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해원이세상

담아온 글들

연하가......
2006.11.07 11:24

[이현철] 연하가 어때서(35회)

조회 수 517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Extra Form

내가 대학원 합격한 날 철수는 한 동안 내 곁에 없었어요.
도서관엔 철수의 가방은 있었지만 그는 어디로 달아나고 없었지요.
약속했던 것이 있어 승주에게 연락을 했습니다.
승주가 최근 자주 연락을 해 주었어요.
내가 합격하는 날 축하해 주겠다고.
승주는 그도 학교 다니느라 바빴지만 애써 우리 학교까지 내려 왔었습니다.
오후의 해가 키작은 나무에도 가려지는 시간이었습니다.
승주가 도서관으로 왔을 때 하필이면 철수가 곁에 있었습니다.
철수는 왜 그런지 승주에게 과민 반응을 보였었지요.
그 날도 표정이 좋지 못했습니다.
차라리 철수가 곁에 없었다면 승주와 좀 더 오붓한 만남을 가졌을 겁니다.
내가 철수를 왜 신경쓰는 지, 나도 잘 모르겠습니다만 철수가 어색한 표정을 지으면 나도 어색해져요.
녀석이 내 뱉었던 다신 날 보지 않겠다던 말, 그 말 때문에 울었던 적이 있습니다.
그 말이 현실이 될 것 같아 내 앞으로의 생활이 그려지지 않을 것 같은 막막함, 알수 없는 답답함으로 울음이 나왔습니다.
아마 그런 생각을 했던 내 분에 못 이겨서 울었을 거에요.
다시 그런 생각을 하기가 싫습니다.
철수 녀석에게 끌려 가는 건 아닌지 모르겠어요.
녀석이 내게 삐치는 것이 요즘은 장난 같지 않습니다.
승주와 내가 만났을 때, 철수의 표정은 또 삐칠 것만 같은 모습이었어요.
그 녀석 표정에도 신경을 써야하는 내가 조금 우스워요.
철수 걔가 뭔대, 좋아하는 것은 맞지만 결코 다른 감정이 서려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그런데도 자꾸 끌려가는 느낌이 드는 것은... 승주와 오래 있을 수 없었습니다.

수원역 근처는 지저분합니다.
허름한 커피샵에서 차 한잔과 한 시간 가량의 대화를 공유하고선 승주를 보냈습니다.
저녁이 기운 시간에 승주와 버스 터미널까지 걸었습니다.
호호, 내가 남자를 바래다 주는 일도 생기네요.
아니다, 철수와는 이런 일 많이 해 보았지요 참.

승주가 떠나면서 내게 남겼던 말이 승주의 어색한 미소와 함께 그를 서글프게 합니다.

"만났던 사람에게서 사랑 고백을 받아 본 적 있니?"
"응? 그럼 제법 있었지."
"그 사람들하고 어색해졌었지?"
"응."
"나 때문이었니?"
"그런 셈이지."
"왜 몰랐을까?"
"뭘?"
"그때의 니 마음을."
"후후, 그 말이 꽤 멋있는데?"
"잊고 사는 것 보단 어색해도 만나는 게 낫겠지?"
"그 말을 왜 해?"
"넌 사람들과 잘 어울려 다녔지만 마음 속에 간직하는 사람은 한 명을 넘지 못하는 것 같다."
"무슨 말이야?"
"그 매력을 예전에 알았으면 좋았을텐데. 이 번엔 내가 어색해 지겠어."
"뭐야 너? 그런 말 하면 나 못알아 들어."
"그래도 잊혀지진 말자."
"야!"
"나 갈게. 흠!"

승주는 버스 터미널에서 미소를 남겨 주고 가볍게 떠났습니다.
철수가 삐치기 전에 달래 놓아야 겠지요.
저 참 착한 누난거 같아요.
솔직히 철수가 삐치면 좀 겁나요.
전에는 삐치는 게 표가 났는데, 승주를 만나고 나서부터는 삐치면 저대로 돌아서 가버릴 것도 같거든요.
녀석은 먹을 것에 약하지요.
그래서 핏자 한 판을 샀습니다.
자취방으로 갈 때까지 이 피자가 식지는 않을 겁니다.
전철 역으로 가는 길에 화려하진 않지만 포근하게 밝은 쇼윈도의 목도리를 감고 있는 마네킨을 보았습니다.
녀석이 간혹 말하던 눈 오는 날의 풍경.
철수는 목도리 얘기를 자주 했었지요.
그래서 그 마네킨의 목도리를 빼앗아 왔습니다.

