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까대는 '도피유학'의 성공기를 제 경험에 반하여 써보겠습니다.
저는 중학시절 조기유학을 갔는데 유학을 나가기전 성적이 정말 꽝이었습니다. 공부도 절대 않했고 당시 한창 천리안/케텔등에 미쳐 살았습니다. 중학 올라가기 전부터 국민학교 6학년때 천리안에서 약 300명정도 되는 회원을 가진 동아리 관리인/공동 운영자로 활동했다 하면 대충 이해 가실 겁니다.
제가 조기유학을 간 이유는 순전히 '기회가 되서'였습니다. 하지만 물론 처음 유학갈 당시 목표 의식도 있었습니다. 어린마음에 PC통신과 컴퓨터 기술이 너무 흥미롭고 푹 빠지게 되서 중학교때 조기 유학 나가면서 이분야로 제가 나중에 가고 싶은 대학까지 미리 정해놓고 나갔습니다. 공부도 정말 않하는 녀석이었지만 그래도 그때는 나중에 크면 하고 싶은 일들이 컴퓨터 관련일이어서 그래도 나름대로 이렇게 목표를 세우고 조기유학을 갔습니다.
자... 여기서 '성공'이라면 제가 그 대학에 합격하고 학위를 마치고 한국에 귀국해서 전공을 살린 분야에 취직하는 것이겠습니까?
미리 말씀 드리자면 저는 결과적으로 인문대학을 가게 되었고 학부때 사회학을 전공하여 현재 같은 전공으로 박사학위 연구를 하고 있습니다. 진도가 180도 바뀐 것이지요.
수학/과학성적이 않되서 그런 것 아닙니다. 처음 유학 나와서 많은 한국학생들이 경험한 것 처럼 저도 외국서 수학신동이라는 말 들으면서 학교 다녔습니다. 시험만 봤다 하면 만점이고 같은반 친구들이 자기 수학문제좀 설명해 달라고 아우성이었습니다. 근데 결과적으로 저는 인문대학을 가게된 것이고 이는 제게 있어 '목표가 뚜렷한 조기유학'이라는 개념에 조금 의심을 가지게 됩니다. 조기 유학이라면 늦어봐야 중학교말 정도때 나가는 사람들을 조기유학이라 할탠데 그 나이때의 관심 분야/전공희망이 20대까지 유지된다는 경우가 오히려 특별한 경우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제 무슨일로 이러한 변화들이 있었고 공부라고는 꽝이던 녀석이 무슨 바람이 불어서 박사과정 연구까지 하게 되었는지 차근차근 설명해 보겠습니다.
초기 유학시절 어느날 영어수업시간 과제물이 영문으로 단편소설을 써오는 것이었습니다. 원체 글쓰는 일을 좋아했기 때문에 정말 밤새 가며 순전히 '재미로' 단편소설을 하나 썼고 유치하게 색연필로 표지 그림까지 그렸습니다. 무슨 '세상의 근원을 밝히는 마력의 고서'같은 것을 찾아 떠나는 사람들에 대한 판타지 스토리였습니다. I knowed, I speaked, I runned라는 식으로 과거형은 무조건 d/ed붙여가며 25페이지에 달하는 글을 썼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스토리 길이에 제한은 없지만 3~4페이지 정도면 된다고 했는데 저는 제가 쓰고 싶은 스토리가 길어서 길어졌습니다). 형편없는 글이었지만 선생님이 첫 찹터를 수업중 친구들한태 읽어 주었고 아이들은 제 영어글을 들으며 그 황당한 문법때문에 웃으면서도 내용은 나름대로 재밌다라는 말을 제게 해줬습니다 (당시는 같은 반 아이들도 저와 다름없이 유치했기 때문에 -_-;;).
그리고 미술 시간이 되었습니다. 선생님이 자유화를 그리라고 했는데 왜그랬는지 모르지만 조폭이 빠따들고 서있는 그림을 그렸습니다. 만화를 좋아하던지라 그림실력은 딸려도 조폭 정말 간지나게 그려줬습니다. 선생님은 제 그림이 뭔가 강렬한 느낌이 들어서 맘에 든다고 미술실에다 제 그림을 걸었습니다.
