력인데,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내가 누구인가 하는 정체성과 내가 잘살고 있다고 생각하는 자기 확신이다. 자기 확신이 있을 때 하는 행동과 없을 때 하는 행동은 다르다.


그래서 진정한 감성 경영은 곧 나르시시즘 경영이다. 리더는 자신을 포함한 모든 사람들, 즉 내 가족, 내 친구, 내 친지, 내 조직원들에게 정체성과 자기 확신의 유전자를 항상 일깨워 주는 사람이어야 한다.


직원들에게 자기확신을 일깨워줘야 진정한 리더


사람들이 원하는 것은 세 가지 R이다. ‘respect’ 나를 존중해주고, ‘recognition’ 나를 알아주고, ‘reward’ 내가 한 일에 대해서 보상해주는 것이다. 이 세 가지 R이 채워질 때 진정한 감성경영이 이루어진다.


왜 이렇게 나르시시즘 경영이 중요할까. 나르시시즘이 상처를 받게 되면, 우리의 인간관계와 조직을 파괴시키는 수동 공격성의 심리가 작동하게 되기 때문이다.


요즘은 조직을 배신하는 사람들이 흔한데, 그들은 처음엔 월급을 많이 주기 때문에, 좋은 자리를 주기 때문에 배신했다 하지만 조금 더 심층적으로 상담을 해보면, 이쪽에서는 기억도 하지 못하는 상처가 가슴속에 있다가, 기회가 생기면 배신을 하게 되는 것이라고 한다. 일 힘든 것, 월급 적은 것은 얼마든지 참을 수 있지만 모욕과 멸시는 못 참겠다는 것이다.


즉 수동 공격성은 자신에게 위해를 가할 수 있는 파워를 가진 사람에 대한 분노를 간접적으로 표현하는 것을 말한다.


점점 더 개인화되는 사회에서는 더 나르시시즘이 중요해진다.


톰 피터스가 쓴 《미래를 경영하라》라는 책에서는 이제는 경영도 달라져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이제는 다중에게 파는 것이 아니라 “이 물건은 당신만을 위한 것이고 이 물건을 가진 사람은 60억 인구 중에서 당신밖에 없다”고 해야만 팔린다는 것이다. 미래에는 군대도 없어진다고 했다. 개인이 군대가 된다는 것이다.


미래는 총 천연색의 시대이기 때문에 나르시시즘을 모르면 이끌어 나갈 수가 없는 것이다.


타임지에서 2006년도 인물로 ‘YOU’ 바로 당신을 선택했다. 이것은 내가 가장 중요하고 당신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이다. 이 심리를 모르면, 앞으로 다가올 개인의 시대에 조직과 가정을 정서적 공동체로 형성할 수가 없다. 그러기 위해서는 더욱더 나르시시즘을 알아야 한다.


첫째는 최적의 나르시시즘 갖기이고, 둘째는 관심과 경청의 중요성 알기이고, 셋째는 분노 다스리기이다.


첫째 최적의 나르시시즘 갖기는, 매일 아침에 출근할 때 거울로 얼굴만 살필 것이 아니라 마음도 살피자는 것이다.


나의 나르시시즘이 어떤 상태인가. 내가 부족해서 열등감에만 사로잡혀 있는 것은 아닌지, 아니면 너무 넘쳐서 나의 나르시시즘만 중요하고 남에 대한 배려는 안 하는 것이 아닌지, 이러한 것들을 고려해서 최적의 나르시시즘을 갖자는 것이다.


최적의 나르시시즘일 때, 정신적으로 가장 유연성이 있다. 그럼 어떻게 하면 최적의 나르시시즘을 가질 수 있는가. 그것은 나르시시즘의 음과 양의 균형감각을 갖는 것이다.


분노 다스리기는 성숙한 리더의 덕목


나르시시즘의 음을 자기 자신에 대한 성찰과 조절의 능력이라고 한다면, 나르시시즘의 양은 다른 사람에 대한 배려라고 할 수 있다.