자취방으로 오는 길은 수원역 근처 보다 훨씬 정감이 있고 깨끗하네요.
후후, 먹을 것으로 철수를 달랜 탓에 다음 날 도서관에서 철수를 볼 수 있었지요.
목도리는 괜히 사 주었네요.
철수는 목도리를 목에 감더니 과시하 듯 웃고는 도서관을 떠나 버렸습니다.
그런 철수의 모습이 좋긴 하지만 저런 모습에 이성의 감정을 품고 있다면 무척이나 쪽 팔릴 것 같습니다.
어머, 쪽 팔리다라는 말은 내 신분에 맞지 않는 말인데...

이 녀석 어디로 간 걸까.
철수는 점심 시간이 지났는데도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서울을 갔었군요.
공부도 하지 않을 녀석이 책은 무식하게 많이도 가져왔네요.
가방이 무거웠어요.
정희 때문에 오후에 도서관 자리를 뺐습니다.
녀석의 가방을 메고, 내 가방은 한 쪽 어깨에 걸고 학교를 나왔습니다.
철수 때문에 내 모습이 많이도 구겨지는군요.

점심은 정희와 내 방에서 중국 음식으로 해결했지요.
침대에 앉은 정희가 여기 온 이유를 말하네요.

"조금만 쉬었다가 상가 알아 보러 가자."
"너 돈은 있니?"
"없어. 내가 모은 돈이랬자 2000만원짜리 적금 든 것 밖에는..."
"야, 대단하다."
"푸후, 아직 이년을 더 부어야 돼."
"뭐야?"
"부모님이 기반은 잡아 주신댔어. 그 뒤로는 죽이되던 밥이 되던 내 소관이야. 나 시집갈 때 아무것도 해 줄 필요 없으니 지금 도와 달라고 했어. 나 약국 차렸다가 망하면 시집도 못가."
"대단한 용기다."
"우리 둘이 돌아다니는 것보다 누구 남자 한 명 데리고 다니는 게 낫겠지? 아무래도 여자 둘은 좀 쉽게 볼 것 같아."
"그런가?"
"철수 데리고 다니자. 근데 이 녀석 어디 간거야?"
"서울에 있대. 저녁이 되어야 온다는데."
"내가 오는 걸 알고서도 서울로 내뺏다 이거지."
"동생 원서 넣으러 가는 데 따라 간댔어."
"그럼, 승주씨 데리고 다니자."
"엉?"
"왜? 너 요즘 승주씨 다시 만난다면서?"
"그 사람 있는 데서 여기까지 거리가 얼만데."
"삐삐쳐 봐. 남자는 부려 먹을 수 있을 때 부려 먹어야 돼. 내가 겪어봐서 아는데, 만날 수 있는 사이라면 껀수를 자주 만들어야 돼."
"호호, 니가 지금 날 가르치니?"
"난 너처럼 건성으로 사람을 사귀지는 않았잖아."
"내가 사람을 건성으로 사귀었다구? 넌 사귀는 사람에게도 감정 표현을 잘 못했잖아."
"후후, 감정이라는 건 금방 생겼다 없어질 수도 있고, 다시 생겨나기도 해. 사귄다는 것은 그 사람을 알아 가는거야. 자기도 잘 못하면서..."
"내가 뭘 못해. 최소한 난 내가 좋아하는 사람에게 사랑한다고 먼저 고백은 할 줄 아는 사람이야. 그래 그 사람을 알고 나니까 헤어지고 싶던?"
"시비거는거야 지금?"
"아니다. 오래 붙어 있으면 정이 드는 걸까?"
"응. 여자는 정 때문에 우는거래."
"철수가 승주를 보면 과민반응을 보여."
"그럴만도 하지."
"왜?"
"철수가 승주를 적이라 생각했나 보지."
"무슨 적?"
"연적"
"치. 둘이 상대가 되니?"
"그건 니 마음에 달린 거구. 빨리 승주씨 불러."
"올까?"
"올거야. 약속이 잡혀 있어도 올거야 아마."

삐삐를 쳤더니 금방 전화가 왔어요.
그리고 한 마디 불평도 없이 여기로 온다고 했습니다.