음악시간에는 선생님이 각자 연주하고 싶은 악기를 골라서 연습하라고 하셨습니다. 왠지 때리는게 재밌을 것 같아서 저는 드럼을 선택했습니다. 음악시간에 드럼을 치며 가장 신났던 적은 선생님이 애들립을 하라고 했을 때였습니다. 무슨 폭풍을 표현한 음악을 관악부랑 같이 연주를 하는데 중간에 천둥번개 컨셉의 부분이 몇마디 들어가야 하는데 이부분은 악보자체에 'percussion adlib' (타악기 애들립)이라 써있었습니다. 그래서 그 몇 마디 만은 미친듯이 드럼을 두들겨 대며 정말 신났습니다. 악보보고 따라하는 드럼레슨만 했으면 아마 일찌감치 때려쳤을 태지만 스스로 비트를 구상해 가며 막대기로 두들겨 패는게 너무 재밌고 스트레스 해소가 되서 그 후로 10년이 넘게 드럼을 쳐왔고 나중에는 알바로 약 반년간 드럼 선생노릇도 해봤습니다. 지금은 해체되었지만 대학시절 친구들과 결성한 밴드로 인디레이블을 통해 음반발매도 해봤습니다 (상업적으로 대 실패였습니다 ㅎㅎㅎ 음반을 소량 팔긴 팔았지만 클럽공연으로 받은 공연료들 합산해보면 그게 돈이 더 & #46124;으니까요).
이쯤되면 짐작하셨겠지만 저 조기유학 하면서 '공부' 정말 너무 않했습니다. 한국에서 않하던 공부 외국가서도 않한다는 말 100% 동감합니다. 하지만 저는 정말 '즐기며'학교를 다녔고 이는 제 성적과 학업에 관한 흥미를 몇배로 불려주었습니다. 미술시간/체육시간/음악시간이 너무 재밌어서 학교가는게 즐거워 지고 이런일들을 하면서 외국인으로서 느끼는 위축감이 사라지게 되었고 다른 수업시간에도 제 생각을 않되는 영어로/않되는 발음으로 당당하게 발표하게 되었습니다.
어느날인가는 지리시간에 일본과 한국에 관한 이야기가 나왔는데 무슨일이었는지는 기억 않나지만 뭔가 열이 받아서 수업중 정말 한참동안 일본 까대는 발언을 하였습니다. 선생님한태 나중에 따로 불려가서 "니가 왜 일본문제에 대해서 감정적으로 나오는지는 알겠는데, 좀더 냉정한 논리로 차근차근 풀어 설명하는 연습을 해야할 것 같다" - 이런 말씀을 들었습니다.
고등학교 시간에는 근대사를 배우면서 정말 수업 중 토론이 많았습니다. 수업 중 토론을 하다 보니 몇몇 미국아이들이 냉전/베트남/한국전등에서의 미국의 정책/군사활동 등을 무조건 옹호하는게 너무 보기 싫었습니다. 근대 제가 말은 밀리고 감정적으로 격해져서 토론도 잘 않되고 그런다는 생각이 들어서 고등학교때 철학책과 사회이론서등을 파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저는 이미 역사시간 동안은 러시아/동유럽 분야에서 반내의 전문가가 되었습니다. Marx의 원문을 영어로 번역한 것을 읽었기 때문에 다른애들이 소련/공산정책 어쩌고 하면서 나불댈때 공산주의 사상이 어떠한 식으로 소련에 적용되었고 사상과 정책의 차이, 공산주의라는 정치적 사상을 전파하는 일과 러시아의 국수주의 에서 나온 정책들간의 차이를 짚어대며 나름대로 수업 중 토론에 저만의 독특한 의견을 내놓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같은 이유로 대학들어와서 다른아이들이 플라토/아리스토틀 얘기를 할때 뭔가 찔러주고 싶은점들이 생겨서 여름내내 노자를 판적도 있습니다; 대학원 초창기때 하라는 연구 않하고 재밌는 철학책만 읽으며 몇개월 보내다 담당교수님한태 호되게 까인적도 있습니다)
저는 고교시절부터 친구들과 술집을 다니기 시작했는데 술집에서도 여자/축구/음악/영화 얘기 아니면 대체로 이런 쪽으로 대화가 많이 흘렀습니다. 그래서 전 역사공부를 술집에서 친구들과 했다고 지금도 말합니다. 제가 생각지 못한 점들이나 제 견해의 오류등을 친구들에게 지적당하며/말싸움을 하며/토론을 하며 역사를 비판적으로 보고 글쓴이/화자의 논지를 빨리 파악하는 훈련이 되었습니다.
제가 이런 이야기를 구구절절 하는 이유는 한국교육체제에서 학년이 오를 수록 학교에서의 낙오자로 전락하는게 뻔히 보이던 학생이 조금 다른 교육환경속에서는 학교에 재미를 붙이고 친구들과 잘 어울리며 생각지도 못하던 분야에 흥미를 가지게 되어서 차츰 자기 진도를 스스로 개발하고 확정지어가는 일이 가능한 일이고 현실속에서 제게 직접 일어난 일이라는 것을 증명하고 싶어서 입니다.