나르시시즘의 음을 가지고 있어 자기 자신을 성찰하고 조절하는 사람은 자연스럽게 다른 사람에 대해서 배려하게 되고, 나르시시즘의 양을 가지고 있어 다른 사람을 배려하는 사람은 자기 자신에 대해서 성찰과 조절의 능력을 갖게 된다는 것이다.


우리가 살면서 얼마나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가. 이것에 대처하기 위해서는 정신적으로 탄력성이 있어야 하는데, 그것을 이끌어 내는 지름길이 바로 최적의 나르시시즘이다. 몸이 유연할 때 움직임이 최대이듯, 마음이 유연할 때 자신의 잠재능력과 창의성을 최대한 발휘해서 자기 확신의 힘을 끌어낼 수 있는 것이다.


둘째가 ‘스페셜 YOU의 법칙’이다. 우리에게 가장 소중한 사람은 바로 나이다.


세계적인 대인관계 전문가 레스 기블린은 “인생을 살아가는 동안에 남의 말을 잘 들어주는 사람이 되는 것 이상으로 우리 삶에 도움이 되는 일도 흔치 않다”고 했다. 인간관계의 법칙은 이것 하나다. 사람들은 자기한테 잘해주고 관심 가져주는 사람을 좋아하고, 자기한테 관심 없는 사람을 싫어하게 되어 있다.


먼저 칭찬하고, 먼저 격려하고, 먼저 지지하는 것은 작은 일 같지만 아주 중요하다. 왜냐하면 인간을 움직이는 핵심심리인 나르시시즘을 충족시켜주기 때문이다.


셋째는 분노 다스리기이다. 살아가다 보면 기분 좋은 날 보다는 기분 나쁜 날이 더 많고, 나를 기분 좋게 해주는 사람보다는 기분 나쁘게 할 사람을 만날 확률이 더 높은 것이 인생이다. 나와 똑같은 생각, 똑같은 행동을 하는 사람을 만날 확률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분노 다스리기는 나르시시즘의 상처와 가장 연관되는 감정이기 때문에 더욱 중요하다.


마음에 분노가 있으면 어떻게 되겠는가. 우리가 분노할 때 ‘火’자를 쓰는데, 나를 화나게 한 상대방의 마음을 태우기 전에 나의 마음을 먼저 다 태우게 된다. 다 타고 재만 남은 마음에 무엇이 자라겠는가. 잠재능력, 창의성은 더 이상 자라지 않는다.


분노라는 불을 끄는 것은 생각이라는 물이다. 화가 났을 땐 생각하라는 것이다. 내가 왜 분노하는지, 내가 경험한 일이 적절한 정도인지를 생각하라는 것이다. 우리의 행동은 습관과 훈련에 의해서 변화하게 되어있다. 처음엔 힘들지만 화가 났을 때를 생각한다면, 분노의 50%는 줄어드는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그래도 분노를 표현해야만 한다면 분노 표현법이 있다. 모욕하거나 무시하지 말고, 내가 상대방에게 원하는 것만 간결하고, 명료하고, 부드럽게 전달하라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불필요한 에너지 낭비는 금물이다. 그리고 자신의 가학적이고 공격적인 충동을 경계해야 한다.


작은 것이 어떤 큰 영향력을 미칠지 모른다고 할 때 등장하는 것이 기상학자 에드워드 로렌츠의 ‘나비효과’이다. 인간관계에서 나비 날개의 펄럭임은 나르시시즘의 활용에 해당한다.


“넌 정말 소중해!” “여보! 정말 열심히 일하셨어요” “너 정말 열심히 일하는 구나!” “네가 내 아이라서 얼마나 행복한지 몰라!” 이런 나르시시즘의 충족이 기적을 일으키지만, 나르시시즘의 상처는 파괴적인 결과를 가져온다는 것이다.

* 출처 : 이코노믹 리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