"정말 쉽게 대답하네. 여기로 바로 온대."
"그렇지? 나도 그랬거든. 그가 보고 싶을 땐, 그가 무슨 부탁을 하던 만날 수 있다는 사실에 기뻐했던 적이 많아."
"그래. "
"철수가 도서관 나가는 것도 그 이유일 걸."
"그건 좀 틀려. 가방만 던져 놓고 자리를 비우는 시간이 더 많아. 기분 상하면 아예 나오지 않는 경우도 많아."
"후후, 너 연하를 사귀어 볼 마음은 없니?"
"내가 철수를?"
"나는 철수라고는 말 안했다? 너 말하는 투가 승주씨에게 예전 감정은 아닌가보구나?"
"그건 또 무슨 말이야?"

승주는 나에게 자연스럽게 행동하려고 노력한 탓에 조금 어색합니다.
그와의 거리감이 왜 생겼는지.
일년의 공백 때문이겠지요.
그가 군대간 이년 동안의 시간을 놓고 보면 그건 변명거리가 안되겠군요.
사랑했다 헤어진 연인들이 다시 만나는 경우보다 그대로 잊어버리고 사는 경우가 더 많지요.
그것 때문이라 생각해 봅니다.

"아무래도 학교 앞이 낫겠지요?"
"근데 다른 곳 보다 가격이 높네요."
"그게 제일 문제에요."
"왜 아파트 단지 내를 생각해 보지."
"거긴 재미가 없을 것 같아요."

그냥 그런 사이. 정희와 승주는 나를 통하여 알게 된 그냥 그런 사이다.
둘의 대화는 저런 식일 수 밖에 없다.
요즘 승주를 만나 나누는 대화들이 저런 대화들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마음을 여는 대화는 다소 어려운 말들로 변해 갔다.

"내 방에서 차한잔 하고 가."
"그래도 되니?"
"안될 이유라도 있어?"
"아니, 하하 숙녀가 혼자 사는 방이라."

철수는 자기 집 드나들 듯 들락 거리는데.

"정희도 같이 있잖아."

승주는 조용하게 내 방에 있었습니다.
테이블 의자에 앉아 주는 차를 마시며 고운 표정으로 내 방을 둘러 보았지요.
저런 모습에 내가 반했던 것 같습니다.
나에게 태연한 모습, 뭔가 사색하는 듯하고 고독해 보이는...

"방이 예쁘다."
"내가 좀 꾸몄지."
"흠, 이런 곳에서 살았구나."
"자취 시작한 지 오래 되지 않았어."
"밤에 혼자 있으면 좀 쓸쓸하지 않니? 잠이 오지 않을 때도 있을텐데."
"전혀."
"아, 그런 생각을 하지 않게 하는 녀석이 근처에 살아요. 내가 자취할 때도 자주 찾아 와 재롱을 떨고 가던 애가 바로 옆 방에 사는데요 뭘."
"아, 그 철수라는 후배말이군요."
"이 옆 방, 옆방이 걔 방이에요."

정희가 조금 얄밉네요.
왜 내 얘기를 자기가 하고 그런담.

"오늘은 고마웠어요."
"뭘요."
"그래 오늘 고마웠어. 내 친구 때문에 고생했지?"
"아니야."
"다음에 보답할게. 오늘은 이만 돌아가고 곧 크리스마스니까 그때 한 번 보자."
"그래 이제 일어서야겠다.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네, 집에 도착하면 열시 넘겠다."

내가 승주를 쫓아내는 듯한 인상이 드네요.
이제 여덟시인데. 승주와 철수를 다시 마주치게 하고 싶지는 않았거든요.
미안한 마음에 승주와 다음 만날 약속을 잡고 말았습니다.

"전철 타고 갈거야?"
"응. 크리스마스 때까진 시간 내기 힘든거야?"
"약사고시 때문에. 나 계속 여기서 공부해야 돼."
"약대는 4학년 때도 많이 바쁘구나. 그래 열심히 하고 크리스마스 때 한 번 보자."
"응?"
"이브날 내가 한 턱 낼게. 그때는 서울에 있겠지?"
"응. 그래 그때 만나자."

승주가 일어서려는 그 무렵에 철수가 내 방 초인종을 눌렀어요.
저 밴댕이 새끼가 승주가 내 방에 있는 걸 보면 또 삐칠텐데...
철수는 삐치기 보다는 오히려 승주에게 친절을 보였어요.
의외였습니다.
승주와 나란히 서 있는 철수의 모습이 결코 그 보다 작아 보이지 않았어요.
철수는 애써 여기로 내려 왔다가 승주 때문에 다시 서울로 갔습니다.
승주를 일찍 보내는 것이 미안했는데 철수의 행동이 그 마음을 좀 들어 주었습니다.
철수가 고맙네요.