'그래서 너는 조기유학 성공한 케이스냐?'라고 묻는다면 저는 별로 할말 없습니다. 목표로 한 대학에 들어가지도 않았고 목표로 한 전공을 하지도 않았으며 아직 귀국해서 취업을 달성한 것도 아닙니다. 제가 조기유학으로서 얻은 가장 큰 결과는 '성공'이 아닙니다. 제 본인의 유학생활을 돌아볼때 후회가 되지 않는 이유는 제가 무엇인가를 이루고 '성공'했기 때문이 아니라 바로 학교 다니고 흥미있는 분야의 공부를 스스로 찾아서 하며 정말 '재미있었기 때문'입니다. 한국 교육시스템 까대는 일은 여기서 하지 않겠습니다. 굳이 까댈 필요가 없기 때문이지요. 교육 수준이나 수업내용의 비교도 나름대로 의미있다 생각할 수도 있지만 제가 생각한 조기 유학의 가장 큰 장점은 최소한 한국에 비해 이렇듯 방황해 가며 뻘짓 해가며 10대에 10대답게 성장할만한 '시간'이 있는 교육환경이라는 점입니다. 한국 수업 수준이 더 높아도, 교육 시스템이 더 좋아도, 취업/대학진학등의 '성공'에 있어서 더욱 효과적이라 하더라도 저는 그게 싫습니다. 집에가서 읽고 싶은 책 한권이라도 더 읽고 심심할때 악기 연습 해가며 금요일 밤에는 술집서 친구들과 만담을 나눌 수 있는 '시간'이 저에게는 더 중요한 것 입니다.
저는 머리가 뛰어난 사람도 아니고 노력이 남다른 사람도 아닙니다. 단지 좋은게 좋고 재밌는게 재밌고 흥미로운게 흥미로운 지극히 정상적이고 단순한 사람일 뿐입니다. 한국에서도 물론 제가 조기유학을 하며 겪은 모든 일들을 언젠가 겪게되어서 나중에 정신 차리고 (?) 대학진학/맘에 드는 전공선택이 가능 했을 수도 있겠습니다. 하지만 '운이 좋게도' 저는 조기유학을 나와서 제 마음에 드는 환경 속에서 마음것 경험하고 방황하며 천천히, 아주 천천히 제가 하고 싶은 일들을 찾아 가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조기유학/도피유학에 대한 않좋은 의견이 나올 때마다 제 자신의 학창시절을 돌아보며 참으로 의아한 생각이 듭니다. 따지고 보면 저도 한국서 공부도 않했고 억지로 하려 해도 잘하지 못했으며 영어 점수는 중학시절 70점대를 넘으면 나름대로 만족하던 수준이었으니 누가봐도 이건 '도피유학'일 수 밖에 없겠지요. 또한 죽어라 영문법 책 파고 시험준비에 날밤샌다는 분들이 있는 와중에 저는 고등학생때 술 처마시며 토론하고 파티에서 여자들 작업좀 해보느라 말빨을 키우며 읽고 싶은 책들 찾아가며 독해력을 올렸으니 '바람직하지 못한' 유학생활을 한 것이고요.
저는 이러한 제 '도피유학'과 '망나니 유학생활'이 부끄럽지도, 후회되지도 않습니다. 남들이 '성공'어쩌고 말해도 저는 제가 걸어온 길에 만족합니다. 이러면 꼭 '혼자 자위하지 말아라'라는 사람들 있는데 님들은 자위 않하십니까? - 라고 묻고 싶습니다. -_-; 님들과 제가 다른점은 저는 건방지고 싸가지 없어 보일지라도 제가 무엇을 했다는 점에 스스로 만족해서 이런데 와서 글을 쓰고 '요런 방법도 가능하다'라고 홍보를 하며 자위를 하는 반면 님들은 남을 까대는 일을 자위삼아 한다는 점입니다.
맞습니다. 저는 '도피 유학생'입니다. 하지만 저는 제 자신을 알기에 제가 살기 힘든 환경을 도피해왔을 뿐 제 자신에게서 도피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래서 감히 말씀드립니다.
저는 '성공'한 '도피 유학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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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하지도 못했던 정도의 많은 분들이 이 글을 읽으시고 답글을 달아 주셔서 부득이하게 따로 이렇게 글을 삽입하게 되었습니다. 우선적으로 말씀드리자면 답글 다신 분들 중에 저희 어머니/아버지 나이정도 되시는 분들도 있는 듯 한데 솔직히 이런분들 앞에서 틀린 단어들, 속어들, 과격한 표현들 사용한거 부끄럽게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러한 점들을 정확히 꼬집어 지적해 주신 답글들이 있기에 본문은 수정하지 않겠습니다. 그냥 제가 잘못하고 혼난 기록이 공식적으로 이렇게 남았으니 저보다 어린 학생들도 제가 잘못한 점들을 보고 다른분들께서 지적해주신 부분들을 보면 배울점들이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집안사정/돈문제-> 제가 이 글에서 적은 일이 "니가 잘나서가 아니라 다 부모님 덕이다~" 이렇게 말씀하신다면 저는 그냥 "예 그렇습니다" 할수밖에 없습니다. 제 유학생활과 이에 대한 글로 인해 제 부모님께 '욕'이 아닌 '칭찬'이 돌아간다면 자식으로서 저는 그저 행복할 따름입니다. 저희 부모님 정말 엄청난 고생하셨고 저는 그저 항상 감사하고 죄송할 따름입니다. 정말 모든게 부모님 덕이고 이점 절대로 잊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제 국어 실력-> 답글에서도 말씀드렸지만 제 국어 실력은 자타가 공인하는 '초딩' 실력입니다. ㅠ.ㅠ. 따끔한 지적들 모두 수용하고 앞으로 '아니하다', '안했다', 진도-진로, 등등은 각별히! 주의하겠습니다.
유학생활/성공-> 유학투자비환수, 학위 취득, 귀국후 취직 여부에 따라 유학을 평가하는 '성공'과는 조금 다른 이야기를 하고 싶다는 마음에 이 글을 쓰기 시작하였습니다. 특히 한국과 외국의 '교육수준'에 대한 논쟁이 오가는 이 게시판에서 '교육수준'으로 설명되지 않는 다른점들을 보여드리고 싶었습니다. 어차피 한국고교생들 저보다 열심히 공부하고 노력한다는 것을 알고 인정하기에 '나같은 유학생도 이렇게 고생하면서 공부한다!'이런글은 쓰고 싶지 않았습니다. 이런마음에 나름대로의 '고생'은 접어두고 좋았던 일만 쓰다보니 '이거 너무한거 아닌가'라는 인상을 주기도 한 것 같습니다.
인문학유학-> 조기유학+인문학 전공이라는게 '학위 따고 내가 이돈을 뽑아낼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정도로 투자비/학위취득후 연봉에 차이가 엄청나게 나는 학문이기 때문에 하고 싶어도 못하고 많은 분들이 꺼려하시는 분야라는 점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또 이런 학문이 '금전적 투자가치성'을 생각하다 보면 도저히 할 수 없는 학문이기 때문에 정말 운좋은 환경에 처한 저라도 이걸 해야겠다는 책임감을 가지고 열심히 하도록 하겠습니다.
한가지 일화를 말씀드리자면 제 아버지께서 아주 예전에 교통사고를 당해서 정말 모든게 끝나버릴 수도 있는 상황에 처하셨었는데 한마디로'기적'으로 살아나셨습니다. 그 후 아버지께서는 교회를 다니기 시작하셨고 사업을 접고 신학공부를 하여 목사님이 된 후 이 기적을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다고 교회의 목사님께 말씀 드렸습니다. 그때 그 목사님 께서는 아버지께 따끔하게 한마디 하셨습니다. "사업하는 사람은 열심히 돈벌어서 좋게쓰면 그걸로 잘한거야". 교회와 종교라는 이슈를 떠나서 정말 마음에 와닿는 말이고 저도 이런생각으로 학문에 정진하도록 하겠습니다 (흥미로운 우연을 하나 말씀드리자면 저도 학부시절 교통사고를 당했다가 '기적으로' 살아난 경험이 있습니다)
수 많은 분들의 격려와 질타 정말 너무나도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여기서 한가지 약속을 하겠습니다. 제가 지금 연구/조사/자료수집 단계가 거의 끝나가고 있기 때문에 아무래도 내년 이맘때쯤이면 논문을 마치고 학위를 얻게될 듯 합니다. 중간중간에도 생각나는 점들을 이곳에 글로 쓰겠지만 2007년이 가기전에 반드시(!) 학위를 마치고 이곳에 돌아와 보고드리겠습니다. 제 글을 읽어주신 분들, 격려하는 답글을 달아주신 분들, 제 잘못된 점들을 지적해주신 분들 모두 '시간낭비했다'라는 생각 들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후기가 본문보다 길어질까봐 (-_-;) 그만 적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출처 : 미디어다음 '세계엔n' ( http://bbs1.worldn.media.daum.net/griffin/do/talk/read?bbsId=W002&articleId=4738&pageIndex=1&searchKey=&searchValue= )
가슴 속에 뭔가 잔잔하게 남는 것이 있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