"철수가 좀 고맙네."
"넌 밖에 나오지도 않았잖아.너 때문에 온 사람을 배웅도 안하냐?"
"승주씨가 왜 나 때문에 왔니? 너 보고 싶으니까 왔지."
"그래도 네 일 봐준거잖아."
"니가 대신 고마워 했잖아. 그리고 철수가 차 태우고 갔는데 뭘."
"그래, 어떻게 승주를 차에 태우고 다시 돌아 갈 생각을 했을까? 오면 고맙다고 해야겠다."
"고맙다? 왜?"
"승주를 태워다 주었으니까."
"네 사람인 승주를 남인 철수가 배려해 주어서 고맙다는 거야. 남인 승주에게 미안했는데, 네 사람인 철수가 그걸 만외해 줘서 고맙다는거야?"
"너, 자꾸 그런식으로 얘기할래?"
"아휴, 피곤하다. 우리 일찍 자자."
"너 그렇게 입고 잘거야?"
"아니, 내가 씻고 나올 동안 잠 옷하나 꺼내 줘."

오늘 정희가 좀 얄밉네요.
이 방에 내 잠옷이 세개가 있습니다.
그 중 두개는 철수가 준 것이지요.
철수가 내게 준 걸 정희가 입고 있는 걸 보면 좋아하지 않겠지요.

"야, 예쁘다. 너 이런 거 입고 잤었니?"
"좀 야하지 않니?"
"뭐, 우리 둘이만 있을 건데."
"철수가 올지도 모르잖아."
"걔가 어떻게 오니."
"너 내일도 내 방에서 잘 거 아냐?"
"괜찮아. 철수는 어릴 적에 목욕탕에서 같이 논 적도 있어."
"응?"
"걔 국민학교 2학년때까지 엄마 따라 여탕 온 애야."
"정말? 2학년이면 제법 컸을 때잖아."
"지금은 생각하기 힘든 일이지만 그 시절은 뭐 종종 있었던 일이잖아. 볼 것 다 본 사인데 이 정도야 가뿐하지."
"그래도 이젠 성인인데."
"어릴 때 기억이 너무 진하게 남아 있어서."
"지금 철수가 사는 동네에 네가 살았던거야?"
"응. 내가 중2 때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갔지 아마."
"많이 친했었나 보구나."
"응, 아주 친했었지. 10년 가까이 한 동네서 살았는데."
"그래서 오래만에 만나도 나보다 더 거리감이 없어 보이는구나."
"걱정 마, 걔가 내게 남자로 보일 일은 없을테니까."
"걱정 말라니?"
"혹시 질투할까봐."
"야!"
"내일은 철수하고 놀아야 겠다. 한 번 더 돌아다녀 보고 좋은 데 없으면 학교 앞에서 본 그곳으로 해야 겠어. 내일은 너 방해하지 않을게."
"열쇠 주고 갈테니까 나 없으면 니가 문 열고 들어 와 있어. 그리고 철수 얘 오늘 올 것 같애."
"안 올걸. 나 보러 올려나? 아니다, 참."
"뭐가?"
"오면 너 보러 오는거다."
"너 자꾸 왜 그래?"
"철수가 내게 고백한 게 있거든."
"응?"
"아직은 비밀이야. 쿠쿠, 잘하면 성공하겠는데?"
"무슨 말이야?"

?

List of Articles
번호 분류 제목 조회 수
공지 그가말했다 천재가 부럽습니까? 재능이 부족합니까? 3 update 9344
공지 한몸기도... 나에게 가장 중요한 것 4 update 9402
722 고도원의... 지친 머리로는 일할 수 없다 354
721 남녀...사랑 사랑받는 법 15가지.....☆ 1959
720 한몸기도... 창조적 생각 327
719 사랑밭...... 차이를 인정하고 존중하라 309
718 한몸기도... 죄인 315
717 은혜의글... 성경의 가르침에 귀 기울이라 1 253
716 고도원의... 인생의 장부책 343
» 연하가...... [이현철] 연하가 어때서(35회) 517
714 고도원의... 15시간 경영 338
713 한몸기도... 죄로 인한 고통 353
목록
Board Pagination Prev 1 ...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 99 Next
/ 99
위로